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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돌을 붙여 만든 6m 대작 ‘알렉산더 모자이크’

입력 2006.05.04 15:30:00

작은 돌을 붙여 만든 6m 대작 ‘알렉산더 모자이크’

작자 미상(에레트리아의 필록세노스의 그림을 모작한 것으로 추정), 알렉산더 모자이크, 기원전 2세기 말~1세기 초, 3.13×5.82m, 나폴리 국립박물관


알렉산더 대왕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인 중 한 사람으로 꼽힙니다. 그는 많은 나라를 정복했고 대제국을 건설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스스로 제우스의 피를 잇고 있다고 생각했지요. 사람들은 그의 집안의 시조가 제우스의 아들 헤라클레스라고 여겼습니다.
이렇듯 세상 그 누구에게도 뒤질 것이 없던 알렉산더는 자신에게 저항하는 자에게 아주 무자비했습니다. 그럴 때 그는 한 마리의 포악한 사자 같았지요. 하지만 그런 그도 매우 존경스럽게 생각한 맞수가 있었습니다. 바로 페르시아의 왕 다리우스 3세였습니다. 알렉산더 군대의 공격을 여러 차례 막아낸 그에게 알렉산더 대왕은 라이벌 의식과 동류의식을 함께 느꼈습니다.
하지만 이런 다리우스 3세도 당대 최고의 영웅 알렉산더의 정복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지요. 이수스 전투와 가우가멜라 전투에서 크게 패한 다리우스 3세는 목숨을 건져 달아났으나 부하 장군 베소스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이 사실을 안 알렉산더는 매우 슬퍼하며 대왕에 걸맞은 다리우스 3세의 장례를 치러주었고 자신의 군주를 배신한 베소스를 끝까지 추격해 처형했다고 전해집니다.
이 이야기는 고대 지중해 사람들 사이에서 워낙 유명해 이 내용을 주제로 한 미술작품이 많이 만들어졌습니다. 로마의 폼페이 ‘파우누스의 집’에서 발굴된 ‘알렉산더 모자이크’는 알렉산더 대왕과 다리우스 3세가 이수스 전투에서 격렬하게 충돌하는 장면을 묘사한 대작입니다.
그림 왼편 말을 탄 갈퀴머리의 젊은이가 알렉산더이고, 오른편 전차에 올라탄, 수염 난 이가 다리우스 3세입니다. 패색이 짙어진 다리우스는 이제 막 퇴각하려 합니다. 이를 뒤쫓는 알렉산더의 눈빛과 표정은 단호하기 그지없습니다. 비록 일부가 파손됐지만 이 박진감 넘치는 가로 약 6m의 대작이 작은 돌을 붙여 만든 모자이크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재료가 된 작은 돌 하나하나가 역사적인 전투에서 싸우다 죽어간 수많은 사람의 피와 눈물과 함성처럼 느껴집니다.

한 가지 더∼
폼페이는 고대 로마의 휴양 도시로 서기 79년 8월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해 화산재로 뒤덮여 버렸습니다. 번성하던 도시가 갑자기 멸망한 까닭에 발굴이 이뤄졌을 때 당시 로마 사람들의 생활상을 전해주는 자료가 많이 나왔습니다. 무엇보다 멋진 벽화와 모자이크가 많이 발굴돼 미술사에서는 벽화의 도시로도 유명합니다.

여성동아 2006년 5월 50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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