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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아! 내 어머니

베스트셀러 ‘친정엄마’ 주인공 노진예·고혜정 모녀의 잔잔한 감동 사랑

“이제 엄마와 나는 함께 늙어가는 친구 같아요”

■ 기획·최호열 기자 ■ 글·박윤희‘자유기고가’ ■ 사진·박해윤 기자

2005. 05. 10

친정 엄마에 대한 솔직담백한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친정엄마’로 독자들을 웃고 울게 했던 고혜정씨와 그의 어머니 노진예씨. 잔잔한 감동을 전하는 모녀의 생활 속 에피소드를 들어보았다.

베스트셀러 ‘친정엄마’ 주인공 노진예·고혜정 모녀의 잔잔한 감동 사랑

베스트셀러 ‘친정엄마’를 쓴 고혜정씨(38)를 만나기 위해 서울 여의도 그의 아파트를 찾았을 때 마침 전북 정읍에서 상경한 그의 친정 엄마 노진예씨(64)가 머리에 이고온 보따리를 풀고 있었다. 파김치 한 통, 참기름 한 병, 은행, 깐 마늘, 고구마 등이 보따리에서 나왔다.
“엄마, 파 다듬기 힘든데 파김치는 뭐 하러 담아오고 서울에도 고구마, 감자 많은데 무겁게 왜 이런 것을 들고 와요. 못살아, 진짜!”
딸은 안 봐도 훤한 엄마의 고생이 안타깝고 속상해 “고맙다”는 말보다 짜증을 쏟아낸다.
“자식 입에 들어갈 것 생각하니까 밤새 파 까서 김치 담았어도 안 힘들었어야. 이 은행도 작년 가을에 은행나무 밑에 떨어진 것을 일일이 주워서 모은 것이여. 없어서 더 못 주지 뭐든 자식 줄 생각하면 즐거워지는 것이 부모 마음이다. 딸은 주고 잡은 도둑이여!”
자식이라면 물불을 안 가리는 엄마의 사랑 앞에서 딸이 백기를 들 수밖에. 딸이 눈을 흘기며 “역시 우리 엄마밖에 없다니까!” 하고 패배를 인정하자 주름진 엄마의 얼굴엔 흐뭇한 표정이 번진다.
고씨가 평소 엄마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경쾌한 글로 옮긴 에세이집 ‘친정엄마’는 지난해 여름 출간돼 지금까지 16만 부가 팔렸다. 앞으로 영화, 드라마, 연극으로도 만들어질 예정이다.
“어릴 때는 엄마가 무슨 말만 하셔도 풀쐐기처럼 톡톡 쏘곤 했는데 이제 사람 많이 됐어요(웃음). 텔레파시도 참 잘 통해요. ‘이맘때 뭐 먹고 싶다’는 생각만 해도 그 다음 날 희한하게 엄마가 택배로 그 음식을 보내준다니까요. 제가 전화해서 ‘엄마 내가 이것 먹고 싶은 줄 어떻게 알았어?’ 하고 물으면 엄마는 ‘내가 너 내 속으로 낳았다’고 하시며 웃으세요.”
3남1녀 중 장녀로 태어난 고씨의 원래 이름은 ‘윤미’였다. 윤달에 태어났고 여자라서 아무렇게나 지어진 이름이다. 이런 무성의한 처사에 노진예씨는 부아가 치밀었지만 시집 식구들이 어려워 감히 ‘좋다’ ‘싫다’를 표현할 처지가 아니었다고.
“호적에는 윤미라고 올렸지만 엄마는 절대 그 이름을 부르지 않으셨어요. 그냥 ‘내 강아지’라고만 부르다가 제가 기어다닐 때쯤 남의 집 일을 해서 모은 돈 5천원을 가지고 작명소를 찾아가 ‘혜정’이라는 이름을 지어 오셨대요. 그런데 시집 어른들이 무서우니까 여러 사람 앞에서 혜정이란 이름은 부르지도 못하고 혼자서 저를 볼 때만 몰래 ‘혜정아, 혜정아’ 하고 부르셨대요.”
고씨가 다 커서야 이름에 얽힌 사연을 듣고 나서 “엄마 참 대단하다”고 하자 그의 엄마가 빙그레 웃으며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사람은 이름이 좋아야 혀. 이름대로 사는 것이거든. 야, 오강(요강)단지를 금으로 만들어서 방안에 두고 본다고 사람들이 금단지라고 허는 줄 아냐? 뭣으로 만들었든 한번 오강이라고 이름 붙으면 오강인 것이여. 이름이 그라서 중헌 것이다.”
딸을 위해 모진 매를 견디며 산 엄마
딸에 대한 엄마의 각별한 사랑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저희 엄마도 ‘매 맞는 아내’였어요. 정말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공포를 모를 거예요. 몇 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는 평소 자식들에게 끔찍할 정도로 잘 하셨지만 화가 나면 그렇게 엄마를 때리셨어요. 엄마는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고 그 호된 매질을 묵묵히 견디셨는데 제가 아버지한테 ‘차라리 엄마를 죽여’라고 소리치며 밥상을 엎어버린 적도 많아요. 그땐 사는 게 싫고 제가 여자인 것도 싫었어요.”

베스트셀러 ‘친정엄마’ 주인공 노진예·고혜정 모녀의 잔잔한 감동 사랑

딸 고혜정씨를 위해 한보따리 싸들고 온 파김치며 고구마 등을 펴보이는 친정엄마 노진예씨.


한번은 매를 맞는 엄마에게 “이혼해, 아니면 서울로 도망가서 식모살이라도 하든지. 왜 맨날 이렇게 맞고 살어?”라며 눈물을 쏟자, 엄마는 딸의 눈물을 닦아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너 땜시, 너 땜시 이러고 산다. 내가 없으믄 니가 젤로 고생이여. 내가 허던 일 니가 다 히야 헐 것 아녀. 밥허고, 빨래허고, 동생들 치다꺼리허고…. 핵교도 지대로 다닐랑가도 모르고. 나 고생 안 헐라고 내 새끼를 밀어넣겄냐? 나 없어지믄 니 인생 불 보듯 뻔헌디, 나 하나 참으믄 될 것을.” 어린 시절, 그는 엄마로부터 이 말을 들은 후부터 엄마를 생각하는 마음이 각별해진 것 같다고 했다.
“매 맞는 엄마가 바보라고 생각했는데 저 때문에 엄마가 모진 매를 견디며 산다는 게 어린 저에게 정말 충격이었죠. ‘불쌍한 우리 엄마, 나 때문에 가슴 아픈 일은 절대 없게 하겠다’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살고 있어요.”
고등학교 때까지 정읍에서 살았던 고씨는 스무 살이 되자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다니기 위해 집을 떠났다. 혼자만의 객지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를 다니면서 한 달에 한 번 용돈을 타기 위해 정읍 집을 찾았다.
“아버지께서 한 달 용돈과 하숙비를 직접 내려와서 가져가라고 하셨어요. 돈을 부쳐버리면 그나마 집에 안 올까봐 머리를 쓴 것이죠. 한번은 그렇게 고향집에 갔다가 서울로 가려는데 엄마가 역까지 배웅을 나오셨어요. 엄마가 기차역 의자에 앉아서 보자기로 칭칭 동여맨 뭉치를 풀고 또 풀고 하시는 거예요. 마침내 라면봉지가 나왔는데 그 안에 오원짜리에서 오십원까지 동전이 꽉 들어차 있더라고요.”
고씨의 엄마가 서울에서 고생하는 딸을 위해 그동안 모은 돈이었다고 한다.
“내가 니 생각을 허믄 뼈가 저리다. 서울에다 혼자 떼어놓고 제대로 히주도 못하고. 내가 돈을 범사 내 맘대로 허겄지만 나도 니 아부지한테 타 쓰는 입장이니 어찌겄냐? 이 돈은 아부지 몰라야. 내가 맨날 반찬 사고 남은 놈 모았다. 콩나물 2백원어치 살라믄 1백50원어치만 사고, 두부도 반 모씩 사다 먹었당게, 어떻게든 모아서 너 좀 주고 싶어서야.”
이날 기차역에서 모녀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는데 엄마는 “나는 이 돈 모음서 얼마나 재미났는지 아냐? 동전 많이 모아서 너 줄 생각에 진짜로 신나고 좋았어야” 하며 울고, 또 딸은 “내가 엄마 땜시 못살아, 진짜 못산당게” 하면서 서로 눈길을 피해 먼 곳을 보며 울고 또 울었다고 한다.
지금도 고씨는 간혹 외출 후 집에 돌아와 주머니 속 동전을 저금통에 넣을 때 오원짜리까지 모아서 딸에게 준 엄마를 떠올리면서 미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사랑한다고 한 번도 말하지 않아서 미안해. 힘들 때 왜 날 낳았냐고 원망해서 미안해. 외롭게 해서 미안해. 늘 나 힘든 것만 말해서 미안해. 세상에서 제일 예쁜 인물 자주 못 보여줘서 미안해. 늘 내가 먼저 전화 끊어서 미안해. 친정에 가서도 엄마랑 안 자고 남편이랑 자서 미안해…. 늘 미안한 것 투성이지만 제일제일 미안한 건 엄마, 엄마는 나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데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건 엄마가 아니어서 미안, 정말 미안해.’
“미안해” 보다 “사랑해”를 더 많이 하는 딸이 될 터
최근 그가 남편 송대준씨(43)와 함께 고속도로변에서 대성통곡을 한 일이 있었다.
“결혼할 때는 남편이 사업을 잘 해서 돈도 잘 벌고, 가족들에게도 잘했어요. 그런데 3년 전 하던 일이 잘 안되어 정말 땡전 한 푼 없이 빚만 잔뜩 남기고 망했어요.”
남편은 몇날 며칠 방황하다가 어느 날 고씨에게 ‘공부를 해서 변리사가 되고 싶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미국에서 유학하고 박사학위까지 딴 남편이기에 어찌 보면 사업보다는 공부가 더 맞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당분간 고씨가 살림을 책임지기로 하고 남편은 공부를 시작했다. 지난 3년 동안 고씨가 남에게 힘든 내색 한번 안 하고 잘 살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친정 엄마 덕택이라고 한다. 사위가 사업에 실패한 후 노씨는 반찬을 비롯해 철철이 야채와 과일, 사위 보약까지 다 챙기셨다고.

베스트셀러 ‘친정엄마’ 주인공 노진예·고혜정 모녀의 잔잔한 감동 사랑

고씨와 친정엄마, 딸 송민지 모녀 3대의 단란한 한때. 환한 웃음이 봄 햇살을 닮아 있다.


“한번은 친정집에 놀러갔다가 엄마가 해주신 반찬을 차에 잔뜩 싣고 올라오는데 남편이 저에게 뭔가 찔러주기에 보니까 꼬깃꼬깃 접은 ‘7만원’이었어요.”
노씨가 사위에게 “나이 들어서 공부허기도 힘들 텐디, 마누라 눈치 봄서 돈 타 쓰기도 미안허제? 이놈 갖고 가서 댐배 사 펴. 내가 돈 10만원이라도 채워서 주믄 좋을 것인디, 아무리 노력을 히도 못 채웠네, 미안허네”라며 건네준 돈이었다.
“엄마는 수입이 없는 분이세요. 구겨진 돈 7만원을 보니 엄마의 전 재산이라는 생각이 들어 너무 속이 상하더군요. 차 속에서 울며 남편에게 ‘왜 받아왔어? 우리가 엄마한테 줘야 되는데 주지는 못할망정 왜 받아왔어? 엄마 전 재산 다 받아오니까 속이 시원해?’ 하면서 억지소리를 질러댔죠. 가만히 운전만 하던 남편이 갑자기 갓길에 차를 세우더니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껴 울더라고요.”
그의 남편은 “나는 어머니가 나를 그렇게 사랑하시는 줄 몰랐어. 딸 고생시킨다고 미워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 사양했지만 진심으로 아들한테 하듯이 딸 눈치 보며 돈 타 쓰는 날 안쓰러워하며 주시는 마음이 너무 고마워서 받았어”라며 눈물을 그치지 못했다고 한다.
고씨의 친정 엄마가 자식들을 울리기만 하는 건 아니다. KBS 코미디 작가 공채에 합격한 고씨는 96년 시청자들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은 SBS ‘금촌댁네 사람들’ 대본을 집필해 방송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혔는데, 이때 코믹한 아이디어의 대부분이 친정 엄마로부터 나왔다고 한다.
“제가 엄마의 딸이라서 엄마의 유머감각과 끼, 낙천성을 많이 닮았어요. 어렸을 땐 엄마처럼 살기 싫어했는데 나이 들며 그게 다 엄마 성품에 가식이 없어서 나온 행동이란 걸 알았지요. 이제 엄마한테 저는 크는 딸이 아니라 함께 늙어가는 친구 같아요.”
앞으로 친정 엄마에게 ‘미안해요’라는 말보다 ‘고마워요’ ‘사랑해요’라는 말을 더 많이 하며 살고 싶다는 작가 고혜정. 그가 차마 엄마 앞에서 표현 못하는 말은 이랬다.
“엄마, 엄마가 없으면 난 어떡해? 엄마가 내 옆에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 한번도 안 해봤는데 지난번에 갔을 때 엄마가 마당에서 넘어지는 걸 보고 가슴이 덜컹했어. 우리 엄마는 만날 젊고, 우리 엄마는 늘 건강한 줄 알았는데. 나, 엄마한테 딸 노릇할 시간을 점점 뺏기고 있는 거 맞지? 엄마, 제발 오래오래 내 곁에 있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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