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4년 조창인의 베스트셀러 ‘가시고기’를 아동용으로 만든 ‘만화로 보는 가시고기’를 직접 영어로 번역한 책을 펴내 화제를 모은 이채연양(14). 채연양의 외국어 실력은 2003년 영국문화원 주최로 열린 ‘학생영어경시대회’에서도 인정받은 바 있다. 말하기와 듣기, 독해 및 쓰기 부문에서 평균 4.3점(5점 만점)의 높은 성적을 거둔 것.
12세에 불과한 어린 소녀가 영작을 척척해서 책까지 펴냈을 정도면 그 부모의 뒷바라지가 남달랐을 듯싶다. 그런데 어머니 유영옥씨(39)는 채연양이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음악을 들려줘 소리에 대한 감각을 키워줬을 뿐 극성스럽게 아이를 교육하지는 않았다며 손사래를 친다.
“태동을 시작했을 때 태교음악을 들려줬는데 영재를 만들겠다는 거창한 욕심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채연이를 가졌을 때 유산할 우려가 있다는 진단을 받았거든요.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배가 딴딴하게 뭉쳐서 아주 조심스러웠는데 음악을 들려주었더니 뭉친 게 풀리고 아기의 태동도 편안하게 느껴지더라고요.”
배 속의 아기가 편안해하도록 클래식이나 가스펠 음악을 자주 들었다는 유영옥씨는 음악 듣기가 습관이 돼 출산 후에도 아이에게 음악을 계속 들려주었다고 한다.
생후 18개월 때부터 영어 비디오테이프 반복 시청
배 속에서부터 다양한 소리를 접한 채연양은 또래 아이들보다 소리에 민감하고, 말을 빨리 시작했다고 한다.
혼자 뒤집기를 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고개를 들면 오디오를 가장 먼저 바라볼 정도로 소리를 좋아했던 채연양은 생후 18개월 때 아빠 이수근씨(44)가 사다준 영어학습용 비디오테이프를 통해 언어영재의 초석을 다졌다.
“너무 어렸을 때 일이라 사실 저는 기억을 잘 못하는데 엄마 말씀으로는 우리말로 하는 비디오는 재미있게 보는 반면 영어로 된 것은 낯설어했대요. 하지만 거의 하루 종일 비디오테이프를 틀어놓고 반복해서 보니까 5개월쯤 지나서 제가 옹알이하듯 영어 비디오테이프를 따라하기 시작했고 영어를 곧잘 말했다고 해요.”
채연양은 영어 비디오테이프를 볼 때마다 엄마가 불러도 알아듣지 못할 만큼 빠져들었다고 한다. ‘사운드 오브 뮤직’이나 ‘라이언 킹’은 너무 많이 봐서 테이프가 늘어났을 정도. 채연양은 자신이 좋아하는 영상물을 보면서 비교적 긴 문장도 저절로 이해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처음엔 영어가 잘 안 들렸지만 차츰 발음이 귀에 들어오고, 그 의미가 파악됐어요. ‘이 단어와 이 단어가 합쳐져서 이런 단어가 됐구나’ 하는 것도 알 수 있었고요. 이런 것들이 머릿속에 들어오니까 신기하고 영어가 더 재미있어지더라고요.”
채연양이 네 살 되던 해 무더운 여름날, 엄마 유영옥씨가 아빠 이수근씨에게 “더운데 수박 한쪽 드실래요?” 하고 묻는 것을 듣고 채연양이 갑자기 “Mommy, That’s a good idea!(엄마, 그거 좋은 생각이에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순간 부모는 깜짝 놀랐고, 비디오테이프를 이용한 영어교육의 효과에 확신을 갖게 됐다고. 그 뒤로 다양한 영어 비디오테이프와 책들을 사들였다고 한다.
유씨가 채연양에게 영어공부를 시킬 때 반드시 지켰던 중요한 철칙들이 있다. 완전히 이해할 때까지 비디오테이프를 하나만 반복해서 보도록 하는 것. 또한 비디오테이프는 아이가 좋아하는 것으로 선택한다.
“테이프를 구입하기 전 아이와 10분만 이야기를 해보면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지 알 수 있어요. 동물, 동화, 노래, 게임 등 아이가 좋아하는 장르를 선택해서 매일 보여주는데 처음부터 너무 욕심을 내서는 안 돼요. 부담을 주면 아이가 도망가려고 하거든요.”
아빠 이수근씨도 채연양의 교육에 열정을 쏟았다. 그는 교육방송이나 AFN을 시청하며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프로그램을 녹화해 채연양이 보도록 했다.
수영이나 피아노 같은 예체능 분야를 제외하고 채연양이 학원을 다닌 것은 단 7개월에 불과하다. 그것도 5세 때 7세 아이들과 한반에서 영어공부를 했다. 영어학원에서 나이는 가장 어리지만 가장 빨리 알아듣고 대답을 하니 외국인 교사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채연양의 뛰어난 실력을 다른 학생들이 시기하기도 했다.
“다섯 살이 될 때까지 엄마가 한글공부를 시키지 않았어요. 제 이름도 쓸 줄 몰랐는데 학원의 언니 오빠들이 ‘한글도 모르는데 영어만 잘하면 뭘 하냐’고 놀렸어요. 집에 와서 빨리 한글을 가르쳐달라고 엄마에게 졸랐더니 엄마가 언니, 오빠들이 저를 ‘왕따’ 시킨다는 걸 알고 학원을 그만 다니라고 하셨어요.”
그 뒤로 학원에서 받던 수업을 엄마 유씨가 대신했는데 원어민 발음을 익히기 위해 카세트테이프를 활용하고 스토리 북 읽기와 노래가사 보고 부르기 등을 함께했다. 채연양이 영어 말문이 트여 본격적으로 실용회화를 가르쳐야 할 때가 되자 유씨는 외국인 강사를 집으로 초빙했다. 일주일에 두 번 외국인 강사와 함께 소꿉놀이 등 주제를 정해 놀면서 채연양은 영어회화를 익혔다. 그 와중에도 유씨는 록 리듬에 맞춰 재미있게 영어단어를 읽을 수 있는 교재를 준비해 매일 한 번씩 들려주며 따라 읽게 했다.
말문이 트이면서부터 외국인 강사와 1대 1 영어수업
“엄마는 틈틈이 간단하고 재미있는 스토리 북이나 영어노래를 큰 글씨로 벽에 써놓고 반복해 읽거나 노래를 부르게 하셨어요.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고 여섯 살이 되니 영어책도 잘 읽을 수 있게 되더라고요.”
틈이 날 때마다 재미있는 스토리 북을 많이 읽으면서 채연양은 머릿속으로 영어문장을 만드는 속도가 빨라지고, 문법도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채연양은 팝송도 즐겨 듣는데 특히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노래를 좋아한다고.
채연양은 여섯 살 때부터 중국어도 배우기 시작했다.
“맹장수술을 받아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제가 심심해하자 엄마가 집에서 듣던 영어 스토리 북과 테이프들을 병실에 갖다 놓으셨어요. 혼자 흥얼거리는 것을 옆 병상에 문병 오신 분이 보고 잘한다고 칭찬하시면서 중국어도 배우면 어떻겠냐고 권하시더라고요. 그러고는 중국학교 유치부를 소개해주셨어요.”
유치원에 들어가자마자 중국어의 성음부호와 한자를 배운 채연양은 집에 와서는 매일 엄마와 함께 유치원에서 배운 것을 복습하며 중국어까지도 잘하는 아이가 됐다. 한글자막 중국어 비디오, 한글자막 영어 비디오, 영어자막 영어 비디오, 중국어자막 중국어 비디오를 수시로 보고, 책을 읽고 외우고 우리말로 옮겨 적는 과정을 거친 결과였다. 유씨는 딸을 위해 케이블 방송에서 하는 중국어 드라마를 거의 모두 녹화했다가 채연양에게 반복해서 보여줬다.
채연양은 일기도 3개 국어로 쓴다. 하루는 우리말, 다음 날은 영어, 그 다음 날은 중국어 순으로 일기를 썼는데 나중에는 중국어 일기를 영어로, 영어 일기를 중국어로 옮겨 적기도 하고 우리말 일기 옆에 영어와 중국어를 나란히 옮겨 적기도 했다. 일기뿐 아니라 책도 이런 식으로 옮겨 적었다.
국제연합(UN)에서 동시통역사로 활동하는 게 꿈이라는 채연양은 2004년 한국외국어대 통역번역대학원 최정화 교수와 함께 ‘외국어 내 아이도 잘할 수 있다’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그리고 통역사가 되기 위해 외국어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매일 꼭 해야 하는 숙제 3가지가 있어요. 엄마가 정해준 건데 영어책 한 파트를 소리 내서 읽고, 2~3 쪽을 직접 써보는 거예요. 그런 다음 그것을 한국말로 옮기죠. 1시간 정도 걸리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영어가 느는 것을 느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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