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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영화 같은 삶

고(故) 신상옥 감독 부인 최은희씨 단독 인터뷰

“세 번이나 부부 연 맺은 운명 같은 사랑, 이 다음 세상에서도 다시 만나 부부의 연 맺고 싶소”

입력 2006.05.04 18:19:00

톱스타 최은희씨와의 결혼, 납북과 탈북, 할리우드 진출 등 굵직한 뉴스의 중심에 서 있던 한국 영화의 거목 신상옥 감독이 세상을 떠났다.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했던 신상옥 감독의 생애와 운명적인 사랑의 동반자였던 최은희씨의 슬픈 망부가.
고(故) 신상옥 감독 부인 최은희씨 단독 인터뷰

한국 영화계의 거목 신상옥 감독이 지난 4월11일 별세했다. 향년 80세. 2004년 C형 간염으로 간이식 수술을 받았던 신 감독은 지난해 말 병세가 악화돼 입원치료 중이었다. 신 감독은 세상과 영영 이별하기 전날 밤 병실 문을 나서 집으로 향하는 부인 최은희씨(76)를 불렀다고 한다.
“밤에는 간병인에게 병실을 맡기고 저는 집에서 자고 아침에 다시 가곤 했거든요. ‘집에 다녀오겠다’고 인사를 하고 막 돌아서는데 그날은 다른 날과 달리 저를 부르더라고요. 그러더니 아무 말 없이 제 손을 오랫동안 꽉 쥡디다. 아픈 사람이 어디서 그런 기운이 날까 싶을 만큼 힘껏…. 우수에 찬 눈동자로 저를 한참 쳐다보더라고요.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없이 그저 바라보기만 하면서. 그게 저와 남편이 이승에서 나눈 마지막 인사였어요.”
196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영화배우 최은희씨와 신상옥 감독이 맺은 부부의 연은 그 어떤 영화나 소설보다도 극적이었다. 우리 영화계의 전설적인 인물로 일컬어지는 이들 부부보다 더 파란만장한 삶을 산 부부도 드물 것이다.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아도 눈빛이 그걸 말하고 있었어요. 말하지 않아도 알지. 평생을 같이 살아온 사람인데. 평소에도 많은 말을 한 사람이 아니에요. 그저 남편 눈빛만 봐도 뭘 말하고 싶은지, 마음이 어떤지 알 수 있었으니까요.”

“죽기 전날 손을 꼭 잡아주던 남편, 위독하다는 전화받고 달려갔을 때 이미 세상 떠나”

최은희씨는 ‘혹시나’ 하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남편의 죽음이 코앞에 닥친 줄은 몰랐다고 한다. 그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데 간병인으로부터 남편이 위독하다는 전화를 받았다고. 정신없이 병원으로 되돌아갔지만 남편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그게 마지막 인사가 될 줄은 몰랐어요. 정말. 그렇게 허망하게 떠날 줄 몰랐어요.”
최은희씨는 남편이 마지막으로 자신의 손을 꼭 잡아줬을 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것이 미안하고 마음에 걸린다고 한다. 남편을 잃은 충격으로 빈소에서 조문객을 맞이하지 못할 정도로 탈진했던 그는 장례식을 치른 후 평소 다니던 성당을 찾아 묵상하며 그리움을 견뎌내고 있다.
“어떻게 쉽게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겠어요. 힘들지. 몹시 힘들어요.”
고(故) 신상옥 감독 부인 최은희씨 단독 인터뷰

‘신상옥’이라는 이름을 빼놓고는 한국 영화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신 감독은 우리나라 영화사에서 독보적인 존재다. 그는 60~70년대 자신이 경영했던 영화사 신필름을 통해 3백여 편의 영화를 제작했으며 신 감독 스스로도 메가폰을 잡아 ‘연산군’ ‘성춘향’(1961),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2) 등 주옥같은 작품을 연출했다. 특히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는 당시로는 이례적으로 베니스영화제에 출품돼 한국영화를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김기영, 김수용, 이만희, 유현목 등 걸출한 감독들이 모두 신필름을 거쳐 갔으며 신성일, 엄앵란, 김승호, 김진규 등 당대의 스타들은 모두 신 감독의 작품에 출연하며 빛을 발했다.

이런 신 감독이 처음으로 주목을 받게 된 계기는 영화로 유명해지기 전인 53년 당시 톱스타 최은희씨와 결혼을 하면서부터다. 최은희씨는 2001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신 감독과의 인연을 상세하게 들려준 적이 있는데 그에 따르면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52년 한국 홍보영화 ‘코리아’를 촬영하면서부터라고 한다. 이에 앞서 신 감독은 40년대 말 최은희씨가 극단 연극 ‘춘향전’에 출연할 때 매일 연극을 보러 갈 정도로 그의 열렬한 팬이었다고.

‘코리아’를 만들면서 사랑의 감정이 싹튼 두 사람은 세간의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결혼, 아내와 남편으로, 배우와 감독으로 행복하게 사는 듯했으나 신 감독이 한 여배우와 외도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갑작스럽게 파경을 맞았다. 최은희씨는 당시 인터뷰에서 “그 여배우가 신 감독의 아이를 낳았을 때까지도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시나리오 작가도 상상할 수 없는 끈질긴 인연으로 엮인 부부

고(故) 신상옥 감독 부인 최은희씨 단독 인터뷰

지난 4월11일 타계한 신상옥 감독은 남·북한에서 모두 사랑받은 한국 영화사의 기념비적인 인물이다.


신 감독의 외도로 남남이 되긴 했지만 78년 최은희씨가 실종됐을 때 그를 찾는 데 가장 앞장선 사람은 바로 신 감독이었다. 비록 이혼은 했지만 가슴 속 깊이 최은희씨에 대한 사랑이 남아 있었던 것. 신 감독의 빈소에서 만난 원로 영화배우 최지희씨는 “언니(최은희)에게 있어 신 감독의 존재는 특별하고 남달랐다”면서 “어느 시나리오 작가도 상상할 수 없는 끈질긴 ‘인연’으로 엮인 부부였다”고 회고했다.
최은희씨는 납북 당시 과정에 대해서도 담담하게 들려주었다. 이혼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 안양예고 교장으로 재직하며 일에만 몰두하던 그는 78년 1월 홍콩에 안양예고와 비슷한 성격의 학교가 있다는 말을 믿고 자매결연을 맺기 위해 홍콩을 찾았다가 바로 북한 공작원에 의해 남포항으로 납북됐다고 한다.
“납북됐을 때 아이들 생각뿐만 아니라 신 감독 생각도 많이 났다”는 그는 특히 북한 당국이 영화 출연을 강요할 때마다 ‘이럴 때 신 감독이 곁에 있으면 힘이 될 텐데…’라는 바람이 간절했다고 한다.
한편 신 감독은 최은희씨가 실종됐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만사를 제쳐둔 채 찾아나섰다고 한다. 6개월 동안 최은희와 비슷한 사람이 나타났다는 정보만 들으면 그곳이 어디든 달려가곤 했다고. 그 과정에서 신 감독 또한 78년 말 북한에 납치됐고 여러 차례 탈출을 시도하다 붙잡히는 바람에 4년 넘게 감옥에 갇혀 있다가 83년에야 최은희씨를 만나게 된다.
최은희씨는 “김정일이 주선한 파티에 초대받아 갔는데 신 감독이 거기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라기도 했지만 ‘북한을 탈출할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도 생기더라”며 “그때 김정일의 주선으로 다시 만나 부부의 연을 맺었는데 마침 그날이 30년 전 처음 결혼한 날이라 더 감개무량했다”고 말했다.
‘어떻게 남편을 용서할 수 있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지만 최은희씨는 “신 감독이 나를 찾기 위해 수없이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과거의 애증은 눈 녹듯 사라졌다”고 말했다.
최은희씨와 신 감독은 북한에서 여러 편의 영화를 제작하며 북한영화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특히 ‘돌아오지 않는 밀사’와 ‘소금’으로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하며 북한영화를 세계에 알리기도 했다. 그러면서 기회를 엿보던 두 사람은 최은희씨가 납북된 지 8년 만인 86년 3월 오스트리아 빈을 통해 극적으로 탈출했다.
고(故) 신상옥 감독 부인 최은희씨 단독 인터뷰

최은희씨는 “이 다음 세상에서도 신 감독과 다시 만나 부부의 연을 맺으며 아름다운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북한 탈출 후 미국에 정착한 부부는 87년 워싱턴DC 교황대사관에서 결혼미사를 올리고 다시 정식으로 부부가 됐다고 한다. 납북 전 신 감독의 법적 아내였던 여배우는 이미 다른 사람과 재혼한 상태였기에 문제될 게 없었다고. 또 이들 부부는 그 여배우가 낳은 아이들을 포함, 한국에 있던 아이들 4남매를 모두 미국으로 불러들여 함께 살았다. 최은희씨는 92년 신감독의 또다른 아내였던 여배우가 교통사고로 사망했을 때 가장 먼저 달려가 장례식을 치러주었으며 지금도 그를 위해 기도한다고 한다.
미국에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마유미’ ‘실종’ 등을 제작하며 화제를 몰고 다니던 이들 부부는 2000년 고국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견디지 못해 한국에 돌아왔다. 신 감독은 귀국 후 칠순을 넘긴 나이에도 영화에 대한 열정을 숨기지 않았다고 한다. 급변하는 한국 영화시장에서 그가 설 자리는 점점 좁아져갔지만 끝까지 메가폰을 놓지는 않았다고. 2002년 치매노인 문제를 다룬 신구 주연의 저예산 영화 ‘겨울 이야기’는 미개봉 유작으로 남아 있다.
신 감독은 2003년 안양신필름영화아카데미를 설립하고 동아방송대 석좌교수로 재직하는 등 말년에도 변함없이 영화에 대한 애정을 과시했다. 신 감독의 열정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사랑했던 최은희씨는 “이 다음 세상에서도 다시 만나 부부의 연을 맺으며 아름다운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여성동아 2006년 5월 50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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