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갑내기부부 이형철·조진숙씨(49)는 79년 고려대를 나란히 졸업하고 그 이듬해 봄 결혼해 바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남편 이씨가 알캔사스대학에서 전산학 석사과정을 밟기 위해서였다. 두 사람은 당초 공부를 마치면 돌아올 계획이었지만 네 살 터울로 두 아들 윤태와 윤호가 태어나자 아이들 교육을 위해 미국에 남기로 결정하고 콜로라도 덴버에 정착했다. 이씨는 뉴멕시코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AT&T 벨 연구소, 루슨트 벨 연구소 수석연구원을 거쳐 현재 아바야연구소의 기술 책임자(Technical Manager)로 근무하고 있다. 남편 내조와 육아에만 전념했던 조씨는 아이들이 어느 정도 성장하자 콜로라도대 전산과 석사과정을 밟고 현재는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
이씨 부부는 ‘자녀에게 좋은 길을 안내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는 생각으로 정성들여 아이들을 키웠다. 그 결과 큰아들 윤태군(23)은 2000년 하버드대 입학 허가를 받아놓은 상태에서 미국 고등학교 졸업생들에게 가장 영예로운 상으로 손꼽히는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그로부터 4년 만인 지난해 작은아들 윤호군(19) 역시 콜로라도주 대표로 미국 대통령상을 수상하고 하버드대에 입학했다.
“미국 대통령상은 고등학교 졸업생들의 학교 성적, 지도력, 봉사활동, 과외활동, 학교 추천서, 그리고 에세이 등을 엄격하게 심사해 각 주에서 남녀 한 명씩에게만 주는 상이에요. 이런 큰 상을 우리 아이들이 연달아 받았으니 저희도 깜짝 놀랐죠. 윤호가 상을 받게 됐을 때 어찌나 설레든지 전날 잠을 다 설쳤어요.”
형제가 모두 큰 상을 받고 하버드대에 진학했으니 대체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시켰을까 궁금하다. 아버지 이씨는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 우리 부부도 다른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늘 살얼음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을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건 지금도 여전하다”며 “다만 불안한 마음이 드는 만큼 아이들과 더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씨 부부는 윤태·윤호 형제를 학원에 보내거나 과외공부를 시킨 적이 없다고 한다. 주입식 교육보다는 스스로 공부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 이씨는 퇴근하면 곧바로 집에 와서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부부가 머리를 맞대고 아이들이 참고할 만한 책을 고르고 의욕적으로 공부하도록 하는 창의적인 학습법을 연구했다.
두 아들이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부부는 ‘호기심 유발 작전’을 폈다. “왜 낮과 밤이 있을까?” “왜 하루는 24시간일까?” 같은 일상생활과 밀접한 자연 원리를 수시로 질문했던 것. 그러면 아이들도 함께 의문을 품었고,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형제가 마주 앉아 토론을 하거나 도서관을 찾아 직접 책을 찾아보았다. 부부는 아이의 작은 호기심도 놓치지 않고 재능으로 발전시키려고 노력했다. 첫째 윤태군이 어려서부터 전자제품에 유독 관심을 보이자 초등학교 6학년 때 직접 컴퓨터를 만들어보면 어떻겠냐고 권하며 필요한 것들을 말하면 구해다주겠다고 했다. 놀랍게도 윤태군은 컴퓨터 하드웨어에 대해 완전히 꿰고 있는 상태에서 필요한 부품 목록을 적어 내밀었고, 이씨가 부품을 구해다주자 1년간 끈질기게 연구한 끝에 혼자서 컴퓨터 하드웨어를 완성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이 만든 하드웨어를 이용해 컴퓨터 프로그램도 만들었다고.
아이들이 숙제할 때 부모도 함께 공부하고 절대 먼저 잠자리 들지 않아
아이들과 함께 호흡하고, 아이들의 세계에 동화되려고 노력해온 이 부부는 “교육 성과는 부모가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에 비례한다”고 확신한다. 때문에 아이들이 숙제할 때 부부도 함께 식탁에 앉아 공부했고, 아이들이 자기 전에는 절대 먼저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 텔레비전은 정해진 시간에만 보았고, 컴퓨터 게임은 아예 못하게 했다. 부부는 청소나 정원 가꾸기 등 집안일을 할 때도 반드시 아이들이 동참하게 했다. “돌아보면 아이들과 보낸 시간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보람되고 고귀한 시간이었다”고 말하는 이씨는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하다 보면 부모도 모르는 사이 인생에서 반드시 필요한 지혜를 얻게 된다며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은 되도록 많은 시간을 아이와 함께 하라고 강조한다.
“윤태가 중학생 때였을 거예요. 새 집으로 이사하면서 마당에 조경을 하려고 자갈 1백20톤을 주문했어요. 그 양이 얼마나 많은지 마치 작은 산처럼 보이더라고요. 온 가족이 나서서 그 자갈을 마당에 깔았어요. 윤태와 윤호도 자기 키를 넘기는 자갈산을 조금씩 허물어가며 여름 내내 일했어요. 꼬박 3개월 동안 두 아이 모두 불평 없이 도와주었죠. 나중에 윤태가 하는 말이, 힘들게 일하면서 노동의 가치를 배웠대요.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직장에서 돌아온 엄마 아빠가 일하는 모습을 보니까 저절로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래요. 아무리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도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노력하면 결국 성취할 수 있다는 것도 그때 배웠다고 하고요.”
무슨 일이든 온 가족이 함께하는 집안 분위기를 만든 부부는 가능한 한 아이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려고 노력했다. 아이들을 차에 태워 등하교시키는 시간 동안에도 많은 대화를 나눴다. 윤태군이 고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엔 아무래도 대화 시간이 줄어들 것 같아 매주 일요일 아침 온 가족이 등산을 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패스트푸드점에서 간단히 식사를 하고 집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뒷산에 올라 10시쯤 집으로 돌아오는 일정을 2년간 계속했다. 산을 오르내리며 가족들은 한 주간 못했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이씨 부부는 1년에 두 번 정도 있는 학부모 회의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아이들이 더 분발해야 할 점이 무엇이며 부모가 집에서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 교사에게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생각했기 때문. 부부는 공부든 과외 활동이든 아이들에게 굳이 캐묻지 않아도 깊이 알 수 있도록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으며 아이들이 힘들거나 괴로워할 때마다 함께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엄마 조진숙씨는 아이들이 무엇이든 최선을 다해주길 원했기에 자신도 늘 아이들 옆에서 도울 수 있는 건 최대한 도우려 노력했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시험을 보는 시간이면 같이 시험을 보는 심정으로 잘 보기를 빌었고, 과제를 수행할 때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끝까지 지켜보았다는 것. 아이들이 수영 시합을 할 때는 어찌나 격렬하게 응원을 했는지 팔찌를 잃어버린 것도 몰랐다고 한다.
학교 성적은 물론 체력, 예술적 감각, 봉사정신까지 키우는 전인교육이 목표
웨스트민스터 심포니 오케스트라에서 트롬본을 연습하고 있는 윤태군(가운데).
주 대표로 대통령상을 수상할 정도면 어렸을 때부터 공부만 시켰을 듯하지만 이씨 부부는 두 아들에게 공부보다 음악 교육과 운동을 더 많이 시켰다. 윤태군은 7세, 윤호군은 5세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비슷한 시기 수영을 시작해 지금까지 매년 10번 이상 수영 시합에 출전했다. 부부는 수영 시합이 아이들의 끈기와 인내심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저희는 공부뿐 아니라 인격, 체력, 예술적 감각, 봉사정신, 리더십 등을 고루 발달시키는 전인교육에 무게를 뒀어요. 아이들이 열심히 공부하면서 예체능도 즐기고 사회봉사도 열심히 해서 다른 학생들의 모범이 되기를 바랐거든요. 성적만 좋아서는 세계적으로 우수한 인재들과 경쟁하기 어렵기도 하고요.”
그렇다고 윤태·윤호군이 유명 사립 고등학교에 다닌 것도 아니다. 오히려 콜로라도 주에서도 수준이 낮은 공립학교에 다녔다. 아이들은 학교 대항 퀴즈대회에 나가거나 학생회 활동에 참여하는 등 학교생활을 즐겁게 열심히 했으며 늘 전교 1등을 목표로 삼고 모든 시험에서 만점을 받으려고 노력했다. 또 매 학기 테니스, 수영 등의 과목을 수강해 거의 매일 운동했고, 주말에는 악기 연주 연습과 봉사활동으로 바쁘게 보냈다.
윤태·윤호군은 대학에 들어간 지금도 운동과 봉사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하버드대 생화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워싱턴 의과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윤태군은 대학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수영 경기에 매번 참가하고 있고 피아노와 트럼본 연주도 계속하고 있다. 주말에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무료병원에 나가 봉사활동을 한다. 윤태군은 나중에 의사가 되면 ‘국경없는 의사회’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한다. 윤호군은 하버드대 조정경기팀에서 매일 세 시간씩 강도 높은 훈련을 받고 있다. 바이올린 연주 실력도 수준급이어서 콜로라도 주에서 손꼽히는 청소년 관현악단에서 활동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법적인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빈곤층을 위해 만들어진 ‘소규모 소송서비스(Small Claim Advisory Service)’ 단체의 부책임자로 주말 봉사를 한다. 윤호군은 앞으로 법학을 공부할 생각이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좌절감을 느낄 때마다 아이들이 잘못되었을 경우를 생각해보곤 해요. 저희 부부가 조금이라도 방심해서 아이들을 제대로 교육시키지 못하면 평생 후회하게 될 게 분명했죠. 아이들을 교육할 때 가장 필요한 덕목은 이해심과 인내심이에요. 아이들 입장에서 생각해야 하고 아이들보다 훨씬 인내심이 많아야 하죠. 부모가 포기하는 자식을 잘 교육해줄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되지요.”
어머니 조씨는 자신의 교육 원칙을 ‘몰두와 성숙’이라고 표현한다. 부모가 어떻게 하면 자녀들이 더 몰두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 도와주고, 직·간접 경험을 통해 성숙하는 계기를 마련해줘야 한다는 의미다.
“아무리 아이들을 위하는 것이라고 해도 부모의 뜨거운 사랑과 희생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어요. 아이들이 좋은 점수만 받도록 가르치고, 금전적인 지원만 한다면 부모는 운전기사나 과외 선생님과 다를 바 없죠. 부모의 자식 사랑은 포부와 희망을 가지고 어려움을 함께 참고 견디는 거라고 생각해요. 때로는 부모 자신의 삶이 허무하게 느껴져도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아낌없이 우리 삶을 내주어야 하는 거죠.”
20년 넘게 두 아이에게 자신들의 삶을 내주었던 부부는 두 아들이 기숙사로 떠나고 없는 최근에야 자신들만을 위한 시간을 갖고 있다. 공부습관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기에 어릴 적부터 부모의 적극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 두 사람은 최근 자신들의 자녀교육법을 담은 책 ’일곱 살부터 하버드를 준비하라‘를 펴냈다. 부부는 “일곱 살 때의 계산능력이 수학에 대한 관심을 심어주며 이때의 호기심을 잘 이끌어주면 평생 직업으로까지 이어진다”며 “아이와 많은 대화를 나누고 많은 시간 함께하며 배우는 즐거움을 가르치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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