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가 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는 박지성의 초등학교 시절 일기.
“한국의 2006 독일월드컵 희망은 박지성에게 달려 있다. 이제 그는 조국에서 축구에 관한 한 최고의 자리에 올라 한국의 월드컵 꿈을 두 어깨에 짊어지게 됐다.”
2006 독일월드컵 개막 직전 AP통신이 박지성(25·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대해 내린 평가다. 거스 히딩크 감독도 지난 6월13일 한국의 월드컵 첫 경기인 토고전을 앞두고 “내가 만약 토고 감독이라면 박지성을 가장 경계할 것”이라며 “그를 막아낼 수 있다면 토고는 이미 절반은 승리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한국팀에서 차지하는 박지성의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를 잘 보여준 분석이다.
경기 내내 그라운드를 누비며 한국 공격 진두지휘
뚜껑이 열린 독일월드컵 G조 조별리그에서 박지성은 이 같은 평가가 결코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토고전 역전승과 프랑스전 무승부가 모두 그의 발끝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월드컵 조별리그 첫 경기인 토고전. 그는 후반 8분 프리킥 반칙을 유도해 이천수의 동점골을 이끌었고, 후반 27분 안정환의 역전골을 도와주는 지능적인 플레이를 펼쳤다. 6월19일 프랑스전에서는 ‘박지성의 힘’이 유감없이 드러났다. 후반 36분. 설기현의 크로스에 이은 조재진의 헤딩 패스를 받아 프랑스의 골문을 가르는 천금의 동점골을 엮어낸 것이다. 승부에 대한 집중력이 없으면 성공시킬 수 없는 골이었다.
박지성의 진가는 골 외적인 면에서도 드러났다. 프랑스전에서 왼쪽 공격수, 오른쪽 공격수, 공격형 미드필더 등으로 포지션을 바꿔가며 90분 내내 팀 공격을 이끈 것. 요제프 벵글로스 국제축구연맹(FIFA) 기술연구위원은 경기 직후 “프랑스전 후반에 한국이 경기의 흐름을 바꿀 수 있었던 중심엔 박지성이 있었다”고 칭찬했다. 박지성의 소속팀인 영국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도 홈페이지(www.manutd.com)에서 “박지성이 막판 동점골로 프랑스를 기절시켰다(Park stuns France with late equaliser)”며 그의 활약상을 소개했다. 축구 전문매체 ‘풋볼’은 박지성을 ‘왕자 박지성(Park, le Prince)’이라고 칭하며 “조용한 아침의 나라의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4년 전인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그는 여드름 자국이 숭숭한 앳된 모습으로 “선배들이 시키는 대로만 했다”고 말하는 ‘신인’이었다. 그는 지난 3월 펴낸 자서전 ‘멈추지 않는 도전’에서 당시 상황을 “열세 살이라는 나이 차이에다 엄청난 명성에 눌려 차마 ‘홍명보 형’이라고 부르지도 못했다. 말을 붙여야 하는 일이 있을 때마다 참 곤혹스러웠다”고 적기도 했다.
작은 체격, 끝없는 노력으로 극복해
사실 175cm, 72kg인 박지성은 운동 선수가 되기엔 왜소한 체격이다. 고등학교 시절까지도 키가 자라지 않아 수원공고를 졸업할 때는 그를 데려가려는 대학이나 프로팀이 없어 애를 먹었을 정도. 그러나 가족의 사랑과 스스로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그는 신체적 약점을 극복했다. 아버지는 자기 키보다 몇 배나 높이 뛰는 개구리를 먹이면 아들 힘이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전국을 돌아다니며 개구리를 잡아와 먹였고, 그도 기술과 체력으로 체격 열세를 만회하려 한 것이다.
국가대표팀 공격수 박지성이 토고전에서 공을 잡고 상대편 진영으로 돌진하고 있다.
박지성은 자서전에서 “체격이 문제라면 기술로 승부하자는 결심으로 한순간도 공과 떨어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며 “공만 있으면 집 주변이나 방 안이 모두 훈련장이었다”고 회고했다. 최근 방송에 공개돼 화제가 된 그의 일기를 보면, 박지성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국가대표’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매일매일 자신의 훈련을 복기하는 성실한 선수였다. 경기를 뛰고 나면 발이 퉁퉁 붓고 아팠지만, 그럴수록 연습에 매달렸다. 축구선수로 뛴 지 10년이 지난 2001년에야 그는 자신이 평발이라는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의사가 발을 진찰한 뒤 “평발이니 되도록 뛰지 마라”고 조언한 것이다. 하지만 박지성은 여전히 달렸다. 현재 그의 심장 박동수는 1분에 40회로 마라토너 이봉주와 비슷한 수준이다. 광고를 찍으면서 일반에 공개됐지만, 그의 발 또한 끊임없는 훈련과 연습으로 상처투성이다.
그의 이런 노력과 성실함은 2002년 히딩크 감독을 만나 비로소 꽃을 피웠다. 히딩크 감독은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무명이던 그를 발탁, 주전으로 출전시켰고 그는 한국의 16강 진출이 달려 있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 포르투갈전에서 천금의 결승골을 넣으며 감독의 믿음에 보은했다. 또 월드컵 직후 히딩크 감독을 따라 네덜란드 에인트호벤으로 이적, 2005년 5월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AC 밀란과의 준결승전에서 선제골을 넣으며 국제무대에서도 통하는 선수임을 증명했다. 이 골은 한국 선수가 챔피언스리그 본선에서 넣은 첫 골. 이 경기에서의 활약으로 박지성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아 프리미어리거로서 새 장을 열 수 있었다.
박지성은 지금 세계 최고의 프로축구리그 프리미어리그에서 상위권을 놓치지 않는 ‘명문 중의 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주전급 선수다. 지난해 8월13일 프리미어리그에 데뷔한 뒤 첫해에 리그 38경기 중 34경기에 출전, 1골 6도움을 기록하는 활약을 펼쳤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의 강한 체력과 돌파력에 대해 “환상적”이라고 평가했고, 또 다른 영국 명문구단 ‘첼시’의 조제 무리뉴 감독도 “박지성의 지칠 줄 모르는 페이스를 존경한다”고 말했다.
지금 세계 축구계는 박지성의 두 발을 지켜보고 있다. 물론 한국 축구팬 또한 그의 두 발의 움직임에 따라 울고 웃을 것이다. “축구는 많이 뛰어야 잘할 수 있는 경기다. 많이 뛰는 선수는 그만큼 인정받을 것이고, 최고가 되고 싶다면 가장 많이 뛰는 선수가 돼야 한다”고 말하는 박지성. 그는 오늘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게 우리가 그를 사랑하고, 응원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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