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여성들이 치료는 무조건 어렵고 비싸다고 생각해 병원에 오기를 꺼리세요. 하지만 불임치료에 단순히 시험관아기 시술만 있는 건 아니거든요. 의외로 간단한 검사와 치료를 통해 아기를 갖는 분들이 많아요. 모든 병이 그렇듯이 불임도 원인만 정확히 규명하면, 그에 따른 다양한 치료법을 적용해볼 수 있어요.”
부산 백병원 불임클리닉 김영남 교수(34)는 치료보다 정작 환자들의 선입견과 무지를 깨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한다. 그 역시 아이를 가진 엄마이기에 불임부부의 절박한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그래서 ‘설마 내가?’ 하는 의구심과 비싼 병원비에 대한 부담으로 진료를 망설이는 이들이 용기를 내길 바라고 있다.
김 교수가 산부인과를 선택한 이유는 출산 후 행복해하는 산모들의 환한 얼굴이 보기 좋아서였다. 아파서 찌푸린 환자들이 많은 병원에서 유일하게 산모와 가족들만은 웃고 즐거워하는 게 인상적이었다고.
“지금도 불임치료와 더불어 산모의 분만도 돕고 있어요. 아기를 낳고 기뻐하는 산모를 보는 게 좋거든요. 그 전에도 제 일에 보람을 느끼고 있었지만 출산을 경험한 이후에는 더욱 산모들과 교감하기 쉽더라고요.”
김 교수는 캠퍼스 커플로 만난 임주학씨(37)와 결혼, 여덟 살 난 딸 주영이를 두고 있다. 딸을 임신하고 낳고 키우는 과정을 통해 그는 엄마로서의 기쁨과 행복을 만끽했다고. 그러나 둘째를 갖는 데는 실패했다. 두 번이나 유산의 아픔을 겪은 것.
마음의 상처가 컸지만 그는 이 경험을 통해 불임의 고통을 가슴 깊이 이해하게 됐다. 불임부부들이 얼마나 절박한 심정으로 자신을 찾는지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배란 유도, 인공 수정, 시험관아기 시술… 다양한 불임치료법
김교수는 불임은 부부가 피임하지 않고 정상적인 부부생활을 1년 이상 했는데도 아이가 생기지 않는 경우를 일컫는다고 말한다. 임신 경험이 없는 경우는 물론 과거에 임신을 했더라도 2차적인 불임이 올 수 있다고. 정상적인 부부라면 1년 이내에 80~90% 자연임신이 되므로 1년이 경과한 뒤에도 임신이 안되면 불임에 대한 상담과 검사를 받아야 한다.
김 교수는 보통 아이가 생기지 않으면 여성에게 문제가 있다고 보고 부인 혼자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가장 잘못된 선입견 중 하나라고 말한다. 불임의 원인은 여성 쪽이 40%, 남성 쪽이 40%, 부부 모두의 문제가 10%, 원인불명인 경우가 10%를 차지한다. 즉 여성이 원인일 경우만큼이나 남성의 문제일 확률도 높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여성 불임의 원인은 호르몬 이상이나 배란 장애, 나팔관이나 복강 내 유착으로 인한 장애가 가장 많다. 이 밖에도 자궁의 기형, 자궁 내 유착, 자궁경관 점액의 이상, 정자에 대한 항체, 자궁내막증 등이 있다.
남성 불임의 원인으로는 정자의 수가 적거나 정자의 운동 능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가장 많다. 그 외에도 정자의 형태 이상, 정맥류, 성기능 장애, 정관 폐쇄 등이 있다. 그러므로 아이가 생기지 않을 때는 부부가 함께 검사를 받아야 한다.
“요즘은 여성들이 결혼을 늦게 하잖아요. 여성의 가임기간을 25세~40대 후반까지 보는데 30~35세가 가임이 가장 활발한 시기죠. 35세 이후에는 가임 능력이 절반으로 뚝 떨어져요. 난자의 수도 줄고 질도 예전 같지 않아서 임신이 어려워지죠. 또 남녀 모두 스트레스가 많아서 세계 평균 불임비율보다 한국의 불임비율이 더 높은 편에 속해요.”
김영남 교수는 “의외로 간단한 검사와 치료를 통해 아기를 갖는 부부들이 많다”고 말한다.
불임으로 병원에 오면 먼저 혈액검사, 소변검사 등 기본 검사들로 다른 신체적인 질병이 없는지 알아본다. 그리고 배란이 정상적으로 잘되는지를 기초체온법이나 배란 키트, 초음파 등으로 체크한다. 또 자궁 기형은 아닌지, 나팔관이 막히진 않았는지 조영검사를 한다. 여기에 정자에 대한 항체가 생겨나 자궁 내에서 정자가 활동을 못하게 막지는 않는지 면역 항체검사도 한다.
남성도 정액검사를 통해 그 양과 정자의 수, 모양, 운동성 등을 확인한다. 또한 어린 시절 볼거리, 수술이나 생식기 감염 등으로 불임이 된 건 아닌지 알아보고 스트레스, 음주, 약물이나 환경호르몬의 영향이 있는지 자세한 문진을 한다. 그리고 미하강 고환, 음낭 내 정맥류 등에 대한 이상이 있는지도 검사한다.
불임치료는 무조건 시험관아기를 시술해야 하는 걸로 여기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원인이 단순하면 치료도 간단하다. 불임의 원인과 정도에 따라 배란 유도에서부터 인공수정, 시험관아기 시술까지 단계적인 절차를 밟는다.
“배란 장애가 불임의 가장 큰 원인을 차지하는데도 여성들은 배란에 대한 기초지식조차 부족해요. 임신이 잘 안될 때는 배란부터 체크하세요. 다음 달 생리 시작하는 날로부터 14일 전이 가장 임신이 잘되는 날이죠. 보통 생리가 끝난 날부터 계산하는 오류를 많이 범하는데 반드시 생리를 시작하는 첫날부터 세어야 해요.”
배란 장애의 경우 약제로만 얼마든지 치료할 수 있어
배란 장애의 경우는 약제가 많이 개발돼 있어 치료가 쉽다고 한다. 요즘은 하루 한 번씩 주사를 맞아야 하는 이들을 위해 ‘프로곤 펜(Progon Pen)’처럼 펜 타입으로 된 배란 유도제도 나와 있다. 펜처럼 생겨 외출할 때도 핸드백에 넣어 가지고 나가 혼자 주사할 수 있어 간편하다.
배란 유도로 치료가 되지 않으면 인공수정을 하게 된다. 남편의 정액을 특수 배양액으로 처리해 좋은 정자만 골라 여성의 배란 시기에 맞춰 자궁강 내에 넣어주는 방법이다. 정자의 수가 적거나 운동성이 떨어지는 경우, 자궁경관 점액이 안 좋거나 항정자항체가 있어 정자가 자궁강 내로 진입하기 힘든 경우, 원인불명의 불임인 경우에 인공수정을 시행한다.
인공수정은 대개 3번 정도 시술하는데 임신 성공률은 40% 정도다. 더 많은 시술을 한다고 임신 가능성이 더 높아지는 게 아니어서 인공수정에 실패하면 체외수정(시험관아기)을 고려해야 한다.
체외수정, 즉 시험관아기 시술은 여성의 배란을 촉진시켜 난자를 채취한 뒤 시험관에서 난자와 정자를 만나게 해 수정시킨 배아를 자궁 내에 이식하는 것을 가리킨다. 양쪽 나팔관이 막혀서 배란된 난자가 나팔관으로 들어올 수 없는 경우, 자궁내막증이 있어 골반 내 유착이 있거나 치료를 해도 임신이 안되는 경우, 심한 남성불임이 있는 경우, 원인 불명의 불임이 있는 경우, 자궁 내 인공수정에 여러 번 실패한 경우에 이 시술을 한다.
시험관아기 시술 역시 무조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시험관아기 시술로 아기를 낳을 확률은 30~40% 정도다. 너무 큰 기대를 갖고 왔다가 낙담하는 경우가 많은데 선입견을 버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시술에 임해야 치료율도 높아진다.
“시험관아기 시술에 대해 잘못 알려진 게 많아요. 한번은 딸만 둘인 환자가 친정어머니와 함께 찾아왔어요. 집에서 꼭 아들을 원한다면서요. 친정어머니가 어디서 들으셨는데 시험관아기를 시술하면 반드시 아들을 낳는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다고 말씀드렸지만 믿지 않으셨어요.”
시험관아기 시술에는 부작용도 따른다. 임신이 잘되도록 수정란을 3~4개 정도 이식하기 때문에 쌍둥이를 낳을 확률이 높다. 체질에 따라서 난소 과자극증후군이 생기기도 한다. 즉 혈관 안의 체액이 혈관 밖으로 빠져나가 복수나 흉수가 차는 병이다. 그러므로 환자의 체질과 원인에 따라 적절한 시술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시험관아기 시술은 1회에 3백만원 정도여서 경제적인 부담이 큰 것이 사실이다. 불임검사를 받는 데는 보험이 적용되지만, 치료와 시술은 모두 비보험이기 때문. 다행히 올해 시험관아기 시술에 정부가 50%의 비용을 지원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4월28일까지 보건소에 접수하면 나이와 소득을 고려해 1백50만원까지 정부가 지원하는데, 1년에 최대 2회 3백만원까지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경제적인 부담 때문에 불임치료를 포기하셨던 분들에게 좋은 기회가 될 거예요. 앞으로 우리나라도 선진국처럼 불임치료비를 전액 지원하는 날이 오겠죠. 저는 그동안 불임치료 성공률을 더 높이기 위해 연구에 매진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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