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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서방파 두목 김태촌·한국야구협회 사무총장 하일성의 아주 특별한 우정

글·송화선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06.07.27 11:06:00

한국야구협회(KBO) 하일성 사무총장이 1980년대 최대 폭력조직 가운데 하나인 서방파 전 두목 김태촌씨와 오랜 우정을 나누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화제다. 매일 만나지 못하면 속이 타고, 함께 걸을 때면 손을 잡고 다닐 정도로 각별한 사이라는 두 남자의 남다른 우정.
전 서방파 두목 김태촌·한국야구협회 사무총장 하일성의 아주 특별한 우정

김태촌(58), 하일성(57).
이름만 들어도 누군지 알 수 있을 만큼 유명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두 이름을 나란히 놓는 것은 왠지 어색하다. 한 사람은 ‘인천 뉴송도호텔 사장 피습사건’으로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조직 서방파의 전 두목이고, 다른 한 사람은 인기 야구해설자로 활동하다 한국야구협회(KBO) 사무총장으로 자리를 옮긴 사람이니 말이다.
두 사람의 이름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공통점은 활발하게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는 정도일 것이다. 지난해 7월, 16년 6개월의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김태촌씨는 조직과의 인연을 끊고 ‘국제 청소년 범죄예방교육원’ 중앙연수원장을 맡아 학교·교도소 강연과 봉사활동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고, 지난 5월 KBO 사무총장이 된 하일성씨 역시 각종 스케줄로 분주하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은 아무리 바빠도 하루 건너 한 번씩은 얼굴을 보는 사이. 20년 동안 각별한 우정을 나누고 있는 친구라고 한다. 지난 6월 중순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만난 두 사람은 인터뷰 내내 서로를 칭찬하고, 잠시 질문이 멈춘 틈을 타 ‘수다’를 떨며 다정한 친구 사이임을 과시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낯설지 않았던 ‘천생연분’
두 사람이 처음 알게 된 건 지난 86년 김태촌 원장이 프로야구 ‘청보 핀토스’(현 SK 와이번스) 구단 이사를 맡으면서부터라고 한다. 당시 야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던 하일성 총장과 김 원장은 공식적인 모임에서 만나며 자연스레 안면을 트게 됐다고. 신기한 건 첫 만남 때부터 서로 낯설지 않았다는 것이다. 몇 차례의 만남 후 우연히 지방출장을 가는 비행기 안에서 하 총장을 마주친 김 원장은 대뜸 “주민증 한 번 보자. 대충 비슷한 연배 같은데 나랑 친구하면 어떻겠냐”며 말을 걸었다고 한다. 긴 인연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본격적으로 우정을 쌓게 된 건 87년 김 원장이 ‘인천 뉴송도호텔 사장 피습사건’으로 구속되면서부터. 세상 사람들이 모두 그에게서 등을 돌리던 그때, 하 총장만은 교도소를 드나들며 김 원장을 면회했다고 한다.
“왜 그랬느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어요. 그러고 싶었다는 것 말고는. 그냥 이 친구가 보고 싶었어요. 만나고 집에 돌아오면 또 생각나고. 그럴 땐 편지를 썼죠. 편지 쓰고, 만나고 하다보니 자꾸 가까워지는 거야. 오히려 밖에서 만날 때는 알지 못했던 이 친구의 진솔한 면, 따뜻한 면을 많이 알게 됐죠. 지금 생각해보면 전생에 무슨 인연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끌렸을 리가 없어요.”
하 총장이 김 원장에게 보낸 편지 내용들을 보면 이 둘의 인연이 남다르다는 사실을 금세 눈치챌 수 있다.

어려움 겪으며 다진 우정, 이제는 서로가 목숨만큼 소중해
“굉장히 추운 겨울날 하 총장에게서 편지를 받았는데, ‘내가 자는 방이 너무 따뜻해서 너에게 미안하다. 그래도 이렇게 하루하루 날이 갈 때마다 널 밖에서 만날 수 있는 날이 다가오는 것 같아서 행복해’라는 내용이었어요. 독방 생활을 하며 외롭고 쓸쓸할 때면, 밖에서 날 기다리는 이 친구가 있다는 게 정말 든든했죠. 지금도 그 편지를 간직하고 힘들 때마다 펴보곤 해요.”
하 총장이 어려움을 겪을 때는 김 원장이 힘을 보탰다. 하 총장은 지난 2002년 방송 중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져 2차례에 걸쳐 대수술을 받고 위기를 넘긴 적이 있다. 2004년에는 위에서 종양이 발견돼 또 수술을 했다. 몇 차례나 생사의 고비를 넘기는 동안 김 원장은 친구를 만나러 가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렀다고. 교도소 안에서 종교를 갖게 된 그는 늘 하 총장을 위해 기도하며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보고 싶다’ ‘제발 건강해라’ ‘나 나갈 때까지는 꼭 살아있어야 한다’는 내용이 빼곡히 담긴 편지들이 하 총장에게 큰 힘이 됐음은 물론이다.
“그렇지, 바깥 세상에 나온 이 친구를 봐야지 하는 생각으로 버텼어요. 사실 이 친구 몸도 성한 데가 없거든요. 폐암 말기라 한 쪽 폐를 잘라냈고, 인공 심장판막을 달았어요. 관상동맥에도 튜브를 끼우고 있죠. 그 힘든 몸으로도 버티며 내게 힘내라고 하는데 어떻게 죽어요. 살아서 만나야죠. 어떻게 생각하면 난 이 친구 덕에 살았어요(웃음).”
하 총장이 “김태촌은 내게 목숨과도 같은 친구”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우정을 색안경 끼고 바라보는 이들도 많은 것이 사실. 둘의 우정이 알려지면서 하 총장에게 ‘도대체 뭘 바라고 주먹 옆에 있는 거냐’고 묻는 이들까지 있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김 원장은 친구에게 미안하기만 하다.
“왜 사람들 앞에서 나랑 친구라고 얘기하느냐고 화도 냈어요. 이 친구는 누가 제게 나쁜 말이라도 할라치면 가만있지 않거든요. 그럴 필요 없다니까, 그러다 괜히 쓸데없는 오해라도 사면 어쩌려고 그래?”
김 원장의 핀잔에 하 총장은 “사람들의 시선을 바꾸기 위해서라도 더 말하고 다녀야지”라며 입을 열었다. 하 총장이 생각하기에 두 사람의 관계에서 득을 보는 건 언제나 자기 쪽이라고 한다.
“이 친구가 감옥에 있을 때 면회를 가면 늘 자기는 저랑 같이 교회 다니는 게 소원이라고 하는 거예요. 사실 전 한 번도 종교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그런데 감옥 안에 있는 사람의 소원을 어떻게 안 들어줘요. 그래서 ‘그래, 그러자. 밖에만 나오면 같이 교회 다닐게’ 그랬죠. 그런데 출소하더니, 약속 지키라며 정말 절 데리고 교회에 가더라고요. 계속 피해 다니다 같이 다니게 된 지 이제 석 달 됐어요. 교회에 사람 끌고 가는 건달 봤습니까. 오히려 전 자꾸 나쁜 길로 빠지려고 하고, 이 친구가 ‘그러면 안 된다’ 그래요.”
김 원장은 지금도 게으름을 피우는 하 총장을 위해 매주 토요일마다 그의 집에 간다고 한다. 일요일 아침 함께 교회에 나가기 위해서다.

두 사람이 감옥 안에서 한 약속은 또 하나 있다. 김 원장이 출소하면 남은 인생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자는 것. 이 약속 역시 지난해 연말 둘이 함께 ‘이타회(利他會)’라는 모임을 만들면서 실천하고 있다. 하 총장이 회장을 맡은 이 단체의 부회장은 코미디언 김병조씨. 김 원장이 수감돼 있던 시절 안양교도소 보안과장이던 교정공무원 위찬복씨, 이정우 전 스포츠투데이 사장, 이상철 서울대 교수, 영화감독 채기호씨 등 두 사람의 지인들이 회원으로 참여했고, 김 원장은 감사를 맡았다. 이들은 매달 한 번씩 모여 소록도 등으로 봉사활동을 떠나고, 전과자와 무의탁 노인을 위한 복지시설을 만들기 위해 기금을 모으고 있다고 한다.
교회에 가느라, ‘이타회’ 모임을 구상하느라, 때로는 그냥 보고 싶어서 두 사람은 거의 매일 만난다. 같이 만나서 하는 일이라곤 ‘수다 떠는 것’밖에 없는데도 헤어지면 그립다고.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이렇게 밖에서 자유롭게 만난다는 게 꿈만 같아 서로 손을 꼭 잡고 걸을 때도 있다고 한다. 중년 남자들이 털어놓기엔 쑥스러울 수도 있는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도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토닥토닥 두드리고 있었다. 그렇게 살아있다는 걸, 가까이 함께 있다는 걸 실감하고 있는 듯했다.
“아직은 김태촌에 대해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 친구 정말 달라졌습니다. 평생 몸담았던 조직이니까 지금도 간간이 유혹이 있겠죠. 그래도 끄떡 없을 거예요. 돈 열심히 번 뒤에, 10년쯤 지나면 공기 좋은 곳에서 둘이 같이 살기로 약속했으니까요.”
‘친구’를 바라보는 하 총장의 얼굴엔 믿음이 가득했다. 김 원장은 대답 없이 20년 지기의 손을 꾹 움켜잡으며 웃기만 했다.
10년 뒤에도, 그 이후에도 두 사람의 우정이 변함없기를 바란다.

여성동아 2006년 7월 5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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