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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남편 살해한 주부, 집행유예 판결 이끌어낸 손명숙 변호사

글·이남희 기자 / 사진ㆍ박해윤 기자

입력 2006.05.18 15:37:00

법원이 상습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남편을 살해한 주부에게 이례적으로 집행유예 판결을 내렸다. 이 주부의 변론을 맡은 손명숙 변호사로부터 이번 판결의 의의와 사건 뒷이야기를 들었다.
폭력남편 살해한 주부, 집행유예 판결 이끌어낸 손명숙 변호사

창원지법 제3형사부(문형배 부장판사)는 지난 4월12일 남편을 목 졸라 살해한 혐의(살인)로 기소된 주부 Y씨(38)에 대해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또 Y씨가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자신의 죄를 뉘우치도록 말기 암 환자를 간호하는 2백40시간 사회봉사명령을 내렸다. 통상 실형이 선고되는 살인사건의 경우, 1심에서 집행유예가 내려지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피고인의 범죄는 인정되지만, 10여 년간 남편에게 상습적인 폭행을 당해왔고, 두 자녀의 양육을 책임져야 한다는 점, 또 홧김에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르고 난 뒤 깊이 반성하고 있는 점 등을 들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고 밝혔다.
주부 Y씨의 변론을 맡은 손명숙 변호사(38)는 “재판부가 가정폭력의 심각성을 고려해 합당한 판결을 내렸다”며 법원의 결정을 환영했다. ‘너무 관대한 처벌’이라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그는 “결코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피의자 Y씨는 지난 10여 년 동안 가정폭력에 시달리면서도 누구에게 도움조차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손 변호사는 사건 발생 직후 만났던 Y씨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
“지난해 6월 Y씨가 남편을 살해했을 당시, 피고인의 모습은 처참했습니다. 남편에게 각목으로 폭행을 당해 갈비뼈 3대가 부러지고, 온몸은 상처투성이었습니다. 경찰의 현장조사에 따르면, 방바닥은 남편에게 폭행당한 Y씨가 흘린 피로 범벅이 돼 있었어요. 부엌에는 야구방망이가, 침대 밑에는 각목이 놓여 있었는데, 숨진 남편이 Y씨를 폭행할 때 이것들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평소 악성빈혈을 앓아온 Y씨는 생리 중이던 사건 당일, 남편에게 구타당한 후 성관계까지 강요당했습니다. Y씨는 ‘그날 성폭행만 당하지 않았더라도 그 지경까지 이르지 않았을 것’이라며 고통스런 심경을 털어놨습니다. 자신을 구타하고 성폭행한 후 태평하게 잠든 남편을 보며, ‘짐승을 죽인다’는 심정으로 남편의 목을 졸랐다고 하더군요.”
10여 년간 이어진 Y씨의 결혼생활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고정 직업이 없는 남편은 술만 마시면 Y씨를 구타해왔기 때문. 아내가 다른 남자를 만나지 않을까 하는 의심 때문에, 그는 Y씨가 자유롭게 외출하는 것조차 금지했다고 한다.
Y씨의 두 딸(8세, 6세)은 아버지로부터 걸핏하면 “너희는 내 자식 아니다. 네 아비를 찾아가라”는 폭언을 들어야 했다. 두 딸이 다니던 미술학원의 한 교사는 “아이들이 ‘아버지는 칼을 들고 어머니는 피를 흘리는’ 그림을 그려 당황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숨진 남편은 180cm가 넘는 키에 건장한 체격의 소유자였다. Y씨의 가족과 인근 주민들은 Y씨가 남편으로부터 상습적 폭행을 당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에게 해코지를 당할까봐 경찰에 신고조차 할 수 없었다. Y씨는 남편을 피해 도망을 가기도 했지만, 남편에게 곧 붙잡혀 더 심한 폭력을 당했다. “살인이 최선이었냐”는 사람들의 문제제기에 대해 손 변호사는 “살인을 정당화할 순 없지만, Y씨가 폭력을 피해 달아날 방법은 전혀 없었다”고 항변한다.
“사람들은 ‘Y씨가 남편과 이혼했다면 문제가 풀렸을 것 아니냐’고 묻더군요. 그러나 사건 당시 이들 부부는 이미 이혼 상태였습니다. 2003년 신용불량자가 돼 빚에 시달리던 남편이 Y씨에게 먼저 ‘서류상 이혼’을 요구한 것입니다. 이혼은 했지만 이들 부부의 결혼생활은 지속됐습니다. 아마 부인이 남편에게 먼저 헤어지자고 요구했다면, 그는 더 극심한 폭행에 시달렸을 겁니다. 두 딸을 남기고 홀로 도망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죠.”

동네 주민들이 남편 살해 주부의 구명운동 벌여 ‘불구속 수사’ 이끌어내
Y씨는 영장실질심사를 통해 구속됐으나 검찰이 수사단계에서 구속을 취소해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를 받아왔다. 사건 직후, 경상남도 내 24개 여성단체로 구성된 마산가정폭력사건대책위와 Y씨 동네 주민들이 창원지검에 Y씨의 불구속 수사와 정당방위 인정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했기 때문. 특히 동네 주민들은 창원지검 앞과 마산의 창동에서 Y씨의 불구속 수사를 요구하는 집회를 벌이는 등 Y씨의 구명을 위해 백방으로 나섰다.

폭력남편 살해한 주부, 집행유예 판결 이끌어낸 손명숙 변호사

손명숙 변호사는 “가정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된 여성들을 보호할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Y씨가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를 받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동네 주민들의 도움이 크게 작용했어요. Y씨는 도주하거나 사건의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없었던 만큼, 가정폭력 보호시설에서 두 딸과 머물며 검찰 수사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정신적·육체적 상처를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었고요.”
손 변호사는 2004년 상습적으로 폭력을 일삼던 가장을 토막 살해한 모녀의 변론을 맡기도 했다. 그 당시만 해도 이들 모녀가 살던 아파트의 주민들이 법정의 증언자로 나서지 않아 그는 변론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2004년 상습적으로 아버지에게 폭행을 당해온 딸이 견디다 못해 아버지를 흉기와 둔기로 내리쳐서 살해한 사건이 있었어요.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함께 시체를 야산에 유기했지요. 육체적 힘이 약한 두 여성이 시신을 옮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시신을 토막 낸 겁니다.
‘어떻게 이토록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지를 수 있냐’고 반문할지 모르겠지만, 제가 만나본 이들 모녀는 성실하고 착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다만 아버지로부터 ‘찢어 죽인다, 태워 죽인다’는 폭언을 듣고 자라온 딸은 은연중 그런 모습을 내면화 했을지 모릅니다. 20년 이상 지속된 가정폭력으로 이들 모녀는 ‘재발성 우울성 장애’와 ‘매맞는 아내 증후군’을 앓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폭력을 말리는 과정에서 생긴 상처를 옷으로 감추고 살아가는 아들 역시 누나와 어머니가 겪는 고통을 가슴 아파했고요.
이 모녀의 경우 존속살인 외에도 시신을 훼손하고 유기한 혐의가 추가돼 법원은 1심에서 딸에게 징역 15년, 어머니에게 징역 5년의 중형을 선고했습니다. 이후 2심에서 법원은 원심을 깨고 딸에게 징역 8년, 어머니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고요. 하지만 이들 모녀는 재범의 우려가 전혀 없는 만큼, 더 가벼운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손명숙 변호사는 ‘최초의 간호사 출신 변호사’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 91년 서울대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간호사로 근무했던 그는 보다 역동적인 삶을 찾고자 95년 중앙대 법대에 진학, 98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그는 전문성을 살려 의료사건 변호를 담당해온 것은 물론 창원성폭력상담소·창원가정법률상담소 이사를 맡아 어려움에 처한 여성들의 인권지킴이로 활약해왔다.
손 변호사는 “가정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된 여성들이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며 가정폭력의 해결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촉구했다.
“Y씨는 남편에게 극심한 구타를 당한 후 병원에 수차례 갔지만, 의사나 경찰도 그를 가정폭력에서 구해주지 못했습니다. 만약 그를 이러한 위험에서 벗어나게 했다면, 비극적인 살인은 벌어지지 않았겠죠. 살인이란 극단적인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는 여성들의 고통스러운 상황에 대해 깊이 있는 이해가 필요합니다.”

여성동아 2006년 5월 50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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