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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프라이버시 인터뷰

‘불멸의 이순신’으로 연기력 인정받은 김명민

“이순신과의 만남은 연기자 생활을 포기하려던 순간 찾아온 행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혼신의 힘 다했어요”

기획ㆍ김유림 기자 / 글·김지영‘동아일보 기자’ / 사진ㆍ동아일보 사진DB파트

2005. 10. 10

KBS 대하사극 ‘불멸의 이순신’이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극중 ‘민족의 영웅 이순신’을 연기한 김명민은 연기자의 길을 포기하려던 순간 찾아온 행운이 다시 그를 연기자의 길로 이끌었다고 말한다. 그에게 1년 넘게 이순신 장군으로 살아본 소감 & 알려지지 않은 가족 이야기를 들었다.

‘불멸의 이순신’으로 연기력 인정받은 김명민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라고 했다.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고, 살고자 하면 반드시 죽는다’는 것. 1597년 8월 백의종군하던 이순신은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기용됐다. 그 해 9월 12척의 배를 이끌고 왜선 3백여 척에 맞서야 하는 명량해전에 임했을 때 이순신은 ‘죽고자 하면 산다’고 각오했다.
지난해 4월 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출연 제안을 받아들였을 때 탤런트 김명민(33)의 마음도 그러했다. 당시 그는 연기에 지독한 회의를 느껴 배우를 그만두고 뉴질랜드로 이민을 떠나기 위해 집도 팔고 차도 판 상태였다. 그때 ‘불멸의 이순신’ 제작팀에게서 연락이 왔다.
“여러 장군 중 하나를 맡기려나 보다 했어요. 이성주 PD를 만났는데 이순신 장군 역을 제안하시더라고요. 그 말에 제가 놀라 대뜸 ‘도대체 저의 무엇을 보신 것입니까?’라고 반문했어요.”
그는 이성주 PD에게 사흘만 시간을 달라고 했다.
“돌아보니 ‘내가 머리가 어떻게 됐었나 보다’ 싶어요. 그 자리에서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각오를 다지는 게 당연한데, 생각할 시간을 달라니요. 그런데 사흘째 되는 날 아내가 출산을 했어요. 아이가 태어나 정신이 없는데 이 PD한테 전화가 왔어요. 왜 연락을 안 하느냐고 주연으로 결정했으니까 그렇게 알라고요.”
김명민은 ‘마지막으로 한 번’이라고 생각했다. ‘불멸의 이순신’은 그렇게 시작됐다. 2004년 9월4일 첫 회 시청률은 16.5%. 그러나 2005년 8월28일 마지막 1백4회 시청률은 31%였다.

혹독한 추위, 더위보다 더 고통스러웠던 것은 이순신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
‘불멸의 이순신’으로 연기력 인정받은 김명민

첫 회 시청률은 16.5% 였지만 마지막 회는 31%를 기록한 ‘불멸의 이순신’.


우리는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교과서에서, 위인전에서 ‘민족의 영웅 이순신’의 생애를 배운다. 그러나 김명민이 체험한 이순신은 어렸을 적 듣고 배운 이순신이 아니었다.
“보통사람이었어요. 울고 웃고 화내고 안타까워할 줄 아는 사람. 그리고 그 모든 감정을 삭이고 오로지 적을 이기는 것만을 생각한 사람. 대본을 보면서 수도 없이 ‘나라면 그 자리에서 화를 터뜨렸을 텐데’ ‘나라면 원통해서 가슴을 쳤을 텐데’ 하고 생각했어요.”
김명민이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캐릭터와의 불화’였다. 겨울에는 손발이 꽁꽁 얼어붙는 바닷바람을 견뎌야 했고, 여름에는 20kg 넘는 갑옷을 입고 35℃가 넘는 더위와 싸워야 했지만 이순신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은 육체의 고통을 웃돌았다.
드라마에서 이순신은 역적의 누명을 쓰고 압송되면서 “그대들이 먼저 마음을 열고 통제사 원균에게 이 나라 조선에 대한 충심을 보이라”고 하면서, 존경하는 장군을 잃고 슬픔에 잠긴 부하들에게 “전장에서 죽음이란 항상 등짐같이 짊어지고 다니는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대사를 연습할 때 김명민은 “눈물 콧물 다 흘렸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연기하는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면 TV를 보는 시청자는 더욱 납득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무조건 받아들이려고 애썼다. 반복해서 대사하고 움직이다 보니 어느 순간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수군 폐지론이 나왔을 때 이순신이 칼을 차고 갑옷을 입고 부하들을 이끌고 선조를 만나러 가는 것으로 설정돼 있었어요. 지금껏 연기한 이순신은 그런 행동을 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섰어요. 원리원칙을 철저히 따지는 사람이 칼을 차고 임금을 만나다니요. 제작진을 설득했어요. 결국 갑옷을 벗고 칼도 차지 않고 들어가게 됐지요.”

‘불멸의 이순신’으로 연기력 인정받은 김명민

이순신의 대사는 인터넷에서 ‘이순신 어록’으로 묶여서 큰 인기를 모았다. 잘 알려진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뿐만 아니라 ‘가장 먼저 싸워야 할 적은 자기 자신이다’ ‘사기가 떨어지면 진중(군대 안)은 끝장난 것이다’ 등 곱씹어 의미를 새길 만한 대사들에 네티즌은 열광했다. 내면의 고뇌를 표현하는 대사들도 인터넷 곳곳에서 소개되고 인용됐다. ‘내 안에서 칼이 울었다. 노엽지 않은가. 그대를 조선군의 수괴라 부르는 적보다 역도라 칭하는 군왕이 더욱 노엽지 않은가. 그 불의에 맞서지 못하고 그대의 함대를 사지로 이끌고자 하는 세상의 비겁이 노엽지 않은가.’
이렇게 유명해진 대사를 읊으면서 김명민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순신은 고뇌하면서도 자신의 감정을 밖으로 표출하지 않았어요. 자신이 섬기는 임금이 자신을 죽도록 미워할 때 한 인간으로서 괴롭고 분노하기도 했을 텐데…. 저라면 못 견뎠을 겁니다.”
‘불멸의 이순신’은 시청률 19%를 유지하다가 지난 3월16일 일본 시네마현의 ‘다케시마의 날’ 제정을 계기로 시청률이 5% 이상 뛰어올랐다. 4월3일 첫 전투인 옥포해전 장면이 방영되면서 처음으로 30%를 넘었다. 주 시청층은 30~50대 남성이었다. 자녀들과 함께 드라마를 봤다는 시청자들도 많다. 전통적 드라마 시청자층인 40~50대 여성들을 제치고 TV 앞에 앉은 남성들은 ‘진정한 남성상을 보여줬다’ ‘남자답게 사는 법을 알려줬다’ 등의 찬사를 보냈다. 김명민은 이에 대해 “성공하겠다는 세속적 욕망 없이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만 충실하게 살다간 남자”라고 이순신의 삶을 평한다.
“같이 사는 부인은 힘들지 않았을까요. 답답해 보이기도 했을 것 같고…” 농담처럼 말했지만 그것이 김명민이 본 이순신의 순수한 모습이기도 하다.
“신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어요. 실제로 지금껏 알려진 ‘성웅 이순신’은 신성불가침의 존재였잖아요. 그런데 바로 그 이순신이, 좌절하고 실패하기도 했지만 또다시 일어나 도전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을, 신이 아니라 한 인간이었다는 것을 몸으로 깨달았습니다.”
마지막 회 노량해전을 찍으면서 김명민은 수없이 NG를 냈다고 털어놓았다.
“그때는 정말 이순신이 아니라 김명민이 되더라고요. 이렇게 기구한 운명을 살다간 사람이라니, 하는 생각에 자꾸 눈물이 나서요. 대본에는 평온한 표정을 보여야 한다고 나와 있는데 설움이 복받쳐서….”
갑옷도 입지 않은 채 전투에 임했던 이순신의 최후를 두고 자살이 아니냐는 논란도 있었다. 김명민은 이에 대해 “자살이라기보다는… 운명을 내다본 게 아닐까요”라고 말한다. “도망치는 잔적까지도 쫓아서 소탕하려고 했지요. 죽음을 예감하고요. 당신이 해야 할 일은 거기까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17개월 된 아들 재하와 마음껏 놀아주고 싶어
회를 거듭할수록 시청자들은 고뇌하는 한 인간 이순신에게, 김명민의 열연에 열광했다. 촬영 현장으로 찾아오는 팬들이 줄을 이었다. “광주에서, 대구에서도 오셨다면서 인사하시고… 언젠가 갑옷 입고 한창 대사를 외우고 있는데 꽃무늬 셔츠 입은 남자 어른들이 나타나셨어요. 하와이에서 오셨다고 하더라고요. 놀랍고 감사했어요.”
특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들려달라고 했다. 김명민은 “글쎄요…” 하면서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쿡쿡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이런 일이 있었어요. 분장실에 있는데 밖에서 중년 여성 분들이 잠깐 보자고 청하더라고요. 소녀처럼 수줍어하시면서 손짓하시는 겁니다. 나갔더니 ‘드라마 잘 보고 있어요’ ‘열심히 하세요’ 하면서 격려해주셨어요. ‘이제 갈게요’ 하셔서 인사하려는데,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화이팅, 지진희 씨!’”
그러나 이제 사람들은 ‘이순신’ 하면 ‘김명민’을 떠올릴 것이다.
김명민 역시 돈도 없고 알아주는 사람도 없던 때가 있었다. 2000년 MBC 드라마 ‘뜨거운 것이 좋아’로 얼굴을 알리고 “이제 시작”이라며 흥분했다. 2001년 영화 ‘소름’으로 주목받고는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자꾸만 가라앉았다.

‘불멸의 이순신’으로 연기력 인정받은 김명민

김명민은 1년 넘게 이순신으로 살면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배웠다고 한다.


2년 넘게 공들였던 영화 두 편이 촬영 90%를 넘기고 엎어졌다. 대역을 쓰지 않고 위험한 장면을 직접 연기하느라 3개월 가까이 병원 신세도 졌다. 내내 촬영장에 있었는데 가끔 만나는 사람들은 ‘왜 쉬느냐’고 했다. 노력하는데도 거두는 것이 없는 것처럼 보여 지쳐갔다.
지난해 출연한 KBS 드라마 ‘꽃보다 아름다워’는 호평을 받았지만 자신이 맡은 인물은 너무나 작아 보였다.
“어렸을 때 유치원 학예회에서 단체로 꼭두각시 춤을 췄어요. 공연을 하다가 정전이 되자 무대에 선 아이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죠. 얼마 뒤 불이 들어왔는데 저 혼자 춤을 추고 있더래요. 그동안 불 꺼진 줄도 모르고요.”
그렇게 어렸을 적부터 ‘타고난 무대 체질’이라고 박수 받은 그다. 다른 길은 생각도 해보지 않고 달려왔는데 ‘연기를 그만두어야겠다’고 결심하는 날이 왔다. 그때 이순신을 만났다.
캐스팅 결정 직후 이순신 장군으로는 이미지가 약하지 않느냐는 지적도 나왔다. 김명민은 그때를 돌아보면서 “드라마 끝나고도 캐스팅 비관론이 나온다면 문제겠지만 다행히 그런 얘기는 없네요”라면서 여유롭게 웃었다.
그는 이제 길에서 불량배를 만나면 한칼에 벨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이미지가 굳어지는 게 염려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김명민은 “지금까지 항상 다른 역할을 해왔고 그때그때 역할에 충실했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고 말했다.
차기작을 묻자 “서두르지 않고 고르겠다”고 밝혔다.
“천천히, 신중하게 선택하려고요. 여유를 갖고요.”
연기 계획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는 대신 김명민은 “아내와 아이와 함께 당분간 많은 시간을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가 태어난 날 출연이 확정됐거든요. 아이가 준 선물이라고 생각했어요.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더군요.”
그때 태어난 아들 재하가 17개월이 됐다. 그동안 드라마 촬영하느라 재하 얼굴도 제대로 못 보는 날이 많았는데, 앞으로 한동안 마음껏 놀아주게 됐다며 김명민은 활짝 웃었다.
김명민은 이순신의 삶을 연기하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배우게 됐다고 한다. “굳은 소신을 가지고 간절히 소망한다면, 죽고자 하는 각오로 맞선다면 고난은 기적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그는“인생에서 힘든 시기를 겪게 될 모든 사람들에게 이순신의 삶이 지침이 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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