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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구미화 기자의 참참참~교육법

생태교육연구소 ‘숲’ 대표 남효창 박사가 일러주는 ‘온 가족이 함께 하는 숲 생태교육’

“자연을 오감으로 체험하면 ‘자연보호’ 팻말 없이도 아이들 스스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게 돼요”

■ 글·구미화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2005. 03. 30

주말이면 아이들을 데리고 자연을 찾는 부모들이 부쩍 늘고 있지만 막상 산과 들에서 아이들과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지 몰라 난감해하는 경우가 많다. 독일에서 산림학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해 생태교육연구소를 만들어 매달 숲 생태탐방을 진행하고 있는 남효창 박사를 만나 부모와 자녀가 함께 할 수 있는 자연 생태체험 요령을 들어봤다.

생태교육연구소 ‘숲’ 대표 남효창 박사가 일러주는 ‘온 가족이 함께 하는 숲 생태교육’

미국의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시카고 근교의 숲으로 둘러싸인 공공주택에 사는 주민들이 숲이 없는 곳에 사는 사람보다 이웃과 더 잘 어울려 지낸다고 한다. 주변에 나무가 없는 곳에 사는 사람들은 방문객이 많지 않고, 같은 거주지에 사는 사람들끼리도 서로 잘 알지 못하는 반면, 주변에 나무가 많은 곳에 사는 사람들은 이웃과 잘 어울리고 강한 소속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 이 보고서는 이러한 강한 유대감이 범죄율을 낮추는 데도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국내에서도 최근 이와 비슷한 연구 결과가 발표됐는데,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사무실 주변에 숲이 있는 직장인이 그렇지 않은 직장인보다 직무 만족도가 높고, 스트레스와 이직 의사가 낮다고 한다. 또 숲이 울창한 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숲이 없는 학교의 학생들보다 집중력이 높고, 정서적 균형감이 발달한 것으로 조사됐으며 숲이 인성발달에 도움을 줘 학교에 대한 소속감과 애교심도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나무와 숲이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사회성 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도심 속 작은 공원에만 가보아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더욱이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의 심각성이 이상 기후 현상과 아토피, 각종 호흡기 질환 등의 형태로 일상생활 깊숙이 파고들고 있어 자연의 소중함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해지고 있다. 여기에 몇 해 전부터 거세게 일고 있는 ‘웰빙’ 열풍과 주5일 근무제가 맞물리면서 주말이면 자연을 찾아 도시를 벗어나는 가족단위 여행객이 크게 늘고 있다. 매달 두 차례씩 진행하는 생태교육연구소 ‘숲’의 숲 생태탐방에도 매번 참가 신청자가 몰리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까지는 한번에 1백 명을 모집했는데 올해부터 효과적인 진행을 위해 참가 인원을 20명으로 줄였어요. 매달 1일에 온라인으로 참가자를 모집하는데 몇 분 지나지 않아 마감됩니다. 대부분 가족단위고, 요즘은 학교나 유치원에서도 단체로 숲 생태탐방을 하고 싶다는 문의가 많아요.”
생태교육연구소 ‘숲’ 남효창 대표(45)는 98년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에서 산림학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해 2002년 연구소를 설립했다. 그 사이 국민대 등에서 강의를 하고, 환경연합 등 환경단체에서도 활동했지만 실질적인 생태교육과는 거리가 있다는 생각에 직접 연구소를 설립해 일반인을 대상으로 숲 생태탐방을 진행하며 생태교육 프로그램과 교구 개발, 숲 생태전문가 양성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지금처럼 굳이 차를 타고 멀리 가지 않아도 문만 열면 자연을 접할 수 있었고, 자연을 장난감 삼아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젊은 시절 세계적인 숲 강대국 독일에서 산림학까지 공부하고 돌아온 그는 콘크리트 외벽에 갇혀 흙을 만져보는 일이 드물고, 냄새를 맡아보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요즘 아이들을 보면서 그 무엇보다 시급한 것이 생태교육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지식만 갖고는 살 수 없고, 감성과 인성이 바탕이 된 지식만이 지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으면서도 지식 전달 위주의 교육은 크게 바뀌지 않고 있어요. 그런 점에서 지식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으면서 감성과 인성이 우선시되는 생태교육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죠. 생태교육은 인간의 오감을 모두 사용할 수 있고, 육체적·정신적으로 안정된 사람을 만들어주거든요. 이건 제 생각이 아니라 이미 1백50년 전부터 많은 교육학자들이 주장해온 거예요. 다만 사회가 경쟁 위주로 돌아가다 보니 그런 것들이 등한시되었을 뿐이죠.”

생태교육연구소 ‘숲’ 대표 남효창 박사가 일러주는 ‘온 가족이 함께 하는 숲 생태교육’

생태교육연구소 직원들과 숲 생태탐방 프로그램을 논의하고 있는 남효창 박사.


그는 2002년부터 매달 한 번씩, 지난해부터는 매달 2회씩 숲 생태탐방을 진행하고 있는데 참가자들이 자연에 대한 가치관을 바꾸도록 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라고 한다.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고 있다는 인간중심적 사고를 버리고 자연의 권리를 인정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사람은 지금껏 사람이 아닌 모든 생물은 나와 별개의 것이고, 내가 그들보다 상위에 있어서 언제든 그것을 보호해줄 수도 있고, 없앨 수도 있다고 생각해왔어요. 지금의 환경문제를 낳은 이런 위험한 생각을 버리지 않으면 우리 아이들이 사회의 주체가 될 2030년대엔 이 세상이 어떤 혼란에 빠질지 누구도 장담 못해요. 아이들 스스로 나 자신이 자연과 더불어 생태의 일부분임을 깨닫도록 하는 것이 지금의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고, 생태교육의 목적이죠.”
인간이 자연을 지배한다는 사고 버리는 것이 생태교육의 첫걸음
그는 이를 위해 우선 아이들이 숲을 오감으로 체험하며 지구 상의 모든 생명체들이 각각의 고유한 특성을 지니고 있고, 생태계가 지속되는 데 나름의 충분한 기여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연은 무한한 복잡성을 띠고 있어 결코 인간의 편의대로 이로운 것과 해로운 것으로 나눌 수 없음을 오감으로 확인해야 한다는 것.
“대부분의 사람들이 숲을 찾으면 ‘이건 전나무, 저건 소나무’ 하며 겉모양새만 보는 것으로 끝나요. 하지만 나무의 본질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진 오감으로 느껴봐야 하죠. 나무의 이름은 인간의 편의상 붙여놓은 것이지 나무는 제가 전나무인지, 소나무인지 전혀 모르거든요. 나무껍질을 만져보고, 손으로 비벼서 소리를 들어보고, 안아보고, 냄새를 맡아보면 그냥 눈으로만 볼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 와요. 같은 나무라도 열매와 나무껍질, 나뭇잎의 향이 제각기 다르다는 것을 경험하고 나면 자연이 훨씬 경이롭게 느껴지죠.”
그는 자연의 숨소리를 듣기 위해 한동안 숲 생태탐방 시 ‘청진기로 나무소리 듣기’를 진행했는데 나뭇잎만 유심히 관찰해도 자연이 얼마나 신비로운 존재인지 새삼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나뭇잎 가장자리 생김새만으로 나무를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나뭇잎의 모양이 다양하기 때문. 나무를 오감으로 체험한 뒤에는 나무껍질과 나뭇잎 모양을 짝지어 기억하면 나뭇잎이 다 떨어지고 없는 겨울에도 나무껍질로 나무를 구별해낼 수 있다고 한다.
“주말에 아이를 데리고 산으로 바다로 떠나기는 하는데 막상 도착해보면 할 일이 없다고 해요. 기껏해야 산길을 좀 거닐다 근처 식당에서 요리를 먹고 오거나 바닷가에서 조개구이를 해먹는 정도죠. 하지만 조금만 고민하면 아이에게 생각할 기회를 줄 수 있는 놀이들이 많아요.”
그는 부모가 숲의 생태에 대해 잘 모른다고 해도 문제될 것은 없다며 색깔로 이야기를 시작해보라고 권한다.
“아이들에게 어떤 색깔을 정해주고, 그 색깔을 가진 생물들을 찾아보라고 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 녹색을 찾아보라고 하면 아이들은 녹색의 범주 안에 들어갈 수 있는 무수히 많은 것들을 찾아낼 거예요. 도저히 무슨 색이라고 이름 붙일 수 없는 다양하고 많은 색깔이 자연에 존재한다는 것도 알게 될 거고요. 그런 것들을 아이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느끼는 것이 나무 이름, 꽃 이름을 가르쳐주는 것보다 훨씬 더 훌륭한 교육이 되죠.”

생태교육연구소 ‘숲’ 대표 남효창 박사가 일러주는 ‘온 가족이 함께 하는 숲 생태교육’

숲에 떨어진 열매들을 주어다 사무실에서 관찰하고 있는 남효창 박사. 그는 나뭇잎만 유심히 살펴봐도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숲을 거닐며 어른 나무와 그 아기 나무, 혹은 열매나 씨앗을 찾아보는 것도 좋다고 한다. 그러면서 아주 작은 열매가 땅에 뿌리를 내려 다시 큰 나무가 되기까지는 수백 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도 일러주면 유익하다고.
유치원생에겐 맘껏 뛰어놀게 하고 초등학생에겐 질문 던져 호기심 유발해야
남 박사는 숲속에 사는 동물들의 집을 관찰하는 것도 재미있는 방법이라고 조언한다. 새 둥지, 개미집, 거미줄 등 각 동물들의 서식 장소는 번식방법이나 월동방법, 먹이를 먹는 방법,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 등 그 주인의 생태를 짐작케 하기 때문. 또한 숲속 동물들이 집을 짓는 재료가 모두 자연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것들이고, 자신에게 꼭 필요한 만큼의 공간만 차지하는 것을 보면서는 어떤 집이 자연의 순리에 따른 좋은 집인지 아이들 스스로 생각해볼 수 있다.
그는 아이들이 아름다운 꽃과 나무 말고도 애벌레나 지렁이 같은 징그럽게 생긴 생물 역시 각각 소중한 존재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알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고 그것들을 인간이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남 박사는 “숲속의 생물 하나하나가 모두 사람과 동등한 가치를 지녔음을 인정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아이들이 선뜻 다가서지 못하는 이런 생물들과 친해지게 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재치가 필요하다고 한다. 남 박사는 숲 생태탐방을 할 때 무심코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작은 생물들과 동물의 털, 발자국 등을 흥미롭게 관찰하도록 창틀을 특정한 곳에 내려놓고 참가자들이 그 안을 유심히 들여다보게 하는데 이 방법을 활용하면 좋을 듯하다. 애벌레가 지나다닐 만한 곳에 창틀을 내려놓으면 아이들이 창문을 열어 애벌레가 나뭇잎을 먹다 만 흔적, 애벌레가 만들어놓은 집 등을 관찰하고 애벌레 역시 작지만 소중한 생명을 이어가는 자연 생태의 중요한 일부분임을 알게 된다.
생태교육연구소 ‘숲’ 대표 남효창 박사가 일러주는 ‘온 가족이 함께 하는 숲 생태교육’

남 박사는 여러 아이들을 모아놓고, ‘느리게 가기’ 게임을 하기도 하는데 야생동물의 에너지 효율성을 이해하고, 빠른 것만이 최고가 아님을 깨닫는 좋은 기회가 된다고 한다. 달팽이, 거북이, 지렁이, 굼벵이 같은 동물들은 행동이 느린 대신 빠르게 움직이는 동물보다 에너지 손실이 적어 오래 살 수 있다는 것을 게임을 하며 일러주는 것.
“일정한 거리(1m)를 가장 느리게 갈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경주해보는 거예요. 각자 동물을 한 가지씩 정해서 그 흉내를 내며 움직여야 하는데, 한순간도 멈추거나 뒤로 가면 안 되고 계속해서 앞으로 움직여야 하죠. 그래서 가장 늦게 도착한 사람이 우승하는 거예요. 이 게임을 하다 보면 아이들이 서로의 눈치를 보고, 살짝 뒤로 몸을 빼거나 움직이지 않는 경우가 있어요. 답답해서 먼저 뛰어가버리는 아이도 있고요. 아이들 스스로 서로에게 경고를 주기도 하면서 규칙의 중요성을 깨닫죠. 또 빠른 것은 좋은 것이고, 느린 것은 뒤떨어진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뜨릴 수 있고요.”
그러나 남 박사는 숲에서는 아이들에게 뭔가를 가르쳐야겠다는 생각보다 자연에 흥미를 갖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한다. 자신의 생각을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있고, 어른들과의 의사소통이 원활해지는 초등학생들의 경우 질문을 통해 호기심을 유발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는 “혹시 전에 이것에 대한 얘기를 들어본 적 있니?” “이건 만지면 어떤 소리가 날까?” 하는 식으로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져 보라는 것. 반면 취학 전 아이들의 경우 숲을 놀이터 삼아 맘껏 뛰어놀며 몸으로 직접 느끼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생태교육연구소 ‘숲’ 대표 남효창 박사가 일러주는 ‘온 가족이 함께 하는 숲 생태교육’

남효창 박사는 숲 생태탐방 시 청진기로 나무 소리를 듣는 등 오감으로 체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이들이 뛰어놀다 보면 스스로 멈춰 설 때가 분명 있어요. 아이 스스로 뭔가를 발견하고, 호기심을 가질 때 그때부터 교육을 시작하면 돼요. 아이들이 신기해하는 것이 부모가 보기에는 아주 하찮은 것일지라도 함께 관찰하고, 대화를 나누는 게 바로 교육이죠.”
유치원생들의 경우 “이리 와봐” 하고 불러서 뭔가를 가르치는 것보다 아이가 자연에 호기심을 갖고, 대상을 파악해가도록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교육이라고 한다.
“낙엽 더미 속에 들어가 눕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교육이 돼요. 두 눈만 남겨놓고 낙엽으로 온몸을 덮은 채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면 누구나 자연과 하나가 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죠. 그 순간 아무런 의문도 들지 않아요.”
남 박사는 “모든 생명체를 공경하고, 자연의 채취를 맡고, 숨소리를 들으며 그 신비로움과 풍요로움을 경험하면 ‘자연보호’ ‘들어가지 마시오’ 하는 팻말이 없어도 아이들 스스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절로 알게 된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생태적 감수성을 키우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생태교육이고, 그런 점에서 생태교육은 환경교육보다 문화교육에 가깝다고 주장하는 그는 “부모와 자녀가 함께 숲을 탐방하는 것은 자연 생태를 이해하고, 환경을 이해하고, 결국 나를 이해하게 해 사회가 건강해지는 지름길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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