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LIFE STYLE

영어 정복!

‘어학연수 안 보내고도 아이 영어 잘하게 만드는 비결’

뉴스 전문채널 YTN 동시통역사 오성호

기획·송화선 기자 / 글·장옥경 / 사진ㆍ조영철 기자

2006. 07. 14

아이를 외국에 보내지 않고도 영어를 잘하게 할 방법은 없을까. 여름방학을 맞아 많은 어린이들이 해외로 어학연수를 떠나는 요즘, 이런 고민을 하는 부모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어학연수 한 번 다녀온 적 없는 순수 토종이지만 뉴스 전문채널 YTN에서 통역사로 일할 만큼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는 오성호씨를 만나 ‘한국에서 영어를 정복한 그만의 비법’에 대해 들어보았다.

‘어학연수 안 보내고도  아이 영어 잘하게 만드는 비결’

오성호씨(38)는 한국외국어대 영어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통역번역대학원을 나왔으며, 현재는 뉴스 전문채널 YTN에서 방송 통역사로 일하고 있는 영어 전문가다. ‘이 땅에 태어나 영어 잘하는 법’ ‘뒤집어본 영문법’ 등의 베스트셀러 영어교육서를 펴낸 저자이기도 하다. 오씨를 인터뷰하러 가는 길, 기자는 당연히 그가 외국어에 남다른 재능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남들은 하다 하다 지쳐 포기해버리는 영어를 정복하고, 심지어 직업으로까지 삼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은 ‘아니요’였다. 심지어 학교 다닐 때 영어성적은 겨우 중간 정도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그는 영어에 능숙해질 수 있었을까.
미식축구 중계 보며 영어 듣기 배우고, 영화 장면 따라 연기하며 말하기 익혀
“전 지금까지 영어를 ‘공부’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그러니까 학교 영어시험을 앞두고 공부한 적도 없었죠. 사실 중·고등학교 때 영어 잘하는 아이들을 보면 시험 전에 교과서를 달달 외우거든요. 그러고는 100점을 맞는 거예요. 하지만 전 늘 70~80점대였어요.”
그래서 오씨는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자신이 영어를 할 줄 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고 한다. 그가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80년대에 ‘영어를 잘한다’는 건, 곧 ‘학교 시험에서 높은 성적을 거둔다’와 같은 뜻이었기 때문이다.
같은 반의 우등생들이 교과서를 붙잡고 영어공부를 하는 동안 그는 AFN에서 방송되는 미식축구 중계를 보고 라디오에서 나오는 팝송을 듣곤 했다. 영어는 그렇게 자연스런 삶의 한 부분이었을 뿐이다. 특히 돌이켜 생각해보면 새벽녘에 주로 방송되던 미식축구 경기가 그에게는 영어 교과서이자 학습서였다고.
“어느 날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AFN의 미식축구 중계를 보게 됐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박진감 넘치는 경기가 정말 멋졌어요. 정신없이 빠져들었죠. 시간 날 때마다 TV 앞에 붙어앉아 중계를 보곤 했어요. 캐스터가 뭐라고 하는지는 신경도 안 쓰고 말이에요.”

‘어학연수 안 보내고도  아이 영어 잘하게 만드는 비결’

팝송 역시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그는 라디오를 듣다 좋은 노래가 나오면 일단 따라 불렀다. 팝송을 영어공부를 위한 도구로 생각했다면, 아마 사전을 들고 단어를 찾으며 해석하기 위해 골머리가 썩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팝송을 음악 자체로 즐겼기 때문에, 노래를 외우기 위해 끝없이 반복해 들어도 지루하지 않았다고.
“영어공부를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영어를 잘 할 수 있게 된 거죠. 영어는 시험과목이 아니라 말(語)이잖아요. 일상생활에서 자꾸 사용해야 하고, 그러려면 재미가 있어야 하는데, 마침 전 제 취미와 영어가 자연스레 결합돼 있었던 거예요. 그 덕에 저도 모르는 사이 영어를 익히게 된 거죠.”
오씨가 처음 자신의 영어 실력을 ‘눈치 챈 것’은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였다고 한다. 영어과에 진학해 수업시간에 미국 드라마를 보게 됐는데, 동급생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을 술술 알아들었던 것이다. 화면만 봐도 이해할 수 있는 스포츠 중계를 볼 때는 자신이 캐스터의 말을 알아듣는 건지 아니면 스스로 경기내용을 판단하는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었는데, 드라마를 보기 시작하면서부터 영어를 듣고 이해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고.
“정말 신기한 느낌이었어요. 제가 영어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영어로 읽고 쓰고 싶다는 욕심이 들더군요. 그때부터 ‘공부’를 시작했죠.”
하지만 지금껏 영어를 익혀온 자신만의 방법을 바꾸지는 않았다. 문법책을 보는 대신 소설책을 펴든 것이다. 오씨는 어렵게 느껴지는 고전문학 대신,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통속소설을 많이 읽었다고 한다. 모르는 단어가 나올 때는 그냥 건너뛰거나 영영사전을 이용했다. 읽기 실력이 좀 나아지면서부터는 영자신문도 읽기 시작했다.
그가 다시 한 번 자신의 영어 실력을 실감한 것은 지난 1992년 미국 LA에서 흑인 폭동이 일어났을 때라고 한다. 당시 영자신문에 실린 기사를 보다가 분에 겨워 자신의 느낌을 담은 독자 투고를 신문사로 보냈는데, 그 글이 거의 그대로 지면에 실린 것이다. 오씨는 이때 처음으로 ‘내가 영어로 쓸 수도 있구나’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 느낌이 좋아서 이후에는 영어로 수필도 써보고, 독자 투고도 하는 등 자연스레 글을 쓰게 됐다고 한다.
“요즘 학부모들이 들으면 ‘저게 말이 되나’ 싶을 거예요. 요즘 아이들은 자기가 영어를 할 줄 아는지 모르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토익이나 토플 같은 시험을 치르니까요. 거기서 몇 점 받았느냐를 가지고 영어 실력을 따지고요. 하지만 제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영어 평가시험이 활성화돼 있지 않았어요. 그 덕분에 전 철저하게 실생활에서 영어를 익히고, 그 속에서 실력을 평가할 수 있었던 거죠. 다른 사람들의 말을 알아듣는 게 신기해서, 영어소설을 읽는 게 재미있어서, 제 글을 다른 사람들이 이해해주는 게 고마워서 영어를 더 많이 사용하다 보니 자연스레 영어가 늘어갔어요.”
그가 영어를 자유롭게 말할 수 있게 된 비결도 독특하다. 그는 ‘혼자 중얼거리기’와 ‘배우처럼 연기하기’를 말하기 교재로 사용했다. ‘혼자 중얼거리기’는 말 그대로 하루하루 생활하면서 벌어지는 상황들을 중얼중얼 영어로 표현해보는 것. 오씨는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에 갈 때까지, 혹은 강의가 없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혼자 있는 동안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영어로 만들어보곤 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책 속에서 읽었던 표현들이나 어딘가에서 들은 영어식 문장들이 자연스레 자신만의 말로 바뀌어 나오기 시작했다고.

‘어학연수 안 보내고도  아이 영어 잘하게 만드는 비결’

오성호씨는 영어와 함께 노는 것이 가장 좋은 영어공부법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오씨가 이보다 더 큰 효과를 본 방법은 영화를 보며 배우의 연기를 따라하는 것이었다. 그는 당시 큰 인기를 모은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를 수십번이나 되풀이해서 봤는데, 나중에는 주인공들의 대사를 거의 다 외울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 정도 경지에 오른 뒤 그는 직접 남자 주인공의 역할을 영어로 연기하며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정말 배우처럼, 실생활 속에서 영어를 사용하듯이 훈련하다 보니 어느새 영어가 입에 배게 됐다고.
“시험 영어와 즐기는 영어의 차이점은, 후자가 훨씬 정교하다는 점이에요. 얼핏 보면 시험 영어가 더 수준 있어 보이지만, 사실 시험에 대비해 영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문제를 맞힐 수 있는 수준까지만 공부하고 말거든요. 단어의 뜻도 가장 많이 쓰이는 한두 가지만 외우고요. 하지만 실생활에서 영어를 쓰다 보면, 우리말에서 토씨 하나로 미묘한 어감의 차이를 표현하듯, 언어의 아주 구체적이고 세밀한 부분까지 구별할 수 있게 돼요. 시험 공부만 하는 사람들은 절대 도달할 수 없는 경지죠. 그러니까 어느 수준이 지나면 단어를 연습장에 빽빽하게 써가며 외우고 문법책을 달달 외운 사람들보다, 영어와 함께 ‘논’ 사람들이 훨씬 능숙한 영어를 구사하게 돼요.”
그는 카투사에서 군 복무를 하며 자신이 스스로 익힌 영어가 실생활에서 막힘없이 쓰인다는 사실에 자신감을 얻게 됐고, ‘재미있는’ 영어를 좀 더 잘해보고 싶어서 ‘우리나라에서 영어 가장 잘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한국외대 통역번역대학원에 진학했다고 한다.
“아이가 영어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하면 엄마는 한 걸음 물러나주세요”
오씨의 말대로라면 정말 재밌게, 아무 어려움 없이 영어를 ‘정복한’ 그가 학부모들에게 하고 싶은 조언은 무엇일까. 그의 일성은 “제발 영어를 공부의 대상으로 여기지 말라”는 것이었다.
“요즘 부모들은 영어를 지식의 한 종류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러니까 자꾸 시험을 보게 하고 몇 점을 받았나 신경 쓰는 거죠.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아이에게 처음 우리말을 가르쳐줄 때 과연 시험을 보고 성적을 평가했는지 말이에요. 어제 가르쳐준 걸 오늘 기억하지 못한다고 혼내지도 않았을 겁니다. 아이가 서툰 발음으로 단어를 따라하는데 ‘너 틀렸잖아!’라고 지적해서 주눅들게 한 적도 없었을 거고요. 그런데 왜 영어를 가르칠 때는 전혀 다른 방법을 사용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오씨는 우리나라에서 영어를 공부하는 아이들의 영어 실력이 해외 어학연수를 다녀온 아이들에 비해 떨어지는 이유는 ‘영어를 언어로 대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우리의 영어교육은 음악시간에 노래는 부르지 않고 음악사, 화성법, 작곡가의 이력 등만 잔뜩 배우는 격이라는 것. 음악시험에서 100점을 받는 것보다 틈날 때마다 노래를 직접 부르는 것이 노래를 더 잘하는 방법인 것처럼, 영어도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영어공부를 시작하는 자녀를 둔 학부모가 또 주의해야 할 것은 영어를 시작할 때는 누구나 그때가 영어 나이 한 살이라는 점을 잊지 않는 것이라고. 이미 우리말을 잘하는 여덟 살 아이라 해도 영어를 처음 시작한다면 영어에 관한 한 우리말을 처음 배울 때와 같은 방법을 사용해야 하는데, 마치 국어 공부를 시키듯 받아쓰기를 하게 하고, 영어 일기를 쓰라고 하는 것은 ‘무지막지한 요구’라는 것이다.
“우리말을 배울 때 우리는 늘 듣는 것부터 시작해요. 그 다음에 그걸 따라 말하고, 읽고, 쓰게 됩니다. 영어도 같은 순서를 따라가야죠. 제가 아무것도 모른 채 팝송을 따라 부르고 미식축구 중계를 본 것처럼 자연스럽게 영어를 듣게 하세요. 아이들이 흥미를 느낄 수 있는 만화나 노래가 이 단계에서는 아주 좋은 도구죠. 아이들이 그 대상에 재미를 느끼면, 엄마가 강요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빠져들거든요.”
그리고 아이가 자신처럼 영어의 세계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하면 엄마는 한 걸음 물러나주라는 것이 오씨의 충고다. 아이가 ‘영어는 공부’라고 생각하는 순간, 자연스런 영어 습득의 기회는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아이가 연필을 잡을 줄 안다고 해서, 아직 듣지도 못하는 아이에게 단어를 쓰라고 하면 안 됩니다. 자연스럽게 아이가 영어 속에서 ‘놀 수 있게’ 해주는 것, 그게 엄마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의 선물일 겁니다.”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