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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만원 고료 제38회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 당선자 이근미

글·이남희 기자 / 사진ㆍ조영철 기자

입력 2006.05.18 14:35:00

필력과 뚝심을 갖춘 역량 있는 여성 작가가 탄생했다. 제38회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서 ‘17세’로 당선된 이근미씨가 그 주인공. “소설이 안 팔리는 세상이지만, 물불 안 가리고 열심히 문학에 정진하겠다”는 각오를 밝힌 이씨의 시상식 현장을 지상중계한다.
2천만원 고료 제38회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 당선자 이근미

“재작년 박완서 선생님께 ‘노땅’들의 이야기를 하며 ‘마흔을 넘기고도 아무 실적이 없어 의기소침해졌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어요. 그러자 마흔 살에 ‘나목’으로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되신 선생님은 ‘옛날 마흔은 요즘 예순과 똑같아. 같은 마흔이 아니라는 거지. 현재 나이에서 0.7을 곱해봐’라고 하셨어요. 그 말씀을 듣고 얼마나 기쁘고 힘을 얻었는지 모릅니다.”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가 서른여덟 번째 당선자를 배출했다. 영광의 주인공은 ‘17세’를 출품한 이근미씨(48). 그는 “제 1회 수상자인 소설가 박완서 선생의 격려 덕분에 좋은 글을 쓸 수 있었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스물아홉에 뒤늦게 중앙대 문예창작과에 진학한 이씨는 15년 넘게 프리랜서 기자 생활을 하며 글쓰기의 기본을 닦아왔다. 그는 이미 단편·중편 소설 공모에 당선된 바 있는데, “장편소설까지 당선됐으니 그랜드슬램을 이뤘다”며 우스개 소리를 던지는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지난 4월4일 서울 광화문 동아미디어센터 9층에서 열린 제38회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 시상식은 그 어느 때보다 성대한 축제로 꾸며졌다. 김학준 사장과 최맹호 출판국 국장 등 동아일보 관계자들, 박완서·윤명혜·박재희·한수경씨 등 역대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 출신 작가들, 소설가 서영은·신상웅·박민규·엄광용씨, 시인 황인숙·조은·이수정씨, 화가 김점선씨, 동화작가 김진씨 등 1백여 명의 하객이 참석해 이씨를 축하해줬다. 이날 시상식에서 이씨는 동아일보 김학준 사장에게 상패와 부상으로 2천만원의 상금을 받았다.
수상작 ‘17세’는 가출한 17세의 딸에게, 어머니가 자신의 17세 소녀시절을 회상하며 들려주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가족 해체의 시대에 어떻게 가족이라는 끈을 놓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느냐는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본심에서 심사를 맡은 문학평론가 하응백씨와 소설가 우애령씨는 이 작품에 대해 “근래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접수된 작품 중 단연 우수하다. 당선작으로 선정하는 데 두 심사위원간의 이론(異論)이 전혀 없었다”며 “이 소설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담담하고 정확한 문장, 흥분하지 않는 서술 태도, 정확한 종결이 돋보인다”고 평했다.
김학준 사장은 치사를 통해 “이 작품을 읽으며 17세는 여성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 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의 일탈현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도록 만든 작품이었다”고 말하며 “선배 작가들의 뒤를 이어 뛰어난 작가로 성장하기를 바란다”고 수상자를 격려했다.

“소설이 안 팔리는 야속한 세상이지만, 물불 안 가리고 소설에 덤빌 터”
이날 시상식의 하이라이트는 무려 25분간 이어진 이근미씨의 ‘준비된’ 수상소감이었다. 그는 역대 수상자 중 가장 길게 소감을 발표했는데, 뛰어난 입심으로 하객들이 배꼽을 잡게 했다.
그는 “사람들마다 사연이 많지만, 저도 참 독특한 인생레이스를 살아왔다”고 소감의 첫 운을 뗐다. 그의 친한 친구들은 한 명 빼고 서른 전에 시집을 다 갔는데 그는 20대가 다 저물 녘에 느닷없이 학생이 됐다는 것. 서른이 넘어 대학을 졸업한 그는 취직 시기마저 늦춰버렸다고 한다.
뒤늦게 취직해 2년쯤 기자로 일하던 그가 프리랜서로 나섰을 때는 일이 쏟아져 주체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소설가로 등단했지만 그에게는 소설을 쓸 겨를조차 없었다고 한다.
“평소 주변 사람들이 ‘소설은 아예 접었느냐’고 말할 때 ‘소설을 위해 내가 최선을 다한 적이 없기 때문에 아직 접었다고 말할 수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이열치열이라고, 제 생애 가장 일이 많았던 지난해 틈을 내서 소설쓰는 데 몰두했고, 올해 드디어 당선 소식을 접했습니다.”

2천만원 고료 제38회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 당선자 이근미

역대 수상 작가들과 당선의 기쁨을 나누는 이근미씨. 왼쪽부터 우애령·이근미·박완서·윤명혜·박재희·한수경씨.


이씨는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당선 소식을 ‘특별한 방법’으로 알리면서, 자신이 그간 소설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었는지 새삼 깨닫게 됐다고 말한다.
“제가 ‘나 좋은 일 생겼는데 맞춰봐’ 하니까 사람들의 반응이 정말 재밌었습니다. 모두들 첫마디가 ‘결혼해?’였습니다. 그 다음에 ‘로또 됐어?’ ‘아파트 값이 올랐어?’ ‘주식이 올랐어?’ ‘다이어트에 성공했어?’ 하는 거예요. 대한민국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희망사항이 쭉 나열되더군요.
심지어 한 사람은 제게 ‘시몬스 침대 모델 됐냐’고 하더라고요. 미남이 여자 옆으로 뚝 떨어지는 CF 있잖아요. ‘소설’ 얘기하는 친구가 하나도 없는 걸 보며, 제가 소설과 무척 소원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씨에게는 1999~2000년 13명의 소설가를 릴레이 인터뷰한 경험이 소중한 교훈으로 자리 잡고 있다. 세상과 떨어져 고독하게 작업하는 소설가들의 ‘서늘한 얼굴’을 보며, 창작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작업인지 새삼 느끼게 됐다는 것이다.
“등단은 해놓고 소설을 쓰지 않는 ‘휴면 소설가’들이 주변에 많습니다. 소설을 쓰지 않던 저는 그 ‘휴면 소설가’들과 함께 소위 ‘뜨는’ 작가들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비판했었는데, 소설가들을 줄줄이 인터뷰하고 나서 반성했어요. 영혼이 상처를 입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해 소설이 탄생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수상소감 말미에서 “나이가 많고 시간이 없고, 이런 이야기는 다 핑계에 불과하다. 소설이 안 팔리는 야속한 세상이지만, 물불 안 가리고 무모하게 덤비면 승부가 날 것”이라며 소설가로서의 굳은 각오를 밝혔다.
이근미씨의 당선작 ‘17세’는 동아일보 출판팀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한편 ‘여성동아’에서는 올 10월31일까지 역량 있는 여성작가 발굴을 위해 ‘제39회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를 한다. 여성이면 누구나 응모가 가능하며 분량은 2백자 원고지 1천2백 장 내외이고, 발표되지 않은 창작소설이어야 한다. 예심과 본심을 거친 당선작은 여성동아 2007년 2월호에 발표할 예정이다. 문의 02-361-0974

여성동아 2006년 5월 50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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