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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만원 고료 제 37회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 당선자 한수경

■ 글·최호열 기자 ■ 사진·박해윤 기자

입력 2005.02.11 10:39:00

올해로 제 37회를 맞는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한수경씨의 작품 ‘적의 궁전’이 당선되었다.
대학 졸업 후 13년 동안 창작의 꿈을 키운 끝에 늦깎이 등단의 기쁨을 맛본 한씨의 당선 소감을 들어보았다.
2천만원 고료 제 37회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 당선자 한수경

지난1월7일 오전, 제 37회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 당선작을 결정하는 자리에서 작은 논란이 있었다. 최종심에 오른 한수경씨(40)의 작품 ‘적의 궁전’이 여성이 썼다기엔 남성적인 체취가 너무 많이 묻어난다는 평가 때문이었다. 결국 실례를 무릅쓰고 한씨에게 전화를 걸어 몇 가지 질문을 통해 그가 직접 쓴 작품임을 확인한 후에야 당선작으로 선정할 수 있었다. 이틀 후인 1월9일, 광화문 일민미술관에 있는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설거지를 하다 ‘당신의 작품이 맞냐’는 전화를 받았을 때, 좀 당황했어요. 전부터 제 글이 ‘강하다’ ‘중성적이다’라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남성적’이라는 말은 처음 들었거든요. 그래도 제 작품이 최종심까지 올랐다니까 기뻤어요. 응모를 하면서 당선에 대한 욕심을 내진 못했거든요.”
“말은 그렇게 해도 당선에 대한 욕심 없이 응모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하자 “10년 넘게 신춘문예에 수도 없이 떨어지면서 기대하지 않는 미덕을 배운 것 같다”며 웃었다.
“저는 감정의 기복이 적은 편이라 그런지 처음 당선 소식을 들었을 땐 담담했는데, 남편이랑 친정식구들에게 전화를 해서 축하인사를 받다보니까 기쁨이 커지더라고요. 무엇보다 한 달 전에 돌아가신 친정아버지 생각이 간절했어요. 아버지가 이 소식을 들으면 누구보다도 기뻐하셨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고….”
생김새나 말하는 모습이 ‘천생’ 여자라는 생각이 드는 그가 남성적으로 글을 쓴다는 게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저를 여성스럽다고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남편도 결혼하고서 ‘연애할 땐 굉장히 부드러운 여자인 줄 알았는데 터프하다’며 속았다고 했을 정도니까요(웃음). 오밀조밀한 것보다 시원스러운 걸 좋아해요. 그래서 집이 휑해요.”
중학교 3학년과 초등학교 6학년생인 두 아들을 둔 그는 의사인 남편 김한식씨(41)와 대학 3학년 때 캠퍼스커플로 만나 졸업 후 1년 만인 90년 결혼한 후 줄곧 집에서 살림만 해온 전업주부다. 그가 소설을 쓰기 시작한 건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였다고.
“대학 다닐 때까지도 소설을 쓰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어요. 사범대를 졸업했는데 교원적체가 심해 백수 생활을 해야 했어요. 그래서 노는 동안 뭘 할까 하다가 소설을 쓰기 시작했어요. 석달 동안 쓰니까 장편소설 한 편이 완성되더라고요. 그걸 들고 무작정 출판사를 찾아갔죠(웃음). 편집장이 읽어보고는 아주 정중하게 소설을 처음부터 공부해보라고 충고를 하더군요. 그래서 그때부터 소설을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소설창작을 배울 수 있는 곳은 대부분 서울에 있다. 전북 전주에 살면서, 더구나 결혼 후 군의관 생활을 하는 남편을 따라 이곳저곳 지방을 떠돌며 아이를 키우는 상황에서 일주일에 한두 번씩 서울을 오가며 소설창작을 배우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소설대학이란 곳에서 소설가 황충상씨로부터 1년 동안 배운 게 전부라고 한다.
하지만 그의 소설창작에 대한 열정은 해를 거듭할수록 더해졌다. 해마다 신춘문예에 도전했다 떨어지는 쓰라림을 맛보았지만 그는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글을 쓰면서 구도가 튼튼하지 못하다는 걸 느끼고는 구도를 탄탄하게 하기 위해 시나리오를 공부하기도 했다. 심사위원들로부터 ‘적의 궁전’이 드라마로 각색을 해도 좋겠다는 평을 받은 것도 이 때문이다.

2천만원 고료 제 37회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 당선자 한수경

한수경씨가 당선인터뷰를 하는 날 남편 김한식씨와 둘째 아들도 자리에 함께 했다.


“30대 초반까지만 해도 신춘문예 때문에 열병을 앓았어요. 처음엔 좌절도 많이 했어요. 1년 넘게 글을 안 쓴 적도 있고요. ‘정말 내가 재능이 있는 걸까, 없다면 그냥 빨리 포기하는 게 인생을 허비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당선 여부와 상관없이, 누가 인정을 하든 안 하든 글 쓰는 것 자체가 즐겁고 숙명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젠 머릿속에 쌓인 이야기를 글로 풀어놓지 않으면 그게 더 힘들어요.”
단편소설을 쓰던 그가 장편소설로 옮겨간 건 4년 전부터. 자신의 호흡이 길어 단편보다는 장편이 어울린다는 생각을 한 그는 장편소설에 도전, 2003년에 첫 작품 ‘물구나무서기’를 단행본으로 출간하기도 했다. ‘적의 궁전’은 두 번째 작품인 셈.
수상작 ‘적의 궁전’은 화자인 영화감독이 자신의 영화에 돈을 투자한 오랜 친구이자 과거 삼각 관계의 연적이었던 벤처기업가인 친구가 사업에 성공했다 몰락해가는 과정을 관찰하는 내용이다.
“평소 주변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거기에 상상력을 더하는 습관이 있어요. 그러다보면 한 편의 소설로 만들어지는데, 이 작품 역시 제가 아는 사람을 모티프로 해서 스토리를 구상했어요. 글을 쓰는 데 한 열 달 정도 걸린 것 같아요.”
그에게 있어 가장 큰 응원군은 남편이라고 한다. 하루 종일 환자들을 진료하느라 힘들 텐데도 독자이자 평론가로서의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고. 또한 글이 안 써져 힘들어할 때면 함께 여행을 하는 등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며 고마워했다.
10년 넘게 습작하는 동안 불편 감수해준 남편과 아이들에게 고마움 전하고 싶어
그는 처음 글을 쓸 때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함께 하는 게 힘들어 산속에 들어가 글만 쓰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 대신 집에서 글을 쓸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우선 아이들이 텔레비전을 덜 보게 해서 집안을 조용하게 만들고, 작으나마 제 작업공간도 만들었어요. 또한, 엄마가 글을 쓴다는 걸 아이들이 인정해주도록 했고요. 어려운 일이었지만 조금씩 개선해나갔죠.”
그가 글을 쓰는 게 아이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쳤다. 엄마가 글을 쓰는 것을 보며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책을 읽거나 공부하는 습관을 들인 것.
“얼마 전에 둘째 아이의 비밀노트를 보게 되었어요. 절대 저에게 안 보여주기에 궁금해서 봤더니 판타지 소설을 써놓았더라고요. 제 영향 때문이겠죠(웃음)?”
당선 상금 2천만원을 어떻게 쓸지 결정했냐고 묻자 “우선 둘째 아이가 갖고 싶어하는 바퀴 달린 휠리스 신발을 사줄 생각”이라고 했다.
“친정어머니에게 작은 선물을 하나 하고 싶어요. 보통 졸업하고 직장에 취직해서 첫 월급을 받으면 부모님에게 뭔가 선물을 하잖아요. 전 취직을 한 적이 없어 못해봤는데, 늦었지만 이제 그걸 해보고 싶어요. 저에겐 상금이 첫 수입이니까요.”
그는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소설이든 시나리오든 죽을 때까지 열심히 쓸 각오”라고 했다.
“당선이 되었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어요. 이번에 당선이 안 되었더라도 글 쓰기는 계속됐을 테니까요. 저보다는 주변 사람들이 달라지지 않을까 싶어요. 밥 한 끼 안 하거나 청소를 안 해도 봐주지 않을까요(웃음).”
마지막으로 그는 10년 넘게 자신의 글쓰기로 인해 불편한 게 많았을 텐데도 참아준 남편과 아이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고 했다. 앞으로 그의 좋은 작품이 이어지길 기대한다.

2천만원 고료 제 37회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 당선자 한수경

본심 심사를 맡은 도정일 교수(왼쪽)와 소설가 서영은씨.


예심을거쳐 본심에 올라온 응모작은 ‘치유될 수 없는 생’(김명재), ‘상한가’(김인숙), ‘다리 저는 남자’(백은지), ‘적의 궁전’(한수경) 등 4편이다.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전은 이미 다수의 유능한 작가들을 배출해서 우리 현대문학을 풍요롭게 하는 데 기여해온 전통 있는 등용문이다. 이 전통을 이어가는 데 부끄럽지 않을 작품을 가려 뽑기 위해 꽤 고심했다.
먼저 ‘치유될 수 없는 생’은 일제하에서 일본군 종군위안부로 끌려갔던 한 여성을 등장시켜 신산과 고초의 경험을 서술하고 있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역사가 개인에게 가하는 폭력의 문제는 문학이 외면하지 못하는 중요한 테마다. 특히 종군위안부의 경험은 아직도 우리 문학이 제대로 서사화해내지 못한 소재다. 종군위안부의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경험과 상상을 결합해서 ‘문학’으로 승화시켜내는 일인데 이 작업을 해내자면 대단한 기량이 필요하다. ‘치유될 수 없는 생’은 몇몇 군데를 제외하면 구체성이 많이 떨어져 전체적으로 독자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흠을 갖고 있다.
‘상한가’는 주식시장에 뛰어들었다가 낭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누구나 경험할 법한 어떤 악마적 유혹과, 그 유혹에 이끌리는 사람들의 인간적 욕망과 좌절을 다루었다는 것이 이 응모작의 매력이다. 중요한 것은 좌절 끝에 우리가 얻는 삶에 대한 감동적 통찰과 진실의 유무이며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독자에게 단순 교훈이 아닌 자기 변모의 경험을 주는가 하는 문제다. 이 부분을 보완한다면 좋은 작품이 될 듯하다.
‘다리 저는 남자’는 표현력이 우수하고 인생의 미스터리와 삶의 문제에 대한 천착이 뛰어나 마지막까지 심사위원들을 망설이게 했던 작품이다. 그러나 ‘전생’의 모티프를 소설의 첫머리부터 끌고 들어갈 필요가 있었을까? 기이한 인연이나 삶의 미스터리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천천히, 경험의 누적과 만남의 이상한 반복에 의해 강화될 때만 독자에게 더 많은 기대와 신비감, 통찰을 줄 수 있다. ‘전생’의 테마는 때로 매혹적이긴 하나 아주 위험한 것이기도 하기 때문에 작가는 그것을 소설 속에 숨기고 풀고 또 숨기고 드러내는 숨바꼭질 같은 복층적 서사구조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전생의 느낌을 소설 첫머리에서부터 기정사실로 설정하고 들어가는 것은 이 소설의 재미를 결정적으로 감소시킨다.
‘적의 궁전’은 이야기꾼의 기량을 탁월하게 발휘하고 있는 작품이다. 장면 처리와 사건 서술이 능청맞을 정도로 세련되고 언어적 표현의 수준도 대단하다. 생략과 연기의 기법이 뛰어나 이야기를 끊고 이어붙이고 실마리를 만들면서 독자들에게 적정의 정보를 적정의 순간에 분배하고 공급한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이 소설은 사건 구성과 인물 설정 방식이 너무도 ‘영화적’이다. 문자서사로서의 소설과 영상서사인 영화 사이에는 깊은 친화관계가 있지만 소설은 소설이 아니고서는 다룰 수 없는 문제들을 다루는 서사 형식이라는 것을 이 작가는 알았으면 싶다. ‘영화적’이라는 말은 게임의 공식과도 같은 어떤 ‘도식성’에 대한 경고의 의미도 담고 있다. 이 소설의 인물들은 상당히 선명하지만 그들의 ‘내부세계’는 도식성에 희생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뽑은 것은 이 작품의 기량이 단점을 상당 부분 커버하고 있고, 뛰어난 신예작가의 차후 활동을 기대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도정일(문학평론가, 경희대 교수), 서영은(소설가)


여성동아 2005년 2월 49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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