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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중견배우의 힘

SBS 주말드라마 ‘하늘이시여’ 인기 주역 한혜숙

“처음에는 생짜 신인들을 보며 ‘오 마이 갓’ 외쳤지만 다들 열심히 노력하니 좋은 결과가 있네요”

기획ㆍ김유림 기자 / 글·최승현‘조선일보 기자’ / 사진ㆍ동아일보 출판사진팀, 조선일보 제공

입력 2006.05.04 17:17:00

SBS 주말드라마 ‘하늘이시여’가 시청률 40%를 육박하며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드라마 인기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는 주인공 한혜숙을 만나 드라마 촬영 뒷얘기와 곱게 나이 드는 비결에 대해 들어봤다.
SBS 주말드라마 ‘하늘이시여’ 인기 주역 한혜숙

“아!이번엔 정말 힘들어요. 연기하며 강산이 세 번 변했는데도 그러네요. 대사가 너무 많거든요.”
주말드라마 중 시청률 1위를 기록하고 있는 SBS ‘하늘이시여’ 주인공 한혜숙(55)의 넋두리다. 오랫동안 연기를 해왔지만 이번처럼 혼자서 드라마 전체를 이끌어가는 경우는 흔치 않기에 기분 좋으면서도 힘에 부치는 게 사실이라고.
극 중 지영선(한혜숙)은 기른 아들(구왕모)과 낳은 뒤 헤어졌던 딸(윤자경)을 결혼시키고야 마는 ‘엽기적’ 어머니.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가는 설정”이라고 말하자 “혹자는 불량식품이라고도 하더라. 원래 사람들이 방부제 들어간 불량식품을 가장 좋아하지 않느냐?”며 웃는다.
“하지만 저는 이 드라마가 ‘불량식품’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요즘 자기 아이를 버리는 엄마가 얼마나 많아요? 그런데 영선이는 딸을 다시 찾아서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려고 하잖아요. 상식에 벗어난다고 하지만 피카소나 로댕의 작품은 상식적인가요? 원래 드라마나 예술작품이나 상식을 벗어나야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소재가 파격적이라고 해서 드라마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인식은 받아들일 수 없어요.”
그는 아홉 살이나 어린 임성한 작가를 꼬박꼬박 ‘선생님’이라 부르며 극존칭을 고집했다. 두 사람은 MBC 드라마 ‘인어아가씨’ ‘왕꽃선녀님’에 이어 이번 작품에서 세 번째로 호흡을 맞추고 있다. 그는 임 작가의 집에도 몇 차례 가봤다고 한다.
“임 작가와 저 둘 다 결혼을 안 했고 완벽주의자라는 점에서 잘 통하는 것 같아요. 전화상 목소리가 까랑까랑해서 키가 165cm는 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만나 보니 아주 아담하시더라고요. 그 파워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건가 싶어요. 말투도 사근사근하고요. 사람들하고 왕래도 별로 없으세요. 그건 저도 마찬가지인데 잘 돌아다니는 성격이 아니거든요. 동생 집에 가끔 놀러가고 친한 사람들과 골프를 치는 정도예요. 사교적이지 않다는 점에서도 저랑 선생님은 코드가 잘 맞아요.”

“3개월 동안 후배 연기자 윤정희를 데리고 살면서 연기 연습시켰어요”
그와 임 작가의 만남은 ‘인어아가씨’ 방영 직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임 작가는 일종의 악역인 심수정 역할에 한혜숙을 기용하고 싶다고 방송사 측에 밝혔으나 그는 “유부남을 빼앗는 역할이 이미지에 좋지 않을 것 같다”며 여러 차례 고사했다고 한다. 그러자 임 작가가 직접 그에게 전화를 걸어 2시간에 걸쳐서 ‘부탁’을 했다고. 한혜숙은 당시 무척 감동했다고 한다. 임 작가는 그에게 당시 “이번 역할을 하면 이미지가 나빠질 수 있으니까 다음 드라마에서는 인간적인 배역을 부탁하겠다”고까지 말했다고 한다. 결국 그 인연으로 ‘왕꽃선녀님’에 이어 ‘하늘이시여’까지 주연급 역할을 맡을 수 있었다.
“임 작가가 저를 신뢰해주는 것 같아 고마워요. 항상 중요한 역할을 저한테 줬죠. ‘인어아가씨’에서도 장서희와 대립하며 드라마 전반부의 인기를 주도했고 ‘왕꽃선녀님’에서도 제가 초반에 이다해를 이끌었잖아요. 저만의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선생님이 저를 신뢰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어요.”
한혜숙은 “‘하늘이시여’라는 드라마 자체가 일종의 모험이었다”고 말했다. 주말 황금시간대에 방영되는 드라마에 신인들을 주요 배역으로 캐스팅한 것 자체가 임 작가다운 큰 실험이었다는 것. 하지만 ‘하늘이시여’ 초창기에는 섭섭함도 많았다고 했다. “아니, ‘가갸거겨’도 모르는 생짜 신인들 데려다놓고 저보고 선장이 돼 태평양을 건너라고 하는데 기가 막히더라고요. 정말 ‘오 하늘이시여, 오 마이 갓’ 하고 여러 번 외쳤다니까요.”
결국 그는 지난해 여름 드라마 방영 시작을 전후해 3개월간 자경 역을 맡은 윤정희를 집에 끼고 살면서 연기를 가르쳤다고 한다. 너무 답답해서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넌 연기를 그만두라”는 말까지 했다는 그는 “이제는 연기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것 같다”며 윤정희를 칭찬했다.

“드라마 종영이 얼마 안 남은 요즘은 후배 연기자들의 마음을 다잡아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군대에서도 꼭 제대 3개월 전에 큰 사고가 난다고 하잖아요(웃음). 저도 그렇고 다른 연기자들도 그렇고 긴장이 좀 풀어진 것 같아서요. 그러니까 촬영하기가 더 힘들더라고요. 정희한테는 ‘어차피 여기까지 고생했으니까 조금 더 힘내서 끝까지 가자’고 해요. 다행히 후배들이 다 착해서 잘 따라와요. 무엇보다 기쁜 것은 스타가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이런 인기를 일궈냈다는 거죠.”

SBS 주말드라마 ‘하늘이시여’ 인기 주역 한혜숙

50대 중반인 한혜숙은 나이 먹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71년 3천5백대 1의 경쟁률을 뚫고 KBS 청소년 드라마 ‘꿈나무’의 주인공 장은옥으로 발탁됐을 때, 그의 인기는 요즘으로 치면 전지현, 김태희도 울고 갈 정도였다. 한혜숙은 아직도 자신의 대표작을 ‘꿈나무’라고 밝히고 있다. 오늘의 자신을 만들어준 작품이기 때문이다.
한국 드라마사(史)의 주요 캐릭터 중 상당수는 한혜숙을 1대(代)로 삼고 있다. ‘춘향전’의 성춘향, ‘토지’의 최서희, ‘전설의 고향’의 구미호 등. 그는 “지금은 자존심 지키며 품위를 잃지 않고 있는 배우 정도의 평가라면 최고의 찬사로 생각한다”며 “겹치기 출연을 안 하는 것은 돈보다 명예를 중시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손잡고 함께 골프 치러 다닐 남자친구 한 명 있으면 좋겠어요”
“왜 아직 결혼하지 않았냐”고 묻자 그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어휴, 눈 오는 날 덕수궁 돌담길을 남자친구와 손잡고 걸어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어려서부터 연기만 하느라 사생활이 없었어요. 나이 좀 드니까 마음에 드는 사람은 다 유부남이었고요(웃음). 평생 연애 한번 제대로 못해봤는데 죽는 날까지 로맨스는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지금은 손 붙잡고 골프 칠 수 있는 남자친구라도 한 명 있으면 좋겠어요.”
현재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어머니가 큰 자리를 차지한다고 말한다.
“아직까지도 어머니가 많이 챙겨주세요. 미인이 많기로 유명한 평안북도 강계 출신이신데 한국전쟁 당시 배낭 하나 메고 힘들게 남으로 내려와서 자리를 잡으신 분이에요. 요즘도 제가 조금이라도 힘들어하면 ‘나는 북에서 어떻게 내려왔는데, 네가 힘들 게 뭐가 있냐? 집 있고 차 있는데 말이다’ 하고 말씀하세요(웃음).”
그는 긴 연기생활 동안 힘든 시기도 많았는데 언제나 옆에서 용기를 불어넣어준 어머니가 고맙다고 말했다. 올해 83세인 어머니는 지금도 아침마다 딸의 잠을 깨워주고 과일을 갈아 주스까지 대령한다고. 가끔 밤샘 촬영을 마치고 지쳐서 침대에 쓰러져 자고 있으면 조용히 와 화장까지 지워준다고 한다.
한혜숙은 5남매 가운데 장녀. 그는 “동생들을 거느리며 연기자로 살다 보니 항상 모범생이 돼야 했다”며 “그 동안 별다른 스캔들이 없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했다. 집안일에도 소질이 많다는 그는 집에서 총각김치, 오이김치 등 온갖 종류의 김치를 직접 담가 먹고, 바느질도 잘한다고 한다.
그는 중견 연기자로 자리매김한 시점을 90년대 ‘이 여자가 사는 법’에 출연할 때로 잡고 있다. 당시 박정수, 이효춘과 함께 주인공을 맡았던 그는 자신들을 퇴물 연기자 취급하는 한 방송 관계자의 말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오기로 더 열심히 연기를 했다는 그는 “중견 연기자의 힘이 뭔지 보여주고 싶었다”며 “남녀노소가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서는 젊은 연기자만 필요한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나이가 드는 것에 대해서 관대한 마음가짐을 갖고 있다. 여자 연기자의 경우 자신의 나이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들면 위험해진다는 게 그의 지론.
“저는 30대에 접어들면서부터 나이에 맞게 살자고 결심했어요. 아무리 부정해봤자 소용없으니까요. 대신 나이를 여유롭게 지혜롭게 잘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누구나 나이를 먹고 몸도 쇠약해지기 마련인데 이왕 나이 먹는 거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인터뷰 도중 그의 손에 쥐어진 꼬깃꼬깃한 종이 한 장이 눈에 띄었다. 달라고 해서 보니, 대본 중에서 자신이 출연하는 장면을 볼펜으로 일일이 옮겨 적은 메모지였다. 그는 새 드라마 촬영을 시작할 때, A4 용지 5백 장과 1.6mm 볼펜을 빨강색, 검정색, 주홍색 세 종류로 각 50자루씩 마련해놓는다고 한다. 이렇게 옮겨 적어서 어디든 가지고 다니면서 외워야 머릿속에 쏙쏙 들어온다는 것.
“이번 작품에서는 유난히 대사가 많아 비축해놓은 종이와 볼펜이 벌써 다 바닥났어요. 이번 일요일 방송은 대사가 너무 어려워서 거울에도 붙여놓고 외웠어요. 아, 나이가 되니까 대사 외우는 게 정말 만만치 않아요. 이 종이를 4등분으로 접어서 매일 손에 들고 다녀요.”
편안한 인상과 자신감 넘치는 말투로 중견 연기자의 저력을 드러내는 한혜숙. 그는 드라마 끝날 때까지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은 뒤 혼자서 조용히 여행길에 오를 생각이라고 한다.

여성동아 2006년 5월 50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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