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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김동희 기자의 비디오 줌~업

달콤하고 아련한 ‘불륜 판타지’‘도쿄타워’

사진제공·gamma, 영화풍경

2006. 04. 14

일본 작가 에쿠니 가오리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 도쿄를 배경으로 연상연하 불륜 커플의 달콤쌉싸름한 이야기가 서정적으로 펼쳐진다.

달콤하고 아련한 ‘불륜 판타지’‘도쿄타워’

영화 ‘도쿄타워’는 ‘냉정과 열정 사이’ ‘반짝반짝 빛나는’으로 잘 알려진 에쿠니 가오리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자신들보다 한참이나 나이든 연상의 기혼녀들에게 빠져든 두 젊은 남자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도오루는 매끈하고 유약해보이는 청년. 고등학교 2학년 때 어머니의 친구인 스무 살 연상의 시후미와 사랑에 빠져 3년째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그의 유일한 낙은 시후미의 전화를 받는 일이며 그녀를 만나지 않는 대부분의 시간은 그녀가 추천해준 음악을 듣고 책을 읽는 데 보낸다. 그 상황에 괴로워하지만 대안은 없다. 부유한 남편이 있고 번화가에 수입품 숍을 운영하는 시후미는 너무나 쿨하고 우아하다. 도오루의 섬세함을 사랑하지만 현재 자신의 생활을 포기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또 다른 젊은 남자 고지. 고교시절 친구인 도오루가 연상의 여인과 사귀는 걸 부러워하다 동급생 여자아이의 엄마를 유혹했다. 결국 들켜 주위를 발칵 뒤집어놓았지만 대학생이 되고 예쁜 애인이 생겼어도 취향은 바뀌지 않았다. 아르바이트하는 주차장에서 만난 서른다섯 살 유부녀 기미코와 또다시 불륜에 빠져든다.

“모든 유부녀는 귀엽다. 그녀들은 즐거움에 굶주려 있기 때문이다”
도오루 역은 일본 아이돌 그룹 V6의 멤버인 오카다 준이치가 맡아 약하고 섬세한 남자주인공 역을 무리 없이 소화해냈다. 시후미 역을 맡은 배우는 지난 97년 일본에서 불륜 붐(?)을 일으키며 화제를 모은 영화 ‘실락원’의 여주인공이었던 구로키 히토미. 마흔여섯, 탄력을 잃은 눈가의 피부가 오히려 매력적으로 보이는 드문 배우다. 우아하고 세련된데다 심지어 청초해보이기까지 하니 스무 살 연하 청년의 마음을 사로잡는 상황이 그리 비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부족할 것 없는 근사한 조건을 가진 인물이라 그녀의 상황에 감정이입되는 이가 많지는 않을 것 같다. 오히려 “열여덟 살 때부터라니 범죄 아냐? 내 아들의 가장 아름다운 삼 년을 차지하다니…”라며 분노하는 도오루의 엄마에게 공감하고, 시후미에게 샴페인을 들이붓는 장면에 살짝 통쾌한 기분마저 느낄 법하다.
영화의 시작도 마무리도 포스터도 첫 번째 커플이 차지하지만 두 번째 커플도 첫 번째 커플 못지않은 스토리를 만들어간다. “모든 유부녀는 귀엽다. 그녀들은 즐거움에 굶주려 있기 때문이다.” 시작부터 파격적인 고지의 내레이션이 작은 출렁임을 만든다.
국내 케이블 채널에서 방영된 적 있는 일본 드라마 ‘너는 펫’에서 연상의 여성에게 애완동물로 길러지는 역할을 맡았던 마쓰모토 준이 고지 역을 맡았고 영화 ‘바이브레이터’에서 과감한 연기로 일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휩쓴 데라지마 시노부가 불륜에 빠져들며 점점 대담해지는 주부 기미코를 인상적으로 그려냈다.
인간미 없는 남편과 시어머니, 무미건조한 일상…,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안에서는 사나운 불길을 잠재우고 있던 기미코. 그런 그에게 젊은 남자가 나타난다. 기미코 입장에서 고지는 처음부터 ‘선수’다. 대리 주차를 해주면서 대담하게 스킨십을 시도하는 그에게 당황하면서도 말려든다. 고지는 ‘제비가 남편보다 좋은 이유’를 명쾌하게 보여준다. 남편의 강요로 고양이를 안락사시키고 온 기미코가 “쓰레기를 처리하는 게 내 할 일”이라고 자조적으로 말하자 “고양이는 쓰레기가 아니잖아”라며 그녀 대신 화를 내고 “나한테 다 쏟아부어도 돼”라며 달래준다. 게다가 고지는 유부녀를 경제적으로 이용하려는 의도 따위는 없다. 기미코가 팔찌 선물에 대한 답례를 겸해서 3만엔(환율로는 우리돈 30만원 정도지만 일본 물가를 고려하면 그 3분의 1쯤 되니 액수가 적어서 그러는 거라고 의심하는 이도 있긴 하다.^^)을 건네자 언짢아하며 거절한다.

달콤하고 아련한 ‘불륜 판타지’‘도쿄타워’

호텔 엘리베이터 속의 두 사람. 도오루는 시후미를 독점하길 원하지만 시후미는 현실의 안락함을 버리고 싶어하지 않는다.

달콤하고 아련한 ‘불륜 판타지’‘도쿄타워’

수줍어하며 고지의 리드에 따르던 기미코는 점점 대담하게 변해간다.


“너는 절대 모를 거야. 서른다섯 살 여자의 욕망…”
이미 한 가정을 파탄 낸 전력이 있는데다 또래 애인을 두고 양다리를 걸치고 있으며 기미코와 언젠가는 헤어질 거라고 당연하게 생각하는 ‘나쁜 남자’, 하지만 기미코가 내재돼 있던 강렬한 에너지를 뿜어내자 진심으로 압도돼 “굉장해!”라며 감탄하는 고지를 보고 있으면 미래를 떠올릴 겨를 없이 그만 그에게 빠져들게 된다. 현실적이라고 할 만한 부분은 별로 없는 이 ‘불륜 판타지 로맨스’에서 남는 게 있다면 그런 풍경이 만들어내는 조그마한 정서적 공명(共鳴) 같은 걸 거다. 차를 몰고 떠나는 기미코를 오래도록 서서 쳐다보는 고지의 표정 같은 것.
플라멩코 선율이 흐른다. 붉은 드레스를 입고 정열적인 춤을 추는 기미코.
고지가 묻는다.
“플라멩코는 언제부터 배웠어? 좋은 아내가 되려고 배우는 거야?”
“바보 아냐?” 기미코의 웃음.
“너는 모를 거야. 서른다섯 살 여자의 욕망. 절대로 몰라.”
도쿄타워는…
파리의 에펠탑처럼 도쿄를 상징하는 건축물로 프랑스와 일본의 수교 1백주년 기념으로 1958년에 지어졌다. 한밤중 업라이트 조명을 받으며 아름답게 떠오르는 도쿄타워의 실루엣, 비나 눈 내리는 날의 정취가 사람들의 마음에 작은 떨림을 일게 한다. 도심 어디에서나 쉽게 눈에 들어오는 도쿄타워는 영화 ‘도쿄타워’ 속에서 함께 있어도 함께 하지 못하는, 혹은 떨어져 있어도 마음만은 같이 있으려는 연인들의 수호신 같은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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