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색(色)의 계절이다. 3월 초, 겨우내 휑하던 회색빛 담벼락 옆에 샛노란 개나리가 피면, 이에 질세라 새하얀 목련이, 진분홍 진달래가 꽃망울을 터뜨린다. 봄꽃 뿐인가. 여기저기서 두껍고 칙칙한 코트를 하나 둘씩 벗고 하늘하늘한 블라우스, 파스텔 톤 니트, 짧은 스커트를 입은 여인네들이 나온다. 화장도 다양한 색으로 한결 화려해진다.
봄은 또, 다른 의미에서 색이 만발한 계절이다. 춘화, 춘담, 춘기 등… 성과 관련된 단어에 유독 춘(春)자가 자주 들어간 걸 보면 사계절 중에서 특히 봄에 사랑을 갈구하는 이들이 많은 듯하다.
그중에서도 여심(女心)은 유독 봄이 되면 울렁거린다고 한다. 한 병원이 20~30대 남녀 3백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여성의 84%가 “봄이 되면 신체적 변화를 느낀다”고 답해 65%에 그친 남성보다 더 높았다.
이렇듯 여심이 봄을 더 느끼는 이유에 대해 한방에서는 양기가 충만한 봄은 음기가 강한 여성과 궁합이 맞다고 풀이한다. 또 여성이 호르몬 작용에 더 민감하기 때문이라는 통설도 있다. 계절에 따라 호르몬 분비량이 달라지는데 수면을 유발시켜 생식활동을 멈추게 하는 멜라토닌이 대표적이다. 일조량과 분비량이 반비례하는 멜라토닌 호르몬으로 인해 겨우내 생식활동을 중단한 채 겨울잠을 자던 동물들이 봄이 돼 멜라토닌 호르몬 분비량이 줄어들면서 다시 생식활동을 하게 된다는 것. 이는 사람도 마찬가지인데 일반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호르몬 변화에 민감한 탓에 봄을 더 탄다고 한다. 이처럼 여자의 봄바람, 주체 못하는 춘정(春情)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봄이라는 단어가 주는 따뜻한 느낌과 달리 봄에 부는 바람, 봄바람은 의외로 매섭다. 대체로 온화하고 맑은 게 봄철 날씨지만, 어느 날 갑자기 꽃샘추위가 닥치기도 한다. 이처럼 봄철의 기후는 잦은 기압계의 변화로 변동이 심한 편이다.
변동이 심한 것은 봄바람난 여자 마음도 마찬가지인 듯싶다. 봄이 되면 아가씨 가슴도, 아줌마 가슴도 들뜨거나 가라앉거나 혹은 두 감정이 갈피를 못 잡고 오락가락한다. 그래서 어떤 이는 연애를 시작하고, 어떤 이는 짧은 스커트를 꺼내 입고, 또 어떤 이는 백화점 혹은 인터넷 쇼핑몰에서 냅다 사재기(?)를 시작한다.
누구나 봄을 타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화창한 봄에 가슴은 달뜨고, 주변은 화려한데 자신의 모습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경우 스트레스가 가중될 수도 있다. 정도가 심하면 ‘계절성 기분 장애’를 의심해봐야 하지만 일반적으로 신 음식을 섭취하고, 매운 음식을 피한다면 한결 나아질 수 있다. 신 음식은 감정을 다스리는 기관인 간의 기운을 보충한다고 하니 신 김치나 상큼 새콤한 봄나물같이 신맛이 나는 음식이 제격일 듯싶다. 또 가볍게 몸을 움직이거나 취미생활을 하는 것도 좋다. 웅크리고 우울해 하고 있지만 말고 혼자서라도 한껏 치장하고 우아하게 나들이를 떠나도 좋을 일이다.
다만 나들이 떠나기 30분 전, 자외선 차단제를 꼭 챙기자. 안타깝게도 봄볕은 피부의 적이다. 여름철 자외선과 달리 무방비 상태로 맞이하는 봄철 자외선은 기미와 주근깨를 짙게 만든다. 또 외출에서 돌아오면 세안에도 신경 쓰자. 봄은 유난히 건조한데다 황사, 꽃가루, 먼지와 같은 피부의 적들이 널려 있다. 때문에 봄철이면 유난히 얼굴, 손 등이 건조하거나 가려워서 피부과를 찾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기분 전환을 위해 나들이 갔다가 새까매지거나 울긋불긋해진 얼굴 만들어 더 우울해질 일은 막아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봄바람은 겨우내 마음에 품어온 어떤 바람(希)을 이루고 싶어하는 마음인지도 모른다. 그 바람을 풀 생각에 가슴이 달뜨고, 그 바람이 풀리지 못해 더 우울한 건지도. 봄은 사계 중 그 길이가 유난히 짧다고 한다. 금방 지나갈 봄이다. 뒤늦게 아쉬워하지 말고 한번쯤 봄바람나도 좋을 일이다. 불어라, 봄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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