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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유인경의 Happy Talk

결혼은 정말 미친 짓일까?

2005. 05. 02

결혼은 정말 미친 짓일까?

총각도 주례 부탁을 받고 바람둥이로 소문난 이혼남도 주례를 선다. 결혼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엄숙하고 고결한 주례사를 따라 살다 보면 오히려 부부간의 책임만 늘뿐 사랑은 늘지 않는다. 결혼 25주년을 맞은 한 남성은 “반드시 잘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는 것이 오래 잘 사는 비결”이라고 말했다. 결혼은 홍보용 이벤트가 아니다. 결혼생활의 행복은 부부의 합작품이고 공동 발명품이다.
어느회사 간부인 48세의 노총각과 점심을 먹었다. 자신의 주장으로는 고고하게 순결을 지켜오다가 드디어 독신남으로서 자유로운 성생활을 즐겨볼 필요도 있겠다고 결심한 순간 성매매금지법이 발효되어 다시 고결한(?) 생활을 지속하고 있다는 ‘바른생활’ 총각이다. 그가 얼마 전 아주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고 한다.
“아주 예쁘고 성격도 좋고 저를 잘 따르는 여자 후배가 있어요. 그래서 밥도 잘 사주고 공연도 같이 보러 가고 그랬죠. 그런데 어느 날 할 말이 있다며 같이 차를 마시자는 거예요. 그러더니 ‘선배님, 제가 선배님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시죠?’ 그러더군요.
아… 그 몇 초 동안 만감이 교차하고 가슴이 두근거립디다. ‘그저 어린아이로 보았던 후배가 내게 사랑 고백을 하는 건가, 만약 프러포즈를 하는 거라면 난 뭐라고 해야 하나… 호박이 넝쿨째 굴러오고 로또가 당첨된 것보다 더 큰 행운이긴 한데 만약 그렇다면 내가 너무 비양심적인 인간이 아닌가. 거의 스무 살이나 차이나는데 딸 같은 후배랑 결혼하면 남들이 날 도둑놈이라고 하겠지….’
이렇게 혼자 상상의 날개를 펼치는데 후배가 그러는 거예요. ‘저 다음 달에 결혼하는데요, 꼭 선배님이 주례를 맡아주시면 좋겠어요. 제가 가장 존경하고 저를 잘 아는 선배님께서 제 결혼식을 주관해주시면 좋겠어요’라고요.”
“좋아하고 있다”는 후배의 말 한마디에 붕 떠서 천국을 떠다니던 그는 순간 지옥에 떨어진 기분이었다고 한다. 곧 정신을 수습하고 자신은 결혼도 못해본 총각인데 무슨 주례냐고 거절했지만 후배는 양가 부모에게도 다 허락받았다며 2시간 이상 설득을 계속했다고 한다. 그는 후배에 대한 자신의 도둑놈 심보는 둘째치고 도저히 주례사를 할 자신이 없어 결국 거절했다고 털어놓았다.
“죽을 때까지 억지로 사랑할 필요 없다. 그저 사랑이 진심일 때만 사랑하라”
가수 조영남씨도 4월 말에 한 결혼식에서 주례를 섰다. 신랑은 53세의 노총각이다. 4년간 동거해왔던 여성과 드디어 정식으로 부부가 되기로 했다면서 주례를 부탁해왔다고 한다.
“이봐, 내가 유명하고 멋진 남자인 건 나도 아는데 주례는 좀 심하지 않아? 난 두 번이나 이혼했고 또 세상 사람들에게는 굉장한 바람둥이로 알려져 있는데 토크쇼 사회도 아니고 결혼식 주례라니… 주례는 가정생활을 모범적으로 하고 자녀도 훌륭하게 키운 분들이 맡아야지 나는 너무 파격적이야.”
처음엔 고사했는데 산전수전 공중전 시가전을 다 겪었다는 그 신랑이 이렇게 자신의 주례관을 피력했다고 한다.
“그랬죠. 그동안 주례는 남들이 보기에 멀쩡하고 훌륭한 분들이 맡아 하셨죠. 그런데 왜 그렇게 훌륭한 분들이 주례를 서거나 성직자들이 결혼식을 주관하는데도 우리나라 이혼율이 세계 2위일 정도로 높겠어요? 주례 인품이나 주례사 때문은 아니지요. 오히려 조영남 선생 같은 분이 ‘나는 결혼해서 이런저런 실수를 저질렀고 이런저런 문제가 있어서 이혼도 두 번이나 했다. 그러니 여러분은 나 같은 실수를 하지 말아라’고 반면교사의 주례사를 해주면 좋지 않겠어요?”

결혼은 정말 미친 짓일까?

조영남씨는 자신의 이혼을 실패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신랑의 주례관에 공감해 난생 처음으로 주례를 맡기로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요지의 주례사를 했다.
“신랑신부는 죽을 때까지 억지로 사랑할 필요는 없다. 그저 사랑이 진심일 때만 사랑하라. 국회의원들이 그렇듯이 결혼에도 임기를 정해 계속 유임을 정하는 중임제가 필요하다. 일단 4년을 주기로 해서 살아본 후 계속 살지 여부는 그때 부부의 동의로 결정해라. 나는 4년 동안의 축복을 해주겠다.”
세상이 워낙 급속도로 변하다 보니 결혼이나 주례에 대한 가치관도 많이 달라졌다. 생각해보니 나 역시 내 결혼식의 주례사가 단 한마디도 기억나지 않는다. 결혼식을 생전 처음 해본 내 남편은 신부의 베일을 올려주지 않아 난 결혼식 내내 베일을 쓰고 있느라 모기장 속에 갇힌 듯 답답했고 맞절을 할 때 신랑이 너무 고개를 숙여 하객들이 키득거렸던 일만 기억이 난다. 그 흔한 주례사에서처럼 ‘서로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함께 하기’는커녕 각자 일에 바빠 생일이나 결혼기념일도 잊어버리고 산다. 원수처럼 서로에게 이를 득득 갈고 수시로 이혼을 꿈꾸고 코 고는 소리와 방귀 냄새, 목욕탕에 늘어놓은 수건들 같은 유치찬란한 문제로 시비를 걸며 살고 있다.
만약 숭고하고 근엄한 주례사를 늘 가슴에 새기고 지키려고 노력하며 살았다면 아마 결혼 2,3년 만에 스트레스를 받아 이혼했을 거다. 유일하게 기억나는 말은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함께 살라’는 구절인데 이미 흰머리가 잔뜩 생겼으니 그 약속 하나는 잘 지킨 것 같다.

‘이혼 절대 불가’의 족쇄 풀어야 오랜 시간 행복하게 살 수 있어
결혼 25주년을 맞아 올 여름 부인과 함께 유럽 여행을 갈 계획이라는 한 남자는 ‘반드시 잘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는 것이 오래 잘 사는 비결’이라고 말했다.
“우리 부모님은 제가 고등학교 때 이혼하셨어요. 한창 예민한 사춘기에 그런 갈등을 겪고 동생들을 돌보면서 너무 큰 상처를 받았죠. 고등학생 시절에 이미 노인이 된 것 같았어요. 그래서 우리 아이들에게는 나 같은 고통을 주지 않아야겠다고 다짐 또 다짐했죠. 아내와 결혼하면서 ‘우리 사전에 이혼이란 말은 없다’고 강조했어요. 그런데 ‘죽어도 이혼은 안 된다!’고 생각하니 정말 숨이 턱턱 막히더군요. 아내에게 조금만 실망해도 ‘내가 저 여자랑 평생을 살아야 하나’란 억울함이 들고 앞으로의 날들이 더 공포스러워지고… 그래서 안 되겠다 싶어 아내에게 ‘우린 언제라도 이혼할 수 있다. 사랑할 때까지만 최선을 다하자’라고 했죠. 그랬더니 훨씬 마음이 편안해지고 아내도 신선하게 보이더라고요.”
‘이혼 절대 불가’의 족쇄를 푼 순간, 자유로워지고 결혼생활도 편해졌다는 이 커플은 지금도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다정하게 산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고 하면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결혼을 한다. 청첩장은 하염없이 날아들고 결혼하고 나면 별로 보지도 않을 기념 앨범을 위해 고궁이나 놀이공원 등에서 웨딩드레스에 턱시도를 입은 예비 신랑신부들이 쑥스런 포즈로 사진을 찍어댄다. 요즘은 예전에는 이상해 보이던 연상녀·연하남 커플이나 재혼녀·초혼남 커플들도 많아졌다. 총각도 주례를 부탁받고 ‘바람둥이’의 대명사인 인물도 주례를 선다.
이제 결혼은 남들에게 보여주는 ‘포장용’이나 ‘홍보용’이 아니라 부부만의 이벤트이며 결혼생활에서도 부부 당사자들의 행복이 가장 중요한 요소로 변해가고 있다. 하지만 그 행복은 누가 선물로 주는 것이 아니다. 백화점에서 파는 것도 아니다. 결혼생활의 행복은 부부의 합작품이고 공동 발명품이다. 남들이 말하는 우아한 행복이 아니면 어떤가. 알콩달콩 식구들끼리 재미있게 살면 되는 것이다. 사실 부부 사이에 매일 짜릿짜릿 감전되는 듯한 전율과 사랑을 느끼는 이들이 있다면 그건 행복한 커플이 아니라 환자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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