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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만에 대중강연에 나선 법정 스님의‘독서 행복론’

“독서는 지혜와 통찰력을 길러줍니다. 세상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겁니다.”

기획ㆍ이남희 기자 / 글ㆍ정선언‘자유기고가’ / 사진ㆍ김형우 기자

입력 2006.06.16 18:52:00

‘세계 책의 날’을 맞아 법정 스님이 서울 강남의 한 대형서점에서 ‘인생에서 독서가 주는 참된 의미’를 주제로 특별강연회를 열었다. 강원도 외진 산골에서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고 있는 법정 스님이 3년 만에 대중강연에 나와 들려준 ‘책과 행복’ 이야기를 지상중계한다.
3년 만에 대중강연에 나선 법정 스님의‘독서 행복론’

3년 만이라고 했다. 법정 스님(70)이 대중과 직접 만나는 자리를 만든 것이 말이다. 지난 4월22일 스님의 독서강연회에서 사회를 맡은 왕상한 서강대 교수는 이 자리가 얼마나 귀한 자리인지 ‘3년’이라는 숫자를 들어 설명했다. 스님이 3년간의 침묵을 깬 데는 이유가 있다. ‘세계 책의 날’(4월23일)을 맞아 스님의 독서론(讀書論)을 펴기 위한 것.
강원도 외진 산골에서 홀로 수행하며 한 달에 한 번꼴로 ‘맑고 향기롭게’라는 모임회지에 ‘한방산담’이라는 글을 써 일반대중과 소통하는 스님을 직접 만나기란 쉽지 않다. 이런 스님을 사찰이 아닌 일반 서점가에서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책에 대한 법정 스님의 남다른 애정 덕분이다.
스님의 독서 강연은 서울 강남 교보센터 23층 대강당에서 오후 3시부터 1시간 가량 진행됐다. 강연이 진행되기 1시간 전부터 사람들이 하나 둘 강당에 들어서기 시작하더니, 강연이 시작될 즈음에는 1백50여 명의 사람이 모였다. 그동안 스님이 몰고 다닌 군중에 비하면 초라해 보일지 모르는 숫자지만 화창한 봄날, 그것도 토요일 오후에 그만한 사람이 모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주제가 책인 만큼 모여든 사람의 열에 여덟아홉은 한손에 책을 들고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온 주부, 손을 꼭 잡은 연인, 사이좋은 모녀, 혼자 온 대학생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스님의 등장을 기다렸다.
오후 3시가 되자 마이크가 놓인 강단의 뒷 유리문을 통해 법정 스님이 홀연히 나타났다. 스님과 함께 책을 저술한 바 있는 류시화 시인이 그 뒤를 따라서 나왔다. 스님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자신만의 독서론을 펼쳤다. 그가 생각하는 좋은 책의 기준과 책을 읽을 때 필요한 마음가짐, 스님과 책의 인연을 소개하는 시간으로 강연이 진행됐다. 시작은 독서였으나, 결국 ‘자신을 들여다보라’는 화두로 끝난 법정 스님의 강연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책은 나를 비춰주는 거울… 책을 읽어야지 책에 읽히지 말아야”
지금 여러분들이 여기 있기까지 무엇이 가장 많은 영향을 끼쳤을까요? 바로 책입니다. 교육도 결국 책을 통해서 이뤄지지 않습니까. 오늘은 그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질문을 하나 더 해봅시다. 여러분은 어떤 때 가장 행복합니까?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저는 강원도 산골에 살아요. 물도 없고 전기도 없는 곳에서 혼자 삽니다. 그런 산골에 혼자 이렇게 있는데 그런 생각이 듭디다. 지금 내 곁에 무엇이 있는가. 돌아보니 마실 차가 있고, 들을 수 있는 음악이 있고 또 읽을 수 있는 책이 있었습니다. 그게 참 고마웠습니다. 저는 조용히 차를 마시고 음악을 듣고 또 책을 읽을 때 가장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쾌적한 상태에서 책을 읽으면 영혼이 투명해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영혼이 투명해지는 소리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들여다보는 소리예요. 책을 보면 그 속에 나를 비춰볼 수 있다는 이야깁니다. 책은 거울과 같습니다. 그러니 책을 열심히 읽다 보면 나를 볼 수 있고 인생을 볼 수 있고 세상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스님들이 동양의 고전들을 열심히 읽는 것입니다. 스님들은 책을 읽으면서 삶을 배우고 인간의 도리를 깨닫고 품위를 키웠어요.

3년 만에 대중강연에 나선 법정 스님의‘독서 행복론’

‘세계 책의 날’을 맞아 서울 강남 교보문고에서 열린 법정 스님의 독서강연회에 1백50명이 넘는 청중이 모여 귀를 기울였다.



“엄마 아빠가 읽은 책을 남겨주면 큰 유산이 됩니다”
3년 만에 대중강연에 나선 법정 스님의‘독서 행복론’

법정 스님은 “여행을 떠날 때 그곳과 관련된 책을 챙겨 가서 읽으면 특별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한국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습니다. 한국인들의 하루 평균 독서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8분이에요. 하루의 1백80분의 1이죠. 그런데 우리가 무시하는 인도 사람들은 하루에 1시간 30분이나 책을 읽습니다. 우리나라 지식 국력은 미국의 5.9%에 불과합니다. 책을 너무 안 읽어요. 그러니 나를 알 리가 없고 세계를 알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부정부패가 끊이지 않는 겁니다. 편리하자고 만들어낸 기술이 오히려 인간을 구속하고, 배울 만큼 배운 지식인들이 조그마한 유혹에도 무너지고 마는 것이죠.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인류 역사상 위인이나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첫째는 긍정적 사고이고 둘째는 독서입니다. 독서는 지혜와 통찰력을 길러줍니다. 세상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겁니다. 당나라 시인 두보는 “인간이라면 무릇 다섯 수레의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다섯 수레 정도 읽어야 세계 속에서 자신의 입지를 세울 수 있기 때문일 겁니다.
책을 읽는다고 아무 책이나 읽어서는 안 돼요. 양서(良書)를 읽어야 합니다. 좋은 책이란 읽고 나서 자신 있게 남에게 권할 수 있는 책입니다. 두 번 읽을 필요가 없는 책은 한 번 읽을 필요도 없습니다. 서점에 가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베스트셀러를 쌓아놓지요? 저는 베스트셀러가 곧 양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베스트셀러는 상업주의의 바람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베스트셀러보다는 고전(古典)을 권합니다. 괜히 고전의 반열에 오르는 게 아니지요. 그 속에 길이 있기 때문에 고전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양서를 골랐어도 아무렇게나 읽으면 소용없습니다. 책은 부지런하고 꼼꼼하게 읽어야 합니다. 저는 책을 이렇게 읽습니다. 메모합니다. 저는 책을 읽을 때 좋은 구절에 밑줄을 긋습니다. 너무 많은 경우에는 따옴표를 쳐놓지요.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나서 그 구절들을 노트나 카드에 옮겨 적습니다. 옮겨 적으면서 마음에 와 닿지 않는 구절은 버리기도 하지요. 그러면 나중에 책을 다시 보지 않아도 적어놓은 구절만 보면 책의 내용이 되살아납니다. 그렇게 생각의 실마리를 찾기도 하고 풀기도 합니다.
두 번째로 저는 여행할 때 꼭 책을 챙겨 갑니다. 한번은 강진에 간 적이 있어요. 다산 정약용 선생이 유배된 곳이지요. 다산이 그곳에서 직접 쓴 ‘유배지에서 쓴 편지’를 읽는데, 책 속의 동백꽃이며 바다가 눈앞에 펼쳐지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보길도에서 윤선도의 ‘어부사시사’를 읽기도 했고, 인도에 가서 불교 경전을 읽기도 했습니다. 도서관이나 방에서 읽을 때와 달리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습니다. 여러분도 여행갈 때 그곳과 관련된 책을 꼭 챙겨가 일독하십시오.
마지막으로 저는 책을 읽지 책에 읽히지 않습니다. 문자 밖에도 세계가 있으니 활자화되지 않은 삶의 진실도 이해해야 할 게 아닙니까. 책을 많이 읽은 소위 엘리트나 지식인 중에는 연탄불 하나 갈 줄 모르고 가스불도 켤 줄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그래서는 안 됩니다. 책을 읽는 소용이 없지요.
제가 주례를 선 적이 있습니다. 그때 부부한테 숙제를 내주었지요. 한 달에 책 2~3권, 시집 1권을 꼭 읽으라고 말입니다. 자식들에게 유산을 남겨줄 게 없다고 고민하지 마십시오. 엄마 아빠가 읽은 책을 남겨주면 큰 유산이 될 것입니다. 또 독서를 많이 하면 아이들 내신성적도 좋아지지 않겠습니까(웃음).

여성동아 2006년 6월 5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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