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31일 금요일 아침 7시였어요. 인터넷으로 합격자가 발표되는데 바로 안 떠서 언니와 저는 각자 방에서 계속 ‘새로 고침’ 버튼만 누르고 있었어요. 그때 선생님으로부터 ‘듀크대에 합격했다’고 전화가 왔어요. 바로 엄마 방으로 뛰어가서 엄마를 깨우고 세 모녀가 얼싸안았죠.”
1분 차이로 언니, 동생이 된 홍자빈·상빈(19) 자매. 이들은 지난해 치른 미국 대학수학능력시험 SAT에서 거의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다. SAT I에서 자빈양은 독해 770점(과목당 800점 만점), 수리 800점, 작문 780점을, 상빈양은 독해 800점, 수리 800점, 작문 780점을 받았다. SAT II에서 자빈양은 화학 800점, 물리 800점, 독일어 800점, 수학IIC 790점, 프랑스어 730점을, 상빈양은 화학 800점, 수학 IIC 800점, 독일어 800점, 세계사 800점, 미국사 800점, 프랑스어 780점을 받았다.
성적만 뛰어난 게 아니다. 특히 언어에 재능이 있는 자매는 외국어 관련 대회 수상경력도 화려하다. 서울대학교에서 주최한 전국 고교생 언어능력 경시대회 독일어 부문에서 상빈양이 대상을, 자빈양이 금상을 받는가 하면, 전국고등학생 영어경시대회에서도 상빈양이 대상을, 자빈양이 금상을 받았다. 전국 프랑스어 시 낭송대회에서도 상빈양은 동상, 자빈양은 특별상을 받았다. 게다가 지난해에는 각각 삼성장학생과 관정장학생으로 선발되는 경사도 누렸다. 민사고 사상 첫 번째로 재학 중에 장학생으로 선발된 두 사람은 각각 연 5만 달러(약 4천7백50만원)의 장학금을 받아 유학비 걱정을 덜었다. 쌍둥이 자매가 이렇게 뛰어날 수 있는 비결이 뭘까. 비밀은 엄마의 ‘식탁 공부법’에 있었다.
엄마가 일하는 동안 ‘식탁 공부’ 한 것이 큰 효과 거둬
“초등학교 1학년 때 학교에서 막 돌아온 두 아이가 저를 보더니 ‘엄마, 음악시간에 친구들이 떠들어서 공부를 제대로 못했어’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럼 엄마랑 같이 해볼까’ 했지요. 자빈이는 탬버린을, 상빈이는 캐스터네츠를, 저는 트라이앵글을 치고, 박수는 우리 모녀 셋이 발바닥을 구르는 것으로 대신했어요. 그렇게 기악합주를 하니까 아이들이 재미있어 했죠.”
어머니 임경희씨(45)는 유아시절 한글을 지도할 때부터 두 딸과 친구가 돼 재미있게 노는 것처럼 공부한 것이 오늘의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한다. 가르치는 것을 좋아하던 임씨는 홍자빈, 상빈양이 여섯 살이 되면서부터 학습지 교사를 시작했고 과외 교사와 학원 운영을 거쳐 지금은 국제영어대회에 관계된 일을 하고 있다.
“직업을 가졌기 때문에 아이들과 함께 할 시간이 많지 않았어요.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이 ‘식탁공부’예요. 제가 주방에서 일을 할 때 아이들을 식탁에 앉혀두고 스스로 공부할 수 있게 유도했지요.”
식탁 위에 카세트 플레이어를 놓아두고 영어동화와 한글 애니메이션 테이프를 반복해서 들려주었다. 그리고 식탁 옆에 칠판을 걸고 공부할 내용을 적어 아이들이 반복해서 볼 수 있게 했다. 엄마의 독특한 ‘식탁공부’ 방법을 통해 자매는 부담없이 자연스럽게 한글 익히기, 책읽기, 셈하기, 영어회화 같은 기초학습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자연 자매는 어린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냈지만 초등학교 때까진 특별히 공부를 했던 기억이 없다고 말한다.
“중학교 전에는 거의 공부를 하지 않은 것 같아요. 초등학교 때 많이 놀았고, 중학교 1·2학년 때는 독일 학교에 다니면서 매일 친구들이랑 논 기억밖에 없어요.”(상빈)
“초등학교 때 학습지 숙제는 상빈이 혼자 다 하게 해놓고 저는 놀기만 했던 것 같아요(웃음). 외국으로 나가서야 공부를 시작했죠. 그때는 궁금해서, 또 독일 아이들보다 더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서 열심히 했어요.”(자빈)
자매는 초등학교 4학년 때 해외지사로 발령이 난 아버지를 따라 독일과 폴란드에서 4년간 생활을 했다. 독일에서는 현지 학교를, 폴란드에서는 독일학교를 다녔다.
어머니 임경희씨는 학과공부 외 활동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다양한 예능 활동을 한 것이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 같다고. 바이올린 연주가 취미인 상빈, 자빈양.
“두 아이가 성격이 그리 활달한 편이 아니었어요. 독일 프랑크푸르트 외곽에 머물렀는데 아이들을 현지 학교에 보낼 때 독일어를 전혀 몰라서 걱정을 많이 했지요. 귀머거리, 벙어리 상태로 6개월을 보내니까 귀가 트였는데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 의지가 많이 됐던 것 같아요.”
처음엔 ‘미국학교에 보내야 하나’ 고심을 하다가 ‘독일에 왔으면 독일어를 쓰는 학교에 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결정했다는 어머니 임경희씨는 결과적으로 아이들을 독일학교에 보내길 잘한 것 같다고 말한다. 언어의 뿌리가 비슷한 덕분에 자매는 영어는 물론 독일어, 프랑스어, 폴란드어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한다고.
영어나 독어책 읽은 후엔 인형 들고 연극놀이해
“두 아이가 여자이다 보니 어린 시절부터 인형 갖고 놀기를 좋아했는데 영어 비디오나 책을 읽은 후에는 꼭 인형을 가지고 연극놀이를 했어요. 예를 들면 ‘백설공주’를 읽은 후 두 아이가 인형을 놓고 ‘너는 백설공주를 해. 나는 마녀 할게’ 하는 식으로 역할을 정해 대사를 외우고 놀았어요. 인형이 없으면 등장인물들을 도화지에 그려서 역할극을 했고 서로 대사를 바꿔 하기도 했고요.”
자매는 중2 때까지 이런 식으로 인형 놀이를 하며 영어를 익혔고, 나중에는 독일어로도 연극놀이를 했다고 한다. 외국학교에서도 자매는 우수한 성적을 유지했는데 어머니 임씨는 외국어 연극놀이가 영어는 물론 독일어 습득에도 많은 영향을 준 것 같다고 말한다. 또 폭넓은 독서도 외국어 학습에 큰 도움이 됐다고.
“무엇보다 책을 많이 읽었어요. 외국에 나가서도 한국어로 된 세계문학 전집을 거의 다 읽었고, 현지 학교 도서관에 있는 책들을 거의 다 읽었어요. 어렸을 때는 서점이 옷가게나 슈퍼마켓보다 더 좋았을 정도예요. 항상 책을 즐기면서 읽고, 주인공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죠. 책 한 권을 읽고 나면 점점 더 어른이 돼가는 느낌이 들어요. 한권 한권의 책 속에는 작가가 살면서 터득한 삶에 대한 생각, 철학이 모두 들어 있으니까요.”
책의 종류도 가리지 않았다. 자매는 ‘해리포터’를 10번 정도 반복해 읽으면서 영어에 대한 감을 잡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건너뛰면서 읽었고, 두 번째는 사전을 찾아가면서 읽었다고.
“폴란드에서 중학교 1학년에 다닐 때 ‘해리포터’ 4권이 나왔어요. 독일어 번역본을 기다리고 있는데 6개월이 지나도 나오지 않아 영어원본을 읽었죠. 6백 쪽 분량인데 하루에 다 읽었어요.”
자매는 2001년 중학교 2학년 2학기에 귀국을 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세계무대에서 활동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민족사관고 국제반 진학을 목표로 공부했다. 하지만 그때 어머니 임씨의 반응은 “꿈이 지나치게 높다”였다고 한다. 임씨는 아이들 기를 죽이고 싶지 않아 표현은 안 했지만 정말로 두 아이의 실력이 민사고에 갈 정도가 될 줄은 몰랐다고.
“폴란드에서 생활할 때도 우리나라 중학교 국어·수학 교과서를 가지고 공부했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했지만 사회, 국사 같은 과목은 낯선 용어가 많아 힘들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이들의 영어실력이 그렇게 뛰어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요.”
하지만 자매는 중3 때 본 토플에서 나란히 300점 만점에 280점(CBT)을 받고 민사고에 입학했다.
“언어공부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내 것이 돼요”
1분 차이로 언니, 동생이 된 자빈, 상빈 자매는 서로 의지하고 때론 경쟁한 게 공부에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공부방법에 대한 조언을 부탁하자, 상빈양은 암기과목을 포함한 모든 과목에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한다. 벼락치기로 외운 것은 시험이 끝나면 금방 잊어버리기 때문에 무엇보다 원리를 이해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항상 재미있게 공부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좋아요. 역사를 배울 때는 그 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소설을 읽으면 책만 달달 외우는 것보다 훨씬 가슴에 와 닿죠.”
또한 교과서에 등장하는 이론들을 실생활과 연결시켜 공부하면 세상의 이치를 깨친 기분도 든다고.
자빈양은 효율적인 공부법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단순히 공책에 빽빽이 단어를 쓰거나 글씨가 안 보일 정도로 책에 줄을 많이 긋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항상 집중해서 생각하는 게 중요해요. 똑같이 한 시간, 두 시간 책상에 앉아 있어도 머리를 쓰느냐, 안 쓰느냐에 따라 배우는 양이 완전히 달라지거든요.”
자매는 또 매일 계획을 짜두면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을 덧붙인다. 시간별·성취도별로 계획표를 짜면 꼭 계획대로 달성은 못할지라도 중요한 일을 먼저 처리할 수 있게 된다는 것. 특히 언어공부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내 것이 될 수 있다고 한다. 한 언어를 배우고 싶으면 적어도 하루에 2시간정도는 그 언어만 사용하는 시간을 가져야 된다고.
“저는 글씨를 예쁘게 써서 벽에 붙여 놓는 것을 좋아해요. 항상 단어나 문장을 방문이나 침대 머리맡에 붙여놓았죠.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문장이 있으면, 지나다니면서 계속 외웠는데 이렇게 하다 보면 비슷한 구조의 문장이 금방 눈에 들어와요. 쓰고, 말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되면서 언어를 점점 알아가게 되는 거라고 봐요.”
자매는 계획을 세워두고 평상시에도 꾸준히 공부했기에 시험기간에도 특별히 잠을 줄일 필요가 없었다고 말한다.
“고등학교 때도 하루 7시간은 잤어요. 한번은 시험기간에 담임선생님이 밤 11시에 전화를 했는데 자다가 일어나서 받으니까 ‘잘 자라’며 끊으셨어요. 다음 날 아침에 선생님이 ‘벌써 자냐’고 혼내줄까 하다가 달리 하실 말씀이 없으셨다고 하시더라고요. 성적이 최상위권이었거든요(웃음).”
임경희씨는 자매가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거의 같은 반에서 공부하며 서로 의지하고 때론 경쟁한 게 많은 도움이 됐다”면서 “피아노·바이올린 연주, 클래식 감상, 그림 그리기 등 늘 뭔가를 꾸준히 했는데 다양한 활동을 한 것이 시너지 효과를 거둔 것 같다”고 밝혔다.
자매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대학 역시 브라운대에 함께 진학하기로 했다. 언니 자빈양은 심리학과 철학, 생물학 등을 공부할 예정이고 동생 상빈양은 생명과학 분야를 전공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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