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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아이와 함께 보는 명화 ①

폭력과 압제로 억누를 수 없는 인간의 존엄성 ‘1808년 5월3일’

2005. 10. 05

폭력과 압제로 억누를 수 없는 인간의 존엄성 ‘1808년 5월3일’

프란시스코 데 고야(1746~1828), 1808년 5월3일, 1814, 캔버스에 유채, 266x345cm,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1808년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 군대가 스페인을 침공했습니다. 당시 스페인 사람들은 재상 고도이의 학정에 진저리를 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비록 외국 군대지만 나폴레옹의 군대를 환영했지요. 프랑스 혁명의 기운을 가져와 억압에 지친 민중을 해방시켜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그 희망은 곧 깨졌습니다. 나폴레옹의 군대는 점령군일 뿐이었습니다. 스페인 민중의 기대나 소망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었지요. 나폴레옹은 자기 동생 조세프 보나파르트를 스페인 왕위에 앉혔습니다. 그러자 1808년 5월2일 마드리드에서 격렬한 민중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나폴레옹의 군대는 이 시위를 잔인하게 진압하고 체포한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처형했습니다.
스페인이 낳은 대가 고야는 이 처참한 사건을 생생한 이미지로 기록했습니다. 그림을 보면 죽음의 공포로 두려워 떠는 사람, 혼미해지는 정신을 다잡으려 애쓰는 사람, 가슴을 활짝 드러낸 채 용감하게 죽음을 맞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총을 쏘는 군인들은 고개를 들지 못합니다. 이날 처형은 밤새도록 이어졌는데, 이렇게 사람을 죽이고 또 죽이고, 끝없이 죽이는 일이 프랑스 군인들에게도 차마 못할 짓이었을 겁니다. 인간이기를 멈춘 그들은 불가피하게 총 쏘는 기계로 전락했습니다.
그 총부리를 향해 손을 번쩍 든 흰 셔츠의 사내는 이를테면 예수님처럼 스페인 민중의 부활을 약속하는 종국적인 승리의 상징입니다. 어쩌면 프랑스 군대의 만행 앞에서 끓는 피를 주체할 수 없었던 고야의 영혼일지도 모르지요. 어쨌든 화가는 이 이미지를 통해 그 어떤 폭력과 압제로도 억누를 수 없는 인간의 존엄성을 표현했습니다.
진정으로 위대한 민족은 남의 나라를 많이 정복한 민족이 아닙니다. 이 스페인 민중처럼 스스로의 자유와 존엄을 위해 결코 포기하지 않고 투쟁하는 민족이지요.

한 가지 더∼
고야의 ‘1808년 5월3일’이 제작된 이후 정치권력이나 외국 군대가 민중을 학살하는 주제의 그림은 대부분 고야의 그림에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피카소의 ‘한국에서의 학살’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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