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초등학교에서는 ‘아침독서 10분’ 프로그램이 확산되고 있다. ‘아침독서 10분’은 수업 시작 전 10분간 책을 읽는 것. 학생들은 각자 읽고 싶은 책을 가져와 딱 10분 동안 선생님과 함께 책을 읽고 수업을 시작한다.
지난해 ‘공부 잘하는 아이로 만드는 독서기술’을 펴내 화제를 모았던 한국독서교육개발원 원장 남미영 박사(62)는 지난해 40여 개 초등학교 교사들과 ‘아침독서 10분’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결과 매일 아침 10분씩 학교에서 독서를 하는 것이 매우 경제적이고 효과적인 독서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말한다. 고작 10분간의 독서가 얼마나 대단한 효과를 낼 수 있을까 하고 반신반의하던 사람들도 가랑비에 옷 젖듯 아이들이 서서히 변화해가는 모습에 그 효과를 확신하게 되었다고.
“지각하던 아이들이 아침마다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읽는다는 기대감 때문에 학교에 일찍오게 됐어요. 지각을 하더라도 모두들 조용히 책을 읽고 있으니 쿵쾅거리며 들어오지 않고, 발뒤꿈치를 들고 조용히 들어오죠. 물론 어느 교실에나 혼자 떠드는 아이가 있지만 책에 집중하는 아이가 많아질수록 교실은 조용해지고, 분위기에 눌려 책을 보는 척하던 아이들도 나중에는 정말 책을 읽게 됩니다.”
10분이면 수필이나 우화 한 편 읽기 충분, 독서 싫어하는 아이도 부담 갖지 않아
남 박사는 10분간의 독서가 본격적인 수업에 앞서 두뇌를 깨우는 ‘워밍업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허둥지둥 학교로 달려와 친구들과 잡담을 나누다 선생님이 들어오면 부리나케 교과서를 펴는 아이들이 수업에 집중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지만 10분간의 독서로 뇌를 깨운 아이들은 선생님의 가르침에 쉽게 몰입할 수 있다는 것. 일찍이 아침독서 프로그램을 시작한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멍하니 앉아 있거나 엎드려 있던 아이들이 아침독서를 시작한 뒤로 질문을 자주 하는 등 확연히 달라진 수업 태도를 보이는 것이 확인됐다고 한다. 이 같은 아침독서의 워밍업 효과는 시대와 국경을 초월해 조선시대에 왕세자들의 교육을 담당했던 시강원에서도 왕세자들에게 아침에 큰 소리로 자신이 좋아하는 글을 읽거나 암송하게 해 본격적인 공부를 위한 두뇌 워밍업을 했고, 미국과 일본, 프랑스, 뉴질랜드, 스웨덴, 영국의 일부 학교에서도 잠자는 두뇌를 깨우는 아침독서를 실시하고 있다고.
매일 아침 수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읽은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훨씬 수업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교육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사교육비, 학생 1인당 교육에 투자하는 시간, 학생들의 학교 출석률에서 1위에 올라 있어요. 반면에 한국 학생의 교육 만족도는 세계 최하위죠. 또한 OECD의 독해능력국제비교 연구 결과 33개국 중 27위인 것으로 나타났어요. 공부할 준비가 안된 학생들에게 무조건 공부를 시키는 게 원인이죠. 공부의 기초 능력인 책 읽기 능력을 기르지 않은 채 교과서를 읽게 하는 건 무딘 연장을 가지고 밭을 갈게 하는 것과 같아요.”
남 박사는 지난해 처음으로 40여 개 초등학교에서 ‘아침독서 10분’ 프로그램을 시행할 당시 일부 교사들의 반발에 부딪히기도 했다. 아침독서 프로그램에 대한 교사들의 문제 제기는 ‘독서도 강제로 해야 하냐’는 것과 ‘겨우 10분으로 무슨 효과가 있겠냐’는 것이었다. 지금은 대다수 교사들이 인식을 바꾸고 아침독서 10분의 효과를 인정하고 있지만 아침독서 프로그램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이 같은 의문을 가질 만하다.
이에 대해 남 박사는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즐겁게 독서를 하면 더 없이 좋지만 독서는 즐거워질 때까지 마냥 기다린다고 해서 즐거워지는 것도 아니고, 즐겁지 않다고 언제까지나 방치해도 좋은 놀이나 취미가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독서는 국어, 수학, 사회, 과학 등 교과목 수업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학습능력이기 때문에 반드시 노력해서 즐겁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 그런 점에서 10분간의 아침독서는 자연스럽게 독서 습관을 몸에 배게 하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한다.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아이들도 10분간의 독서는 부담스러워하지 않고, 재미있어하기 때문. 더군다나 친구들과 함께 책을 읽다보면 재미있는 책을 돌려보고, 감동적으로 읽은 책에 대해 대화를 나누면서 독서에 대한 흥미를 키우게 되는 것. 남 박사는 “생각날 때마다 30분씩 책을 읽는 것보다 매일 10분씩 꾸준히 독서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독서이력서 쓰게 하면 적절한 독서지도법 찾을 수 있어
그런데 과연 10분 안에 제대로 된 독서를 할 수 있을까. 남 박사에 따르면 10분은 수필 한 편, 아이들의 경우 우화 한 편을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시간이다. 그는 “처음에는 10분 동안 책 반쪽밖에 못 읽던 아이도 매일 10분씩 꾸준히 읽다보면 한달 후에는 1쪽을 읽게 된다”며 “10분은 책을 아주 싫어하는 아이도 책을 볼 수 있는 시간으로 이 시간을 통해 독서 습관을 들이면 1시간이고 2시간이고 책을 읽을 수 있게 된다”고 주장한다.
“수업 전 10분 동안 책을 읽은 아이들은 다음 내용이 궁금해 수업을 마친 뒤에 스스로 책을 펴 읽고, 개중에는 수업 중에 몰래 책을 보는 아이도 있어요.”
그러나 10분간의 독서에도 지켜야 할 규칙은 있다. 만화책이나 팬터지 소설 등 독서 능력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책은 피해야 한다는 것. 남 박사는 부모가 아이들 수준에 맞는 재미있고 유익한 책을 골라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책 읽기는 교과목 수업을 가능케 하는 기본적인 능력인 만큼 어느 정도 강제성을 띄어도 무방하다고 말하는 남미영 박사.
남 박사는 최근 ‘공부가 즐거워지는 습관, 아침독서 10분’이라는 책을 펴냈다. 아침독서에 대한 지난 1년여 간의 연구와 일선 학교에서의 시행 결과를 정리한 그는 가정에서도 아침독서 10분 프로그램을 응용해볼 수 있다고 말한다.
“가정에서도 ‘아침독서 10분’을 실천하면 좋아요. 아침에 시간을 내기 어려우면 저녁에라도 온 가족이 함께 책을 읽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세요. 부모는 독서를 하지 않으면서 아이들에게 책 읽기를 강요하면 아이들은 부모를 신뢰하지 못하게 됩니다. 아이와 함께 서점 구경을 다니고, 아이의 고민을 들어보고 그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책을 선물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그는 아이들이 책과 친해지도록 하기 위해 가정에서 실천해볼 수 있는 방법으로 ‘독서이력서’ 작성을 권했다. 독서이력서는 아이 스스로 그동안 읽은 책에 대해 써보게 하는 것으로 부모는 이것을 통해 아이의 독서 경향을 파악하고, 적절한 독서지도법을 찾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방법은 간단하다. 아이에게 종이를 주고 이제까지 읽은 책의 제목을 쓰도록 한 다음 책 제목 옆에 주인공의 이름을 적게 하고 그 옆에 책의 내용을 기억나는 대로 한 문장 정도 적게 하는 것. 독서이력서는 토요일이나 일요일 등 한가한 시간에, 아이 혼자서 작성하게 해야 정확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아이가 독서이력서를 완성하면 부모는 먼저 책 제목을 몇 개나 썼는지 세어본다. 만약 읽은 책은 많은 것 같은데 정확하게 쓴 제목은 얼마 안된다면 아이가 눈으로만 책을 읽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남 박사의 의견이다. 그 다음으로는 책의 종류를 살피는데 특정 장르에 집중되어 있다면 현재 아이의 관심사가 그쪽으로 쏠려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고 한다. 독서이력서는 아이의 독서 스타일을 보여주기도 한다. 만약 책 제목은 썼는데 주인공이나 내용을 적지 못한 책의 숫자가 많다면 아이는 책을 대충대충 읽는 스타일인 것. 남 박사는 책 제목과 주인공 이름, 내용의 비율이 1:1:1이라면 무척 꼼꼼히 읽고, 재미있게 읽었다고 볼 수 있지만 이 비율이 3:2:1 정도라면 책뿐만 아니라 교과서, 시험지 등도 대충 읽을 수 있으므로 독서 습관을 바로잡아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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