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의 남쪽 끝 경계선에 자리한 영동은 포도와 곶감으로 유명하다. 포도가 익어가는 가을이면 영동군 곳곳에서 포도의 달콤함이 묻어나고, 눈이 소복하게 쌓인 겨울이면 호랑이도 무서워하는 곶감이 영동을 풍성하게 한다. 거기에 난계 박연의 대금가락이 더해지면 영동의 겨울은 도시의 겨울이 부럽지 않다. 매서운 겨울 날씨 탓에 움츠러들기 쉬운 2월, 충북 영동을 찾아가보자.
설날 어머니가 만들어주던 찹쌀떡의 추억, 금강모치마을
민족의 명절인 설날이 다가오면 집집마다 하얀 가래떡을 뽑고 삼삼오오 모여 앉아 만두를 빚으며 새해 맞이 준비를 한다. 거기에 고소한 기름 냄새 풍기며 부쳐내는 동그랑땡이 더해지면 그 무엇이 부러울까. 그런데 충북 영동에는 설날에 꼭 먹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찹쌀떡. 하얀 찹쌀을 곱게 갈아 쪄내고 붉은 팥으로 소를 만들어 동그랗게 빚어내는 찹쌀떡은 영동의 명절에 빠지지 않는 음식이다. 게다가 찹쌀떡을 만들어 볼 수 있는 장소도 있다. 영동군 학산면에 자리한 금강모치마을로 마을 이름조차 찹쌀떡을 다르게 부르는 ‘모치’다. 이 마을의 원래 이름은 ‘모리마을’. 산모롱이에 자리한 마을이라는 뜻이다. 갈기산과 금강이 마을을 앞뒤로 감싸고 있어 아늑하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풍긴다.
영동에서 설날에 꼭 먹는 찹쌀떡을 만들 수 있는 금강모치마을. 마을 주민들이 미리 찹쌀 반죽과 팥소를 준비해놓아 아이들도 쉽게 만든다.
마을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곳이 오늘의 체험장인 마을회관이다. 마을회관 앞으로는 영동이 포도의 명산지라는 것을 알리듯 꽁꽁 얼어붙은 포도송이를 그대로 달고 있는 포도밭이 펼쳐진다. 살짝 한 알 따서 입에 넣으니 포도 아이스크림이 따로 없다.
마을회관 안으로 들어가니 커다란 쟁반 위에 놓인 하얀 찰떡 덩어리가 기다리고 있다. 그 옆으로는 동그랗게 빚어놓은 팥소가 접시에 한가득 담겨 있다. 빵집에서만 보던 찹쌀떡을 직접 만들어 먹을 수 있다는 것에 흥분한 아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떡을 향해 달려든다. “이 떡은 맨손으로 만들어야 하니 주방에 가서 손을 깨끗이 씻고 오세요”라는 마을 아주머니들의 말에 아이들의 달리기는 또 한 번 시작된다. 손을 씻고 돌아와서는 먹어도 되는지, 어떻게 만드는지 등 질문이 쏟아진다.
금강모치마을에서 즐길 수 있는 쥐불놀이.
“마음이 예쁘게 생긴 사람은 떡도 예쁘게 만들어요. 누가 예쁘게 만드나 해볼까요?”라는 말을 들으며 본격적으로 찹쌀떡을 만들기 시작했다. 우선 찹쌀 덩어리를 작게 떼어 얇고 평평하게 편 다음 손바닥에 올려놓고 그 가운데 팥소를 하나 얹는다. 그 후 만두를 싸듯이 팥소 위로 떡을 감싸 둥글게 말면 찹쌀떡 완성! 마을 사람들이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을 미리 마쳐놓은 덕분에 아이들도 쉽게 떡을 만들 수 있다. 떡을 만드는 중간에도 떡 먹느라 바쁜 아이들. 시중에서 파는 것처럼 달지 않고 맛있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떡 맛에 반한다. 그냥 돌아가기 아쉬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직접 만든 떡을 도시락에 담아주기까지 한다.
정월대보름(2월12일)에 금강모치마을을 찾으면 달집 태우기, 쥐불놀이 등 대보름놀이도 즐길 수 있다. 찹쌀떡 만들기는 1인당 5천원, 짚풀 공예는 3천원, 썰매는 무료로 탈 수 있다. 숙박도 가능하며 민박은 1인당 1만원, 시골산채로 나오는 식사는 1인당 한 끼에 5천원이다. 인기가 많기 때문에 사전 예약은 필수. 문의 043-743-8852 mochi.go2vil.org
타악기와 현악기의 장단과 열정이 있는 곳, 난계 국악기 제작촌
영동군 심천면은 ‘국악의 성인’이라고 불리는 ‘난계 박연’을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는 곳이다. 대금을 잘 불었던 난계 박연은 고려 말에 태어나 조선 초기까지 살았던 인물. 세종대왕이 그에게 국악의 정비를 명하면서 국악에 맞는 많은 악기를 만들었으며 궁중음악에 우리 악기가 사용되도록 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난계 박연의 고향인 영동에 국악기 제작촌이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뿐 아니라 영동군에서는 전국 유일의 군립국악단도 운영하고 있다. 매월 셋째 주 목요일에 국악당(043-740-3884, 3596~8)을 찾으면 연주를 들을 수 있다. 1967년부터 매년 10월이면 열리는 ‘난계국악축제’에서도 군립국악단의 연주가 빠지지 않는다.
국악기 제작촌은 타악기공방과 현악기공방으로 나뉜다. 전시장 옆쪽에 자리한 현악기공방은 가야금과 거문고, 아쟁 등 현으로 된 악기를 만드는 곳. 특히 직접 개량 복원한 향비파는 현악기공방이 자랑하는 악기다. 이곳에서는 모든 악기를 직접 만들기 때문에 악기가 만들어지는 전 과정을 볼 수 있고, 악기의 주문제작도 가능하다. 가야금을 만들기 위해 나무를 다듬는 것부터 현악기의 다양한 소리를 담당하는 명주실과 개량실 줄 만들기, 만들어진 악기에 칠 입히기 등 모든 과정을 생생하게 관람할 수 있다. 또 잘 다듬어놓은 대나무 부품을 조립해서 솟대를 만드는 과정은 직접 해볼 수도 있다. 현악기공방을 돌아보며 설명을 듣고 솟대를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은 1인당 5천원이다.
현악기 공방의 또 다른 특징은 직접 악기를 만들 수 있도록 방학 때마다 해금과 가야금, 거문고 제작과정을 여는 것. 악기의 종류에 따라 프로그램의 내용은 조금씩 달라지지만 보통 10여 명이 7~10일 동안 숙식을 함께하며 악기 제작의 전 과정을 배운다. 지금은 국악을 전공하는 대학생들의 참여가 가장 높지만, 국악기 체험장이 완성되는 내년부터는 좀 더 많은 인원을 모집할 예정이다. 모집 공고는 홈페이지(www.nangyekukak.or.kr)를 참고할 것.
국악기 제작촌에서는 장구 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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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설원이 장관을 연출하는 옥계폭포. 영동군 심천면에 자리해 있다.
현악기공방에서 나와 안쪽으로 들어가면 타악기공방이 있다. 수북하게 쌓여 있는 장구와 북의 몸통이 이곳이 타악기공방임을 말해준다. 여기서는 장구 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다. 어린아이들도 쉽게 만들 수 있도록 작게 제작해놓은 장구 몸통을 고르는 것부터 시작한다. 장구를 고르고 체험대에 앉으면 장구 양쪽에 들어갈 동그란 가죽판 2개와 깍쇠(쇠고리)가 끼어진 끈, 끈을 조여줄 부전 몇 개를 준다.
“제일 먼저 할 일은 가죽판에 그려진 태극 문양의 방향을 찾는 거예요. 양쪽에 그려진 모양이 같은 방향으로 얹어져야 합니다. 다 얹었으면 끈을 준비하세요. 끈에 고리가 끼워져 있죠? 그 고리를 깍쇠라고 부르는데, 그것을 하나 건너 하나씩 가죽판에 끼우세요. 나머지 하나는 반대편 가죽에 끼울 거예요.”
세심한 설명을 들으며 하나하나 고리를 끼우는 아이들의 손놀림이 무척 정성스럽다. 아이들과 강사가 추임새처럼 주고받는 질문 속에서 웃음이 묻어나며 어느덧 장구가 완성된다. 장구 만들기 체험에 드는 비용은 1만원.
국악기 제작촌을 둘러보고 여러 가지 체험까지 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2시간 정도. 따라서 체험이 끝나는 시간보다 2시간 전인 오후 4시에는 국악기 제작촌에 도착해야 한다. 체험 운영시간은 오전 9시~오후 6시이며 예약을 해야 한다. 일요일은 휴무. 문의 043-742-7289(타악기공방) 043-742-7288(현악기공방)
영동 포도의 진수를 만날 수 있는 곳, 와인코리아
와인코리아의 내부를 장식하고 있는 영동 포도로 만든 다양한 종류의 와인들.
국악기 제작촌을 나와 영동읍을 지나서 황간으로 가는 길인 학산면 주곡리에는 와인공장인 와인코리아가 있다. 와인코리아는 영동 포도로 포도주를 만드는 국내 유일의 포도주 생산공장이다. 영동의 포도 재배 농민들은 수입 자유화로 포도의 가격이 폭락하자 포도를 이용해 소득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힘을 합쳐 공장을 설립했다고 한다. 원료부터 완제품까지 모두 영동 농민들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다. 지금처럼 번듯한 와인공장의 모습을 갖추는 데는 많은 사람들의 시간과 노력이 들었다고.
5년간 실패를 거듭한 끝에 지난 1998년 ‘샤또마니’를 제조했고, 이제는 그해의 첫 와인인 ‘누보’를 비롯해 드라이한 레드 와인과 스위트한 레드 와인, 화이트 와인 등을 만들고 있다. 처음에는 외국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약간 떫은맛의 포도주를 만들었으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떫은맛이 없는 단맛의 포도주를 더 좋아한다는 사실을 시음을 통해 알게 됐다고 한다. 그리고 결국 우리 입맛에 꼭 맞는 달콤하고 포도향이 살아 있는 와인을 제조해냈다.
폐교를 개조한 와인코리아의 내부에 들어서면 달콤한 포도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입구에 서면 이곳에서 만드는 다양한 와인들을 전시해놓은 복도가 나온다. 길을 따라 왼쪽으로 들어가면 와인 시음장. 다양한 와인을 맛보고 와인에 대한 설명도 들을 수 있다. 아이들에게는 포도즙을 주는데, 포도즙의 봉투 끝에 마개가 달려있어 여닫기 쉽고 먹기에도 편리하다.
와인과 와인즙을 마시고 난 뒤에는 공장 견학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공장 안에서는 포도즙을 추출하는 공정과 병에 주입하는 과정, 포장 과정 등을 볼 수 있다. 단 공장 내부에서는 포도주의 숙성 과정은 보기 힘들다. 포도주의 숙성에 필요한 평균 13℃의 온도를 공장에서 맞추기 어렵기 때문. 숙성되고 있는 포도주를 보려면 공장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토굴로 가야 한다.
포도주 숙성 창고로 사용하고 있는 토굴은 일제 강점기 때 일본군이 무기저장고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었던 곳. 우연한 기회에 토굴을 발견하고 숙성 창고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토굴은 1년 내내 와인 숙성의 최고 조건인 12~14℃를 유지한다.
와인코리아에서는 포도주를 만드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와인코리아는 전시공간이 아닌 공장이므로 방문하려면 반드시 사전예약을 해야 한다. 견학은 휴일인 둘째·넷째 주 토요일과 매주 일요일을 제외하고 가능하다. 단 가족 단위로 찾아갈 경우 토굴 견학은 어렵다. 토굴 견학을 원한다면 여러 가족이 함께 가거나 여행사의 상품을 이용할 것. 문의 와인코리아 043-744-3211 www.winekr.co.kr/키즈투어넷 032-431-0017 www.kidstour.net
추천 여행코스!
▼ 1일대진고속도로 금산IC로 나와 68번 지방도를 따라 영동군으로 진입. 양산면 가선식당에서 점심 후 천태산 영국사 구경-86번 지방도와 갈라지는 501번 지방도를 따라 학산면 금강모치마을로 이동. 찹쌀떡 만들기와 쥐불놀이 체험 후 저녁식사-모치마을 민박.
▼ 2일모치마을에서 아침식사 후 썰매타기-심천면으로 이동-옥계폭포 구경 후 폭포가든에서 점심-영동읍 방향으로 나와 난계국악박물관, 국악기체험장 체험-영동읍내에서 저녁식사 후 1박.
▼ 3일뒷골집에서 아침식사-4번 국도 따라 주곡리로 이동-와인코리아 와인공장 견학과 시음-노근리사건 현장관람-경부고속도로 황간IC 이용해 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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