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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새로운 시도

국내 첫 영상치료 상담센터 연 영화평론가 심영섭이 말하는 ‘영화를 통한 심리치료’

“영화와 만나 마음 정화하면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글·이남희 기자 / 사진ㆍ조영철 기자

입력 2006.04.04 13:29:00

심리적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게 영화는 종종 ‘갈등 해결의 열쇠’가 된다. 이러한 영화의 힘을 보여줄 영상치료 상담센터가 국내 처음으로 문을 열었다. 이곳을 운영하는 영화평론가 심영섭씨가 제안하는 ‘영화로 마음을 치유하는 법’.
국내 첫 영상치료 상담센터 연 영화평론가 심영섭이 말하는 ‘영화를 통한 심리치료’

서울 암사동 영상치료 상담센터 ‘사이’에서 내담자들에게 영화를 보여주고 있는 심영섭씨.


영화를 가리켜 ‘영혼에 놓는 주사’라고 했던가. 누구나 한번쯤은 영화를 통해 슬픔을 위로받고, 외로움을 달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다른 예술에 비해 접근하기 쉽고, 강력한 정서적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영화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어느 약보다 큰 효과를 발휘한다.
이러한 영화의 힘을 체계적으로 보여줄 새로운 공간이 탄생했다. 영화평론가이자 심리학자인 심영섭씨(40)가 지난해 11월 서울 강동구 암사동에 문을 연 ‘사이’는 심리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고, 영화를 보며 마음을 치유하는 곳이다. 또한 영상매체를 심리치료에 이용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연구하는 곳이기도 하다. 지금껏 영화가 유희의 대상에 불과했다면, 이제는 실제 생활에 응용할 수 있는 치료의 수단으로서 그 영역을 넓힌 셈이다.
심영섭씨는 그 역시 영화를 보며 자신이 겪는 심리적 고통의 원인을 발견하고, 감성을 회복하는 과정을 수차례 경험해왔다고 말한다.
“현실에 부대끼며 살아가다 보면 정서가 메마르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한 심리상태가 제 글에도 고스란히 드러나지요. 저는 저 자신을 종종 나무에 비유하는데, 제가 기르는 마음속 나무가 말라 있을 때 ‘사랑한다면 이들처럼’이나 ‘폴링 인 러브’와 같은 영화를 보면서 감성에 촉촉한 물기를 줍니다.
특히 ‘파리 텍사스’나 ‘기쿠지로의 여름’과 같은 로드무비를 보고 나면 늘 저 자신에 대한 통찰과 위안을 얻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자신의 욕망을 투영하고 있는 등장인물을 통해 궁극적으로 제 모습을 발견하는 거죠.”
심영섭씨의 주장이 더욱 설득력을 얻는 것은 그가 국내에서 유일하게 심리학과 영화를 두루 섭렵한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서강대 생명공학과에서 신경심리학을 공부한 그는 고려대에서 심리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심리학은 직업으로 삼기 위해 공부했다면, 영화는 그저 좋아서 매달렸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오죽하면 심영섭이란 그의 필명(본명 김수지)이 ‘심리학과 영화를 섭렵한 사람’이라는 뜻을 담고 있을까.
“영화치료에 눈을 뜬 것은 5~6년 전입니다. 석사를 마치던 즈음, 한 교수님께서 ‘영화와 심리학을 공부한 자네야말로 영화치료 분야를 개척할 적임자’라고 권해주셨죠. 영화치료란 말을 듣는 순간, ‘번쩍’ 하고 정신이 들더군요. 이후 영화를 심리치료에 접목시키는 일을 저의 사명으로 여겨왔어요. 지난해 8월 ‘대인관계 향상을 위한 상호작용적 영화치료의 효과’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는데, 이것은 영화치료에 관한 국내 최초의 박사논문으로 기록됐습니다.”
영상치료 상담센터 ‘사이’를 찾는 고객은 현재 20~30대 여성이 주류를 이룬다. 여성주의적 시각을 견지해온 그의 영화평론에 감화를 받은 이들이 입소문을 듣고 이곳을 많이 찾아오기 때문. 심영섭씨는 “특히 여성과 청소년 집단에서 영상치료의 효과가 탁월하다”고 말한다.
“모든 사람에게 영화치료가 큰 효과를 거두는 것은 아니에요. 영화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억지로 영화를 보여주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지요. 영화도 그 사람의 선호도와 취향에 맞춰 선별해 보여줍니다. 감성이 풍부하고 영상에 친숙함을 느끼는 여성이나 청소년에게 영화치료 효과가 크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죠.”

여성과 청소년 집단에서 특히 영상치료 효과가 탁월해
국내 첫 영상치료 상담센터 연 영화평론가 심영섭이 말하는 ‘영화를 통한 심리치료’

그렇다면 영화를 통한 심리치료는 어떠한 방식으로 이뤄질까. 우리가 흔히 영화를 보며 울거나 웃는 등의 정서적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 자체가 치료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며 느낀 정서적 반응은 장기적인 행동으로 머물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영화를 보면서 자신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궁극적으로 행동이나 마음가짐을 변화시키는 것이 영화치료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심영섭씨는 보통 집단 상담의 형태로 영화치료를 실시하고 있는데, 그 방식은 단순히 영화감상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애니메이션을 만들거나 셀프 다큐멘터리를 찍게 하는 등 영화치료의 영역을 창작의 단계까지 확장한 것. 영화를 촬영하고 편집하는 과정에서 심리치료가 더욱 적극적으로 이뤄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영화치료의 가장 큰 장점은 놀이적 속성을 갖는다는 점이죠. 어린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를 떠올리면서, 어린아이처럼 깔깔대는 과정 자체가 즐거움을 주거든요. 영화를 보거나 만드는 놀이를 통해 사람들은 자신의 숨겨진 정서와 만나고 정화하며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상담센터를 찾은 여성들은 이혼, 가족과의 불화, 가정폭력 등 다양한 고통을 호소한다. 심영섭씨는 그들의 눈높이에 맞는 영화를 제시함으로써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영화치료는 우선 내담자와의 상담을 통해 어떤 영화를 감상하면 좋을지부터 결정하지요. 언젠가 경기도 안산에 거주하는 파키스탄 노동자들의 한국인 부인들이 제게 집단 상담을 받은 적이 있어요. 처음 이들에게 상담 의뢰를 받고는 어떤 영화를 보여주는 것이 적당할지 감이 잡히지 않더라고요.
하지만 대화를 나누면서 이들의 공통된 스트레스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외국인 남편이 한국말에 서툴러 사회에 적응하는 데 곤란을 겪다 보니, 이들은 혼자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수퍼우먼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있었던 거죠. 그래서 보여준 영화가 바로 니콜 키드먼이 완벽한 아내로 등장했던 ‘스탭포드 와이프’였어요. 이 영화를 본 후, 주부들은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남편에게 자립심을 심어주는 동시에 자신도 강박관념에서 어느 정도 해방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혼여성을 위한 영화는 ‘라이딩 위드 보이즈’와 ‘파니핑크’
국내 첫 영상치료 상담센터 연 영화평론가 심영섭이 말하는 ‘영화를 통한 심리치료’

심영섭씨는 “영화를 통해 많은 여성이 희망과 용기를 갖기 원한다”고 말한다.


심영섭씨는 어떤 영화가 어떤 상황에서 효과를 발휘하는지 정리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다. 물론 개인의 성향과 상황이 천차만별이라 일률적으로 적용하기는 어렵겠지만, 지금까지의 임상 사례를 통해 어느 정도 분류가 가능하다는 것.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주부들에게 그는 ‘전사의 후예’나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와 같은 영화를 추천한다. 가정의 테두리를 지키기 위해 거친 운명과 맞서는 마오리족 여성의 삶을 다룬 ‘전사의 후예’나 카페를 운영하며 어려운 일을 함께 해결해가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모두 ‘꿋꿋하게 세상을 헤쳐나가는 여성들의 연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또한 가족 간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그가 제시한 영화로는 ‘마빈의 방’ ‘패션 피쉬’ ‘인어공주’ 등이 있다. 전도연과 고두심이 주연한 ‘인어공주’의 경우, 딸들은 어머니에게 화해를 청하게 되고 주부들은 지난날 남편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깨닫게 된다는 것.
뜻하지 않은 임신으로 여고 시절 결혼한 여성이 시행착오를 거쳐 자신의 삶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그린 ‘라이딩 위드 보이즈’는 심영섭씨가 이혼의 고통을 겪은 여성들에게 추천하는 영화다. 외로움을 호소하던 노처녀 파니핑크와 흑인 동성애자 오르페오의 끈끈한 연대감을 그린 ‘파니핑크’도 한 이혼여성에게 큰 영향을 미친 영화였다고 한다.

“자아존중감이 낮고 자신의 깊은 화를 어떻게 표출할지 몰라 고민하던 내담자에게 ‘파니핑크’를 보여줬어요. 영화를 본 후 그는 ‘현재 자신이 맺고 있는 남성들과의 관계가 무의미하게 느껴졌다’고 말했습니다. 이제는 자신을 더욱 아끼고 사랑하며, 타인과 진정한 유대를 만들고 싶다고 간절히 털어놨어요.”
영상치료 상담센터 ‘사이’는 ‘나 자신’이 아닌 ‘우리’를 지향한다. ‘사이’는 적어도 두 사람이 있어야 성립될 수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심영섭씨는 영상매체를 매개로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을 벌이는 장을 마련함으로써 궁극적으로 ‘관계의 회복’을 꿈꾼다.
“저 역시 이혼 등 여성이 사회적으로 부딪칠 수 있는 여러 아픔을 겪었습니다. ‘여성들의 어려움을 같이하라’는 것이 어쩌면 제 운명인지도 몰라요. 고통받는 많은 여성이 영화를 통해 희망과 용기를 얻었으면 합니다.”
이럴 땐 이런 영화!
심영섭씨는 어떤 경우에 어떤 영화를 보면 좋은지 17개의 주제로 6백여편을 분류했다. 그가 공개한 영화치료 목록 중 독자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영화들을 주제별로 요약했다.

고부 갈등 으로 고민하는 여성에게
▼ 여인 40 치매 노인을 간병할 사람이 없어 직장을 그만두는 며느리의 이야기를 다른 리안 감독의 영화.

직장여성에게
▼ 엘니 브로코비치 두 번 이혼하고 홀로 자녀를 키우는 고졸 여성이 수질오염을 초래한 대기업을 상대로 법정 소송을 벌이는 성공 스토리.
▼ 브리짓 존스의 일기 당돌한 괴짜 노처녀 브리짓 존스이 일과 연애담.

실직 및 은퇴로 우울증에 시달리는 남성에게
▼ 자전거 도둑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 후 피폐해진 로마에서 살아가는 가난한 노동자들의 이야기.
▼ 제리 맥과이어 출세가도를 달리던 스포츠 에이전트가 해고당한 후 여자친구와의 사랑을 통해 인생의 시련을 극복해가는 휴먼드라마.

남편이나 아내의 외도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 밀애 남편의 외도로 절망에 빠진 한 가정주부가 자신의 행복과 삶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

장애인 가족에게
▼ 레인맨 자폐증 형과 이기적인 동생의 형제애를 로드무비 형식으로 다룬 휴먼 드라마.
▼ 말아톤 엉뚱하고 순수한 20세 자폐아가 마라톤을 완주해내기까지의 과정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린 영화.
▼ 나의 왼발 뇌성마비로 그저 왼발만 움직일 수 있었던 청년이 장애를 극복하고 화가로 거듭나는 과정을 담은 감동 스토리.

왕따당하는 청소년에게
▼ 릴리슈슈의 모든 것 왕따를 소재로 현대 일본의 10대 중학생의 모습을 이와이 슈운지 감독 특유의 감성으로 그려냈다.
▼ 인형의 집으로 오세요 따돌림의 공포 속에서 우울함을 느끼며 성장해가는 한 여학생의 갈등과 내면세계를 묘사한 작품.

환자와 그의 가족에게
▼ 그녀를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것 치매에 걸린 노모를 돌보는 여의사, 병으로 죽어가는 레즈비언 친구를 둔 점술사 등이 등장하는 옴니버스 영화.
▼ 개 같은 내 인생 중병을 앓는 어머니를 둔 12세 소년이 성장 스토리.


여성동아 2006년 4월 5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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