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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김동희 기자의 비디오 줌~업

사랑보다 자식에게 떳떳하길 원한 엄마의 이야기 ‘스팽글리쉬’

2006. 07. 28

아름다운 멕시코 여성 플로르는 어린 딸 크리스티나를 데리고 더 나은 삶을 찾아 미국으로 밀입국한다. 꿋꿋하고 자부심 강한 여주인공 플로르와 그가 만난 미국 중산층 가족의 모습을 통해 가족과 사랑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영화는 프린스턴대 입학 지원자들의 에세이를 심사하는 사무실을 비추며 시작된다. 심사관이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어머니’라고 써있는 에세이를 집어든다. 에세이의 주인공은 멕시코계 이민자인 크리스티나 모레노. 엄마 플로르와 자신의 이야기를 독백 형식으로 들려주기 시작한다.
플로르는 남편이 여섯 살짜리 딸 크리스티나와 자신을 버리고 집을 나가버리자 딸과 함께 살아갈 길을 찾다 미국 이민을 결심한다. 남미계 주민이 48%나 된다는 LA에 정착한 플로르는 영어를 배우지 않아도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없는 남미계 거주 지역에서 두 가지 직업을 갖고 밤낮으로 일하며 딸을 부양한다. 하지만 6년 후, 예쁘게 성장한 어린 딸을 남자가 꼬이는 걸 본 플로르는 밤에 딸과 함께 지낼 수 있는 직업을 찾아 백인 중산층 가정의 가사 도우미로 취직한다.
잭 니콜슨 주연의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로 아카데미상 주요 부문을 휩쓴 제임스 L. 브룩스 감독이 각본과 감독을 맡은 영화 ‘스팽글리쉬’는 라틴 문화권의 여주인공 플로르가 미국 중산층의 문화와 만나면서 벌어지는 소동과 갈등을 따뜻한 시선의 코미디로 그려냈다.


라틴 문화권의 여주인공이 미국 중산층 문화와 만나면서 벌어지는 소동과 갈등
플로르가 자신에게 익숙한 사회를 떠나 처음으로 만나게 된 백인 중산층 가족은 겉으론 멀쩡해 보이지만 안으로는 크고 작은 골칫거리를 안고 있다. 플로르가 클래스키 가에 가사 도우미 면접을 보러 간 날, 통역을 위해 따라온 플로르의 사촌이 투명유리창과 충돌해 코피를 흘리자 클래스키 가의 안주인 데보라는 염려의 말 대신 “나, 화 안 났어요”라는 엉뚱한 말로 주위를 당혹스럽게 만든다. 데보라의 엄마 에블린은 왕년의 인기가수였던 화려한 시절을 잊지 못한 채 아침부터 술잔을 놓지 못하는 알코올 중독자고, 데보라의 남편 존은 인정받는 요리사지만 기가 센 아내에게 눌려 살면서 뚱뚱하다는 이유로 엄마에게 잦은 타박을 듣고 있는 딸 버니스를 제대로 감싸주지 못한다.
플로르는 데보라가 일부러 작은 치수의 옷을 사와 딸 버니스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자 밤새 옷을 고쳐 버니스를 위로해주며 조금씩 클래스키 가의 일상에 스며들어간다. 함께 지내다보니 영향을 주는 만큼 영향을 받는 것도 자연스러운 이치. 클래스키 가의 여름휴가지에 딸과 함께 동행하게 된 플로르는 자신의 딸 크리스티나가 풍요로운 백인 중산층 세계에 매료되는 것을 불안하게 지켜보며 딸이 가난하지만 인정 넘치는 자신들의 세계를 부정하게 될까 염려한다.
자신을 숭배하듯 바라보는 크리스티나의 시선에 으쓱해진 데보라는 크리스티나를 데리고 쇼핑을 가고 염색을 시켜주고 학비가 비싼 사립학교에 장학금을 받아 들어갈 수 있게 도와준다. 크리스티나의 교육문제로 클래스키 부부와 서로 통하지 않는 영어와 스페인어로 한바탕 의견 충돌을 벌인 플로르는 미국 사회에서 딸을 키우기 위해선 자신도 영어를 배울 필요가 있음을 절감하고 맹렬하게 영어공부를 시작한다.
플로르가 영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되자 새롭게 생겨난 문제는 클래스키 가의 가장과의 로맨스. 통역을 사이에 두지 않고서는 대화할 수 없었던 그들이 서로의 고민거리를 털어놓을 수 있게 되자 갑작스럽게 가까워진 듯한 느낌을 받은 존은 머뭇거리며 말을 잇지 못한다.
“당신이 영어를 할 수 있게 되니까, 뭐랄까….”
유력 잡지에서 별 네 개를 받을 정도로 뛰어난 요리사지만 편안한 단골손님 대신 거들먹거리는 예약 손님들을 상대해야 하는 현실에 우울해하는 소박한 남자 존은 히스테릭한 아내에게서 찾지 못한 편안함을 그녀에게서 발견하고, 쉽게 눈물 흘리는 미국 남성을 이해하지 못하던 플로르도 차츰 그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존은 부동산업자와 바람을 피웠다는 아내 데보라의 고백에 충격을 받고 집을 나서다 마침 딸 크리스티나에게 나쁜 버릇을 들이는 데보라에게 항의하러 찾아온 플로르를 만나게 되자 영업시간이 끝난 자신의 식당으로 초대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찬과 데이트를 즐긴다. 하지만 영화는 잔잔한 설렘에서 아름답게 멈춰선다. 플로르는 말한다.

“자식들에게 부끄러운 부모가 될 수는 없잖아요?”


스페인 출신의 여배우 파즈 베가의 열정적인 연기 돋보여
어디서든 남자들의 시선을 끌 만큼 아름답지만 결코 자신의 아름다움을 무기로 내세우지 않고 딸에게 모범적인 어머니가 되려고 노력하는 여주인공 플로르 역을 맡은 파즈 베가는 톰 크루즈의 옛애인이었던 여배우 페넬로페 크루즈를 연상시키는 미모의 스페인 출신 배우. 영화 ‘카르멘’에서 정열적이고 요염한 카르멘 역을 맡았던 그는 영화 ‘스팽글리쉬’에선 모성애 강하고 꿋꿋한 젊은 어머니를 인상적으로 연기해냈다.
신경질적이고 불안정한 클래스키 가의 안주인 데보라 역은 ‘나쁜 녀석들’ ‘패밀리맨’의 테아 레오니가 맡아 개성있는 연기를 선보였고, 남편 존역을 맡은 ‘빅 대디’ ‘성질 죽이기’ ‘웨딩 싱어’의 로맨틱 코미디 스타 애덤 샌들러는 자신의 스타성을 과시하는 대신 극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섞여 들어가는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줬다.
아역배우들의 연기도 일품. 딸 크리스티나 역의 셀비 브루스가 엄마의 말투와 표정을 똑같이 흉내내며 엄마의 말을 통역해주는 장면은 깜찍하기 그지없고, 클래스키 가의 상냥한 딸 버니스 역의 사라 스틸은 2천대 1의 경쟁을 뚫고 뽑힌 아역배우답게 엄마의 독선과 무신경함에 상처받으면서도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고 어른스럽게 주위를 감싸는 소녀를 사랑스럽게 그려낸다.
남자들의 눈길을 끄는 아름다운 딸을 보호하기 위해 가사 도우미로 일하는 걸 떳떳하게 여기는 플로르는 딸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사랑도 일자리도 포기한다. 그래서 후일 딸에게 존과 만찬을 나누던 순간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노라고 떳떳이 얘기해줄 수 있었던 플로르.
클래스키 가를 떠나는 플로르에게 모든 사정을 아는 데보라의 어머니 에블린은 말한다.
“난 예전에 나 자신만을 위해 살았지, 자네는 딸만을 위해 사는군. 하지만 다 헛된 일이야.”
하지만 플로르는 살짝 미소 짓는다. 딸은 에세이의 끝에서 고백한다. 프린스턴대에 입학하고 장학금을 받는 것은 기쁜 일이지만 그것이 자신을 규정짓지는 않는다고. 자신을 규정지을 수 있는 유일한 사실은 ‘나는 엄마의 딸이다’라는 것뿐이라고.
‘스팽글리쉬’의 감독 제임스 L. 브룩스는 TV 시리즈물 제작자로 시작해 83년 ‘애정의 조건’으로 감독 데뷔했다. 그가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 제작까지 맡은 ‘애정의 조건’은 여주인공 셜리 매클레인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의 영광을 안겼고, 자신도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았다. 캐릭터가 생생하게 살아있는 유쾌하고 따뜻한 이야기와 섬세한 연출로 배우들의 매력을 십분 발휘하게 만들어주는 작가로 소문난 그가 각본과 연출을 맡은 또 다른 작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잭 니콜슨에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헬렌 헌트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겼다. 영화뿐 아니라 애니메이션 제작에도 참여해 인기 애니메이션 시리즈 ‘심슨 가족’의 감독 겸 제작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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