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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프 딛고 맥도날드L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박세리

기획·김명희 기자 / 글·김종석‘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기자’ / 사진ㆍgamma 제공

입력 2006.07.24 17:37:00

프로 골프선수 박세리가 오랜 부진의 터널을 빠져나와 활짝 웃었다. 지난 6월 중순 맥도날드LPGA 챔피언십에서 우승컵을 안은 것. 2년간의 슬럼프가 골프선수로서, 인간으로서 한 단계 성숙하는 계기가 됐다는 그는 그간 궁금증을 자아냈던 연애와 결혼 계획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슬럼프 딛고 맥도날드L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박세리

“그동안 골프가 싫었어요. 제가 왜 골프를 하는지 알 수 없었거든요. 그러나 저는 다시 일어섰고 이제 골프를 즐길 수 있게 됐어요.”
한국 여자골프의 간판스타 박세리(29)가 지난 6월12일 미국 메릴랜드주 헤버디그레이스 불리락GC에서 열린 맥도날드L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그의 우승은 최종라운드에서 캐리 웹과 동타를 이룬 뒤 연장전 끝에 일궈낸 것이라 더욱 감동적이었다.
박세리는 미국 전역과 한국에 TV로 생중계된 시상식에서 소감을 밝히다 그동안 고생한 대목에서는 말을 더듬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 순간이 정말 기쁘고 행복합니다. 많은 어려움을 겪어서인지 가슴이 벅차요. 잘할 때는 몰랐는데…, 늘 한결같이 응원해준 팬들 덕분입니다.”
98년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에 데뷔한 박세리는 2004년 5월 미켈럽울트라오픈에서 통산 23승을 올린 뒤 급격한 하강곡선을 그렸다. 2개 대회에서 연속 예선에 탈락했고 본선에 진출해도 하위권을 맴돌기 일쑤였다. 설상가상으로 지난해 8월에는 손가락을 다쳐 LPGA 사무국에 ‘병가’를 내고 시즌을 접어야 했다. 슬럼프를 겪으며 박세리는 자주 울었다고 한다. 골프가 잘 안 풀렸고 좀처럼 탈출구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그때가 골프 인생에서 최대 고비였어요. 주위에서 저에 대해 목표의식을 상실했다는 등 이런저런 말을 하는 게 들리더군요. 생각이 많아지면서 머릿속이 복잡해졌고 결국 부상으로 이어진 것 같아요.”
참담한 상황에 빠진 박세리는 지난해 10월 골프채를 미국에 둔 채 귀국했다. 미국 진출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대신 대전 유성 집 근처 절에 다니며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 노력했고, 바닷가로 산으로 놀러 다니며 먹고 싶은 것 실컷 먹으며 쉬었다. 골프 말고는 다른 생활이 전혀 없었던 그로서는 모처럼 누리는 자유였다.
“서른이 다 되도록 운동밖에는 몰랐던 것 같아요. 그래서 한번 부진에 빠지니까 좀처럼 헤어나기가 힘들었죠. 아빠한테 ‘왜 노는 법은 가르쳐주지 않았느냐’고 따지기도 했어요(웃음).”
박세리는 ‘연습 벌레’ ‘스윙 머신’이라는 별명이 붙었을 만큼 성실하다. 그러나 주변에서는 오히려 한우물만 팠던 게 독이 된 것 같다는 분석도 있다. 운동 외에 다른 취미를 갖고 적당히 스트레스를 풀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것. 그를 딸처럼 아끼는 골퍼 낸시 로페즈는 그런 박세리에게 “골프만 칠 게 아니라 가끔씩 하늘도 쳐다보고 주위의 멋진 경치를 감상하는 여유를 가지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골프 외에는 노는 법을 몰랐던 것이 오랜 슬럼프의 원인이었던 듯
거듭된 부진 속에서 뒤늦게나마 평범한 진리를 깨달은 박세리는 지난 겨울부터 스윙 교정과 체력강화 훈련을 하는 한편 마음을 다스리고 정신력과 승부 근성을 살리기 위해 킥복싱과 태권도를 배웠다고 한다. 그리고 희망 속에 올 시즌을 맞이했고 지난 4월 진클럽스 앤드 리조트오픈에서 2년 만에 ‘톱 10’에 오르며 자신감을 회복했다. 그는 당시 이 대회에서 동갑내기 김미현이 4년 만에 우승한 것에 자극을 받았다고 한다. 김미현이 오랜 침묵 끝에 모처럼 정상에 서자 박세리는 마치 자신의 일인 것처럼 기뻐했다.

슬럼프 딛고 맥도날드L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박세리

‘요술 공주 세리’가 돌아왔다. 98년 US오픈에서 맨발로 물 속에 들어가 샷을 날리는 투혼을 발휘하며 우승, IMF로 시름하던 국민들에게 희망을 줬던 그는 2년간의 슬럼프를 딛고 지난 6월 맥도날드LPGA챔피언십 우승컵을 안았다.


“미현이가 우승한 걸 보고 저도 그렇게 될 것 같았어요. 미현이처럼 재기하리라 마음먹었죠.”
박세리의 부활에는 아버지 박준철씨(55)의 도움도 큰 힘이 됐다. 어려운 집안사정에도 승합차에서 라면을 끓여 먹여가며 딸을 세계적인 스타로 키워낸 박씨는 박세리의 부진에 누구보다 속이 까맣게 탔다. 10여 년 전 수혈을 잘못 받은 후유증으로 지난해부터 간염 증세를 보였지만 자신의 몸을 돌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그는 지난 4월 미국으로 건너가 한 달 동안 머물며 딸에게 예전 전성기 때 스윙 사진과 비디오 등을 보여주며 끊임없는 자극을 줬다고 한다.
박세리가 다시 정상에 서자 박준철씨는“며칠 굶어봐야 담을 넘는 게 아니냐”며 “세리가 그동안 너무 앞만 보고 달리다보니 어려움을 몰랐다. 이번 일을 계기로 한 단계 올라설 것 같다”며 흐뭇해했다.
25개월 만에 다시 챔피언이 된 그를 지켜본 사람들은 박세리가 예전과 달리 즐기면서 골프를 치고 있는 것 같다고 한다. 실수가 나와도 ‘허허’ 웃을 뿐 마음에 담아두지 않고 다음 기회에 멋진 샷으로 만회한다는 것. 맥도날드LPGA 챔피언십 최종 4라운드 마지막 18번 홀에서 아쉬운 보기로 공동 선두를 허용하고도 연장 첫 번째 홀에서 기적 같은 세컨드 샷으로 우승을 확정지은 게 그 대표적인 예다.
이번 우승으로 인해 자신감을 되찾은 그는 그동안 좀처럼 말문을 열지 않았던 결혼과 연애에 관해서도 솔직한 입장을 밝혔다.
“제가 결혼적령기이다 보니 그동안 제 부진을 연애 또는 결혼 문제와 연관짓는 분들도 있는데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골프는 자신과의 싸움이잖아요. 때로는 남자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지만 지금은 운동에 전념할 때예요.”
박세리는 분명 아픈 만큼 성숙해졌다. 그래서 그의 앞날이 더욱 기대된다.

여성동아 2006년 7월 5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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