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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사원에서 대리로 승진, 차근차근 경영수업 받고 있는 현대그룹 장녀 정지이 & 어머니 현정은 회장 요즘생활

■ 글·최호열 기자 ■ 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현대상선 제공

입력 2005.02.11 10:31:00

최근 대기업 인사에서 재벌 2~3세들이 대부분 그룹 임원으로 경영일선에 배치되는 것과 달리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의 장녀 정지이씨는 대리로 승진, 경영수업을 차근차근 밟고 있어 눈길을 끈다. 지이씨의 승진 뒷이야기와 그룹 홈페이지에 개인적인 일상을 공개한 현정은 회장의 근황을 취재했다.
평사원에서 대리로 승진, 차근차근 경영수업 받고 있는 현대그룹 장녀 정지이 & 어머니 현정은 회장 요즘생활

지난해말과 올해 초 발표된 대기업들의 인사에서 그룹 총수의 20~30대 자녀들이 대부분 그룹 임원으로 경영일선에 배치돼 화려하게 경영수업을 받는 것과 대조적으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장녀 정지이씨(28)는 ‘사회 초년생’의 길을 차근차근 밟으며 경영수업을 받고 있어 눈길을 끈다. 평사원으로 근무하다 지난 연말에 단행된 현대상선 승진인사에서 대리로 승진한 것.
지이씨는 2003년 아버지 정몽헌 회장이 작고한 후 현대그룹을 이끌던 어머니 현정은 회장(50)이 경영권 분쟁에 휩싸이며 어려움을 겪자 “어머니를 옆에서 돕겠다”며 지난해 1월3일자로 현대상선에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당시 일각에선 그의 입사를 놓고 본격적인 경영수업을 받은 뒤 경영권을 이어받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었다.
지이씨가 입사 1년 만인 올해 1월 초 대리로 승진한 데 대해 현대그룹 관계자는 회사의 승진 원칙에 따른 것일 뿐 회장의 딸이라고 특별대우를 한 것은 아니라고 밝힌다.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한 지이씨는 연세대에서 신문방송학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외국계 광고회사에 1년여 동안 근무한 경력이 있어 입사할 때부터 3년 경력을 인정받았다는 것. 따라서 현대상선에서 1년을 근무했기 때문에 대리 승진 기준연한인 4년이 되었고, 대리 승진 대상 직원들이 치른 토익시험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는 등 승진누락 사유가 없었다고 한다. 그는 이번 인사는 “원칙에 따라 순리대로 하라”는 현 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고 했다.
“지이씨가 입사했을 때도 현 회장은 ‘다른 회사를 다니느니 현대에서 사회경험을 쌓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서 결정했다’는 말을 하셨어요. 이번 인사와 관련해 일부 언론에서 경영수업 이야기가 나오자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경영후계를 말하기엔 너무 이르다’는 입장을 표명하셨고요.”
또한 일부에서 지이씨가 지난해 상반기 현대상선 주식 5천2백 주를 매입한 것을 근거로 소유·경영권 이전이 시작된 것이 아니냐는 시선을 보내는 것에 대해서도 억측이라고 했다. 당시 현대상선 직원들 사이에서 자사주 보유운동이 일어 지이씨도 동참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당시 8천원대이던 현대상선 주가는 지난 연말 1만5천원대까지 올라 이때 자사주식을 산 직원들은 두둑한 보너스를 챙긴 셈이 되었다.
현대상선 재정파트에서 근무하는 지이씨의 회사 생활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지이씨 본인은 물론 현 회장도 딸이 언론에 노출되는 걸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근무하는 직원에 따르면 “맏이답게 책임감이 강하다. 튀지 않고 차분한 스타일로 동료, 상사들과 잘 어울리고 있다”고 한다. 현 회장과 한집에 살고 있어 같이 출근하면 편할 텐데도 따로 출근을 하며 회사 사람들이 회장 딸이라는 선입견을 갖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현대그룹 관계자는 “지이씨가 회장 딸이라고 해서 별다른 대우를 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금강산에서 열린 ‘현대그룹 합동 신입사원 수련회’때도 지이씨는 다른 신입사원들과 똑같이 모든 프로그램을 소화했다고. 당시 어머니 현정은 회장은 물론 미국 유학을 앞둔 동생 영이씨도 함께 참석했기 때문에 잠이라도 같이 자고 싶었을 텐데도 다른 신입사원들과 함께 먹고 자면서 생활했다고 한다.
그가 현대상선에 입사한 게 현대그룹의 주력 회사인데다 많은 해외 지사를 거느리고 있어 글로벌 마인드를 키울 수 있기 때문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가 기업의 자금을 관장하는 재정파트에서 근무하는 것도 기업의 경영흐름을 가장 빨리 파악할 수 있어 경영수업에 적합한 곳이라는 현 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앞으로 그가 어떤 길을 걷게 될지는 속단할 수 없지만 현재로서는 밑바닥부터 내실 있는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평사원에서 대리로 승진, 차근차근 경영수업 받고 있는 현대그룹 장녀 정지이 & 어머니 현정은 회장 요즘생활

지난해 8월4일 열린 고 정몽헌 회장 1주기 모습(왼쪽 사진). 정몽헌 회장의 페어레이디킨슨대 MBA 졸업 때 현정은 회장과 지이씨(가운데).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 미국까지 온 형 정몽구 회장이 보인다.


한편, 현정은 회장은 1월 초, 4년 만에 다시 문 연 그룹 홈페이지(www.hyundaigroup.com)를 통해 개인적인 이야기를 처음으로 털어놓아 관심을 끌고 있다.
“77년 첫째 딸을 출산한 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인간개발학을 전공했는데, 이때 공부하고 체득한 것이 현대그룹의 회장으로서 조직을 이해하고 공동의 비전을 향해 나갈 수 있도록 이끄는 밑거름이 될 줄은 그 당시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고 밝힌 현 회장은 “어떤 일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릴 때 가장 어렵다. 남편이 생전에 현대그룹을 경영하면서 혼자 감당해내야 했던 책임감과 외로움을 이젠 잘 알 수 있다”며 최고 경영자로서의 고뇌를 토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회장으로 재임한 지난 2년 동안의 시간에 대해서는 “경영권 안정화를 이뤄냈고, 그 바탕 위에 현대그룹 임직원들이 서로 단합하고 공동의 미래 핵심 가치를 공유하여 현대그룹 제 2의 힘찬 도약의 기반을 마련하는 데 주력했다”며 만족스러움을 피력한 뒤 “2010년에는 재계 10위권 진입을 목표로 하고, 현대그룹이 21세기형 첨단 제조 및 서비스 기업으로 세계정상에 우뚝 설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 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평사원에서 대리로 승진, 차근차근 경영수업 받고 있는 현대그룹 장녀 정지이 & 어머니 현정은 회장 요즘생활

고 정주영 회장 생전에 찍은 가족 사진. 가운데 꼬마 아이가 지이씨다.


또한 “8시30분쯤 출근해 신문 스크랩을 보면서 사회적 이슈를 체크하고, 9시부터 오전 시간에는 사장단회의, 영업본부장회의, 재무본부장 중역회의 등을 주재하고, 오후엔 주로 외부 손님들을 만나고 저녁 6~7시 사이에 퇴근한다”고 하루 일과를 소개하면서 “저녁에 학교 운동장 같은 곳 걷는 것을 좋아하는데, 요즘엔 업무로 인해 많은 분들과 저녁 약속을 하다보니 걸을 기회가 점점 없어지고 있어 아쉽다”고 밝히기도 했다.
가장 잘 만드는 요리로 스파게티, 샤브샤브, 치즈 퐁듀 등을 꼽은 그는 “하지만 정몽헌 회장이 생전에 한식만 좋아해서 이런 요리를 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고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에둘러 표현하기도 했다.
자녀들의 교육관에 대해서 그는 “남을 배려하고 어려운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작은 봉사라도 직접 실천하는 자세를 가지라고 당부하고 있다”고 밝혔는데, 실제 현 회장은 조용히 사회봉사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수년간 봉사활동을 하는 동안 인간성회복추진운동본부에서는 아무도 그가 현대가 며느리인 줄 몰랐다고 한다. 그의 영향인지 막내 아들 영선군 또한 봉사활동을 많이 해 2003년 국무총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취임 3년째를 맞은 현 회장은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자신은 그룹을 하나로 묶는 일에 주력해온 지금까지의 모습에서 벗어나 연초부터 계열사 사업장을 순회하는 현장경영에 나서 앞으로의 행보에 재계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여성동아 2005년 2월 49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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