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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이별의 아픔

간암으로 갑작스레 세상 뜬 조소혜 작가와 각별한 우정 쌓은 탤런트 안승훈의 안타까운 심경

글·이남희 기자 / 사진·정경택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2006. 07. 24

‘첫사랑’ ‘젊은이의 양지’를 쓴 드라마작가 조소혜씨가 지난 5월 말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생전에 “간암 선고보다 더욱 긴장되고 두려웠던 것은 아침마다 받아보던 드라마 시청률표”라고 말해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고 한다. 그의 암투병 과정을 지켜봤던 탤런트 안승훈이 조씨를 보내며 가슴 아픈 심경을 털어놓았다.

간암으로 갑작스레 세상 뜬 조소혜 작가와 각별한 우정 쌓은 탤런트 안승훈의 안타까운 심경

지난 6월6일 경기도 양주 MBC 문화동산에 자리한 고 조소혜 작가의 묘소를 찾은 탤런트 안승훈


‘첫사랑’을 통해 회당 최고 시청률 65.8%라는 신기록을 세운 드라마작가 조소혜씨가 지난 5월24일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50세. 28세 나이에 처음으로 주말연속극 ‘그대의 초상’을 집필한 조 작가는 23년간 ‘억새바람’ ‘어둔 하늘 어둔 새’ ‘젊은이의 양지’ ‘첫사랑’ ‘종이학’ ‘엄마야 누나야’ ‘회전목마’와 같은 숱한 히트작을 발표했다. 그는 새로운 드라마 구상을 위해 프랑스에 머물던 중 몸에 이상이 생겨 급거 귀국했고 간암 판정을 받은 지 불과 20여 일 만에 숨을 거뒀다.
지난 5월26일 경기도 양주 MBC 문화동산에서 치러진 조 작가의 장례식에는 그의 작품에 출연했던 탤런트 박상원·최수종, 김승수 배우학교 한별 교장(전 MBC 드라마 국장), 드라마 PD 이응진·이관희·김종창, 방송작가 노희경·김지우 등 50여 명이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특히 조 작가의 암투병부터 장례식까지 묵묵히 지켜봐온 탤런트 안승훈(48)의 감회는 남달랐다.
“보름 동안 물만 먹었던 조 작가가 세상을 떠나기 하루 전날, 서울 목동 집에서 어머니가 끓여준 된장국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렇게 먹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불길한 예감이 들었죠. 그게 마지막 만찬이었어요. 그러나 그의 투병과정을 보면서 가슴앓이를 너무 많이 해서 차마 조 작가의 임종은 지켜보지 못했습니다.”

간암 판정 받고 20여 일 만에 세상 떠나
안승훈은 지난 87년 이응진 PD가 연출하고 조 작가가 집필한 드라마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에 출연하며 그와 첫 인연을 맺었다. 그는 96년 이응진-조소혜 콤비가 만든 대표작 ‘첫사랑’에서 최수종을 괴롭히는 이승연의 삼촌 왕기 역을 맡아 주목받기도 했다. 하지만 안승훈과 조 작가의 인연은 비단 배우와 작가의 관계에 그치지 않았다. 90년대 중반 경기도 부천시 중동에 함께 살면서 이웃사촌으로 끈끈한 우정을 쌓은 것. 간암 말기 선고를 받은 조 작가를 위해 그는 한방병원과 요양지를 백방으로 수소문하기도 했다.
“제가 이응진-조소혜 콤비의 작품에 계속 출연하면서 세 사람이 남다른 친분을 쌓았어요. 조 작가와 같은 동네에 살 때는 제가 그에게 골프를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조 작가의 성격이 워낙 조용한 탓에 친하게 지내는 배우들이 그리 많지는 않았습니다. 다른 유명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에 단골로 출연시키는 배우가 많은데, 조 작가에게는 ‘조소혜 사단’이라 부를 만한 배우가 별로 없었어요. 그는 스타가 될 만한 새로운 재목을 늘 발굴했거든요.”
조 작가가 발굴한 대표적인 배우는 바로 ‘젊은이의 양지’와 ‘첫사랑’에 출연한 ‘욘사마’ 배용준이다. 그의 조카가 ‘사랑의 인사’에서 배용준을 인상 깊게 봤다고 하자, 그를 ‘젊은이의 양지’에 전격 캐스팅한 것. 최지우 역시 ‘첫사랑’에 출연하며 대중스타로 발돋움했다.
간암으로 갑작스레 세상 뜬 조소혜 작가와 각별한 우정 쌓은 탤런트 안승훈의 안타까운 심경

생전의 조소혜 작가.


광주여상을 졸업하고 은행원을 거쳐 84년 ‘드라마 게임-선택’으로 데뷔한 조 작가는 원래 화가를 꿈꾸던 소녀였다. 하지만 운명처럼 드라마 작가에 인생을 걸기로 마음을 바꿨다고 한다. 평생 독신으로 살며 드라마 집필에 열정을 바친 그였기에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더욱 안타까워하고 있다.
김승수 전 MBC 드라마국장은 “고인이 ‘의사로부터 간암 판정을 받는 것보다 더 긴장되고 괴로웠던 일은 지난해 말 방송된 일일극 ‘맨발의 청춘’ 시청률표를 매일 아침 받아볼 때’라고 말해 가슴 아팠다”고 말한다. 그를 유명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시청률은 곧 올가미가 돼 그의 삶을 옥죄고 만 것이다.
따뜻하고 감성적인 언어로 사람들을 감동시켰던 조소혜 작가. 장례식이 있은 지 10일 만에 다시 그의 묘소를 찾은 안승훈은 그에게 나지막이 인사를 건넸다.
“평소 남에게 폐 끼치는 것을 싫어하시더니, 마지막까지 사람들에게 부담 주지 않고 조용히 떠나셨군요. 저 세상에서 부디 좋은 남자 만나 사랑하시고, 이승에서 못다 한 집필의 꿈 맘껏 펼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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