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목받는 인물

대우 몰락 이후 5년 8개월 만에 귀국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프랑스회사에 고문으로 일하며 연봉 받아 생활, 실패한 기업인으로서 책임지기 위해 돌아왔다”

글·최호열 기자 / 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2005. 07. 04

‘직장인의 우상’에서 ‘경제위기의 주범’으로 양극단의 평가를 받아온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오랜 도피생활을 끝내고 귀국했다. 그의 귀국 모습과 5년 8개월간의 도피생활 뒷얘기, 앞으로의 재기 가능성 등을 집중 취재했다.

대우 몰락 이후 5년 8개월 만에 귀국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나는부자로서가 아니라 훌륭한 전문 경영인으로서 기억되길 바라고 있으며, 나의 마지막 꿈은 기업인도 존경받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그 꿈의 실현을 위해 나는 오늘도 열심히 뛰고 있다.”
89년 1백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로 당시 젊은층의 존경을 한몸에 받았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69)이 99년 10월 대우그룹 몰락과 함께 ‘경제위기의 주범’이란 비난 속에 종적을 감춘 지 5년 8개월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6월14일 오전 6시경,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것.
검은 뿔테안경을 끼고 감색 양복에 분홍색 넥타이 차림의 김 회장은 오랜 도피생활과 지병으로 인해 초췌해 보였다. 그는 기자들을 향해 미리 준비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하려 했지만 동행한 검찰 수사관의 제지로 말없이 입국장을 빠져나갔다.
이날 김 회장을 맞이한 것은 1백 명이 넘는 취재진과 과거 대우그룹 임직원들만이 아니었다. 대우사태 피해자들도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여 입국장은 그야말로 북새통을 이뤘다. 일부 시위대는 그에게 물세례를 퍼붓기도 했다.
김 회장의 차남 선협씨(36)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굳은 표정으로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입국장 출입문을 응시하던 그는 아버지의 귀국에 대한 심경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할 말이 없다”며 입을 굳게 닫았다. 몇 분 뒤 김 회장이 모습을 드러내자 상기된 얼굴로 이리저리 고개를 내밀며 아버지를 바라보다 이내 공항을 빠져나갔다.
취재진과 시위대에 밀려 호송차의 뒷유리창이 깨지는 등 혼란 끝에 공항을 빠져나온 김 회장은 대검찰청 앞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한숨을 돌린 듯 취재진에게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대우 가족과 대우사태 피해자들에 대해 진심으로 죄송스럽다. 실패한 기업인으로서 과거의 문제들을 정리하고 전적으로 책임지기 위해 귀국했다”고 말한 뒤 청사로 들어갔다.
대우 몰락 이후 5년 8개월 만에 귀국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김 회장은 현재 41조원의 분식회계와 10조원대 사기대출을 지시하고, 25조원의 외화를 불법 반출한 혐의에 대해 검찰의 조사를 받는 중이다. 또한 비밀계좌를 통해 해외로 빼돌린 비자금 일부를 유용하거나 정관계 로비를 벌인 의혹에 대해서도 조사를 받을 예정이다. 검찰은 50일 정도 조사를 벌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그가 불법 반출한 외화 25조원 가운데 최소 1조5천억원의 행방이 묘연한 상태로 보고 이를 숨겨둔 것으로 드러나면 즉시 가압류 조치를 할 방침이다. 김 회장은 분식회계 등에 대해서는 시인했지만 비자금 유용에 대해서는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또한 정관계 로비 부분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어 정치권을 긴장시키고 있다. 검찰 수사 외에도 그의 앞에는 30여 건, 5천7백억원 규모의 민사소송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세간의 관심은 그가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에 쏠리고 있다. 이에 대해 그는 검찰에서 “독일과 수단, 프랑스, 베트남에 주로 머물렀으며, 특히 5년 전에는 독일에서 심장 수술을 받고 8개월 동안 요양 생활을 했다”고 밝혔다. 또한 팬티 한 장 외에는 재산이 한 푼도 없다는 그가 어떻게 생활을 했는지에 대해서도 밝혔다. 3년 전부터 프랑스의 철도차량 전문 업체인 로르사의 아시아권 고문으로 위촉돼 연봉 2억원을 받아 생활했다는 것. 김 회장 측근에서 주장했던 ‘3류 호텔을 전전하며 햄버거로 끼니를 때웠다’는 건 과장이었던 셈이다.

“도피생활을 끝내게 돼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대우 몰락 이후 5년 8개월 만에 귀국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귀국길에 배포된 김 회장이 자필로 쓴 대 국민 사과 성명서.


그동안 언론에 보도된 것을 종합해보면 김 회장은 2000년 1월경 독일 프랑크푸르트 인근 병원에서 장 협착증 수술과 심장병 치료를 받고 프랑스 휴양도시 니스에서 요양을 했다. 당시 니스의 한 저택에 머물면서 인근 골프장이나 대형 편의점에 출입하는 모습과 니스공항 국내선 청사에 나타난 것이 교민들에게 목격되기도 했다.
2001년이 되면서 대우 해체의 충격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그는 세계 곳곳을 찾아다니며 사업 과정에서 친분을 맺은 지인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그해 2월에는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골프장에서 목격되기도 했다. 경찰청에서도 2002년 말 “그가 그동안 홍콩을 최소 14차례 드나들고 미국과 유럽, 아프리카 등지를 1∼4주일 단위로 계속 옮겨 다니고 있다”고 발표했다.
2003년부터는 베트남을 거점으로 중국과 태국도 자주 왕래한 것으로 보도됐다. 특히 베트남에서는 총리실 직속 국가혁신위원회 비상임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는데, 과거 자신이 추진했던 ‘하노이 신도시 개발사업’에 깊이 관여해 대우건설 등이 사업권을 따내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측근인 백기승씨(전 대우그룹 홍보이사)는 “김 회장의 도피생활은 치료, 요양, 수술로 이어졌다”고 전했다.
“김 회장은 98년 협심증 수술을 받은 후 지금까지도 약물 치료를 받고 있어요. 또한 99년 받은 위암 수술 후유증으로 장 폐색증을 앓고 있는데, 지금까지 5~6차례 입원치료를 받았어요. 2000년과 2002년에는 장 협착증 수술도 받았고요.”
김 회장의 귀국길을 동행한 소의영 아주대병원 일반외과 교수도 “김 회장은 장기간 스트레스로 기존의 병이 많이 악화된 상태”라는 소견을 밝혔다. 김 회장이 사법처리를 무릅쓰고 귀국을 결심한 데는 건강 악화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검찰 조사에서 “도피생활을 끝내게 돼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고 심경을 털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김 회장은 현재 병원이나 서울구치소 환자병동이 아닌 일반 독방에 수감되어 있다. 서울구치소 의료진이 신체검사를 한 결과 수감생활에 큰 무리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구치소 측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의무과가 인접한 독방으로 배정했고, 교도관을 24시간 상주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4월 대법원에서 대우 경영비리에 대해 김 회장 등에게 유죄 판결을 내린 것도 귀국 결심을 굳히게 한 것으로 보인다. 더 이상 침묵하고 있다간 진상을 밝힐 기회를 영원히 놓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 베트남에서 그를 만났던 열린우리당 김종률 의원은 “대법원의 일방적인 평가에 대해 서운하고 억울해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당당하게 들어와서 해명하고픈 맘이 있는 것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대우 몰락 이후 5년 8개월 만에 귀국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차남 김선협씨 대학 졸업식에 참석한 김우중 회장 부부.


그의 사법처리 여부에 대해 세간의 여론은 갈리고 있다. 6월16일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김 회장의 공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긍정적인 응답이 38.8%, 부정적인 응답이 51.1%였다. 야후코리아가 실시한 네티즌 설문조사에서도 40%가 ‘현행법에 따라 엄정히 처벌해야 한다’고 답한 반면 31%는 ‘경제적 공로를 인정해 용서해야 한다’는 의견을 보였다.
인천공항에서 만난 김모씨(43)는 “전 대우자동차 직원인데 김 회장을 보기 위해 왔다”며 “김 회장은 하루 25시간 일을 했다. 정치논리의 희생양이 된 그가 못다 이룬 세계경영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항의시위를 벌이던 이모씨(24)는 “대우그룹에 들어간 공적자금이 아직도 회수되지 못하고 국민들의 부담으로 남았다. 잘못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잘잘못을 따져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김 회장이 젊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 것은 사실인 만큼 이를 참작해 선처해주길 바란다”고 피력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김 회장의 재기 여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는 수차례 “귀국하면 국가경제 발전을 위해 기여하고 싶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그는 공식적으로는 무일푼 상태다. 97년 7월 대우그룹 자구대책을 발표하면서 전 재산을 금융권에 담보로 제공했기 때문이다.
부인 정희자씨 소유였던 서울 힐튼호텔도 이때 함께 처분되었다. 정씨는 그 후 ’여성동아‘와의 인터뷰에서 “대우와 내 회사는 별개다. 그런데 어느 날 신문을 통해 내가 키운 건실기업이 대우의 부실기업의 책임까지 함께 져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가슴이 너무 아팠다. 김 회장은 매각 발표 전에 내게 말하지도 못했다. 솔직히 서운하고, 화도 났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 심정도 이해가 간다. 내가 얼마나 애지중지하는지 알기에 차마 말도 못 꺼냈던 것 같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한 바 있다.

김 회장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 양분
그가 경영복귀를 한다면 가족사업을 통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아내 정씨가 실질적인 오너로 알려진 필코리아가 경주와 베트남 하노이, 중국 옌변 등에 호텔을 운영하고 있으며, 자본금이 8백억원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차남 선협씨가 지난 3월 아도니스컨트리클럽 사장에 취임하며 경영일선에 나섰다. 그는 하나뿐이던 골프장을 지난 5월 C&H호텔을 완공한 데 이어 수영장과 미술관을 새로 건립하는 등 종합레저타운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국내에 들어와 병역을 마친 막내 선용씨(30)도 현재 베트남 하노이에서 노블베트남이라는 건설회사를 설립해 골프장과 주택단지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레저산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셈인데 일각에서는 이 자금들이 어디에서 나왔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일각에선 그가 더 큰 그림을 그릴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이에 대해 백기승씨는 “김 회장의 재기나 복귀 얘기를 하는 것 자체가 현실성이 없다. 연로한데다 사법처리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태다. 새로운 것을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본인도 그럴 의사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부인했다.
김 회장은 ’세상은…‘에서 “개척자에게는 위험이 따른다. 그것은 어쩔 수 없다. 개척자에게는 더러 욕을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아무도 하지 않았던 일을 그들은 시도하려 한다. 어떻게 욕이 따르지 않겠는가?” 하고 말했다. 그가 실패했지만 위대한 개척자인지 아닌지는 시간이 더 지나야 평가가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