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5학년이던 지난해 말 우리말도 아닌 영어로 동화책을 써 화제를 모은 최윤경양(12). 오목조목 작고 예쁘장한 얼굴에 안경을 걸친 모습이 다부져 보인다. 최양이 쓴 영어동화책의 제목은 ’에니 제이와 마법의 향수 Enny J. and Magical Perfume‘.
“주인공 에니 제이가 길에서 우연히 할머니와 부딪치면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마법의 향수병을 줍게 돼요. 그런데 나쁜 무리들이 마법의 향수를 뺏으려 하죠. 이에 제이가 비밀을 아는 친구들과 함께 나쁜 무리와 맞서 싸워나가는 이야기예요.”
엄마 김수윤씨(45)에 따르면 동화책은 습작 차원에서 쓴 것. 그런데도 미시간대 영어창작과 아이렌 한 교수가 한국에 왔다가 책을 보고 “탄탄한 구성과 자유로운 표현력, 상상력이 돋보인다”며 미국과 영국 등에서도 출간할 것을 적극 권했다고 한다.
우리말로 동화책 쓰는 것도 어려운데 영어로 동화책을 썼다? 그 특별한 비법은 바로 지금까지 1천 권이 넘는 영어 동화책을 읽은 데 있다고 한다.
“영어 동화책을 읽으면 그 나라만의 독특한 문화를 비롯해 언어, 문법, 표현법 등 여러 가지를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어요. 무조건 단어만 외우고 그것을 잘 활용할 줄 모른다면 죽은 영어 공부죠. 하지만 영어 동화책을 꾸준히 읽다 보면 그 단어의 쓰임새를 알게 되고, 주어 다음 동사가 온다는 식의 문법이 트이게 돼요. 또 굳이 문법을 배우지 않고도 3인칭 단수에는 ‘is, has’를 쓰거나 동사 원형 뒤에 ‘s’를 붙여야 한다는 정도를 책 속에서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죠.”
최양은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한 다섯 살 무렵부터 영어 동화책을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TV 만화 속 주인공이 등장하는 그림책부터 읽었다. 특히 파닉스(Phonics·영어의 철자와 발음의 관계를 가르치는 교수법) 위주의 영어책을 읽었다. 우리말의 ㄴ과 ㅏ가 만나면 ‘나’가 되듯이 영어에도 발음 규칙이 있다. 예를 들어 ‘sad(새드)’라는 단어를 발음할 때 ‘S(에스)’, ‘A(에이)’, ‘D(디)’로 알파벳 그대로 연결해 읽으면 ‘에세디’ 식으로 조합하기 어렵다. 하지만 ‘S(스)’, ‘A(에)’, ‘D(드)’ 식의 파닉스로 배우면 바로 ‘새드(sad)’라고 소리내어 읽을 수 있다. 알파벳을 명칭보다는 실제 발음되는 소리로 배워야 한다는 것.
“파닉스 위주의 스토리 책은 미국의 미취학 아동들의 독서교육을 위해 만들어진 책이에요. 그림이 매우 창의적이고 내용도 재미있죠. 특히 파닉스 책은 리듬감이 있다는 것이 장점이에요. 노래 부르듯 따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책 읽는 습관이 생기거든요.”
최양은 한권 한권 책을 읽어나갈 때마다 수준을 높여나갔다. 시리즈물을 많이 읽었는데, 가령 ’아서‘ 이야기를 읽으면 한 시리즈를 연이어 테이프를 들으면서 읽어나갔다. 시리즈물은 작가와 주인공, 주변 인물들이 같아서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어 한층 쉽게 읽힌다고 한다.
최양의 엄마 김씨가 영어책 읽기에서 특히 강조하는 것은 소리내어 읽기. 열 살이 넘으면 안면 근육이 굳어져 영어 발음하기가 어렵고 또 한국어에 익숙해져 영어로 말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영어를 듣고 읽고 말하게 하다 보면 영어가 우리말처럼 자연스러워진다고.
“윤경이가 영어책을 읽기 시작할 때부터 하루 30분씩 큰 소리를 내어 읽도록 했어요. 그러다 보니 영어에 필요한 구강근육이 발달되어 발음이 원어민처럼 좋아지더라고요. 영어책을 잘 읽게 되면 자신감이 붙어서 더욱 영어를 잘 하게 돼요.”
최양은 영어교육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는 영어 비디오와 영어 TV 방송 보기다. 여기에도 규칙이 있다. 우리말 설명이 전혀 없이 본다는 것. 최양의 엄마 김씨는 아예 TV 브라운관 한글 자막이 나오는 부분에 두꺼운 테이프를 붙여놓았다. 그리고 정해진 시간 외에는 TV를 보지 않게 하기 위해 TV를 안방 장롱 안에 넣어둔다.
하루 30분씩 큰 소리로 영어 동화책 읽게 해
김씨는 “어려서부터 영어로만 TV를 보게 하면 ‘apple은 사과’라는 단어로 외우지 않고 ‘Apple은 빨간색의 달콤한 과일’이라고 기억하게 된다”고 말한다. ‘Thank you’를 ‘고맙습니다’라는 뜻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만화 속 장면을 떠올리며 어떤 상황에서 ‘Thank you’를 쓰는지를 배우게 된다는 것.
“아이들의 뇌는 스펀지같이 쏙쏙 빨아들여요. 첫돌이 채 되지 않은 아기들도 내용을 알지 못하면서 TV 속 장면을 흥미로워하고 몇 번씩 반복해 봐도 질려하지 않잖아요. 마찬가지로 어릴수록 언어를 소리로 받아들이고 자주 들으면서 익숙해지죠. 우리말을 배우듯 말이에요. 특히 디즈니 만화영화를 보면서는 의성어나 의태어를 쉽게 배워요. 가령 놀라는 상황에서 ‘웁스(Oops)’ 하는 반응을 나타내는 장면을 보면서 아이는 ‘아, 놀랄 때는 웁스라고 말하는구나’라며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는 거지요.”
최양은 처음에는 디즈니 만화영화에 푹 빠져지내다 지적·어휘력 수준이 높아지면서 CNN 방송을 보기 시작했다. 김씨는 항상 딸 옆에 앉아 함께 시청하면서 딸이 무엇을 흥미로워하는지, 내용은 이해하는지 등을 살펴보며 적절한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요즘 아이들에게 컴퓨터 게임은 빼놓을 수 없는 놀이다. 최양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최양은 게임을 하면서부터 영어공부에 더 빠져들었다. ’점프 스타트 Jump Start‘나 ’리더 래빗 Reader Rabbit’s‘ 같은 미국 어린이들이 갖고 노는 영어학습 프로그램을 선택해 즐긴 덕분이다. 일단 재미있는 캐릭터들이 아이들의 눈길을 끌고, 게임 형식으로 프로그램이 진행되기 때문에 아이들이 스스로 즐기면서 영어를 배울 수 있다. 특히 영어게임은 영어를 알아듣고 단어를 읽을 줄 알아야 할 수 있기에 아이로 하여금 영어의 필요성을 느끼고 자발적으로 공부하게 한다.
우리말 배울 때처럼 환경을 만들어줘야
요즘 김수윤씨는 많은 엄마들에게서 “어떻게 하면 아이가 영어를 잘 하게 만들 수 있냐”는 질문을 받는다. 그의 답은 이것이다.
“영어는 다른 나라의 언어예요. 아이가 우리말을 배울 때 어떻게 하나요? 엄마 아빠가 하는 말을 듣고 따라하면서 하나씩 익히잖아요. 영어도 마찬가지예요. 다만 영어는 우리말을 배울 때처럼 주변 환경이 잘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에 많은 노력이 필요해요.”
영어를 재미있게 듣고 읽고 말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말로 자기 생각을 잘 표현할 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영어를 교육시키는 곳이 미국이 아닌 한국이기에 한국적 환경에 맞추고, 아이에게 너무 강요하지 말라고. 엄마가 장기적인 목표와 규칙을 정해놓고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최양은 영어는 물론 음악, 미술, 체육 등 다방면에서 뛰어난 실력을 자랑한다. 여섯 살 때 작곡을 시작했고, 플루티스트인 엄마의 연주를 평가할 정도로 음악적 감수성이 뛰어나다. 수영, 농구 등 못하는 운동이 거의 없다.
또한 여섯 살 때 경희대 법대 교수인 아빠를 따라 미국 미시간주 앤아버의 에머슨 영재학교에 건너가 1년 동안 공부했으며 평균IQ가 148 이상의 전 세계 천재들의 모임인 멘사(Mensa) 회원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양의 엄마는 “아무리 똑똑한 아이라도 적절한 지도를 받지 못하면 재능을 다 발휘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아이들에게 레슨을 하다보면 똑똑한 아이일수록 짜증이 심해요. 학교수업이 자기 수준에 따라오지 못하니까 따분해하고 화를 내게 되죠. 그럴수록 부모의 세심하고 체계적인 지도가 필요해요.”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