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경남 고성에서 열린 100km 울트라 마라톤 대회에서 11시간23분30초의 기록으로 여성부 1위를 차지한 김순임씨(52). 사람들은 그를 보고 두 번 놀란다. 처음에는 그가 대회에 참가한 11명의 여성 중 최고령이라는 사실에 놀라고 그 다음에는 스물넷, 스물다섯 살 두 아들을 둔 아줌마임에도 군살 하나 없는 몸매를 유지하고 있어 놀라는 것. 실제로 160cm에 55kg, 보기 좋게 근육이 붙어 탄력 있는 몸매에 긴머리를 하나로 묶고 달리는 그의 뒷모습은 결코 아줌마스럽지(?) 않다.
“등산이나 수영도 했지만 마라톤을 시작하면서부터 몸매가 더 단단해지고 보기 좋게 라인이 생긴 것 같아요. 가끔 혼자서 달릴 때면 총각들이 ‘아가씨’로 착각하고 쫓아오기도 하죠(웃음).”
김순임씨는 하루 1시간씩 한강 둔치를 뛴다. 지난 겨울 영하 15℃에 이르는 맹추위에도 달리기를 거르지 않았다는 그에게 달리기는 밥 먹고 잠자는 것과 같은 하루 일과인 셈.
“2000년 4월, 경남 통영에서 서울 상계동으로 이사왔어요. 직장에 다니는 남편이 서울에서 근무를 하게 됐거든요. 한 달 정도 지나니까 심심했어요. 서울에 아는 곳은 시집밖에 없어서 외롭기도 했고요.”
그렇다고 이웃집 문을 두드리며 ‘놀자’고 말할 성격도 못 됐던 그가 선택한 것이 혼자서도 할 수 있는 달리기. 김순임씨는 그해 5월부터 매일 1시간씩 중랑천 변을 달리기 시작했다.
“2000년 6월 임진각에서 하프 마라톤 대회가 열렸어요. 신문에서 보고 ‘참가나 해보자’ 하는 생각에 신청하고 무작정 뛰었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4등을 했어요. 폼이 좋다며 누구에게 배웠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고요.”
그때까지 김순임씨는 달리기에 관련된 책을 사 보거나, 전문가에게 자세 교정을 받은 적은 없었다고 한다. 그저 운동화 끈 동여매고 모자 눌러쓰고 단순무식하게 달렸던 것. 내친김에 그해 10월에는 춘천 마라톤 풀코스 대회에 도전했고, 3시간52분의 기록으로 완주했다. 입상권에는 못 들었지만, 첫 도전치고는 좋은 기록이었다. 이듬해인 2001년 같은 대회에 도전한 그는 3시간30분대를 기록했다. 그 이후부터 김순임씨는 집안 행사가 있는 날을 제외하고는 매일 달렸고 주말에는 전국을 돌며 마라톤 대회에 참석했다.
“대회 신청을 안 하면 ‘오늘 못하면 내일 하지’ 하는 식으로 늘어지면서 연습에 게을러져요. 하지만 대회를 앞두면 목표가 있으니까 긴장하게 되고 연습도 집중해서 하게 되죠.”
그러다 보니 언젠가는 한 달에 여덟 번이나 마라톤 대회에 참석한 적도 있다고 한다. 토·일요일마다 대회에 출전했던 것.
“오전 9시나 10시쯤 대회가 시작해 하프는 1시간 30분, 풀코스는 3시간 30분이면 끝나요. 대회를 마치고 점심식사하고 집에 오면 가뿐하게 하루를 마치죠.”
“친구들은 모두 골다공증, 갱년기 증세 등으로 고생하지만 저는 흰머리도 없어요”
그가 100km 울트라 마라톤에 처음 도전한 2004년 8월. 당시 울트라 마라톤 붐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그해 여름 날씨가 너무 더워 낮이 아닌 밤에 뛰는 울트라 마라톤이 해볼 만하겠다는 생각에서 참여하게 됐다고 한다. 당시 그는 12시간을 조금 넘는 기록으로 여성 참가자 중 2위로 들어왔다.
“원래는 딱 한 번만 할 생각이었는데 그 다음 달에 양양에서 열린 ‘설악컵 국제울트라 마라톤대회’에도 출전했어요. 밤 9시 남대천 둔치에서 출발, 100km 코스를 달렸는데 13시간13분20초를 기록해서 여자로는 1위, 전체 순위로는 14위로 골인했죠.”
초콜릿과 비타민, 음료수 한 병이 든 배낭 하나를 짊어지고 도로는 물론 산길을 뛰어다녔고, 눈을 비비고 볼을 꼬집어가면서 잠과 싸웠다고 한다. 대체 무엇이 그를 이렇게 뛰게 만드는 걸까.
“울트라는 하프나 풀 코스를 뛸 때와 또 다른 묘미가 있어요. 하프나 풀은 1위로 들어가기 위해 옆에 사람이 쓰러져도 그냥 지나가요. 하지만 울트라는 시간적인 여유가 많기 때문에 옆 사람과 대화도 나누고 힘들어하면 배낭에 있는 간식을 꺼내서 서로 나눠 먹으며 격려 해준다는 점에서 인간적이에요. 게다가 완주를 할 때마다 한계를 넘어섰다는 성취감도 크고요.”
그래서일까. 대회를 끝내고 나면 발톱이 서너 개 빠지고, 너무 힘들어 매번 “또다시 (울트라 마라톤에) 출전하면 성(姓)을 간다”고 말하지만 김순임씨는 울트라 마라톤과의 인연을 계속 이어나갈 생각이다. 그는 달리기를 하면 몸의 건강뿐 아니라 마음의 건강도 챙길 수 있다며 주부들도 달리기에 빠져볼 것을 권한다.
“제 친구들은 모두 골다공증이다, 갱년기다 해서 골골하는데 저는 그런 걱정을 안 해요. 염색을 하지 않아도 흰 머리카락이 없고요. 게다가 어느 집이건 걱정거리 한 가지씩은 있잖아요. 주부들은 늘 걱정거리를 껴안고 사는데 달리기를 하면 잡념이 사라지고 응어리를 풀 수 있죠.”
|
||||||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