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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

요즘 아이들 문화 엿보기

‘아이 이성교제에 대해 부모가 알아두어야 할 것들’

초등학생 10명 중 1명은 연애 중! “지나친 몰입 때는 부모의 관심과 조언 필요해요”

글·강지남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 모델·백승도, 황유진

2005. 12. 13

요즘 초등학생들에겐 이성친구에게 “사귀자”고 프러포즈하거나 사귄 지 1백일 되는 날 친구들의 축하를 받는 것이 특이한 일이 아니다. 초등학교 교사들은 “4학년 정도만 되면 서로 커플이라고 자랑하는 아이들이 생기기 시작한다”고 말한다.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초등학생 10명 중 1명은 사귀는 이성친구가 있다. ‘연애하는’ 초등학생들의 이모저모와 부모 대처법.

‘아이 이성교제에 대해 부모가 알아두어야 할 것들’

초등학교5학년인 세연이(가명)는 얼마 전 무척 당황스러운 일을 겪었다. 세연이는 같은 학교 6학년 오빠를 짝사랑하는데, 그 오빠가 인터넷 메신저를 통해 ‘나랑 사귀자∼’라는 메시지를 보내온 것. 다음 날 학교에서 오빠를 만나 ‘진심이냐’고 물었더니 오빠는 ‘내가 아니라 친구가 한 장난이었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부터. 오빠는 세연이와 마주칠 때마다 ‘너 나 진짜로 좋아하지?’라면서 놀려댔다. 세연이는 “정말 오빠를 한번 사귀어볼까 싶어서 인스턴트 메신저로 고백하기로 맘먹고 집에 왔는데 엄마가 컴퓨터를 새 걸로 바꾸면서 메신저를 설치하면 혼날 줄 알라고 경고했다”면서 “오빠한테 사귀자는 말을 전할 방법이 없어 고민이다”고 푸념했다.
초등학교 6학년인 진규(가명)는 요즘 마음이 너무 아프다. 얼마 전 사귄 지 1백일 된 동갑내기 여자친구와 헤어졌기 때문. 여자친구는 진규에게 “다른 남자아이가 나한테 잘해줘서 그 아이가 좋아졌다”며 헤어지자고 했다. 진규는 “1백일 기념일에 여자친구와 함께 영화도 보고 맛있는 것도 사먹으려고 용돈도 많이 모아두었는데…”라며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털어놓았다.
짝사랑하는 이성에게 고백할까 말까 고민하고, 헤어지자는 애인의 통보에 밤잠 못 이루는 일은 더 이상 어른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엄마들 눈에는 아직 코흘리개로만 보이는 초등학생들도 사랑 때문에 설레고 고민하고 아파한다. 초등학교 2학년 딸을 둔 주부 김씨는 “딸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른들 하는 이야기와 똑같다. 좋아하는 이성을 사이에 두고 동성끼리 서로 질투도 하고 삼각관계가 생기기도 한다”면서 “얼마 전에는 딸이 자기가 좋아하는 남자아이를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전학을 가서 좋았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초등학생의 연애는 더 이상 어른들이 흔히 생각하듯 ‘일부 되바라진 아이들의 불장난’이 아니다. 지난해 한국사회조사연구소가 초등학생 5천2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친하게 지내는 이성친구가 있다’는 아이들이 전체의 약 33%에 달했다. 친하게 지내는 이성친구가 있다고 답한 아이들(1679명) 중 32%가 ‘특별히 사귀는 이성친구’가 있다고 답했다. 남자아이들(34%)이 여자아이들(29%)보다 조금 높았다.
결과적으로 이 조사에 응한 전체 초등학생의 10%, 즉 10명 중 1명은 특별히 사귀는 이성친구가 있는 셈. 초등학교 교사들은 4학년 이상이면 한 반에 3∼5쌍 정도의 공식 커플이 있고 드물게는 2∼3학년 중에서도 이성친구를 ‘특별한 마음으로’ 사귀는 아이가 있다고 한다.

각종 기념일 챙기기 등 어른들의 ‘연애의식’ 그대로 따라 해
어린 ‘연인’들의 연애는 당당하다. 부모나 교사에게 들킬까봐 전전긍긍하는 아이들은 거의 없고 오히려 남자친구나 여자친구가 있는 것이 자랑거리다. 서울 중랑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 김씨는 “요즘 아이들은 ‘선생님, 우리 사귀기로 했어요’라고 스스럼없이 자랑할 정도”라고 전했다.
“지난해 6학년 담임을 맡았을 때 말썽을 부린 우리 반 남자아이를 체벌한 적이 있어요. 방과 후에 옆 반 여자아이가 쫓아와서는 따지더라고요. ‘선생님, 왜 제 남자친구를 때리고 그러세요?’라면서.”
서울 동대문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 장씨는 “얼마 전 가을수련회를 갔을 때 정말 요즘 아이들은 자기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놓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고 말했다. 장기자랑을 하는 시간에 6학년 남자아이 두 명이 각각 사귀고 있는 여자친구를 데리고 무대에 올라가 사랑을 고백하는 인기 대중가요를 부르며 여자친구에게 꽃을 바치더라는 것.
“그 아이들은 소위 말하는 ‘날라리’도 아니고 공부도 잘 하는 평범한 아이들이었어요. 그 모습을 보고 남자친구가 없는 여자아이들이 무척 부러워하더라고요. 다른 반에 사귀는 이성친구가 있는 아이들은 담임 교사를 찾아와 그 반으로 심부름 보낼 일이 있으면 꼭 자기를 시켜달라고 부탁하기도 해요.”

‘아이 이성교제에 대해 부모가 알아두어야 할 것들’

초등학생들은 인터넷을 통해 친구들과 많은 대화를 나눈다.


초등학생 커플들은 각종 기념일을 챙기고 선물을 주고받는 어른들의 ‘연애의식’을 그대로 따라 한다. 서로 사귄 지 1백일 되는 날에 친구들에게 1백원씩을 받아서 모은 돈으로 커플링을 사서 나눠 끼고 축하파티를 여는 것은 기본이요, 밸런타인데이·화이트데이·로즈데이·빼빼로데이 등 각종 기념일도 빠짐없이 챙긴다. 아이들에게는 어른에겐 생소한 ‘투투데이’라는 것도 있다. 투투데이란 서로 사귄 지 22일째 되는 날을 기념하는 날. 초등학교 교사 최씨는 “1백일 기념일에 선생님한테도 스스럼없이 축하하는 의미로 1백원을 달라고 한다”면서 “수업시간에 러브장(커플끼리 주고받으며 쓰는 일기장)을 쓰다 들키는 일도 다반사고 학교에 커플티를 맞춰 입고 오는 아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교사 배씨는 “백일반지로 18K 금반지를 끼고 있는 6학년 커플에게 무슨 돈으로 반지를 샀냐고 물었더니 하루에 5백원씩 저축했다고 해서 놀란 적이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초등학교 교사들은 초등학생들의 연애는 몇 가지 특성에서 어른들의 연애와는 다른 양상을 띤다고 말한다. 일단 사귀는 기간이 짧다는 것. 만난 지 22일 되는 날을 ‘투투데이’라고 부르며 기념하는 것에서 엿보이듯 초등학생들의 연애기간은 짧으면 2∼3주, 길어야 6개월을 넘기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또 사귀고 헤어지는 일이 또래 사이에서 그다지 큰 ‘흉’이 되지 않을 정도로 개방적이다. 같은 반 이성친구를 사귀다 헤어지고 나서 역시 같은 반의 다른 이성친구를 사귀어도 끼리끼리 패가 갈리는 일 없이 잘 어울려 지낸다는 것.
초등학생들의 이성교제가 자연스러워지면서 서로 포옹한다든가 입맞춤을 하는 등 성적인 접촉을 하는 연령대도 낮아지는 추세다. 최 교사는 “지난해 5학년 담임을 맡았는데 아이들끼리 ‘뽀뽀놀이’라는 것을 해 놀란 적이 있다”고 전했다. 아이들끼리 ‘나 어제는 누구랑 뽀뽀했고, 오늘은 누구랑 할 거다’라면서 서로 자랑하더라는 것. 6학년 담임인 김 교사는 “소풍 가는 날 버스 안에서 우연히 남자아이들이 쑥덕거리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우리 반에서 어떤 여자아이가 가장 섹시하냐’ ‘누구랑 키스하고 싶냐’ 등을 서로 이야기하고 있어 끼어들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난감한 적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박모 교사는 “4∼6학년에서는 종종 ‘누구랑 누구랑 어제 키스했다더라’는 소문이 학교 안에 퍼지기도 한다”고 전했다.

‘적당한 선’만 관리해주면 정서발달에 도움 줘
‘아이 이성교제에 대해 부모가 알아두어야 할 것들’

초등학교 교사들은 4학년 이상이 되면 사귀는 커플이 한 반에 3~5쌍씩 된다고 말한다.


온라인 성상담소 ‘푸른 아우성(www.9sungae.com)’ 초딩게시판에서는 ‘이성친구와 키스하고 싶어요. 어떻게 하죠?’ ‘남자친구랑 키스했는데 (몸이) 나빠지는 거 아닐까요?’ 등등 이성친구와의 성문제에 대한 초등학생들의 고민을 엿볼 수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사이트 다모임(www. damoim.net)은 지난 8월 초등학생들의 성의식을 묻는 설문조사를 했는데, ‘미성년자의 성경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라는 질문에 ‘성년이 될 때까지 참아야 한다’고 답한 비율이 44%로 가장 높았으나 ‘진짜 사랑하는 사이라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답한 비율 또한 34%를 차지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초등학생들을 ‘너무 이른 연애’에 빠져들게 했을까. 초등학교 교사들은 “TV와 인터넷의 영향이 큰 것 같다”고 지적한다. 김모 교사는 “요즘 TV 오락 프로그램을 보면 거의 대다수가 짝짓기 코너를 도입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TV에 연예인이나 일반인이 출연해서 특정 이성에게 선물 공세를 하거나 춤이나 노래 등 장기자랑을 선보이며 구애하는 모습이 자주 비쳐지잖아요. 그런 모습을 즐겨 보면서 크게 영향을 받는 것 같아요. 인터넷을 통해 성인물을 쉽게 접하면서 성에 대한 호기심에도 일찍 눈을 뜨고요.”
초등학생들의 이 같은 이성교제는 무조건 걱정의 대상일까? 일찍 성에 눈을 뜬다든가, 공부를 뒷전으로 여긴다든가, 데이트 비용 때문에 씀씀이가 커지는 일에만 주의한다면 초등학생 이성교제는 자기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고 이성을 배려하는 방법을 익힐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경기도 안양시 부안초등학교 강명희 교사는 “부모가 관심을 가지고 ‘적당한 선’만 관리해준다면 초등학생 이성교제는 정서발달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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