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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앨범 내고 방송활동 재개한 ‘바니걸즈’의 언니 고정숙

“6년 전 이혼 아픔 겪고 힘들었지만 딸과 노래 덕분에 훌훌 털고 일어섰어요”

■ 기획·구미화 기자 ■ 글·강은아‘자유기고가’ ■ 사진·홍중식 기자, 오아시스레코드사 제공

입력 2005.01.31 13:29:00

70년대 인기를 누렸던 쌍둥이 자매 듀엣 ‘바니걸즈’의 언니 고정숙이 최근 솔로 앨범을 발표하고 활동을 재개했다. 86년 결혼과 함께 방송활동을 중단했던 그가 6년 전 이혼하고 가수로 돌아오기까지의 사연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솔로앨범 내고 방송활동 재개한 ‘바니걸즈’의 언니 고정숙

깜찍한외모와 발랄한 율동으로 70~80년대 인기를 모았던 쌍둥이 자매 듀엣 ‘바니걸즈’의 언니 고정숙(50)이 지난해 말 ‘바니’라는 이름으로 솔로 앨범을 내고 방송활동을 시작했다. 86년 결혼과 함께 방송활동을 접은 지 19년 만이다.
오랜만에 모습을 보인 그는 실크 같은 음색 중간중간 끊길 듯 말 듯 연결되는 거친 듯한 허스키 보이스가 여전했다. 겉으로 보기엔 어떤 그늘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6년 전 이혼의 아픔을 겪었다고 한다.
“이혼 후 두렵기도 하고 부끄러웠어요. 어린 딸을 어떻게 이해시키나, 혼자 힘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죠. 아무도 만나지 않고 지냈어요. 누구에게도 이혼했다는 말을 못하겠더라고요. 그러다보니 5년 넘게 본의 아니게 숨겨오게 되었어요.”
그는 지난 86년 어머니의 중매로 음악 계통에서 일하는 남편을 만났다. 성실하고, 무엇보다 마음이 착해 그의 어머니가 사윗감으로 콕 찍어놓은 남자였다. 어머니가 틈만 나면 그 남자와의 데이트를 주선하는 바람에 그는 두 달간 어머니를 피해 다니다시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해진 인연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을까. 어느 날 문득 마음이 움직여 그가 먼저 연락을 했고, 첫 만남을 가진 지 며칠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한때 독신생활을 꿈꿨던 그지만 결혼한 뒤에는 남편을 하늘같이 여기는 순종적인 아내가 되었다고 한다.
결혼 13년 만에 이혼하고, 사람들 피해 정신과 병동에 입원
하지만 결혼 후 그의 삶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화려한 생활에 익숙했던 만큼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삶을 살고 싶었던 그는 모처럼 큰 맘 먹고 사준 딸의 옷값 때문에 남편의 잔소리를 듣고, 공연(결혼 후 방송활동은 접었지만 간간이 해외동포 위문 공연 등 각종 행사에 출연했다) 때문에 귀가 시간이 늦어져 남편과 다퉈야 할 때면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고 한다. 참고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날이 갈수록 마음속의 상처가 깊어졌다고. 더 이상은 도저히 숨이 막혀 살지 못하겠다고 생각한 그는 결국 결혼생활 13년 만에 이혼했다.
그런데 자유분방하고 통 큰 여자일 것 같은 그도 막상 이혼을 하고 나니 색안경을 끼고 바라볼 주변의 시선이 두려워졌다고 한다.
“이혼을 하고 3개월 동안 사람들이 두려워 병원에 입원했어요. 정신과 병동에 보내졌는데 진짜 병을 앓는 사람들을 보니까 ‘내가 이러면 안 되겠다’ 싶더라고요. ‘편하게 좀 더 쉬면서 마음을 정리하자’ 맘먹고 몸을 추슬렀죠.”
병원에서 퇴원한 뒤 6개월간은 친정에 얹혀살았다고 한다. 당시 그는 딸의 등하교 길을 늘 함께하며 마음을 다독이고, 음악에 관심을 쏟으려고 노력했다고.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또 다른 고민과 맞닥뜨렸다. 사춘기에 접어든 딸이 말대꾸를 하고 집에 늦게 들어오는 날이 잦아진 것.
“저 혼자서 방황하는 아이를 감당하려니 정말 힘들었어요. 담배라도 피워 물면 견딜 수 있을까 싶어서 한동안 콜록콜록 기침을 하면서도 담배에 의지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딸아이가 그걸 본 거예요. 이혼한 엄마가 집안에 틀어박혀 자기 때문에 담배를 피우고 있으니 아이 마음이 오죽했겠어요.”
엄마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처음 본 딸은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고 한다. 그는 얼른 담배와 재떨이, 라이터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다시는 이런 모습을 보이지 않을 테니 그만 방황을 끝내고 엄마 말을 들어달라고 딸에게 애원했다고 한다. 모녀는 서로를 끌어안고 열심히 살아갈 것을 약속했고, 그 일이 있은 뒤 딸의 방황도 깨끗이 정리됐다고.

솔로앨범 내고 방송활동 재개한 ‘바니걸즈’의 언니 고정숙

현재 그의 딸(18)은 캐나다에서 유학 중이다. 그는 딸이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친오빠가 살고 있는 캐나다로 떠나보냈다. 그는 이혼 후 각종 행사에서 공연하고, 미사리 라이브 카페에서 노래하며 번 돈으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혼자 힘으로 딸의 유학비를 대는 것이 버겁지만 그는 딸이 꿈을 키워가는 모습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어린이 영어교육 전문가가 되는 것이 꿈이라는 딸은 유학을 떠난 지 2년 만에 학교 졸업식에서 재학생 대표로 송사를 낭독할 정도로 영어가 유창해졌다고. 엄마와 떨어져 있으면서도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고, 인기 만점의 여학생으로 잘 자라고 있는 딸을 보면 마냥 대견스럽다고 한다.
“이제는 제가 딸을 이해하는 것보다 딸이 절 더 이해해줘요. 저는 철부지 엄마인데 딸은 아주 의젓하거든요. 딸만 있어도 살 수 있을 것 같은 충만함이 느껴지죠.”
얼마 전 그에게 보낸 딸의 편지에는 외로운 유학생활 중에도 엄마를 걱정하는 의젓함이 묻어난다.
‘저까지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어서 많이 외로우시죠. 엄마 혼자서 저 키우시느라 마음고생 많았는데…. 돌아보면 재미있을 것 같았던 유학생활이 힘들고 어려운 점도 많았어요. 하지만 힘들 때마다 잘 참고 견디라는 엄마 목소리를 들으면 기운이 나요. 그리고 나 때문에 밤낮으로 열심히 뛰는 엄마 모습 생각하면서 더욱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요. 이번에 엄마 혼자서 음반 내면서 많이 힘드셨지요. 그럴 때 옆에 있어주지 못한 게 마음이 아팠어요. 하지만 항상 이곳에서 엄마를 응원하고 있으니까 잘 될 거예요. 대신 너무 바쁘다고 끼니 거르지 말고 건강 챙기는 것 잊지 마세요.’
“제 목숨 같은 딸이에요. 이혼할 때 딸을 데려오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했어요. 그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을 지금까지도 겪고 있어요. 마음 같아서는 딸아이를 곁에 두고 살 맞대며 살고 싶어요. 하지만 앞날을 위해서 딸은 캐나다에서, 저는 여기 한국에서 ‘파이팅’ 하며 열심히 살고 있죠.”
그는 키도 크고 얼굴도 예쁘고 노래도 잘 해 연예인의 끼와 재능이 다분한 딸이 혹시라도 장래 희망을 연예인으로 바꾸면 자신이 직접 매니저가 돼 적극 도울 생각이라고 한다.
주변에서 재혼 권유하지만 딸과 자유롭게 살고 싶어
그가 방송활동을 재개하며 내놓은 앨범의 타이틀곡은 ‘천적’이다. 그는 자신의 천적은 바로 노래와 무대라고 말한다. 노래와 무대 앞에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그 무엇이 그를 무릎 꿇게 만든다고. 스스로 독립적이고 뭔가에 얽매이는 삶을 싫어하는 보헤미안 기질이 있다고 말하는 그가 노래 이야기를 할 때면 오십이라는 나이는 그야말로 숫자에 불과해진다. 시련을 이겨내고 꿋꿋하게 일어선 그의 끼와 열정은 너무 뜨겁다.
그는 71년 열여섯 어린 나이로 쌍둥이 여동생과 함께 가요계에 데뷔했다.
“열여섯, 열일곱 고등학교 시절에 학교를 조퇴해가면서 노래를 하러 다녔어요. 인생에서 스무 살 전후가 싱그러운 젊음을 만끽하면서 한창 재미있을 때 아닌가요. 대학 캠퍼스에서 공부도 하고 미팅도 하고…. 그런데 전 그런 생활을 전혀 못해봐 아쉬움이 커요.”
그가 인생에 한번뿐인 청춘시절을 오로지 무대에서 보낼 때 늘 함께한 이가 쌍둥이 동생 고재숙이다. 흔히 쌍둥이들은 어느 한 사람이 아프면 다른 한 사람도 아프게 된다는데 그가 이혼 후 아파하고 있을 때 누구보다 많이 걱정했던 사람이 동생이었다고 한다. 동생 고재숙은 언니의 이혼 소식을 듣고 크게 충격을 받았지만 이내 이해해줬다고. 또 요즘은 동생이 “혼자서 나이 들어가는 모습이 안타깝다”며 “주변에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주고 싶다”는 말을 종종 한다고 한다. 그가 새 앨범을 준비할 때 가장 기뻐하고 늘 응원을 아끼지 않는 이도 동생이라고.

솔로앨범 내고 방송활동 재개한 ‘바니걸즈’의 언니 고정숙

고정숙은 빠른 시일 내에 디너쇼를 열어 동생 고재숙과 한 무대에 서고 싶다고 한다.


“동생은 연애결혼을 했어요. 제부가 연예활동하는 것을 안 좋아해서 전업주부로 알뜰하고 예쁘게 살고 있죠. 80년대 후반부터는 주로 저 혼자 공연을 다녔어요. 동생은 착해서 노래 욕심을 접었는데 전 못돼서 이렇게…(웃음). 이혼한 뒤로는 음악활동을 더욱 열심히 하고 있는데 ‘혼자라서 힘들더라도 열심히 하라’며 격려했던 동생이 막상 제가 솔로 음반을 내니까 좀 우울해하더라고요. 동생에게도 가수 활동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겠죠. 마음을 달래느라고 보름 정도 차를 몰고 다니며 제 CD를 틀어놓고 노래를 크게 불렀다고 하더라고요.”
각종 행사에서 공연을 하고, 미사리 라이브 카페에서 노래하는 등 꾸준하게 활동을 해왔지만 음반을 내고 방송에 얼굴을 내미는 것은 그에게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었다고 한다. 요즘 같은 불황에 음반이 팔릴까 하는 걱정도 되고, 19년 만에 시청자들 앞에 서는 것이 어색하게만 느껴졌던 것. 그는 딸이 격려해줘 용기를 냈다고 한다. 음반을 내고 보니 방송활동과 노래에 대한 열정도 날이 갈수록 뜨거워진다고. 이번에 발표한 신곡 ‘천적’은 친숙한 멜로디의 트로트곡이다. ‘세월이 가면’ ‘수은등’ ‘장녹수’ 등을 리메이크한 곡도 앨범에 담았다.
“이제는 그 누구에게도 구속받지 않고 딸이랑 둘이서 제가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면서 자유롭게 살고 싶어요. 주변에서 자꾸 재혼을 권유하지만 지금 심정으로는 재혼할 생각이 없어요. 딸도 제가 재혼하는 것을 원치 않는 눈치고요. 자기가 돈 많이 벌어서 엄마를 호강시켜주겠다며 호언장담을 하죠(웃음). 조만간 디너쇼를 열어 쌍둥이 동생과 함께 노래하고 싶은 바람도 있어요.”
지나간 힘든 시간들을 훌훌 털어버리고 새롭게 시작하고자 하는 ‘바니’ 고정숙.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환하고 밝은 미소에서 다 보여주지 못했던 끼가 한껏 뿜어져 나올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여성동아 2005년 2월 49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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