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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환갑 맞은 가수 조영남이 밝힌 ‘내 인생의 여자 & 갑작스레 친일선언 한 이유’

“지금껏 7번 연애,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사랑했더니 변태로 보더군요”

■ 기획·구미화 기자 ■ 글·장옥경‘자유기고가’ ■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05.01.31 13:23:00

‘리버럴 맨’이라는 별명만큼이나 남을 의식하지 않는 행동 때문에 늘 화제를 뿌리고 다니는 가수 조영남. 그가 올해로 환갑을 맞는다. “내 사전에 노화는 없다”며 젊은 여자 친구와 자유로운 연애를 계속하고 노래, 그림, MC, 글 등 다방면에서 활동성을 보이던 그가 최근엔 ‘친일선언’을 해 또 한번 세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늙지 않는 남자 조영남을 만났다.
올해로 환갑 맞은 가수 조영남이 밝힌 ‘내 인생의 여자 & 갑작스레 친일선언 한 이유’

‘제발 나같이 오래된 가수한테 은퇴란 말은 마세요. 몸은 비록 최희준 선배지만 마음만은 H.O.T랍니다.’
조영남(60)이 부른 ‘은퇴의 노래’ 첫 대목이다. 지난 1월12일, 청담동 그의 집을 찾았을 때 그는 거실에서 바퀴 달린 신발 ‘힐리스’를 신고 날렵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재작년 평양 류경 정주영 체육관 개관 축하 공연에서 힐리스를 신고 묘기를 선보여 북한 주민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그지만 애들처럼 집에서도 힐리스라니. 올해로 이순(耳順)이 되었지만 그의 몸과 마음은 정말 H.O.T 못지않은 모양이다.
“2004년에 거창하게 마무리를 하려고 했는데 잘 안 됐어요. 만 60세. 나처럼 풍요롭게 산 사람도 없을 거요. 노래, 그림, MC, 글…, 충분히 설치지 않았나 싶었어요. 욕도 한두 번 먹은 것 아니고. ‘변변한 히트곡 없이 30년을 버틴 가수’ ‘화투장도 그림이냐’ ‘못생겼다, 그러면서도 천하의 바람둥이다’. 이제 그만 해도 되지 않겠나 싶어서 노래를 그만두고 싶었는데 그게 잘 안 됐네요.”
그는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작년부터 울릉도에서 더덕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는 가수 이장희를 보며 은퇴를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장희와 자신은 살아온 방식이 달라 은퇴 생각을 접었다고.
“난 평생 동안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았으니 이장희와 다르잖아요. 남들은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 은퇴를 생각하는데 나는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았으니 하던 일을 그만둔다는 게 의미가 없더라고요. 정신을 뺏길 만큼 예쁜 여자가 있어서 단둘이 세계여행을 떠난다면야 모를까.”
그는 결국 지금껏 그래왔던 대로 노래와 그림, 방송 활동으로 연말연시를 분주하게 보냈다. 지난 12월24일과 25일에 송년 디너쇼를 열고, 1월6일에는 워싱턴에서 개인전 ‘태극기 휘날리며’를 열었다. 그가 개인전을 위해 미국에 나가 있을 때인 1월5일 방송된 KBS ‘조영남이 만난 사람’에서 “윤여정과 이혼하며 아이들에게 배다른 형제를 만들지 않기로 약속했다”고 고백한 것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4년 전 두 아들이 나를 아버지로 대해준 건 감동적이었어요”
올해로 환갑 맞은 가수 조영남이 밝힌 ‘내 인생의 여자 & 갑작스레 친일선언 한 이유’

사실 그가 윤여정과 이혼을 하며 아이들에게 배다른 형제를 만들지 않기로 약속했다는 이야기를 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혼 후 그간 몇차례 인터뷰에서 그에 대해 밝힌 바 있다. 지난해 봄 필자와 인터뷰했을 당시 “나는 윤여정과 이혼할 때 배다른 아이는 만들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은실이는 아이를 원했다. 좋은 남자와 아이 낳고 살고 싶다고. 난 그걸 충족 못 시켜주니 그렇다면 헤어지자 했다”며 두 번째 결혼한 백은실씨와 이혼한 것도 아이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음을 털어놓았던 것. 그런데 그 이야기가 나이 들어가면서 점점 더 ‘잘 나가는’ 그의 인기를 말해주듯 새삼 화제가 됐다.
그는 두 아들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이 같은 약속을 했다고 한다. 지금도 아버지 노릇을 끝까지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이 무척 크다고.
“윤여정이와는 지금까지 전화 한 통 안 하고 지내지만, 아이들과는 왕래를 해요. 큰애는 컬럼비아대를 졸업하고 취직을 했고, 둘째는 뉴욕대 졸업반인데 아빠를 미워하던 아이들을 다시 만난 건 4년쯤 됐어요. 대학 등록금이 필요하다며 연락을 했더라고요. 내 생애에서 가장 큰 비극이 아이들을 버리고 나온 것이었는데 그 아이들이 비록 돈 때문이었지만 나를 아버지로 대해준 건 감동적이었어요.”

올해로 환갑 맞은 가수 조영남이 밝힌 ‘내 인생의 여자 & 갑작스레 친일선언 한 이유’

집에서도 바퀴 달린 신발을 신고 다니는 조영남은 “내 사전에 노화는 없다”고 말한다.


헤어질 당시 코흘리개였던 두 아들이 청년의 모습으로 아버지를 찾아왔을 때 그는 “겉으로는 ‘왔냐’ 하며 덤덤하게 대했지만 속으로는 정말 좋았다”고 고백했다. 그 후로 두 아들과 1년에 두어 번씩 만났는데 그가 지난해 뉴욕에서 전시회를 할 때도 두 아들이 찾아왔고 연말에는 안부전화도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자식 키우는 것도 그렇고 효도도 그렇고 돈이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말을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는 “세월이 더 흐르면 ‘아버지가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조영남의 60 평생을 이야기하면서 ‘여자’를 빼놓을 수 없다. 그 스스로도 ‘여자는 내 인생의 화두’라는 말을 즐겨 한다. 꽤 많은 연애를 했을 것 같은데 그는 방송에서 “연애를 7번 했다”고 밝혔다. 주변에 20대에서 70대까지 친하게 지내는 여자친구들이 많이 있는데 두 번의 결혼을 포함해서 현재 사귀고 있는 여자까지 연애한 여자는 모두 7명이라고. 그가 좋아하는 여성상은 ‘젊고 예쁘고 착하고 돈 많은 여자’. 그런데 돈 많은 여자를 밝힌다는 비난이 듣기 싫어 요즘은 ‘젊고 예쁘고 착한’, 이 세 가지 조건만 고집한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남녀관계를 실행해 보이고 있다고 자부한다.
“함께 살지 않고 바깥에서만 만나요. 물론 도덕적으로 하자가 없는 여자지요. 그 정도만 밝혀두고 싶어요. 두 번의 이혼을 거친 뒤에는 여자관계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고 실리적이며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들만 시도해왔어요. 그렇게 안 하면 굉장히 피곤해지거든요. 내 방법이 옳으냐, 옳지 않으냐는 부차적인 문제예요. 이기적이라고 욕할지 몰라도 얽혀드는 게 싫어서 연애를 시작할 때 그런 취향을 미리 밝히고 상대가 ‘오케이’ 하면 ‘쿨’한 관계를 이어가는 거죠.”
그는 남녀간의 만남은 기대치가 높으면 집착하게 되고, 그러면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기에 사전에 미리 바람막이를 하고 피곤해지지 않는 선에서 사랑을 나눈다고 한다.
“남녀가 일대 일로 만나 사는 것이 가장 안정적인 모습인데 난 그것을 유지하지 못했어요. 변칙으로 갔는데 남들이 보기엔 그게 변칙이 아니라 변태처럼 보여진 측면이 있어요. 거의 맞아 죽어야 마땅한 사랑 방식으로 보이지만 난 사랑도 두 사람의 거래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내가 가장 편할 수 있는 방식을 택해 사는 것이죠. 이를테면 나와 만나는 20대 여자는 일주일에 하루든 이틀이든 나와 만나는 동안만 60대 남자와 연애를 하는 거고, 나머지 날들은 수십 수백 번 20대 남자를 만나도 상관없다는 식이죠. 언제고 관계를 정리하고 싶으면 안 만나도 되고.”
올해로 환갑 맞은 가수 조영남이 밝힌 ‘내 인생의 여자 & 갑작스레 친일선언 한 이유’

남녀관계가 처음에 달콤하게 시작했다고 해서 끝날 때도 달콤한 건 아니라며 안 좋을 때의 감정을 알기에 미리 선을 긋는 것뿐이라는 그는 “있지도 않은 사랑을 찾아다녔던 과거의 시간들에 대한 회한에서 얻은 교훈쯤으로 알아두라”며 담담하게 말했다.
일본을 추월하기 위해선 반드시 ‘친일 단계’ 거쳐야
조영남은 지금껏 ‘오늘은 뭘 할까’ 하고 고민하거나 목표를 정해놓고 산 적이 없다고 한다. 물 흐르는 대로 살다보니 지금의 위치까지 왔다며 자기처럼 억세게 운이 좋은 사람도 없을 거라고 말한다. 너무 유명해도 불행한데 자신은 적당히 유명하다는 것. 그는 “적당한 유명세, 젊은 여자와 재미있게 놀 수 있는 적당한 재력, 적당한 지적 능력과 적당한 파워에 연륜이 더해져 완급을 조절할 줄도 아니 젊은 여자들이 날 안 좋아하고 배길 수 없지” 하며 특유의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올해로 환갑 맞은 가수 조영남이 밝힌 ‘내 인생의 여자 & 갑작스레 친일선언 한 이유’

조영남의 사전엔 노화라는 말이 없다고 한다. 자기 스스로 ‘늙은이’ ‘노인네’라고 지칭할 때도 있지만 그건 위장전술일 뿐 그는 진정 자신이 늙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그런 그가 최근 젊은 네티즌들 사이에 화제로 떠올랐다. 1월9일 방송된 MBC 신년특집 다큐멘터리 ‘거울 속의 한일’에서 자신을 ‘백 년 만의 친일파’라고 칭하며 “일본 다시 보기”를 주창한 것. 열흘 뒤인 1월19일엔 ‘맞아죽을 각오로 쓴 100년 만의 친일선언’이란 제목의 책을 펴내기도 했다. 그는 이 책에서 “넉넉한 대국의 자세를 가진 일본에서 배울 게 많다”며 친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해 9월 일주일간 일본에 체류한 적이 있는데 그때 경험한 밤 문화와 한류 열풍, 일본 영화 등에서 느낀 점을 한 권의 책으로 정리하며 “앞으로 친일파가 되겠다”고 선언했다고 한다. 60 평생 동안 ‘친미주의’로 일관해왔는데 일본을 직접 접하고 보니 미국만 아니라 일본도 배울 게 많다는 것이 그의 변이다. 이어령씨가 ‘축소지향의 일본인’을 쓰고 전여옥씨가 ‘일본은 없다’를 썼지만, 그가 보기에 ‘일본인은 확대지향형’이었고 ‘일본은 없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이었다고 한다.
“우리 국민 가운데 상당수는 역사적 요인에 의해 ‘굴절된 일본관’을 갖고 살아왔어요. 약삭빠른 일본인, 간사한 일본인, 비열한 일본인…. TV 드라마에도, 코미디 프로에도, 교과서에도 온통 ‘굴절된 일본’으로 넘쳐났어요. 과거에 대한 집착 때문에 한국의 젊은이들에게는 일본을 알 기회가 충분히 제공되지 못했어요.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우리는 영원히 일본에 뒤질 수밖에 없어요. 과거에 대한 증오를 버리지 않으면 일본보다 한 발도 앞서 나갈 수 없고, 그들의 장점도 흡수할 수 없어요. 야망, 응용, 아량, 확장, 균형 등 우리가 도입해야 할 그들의 장점이 무수히 많아요.”
그는 이런 이유에서 “1905년 을사조약 이후 1백 년, 한일수교 40주년이 된 2005년, 극일(克日)을 목표로 친일(親日)을 공표한 책을 썼다”고 말했다.
“우리가 착각을 하는 게 있어요. 일본이 우리를 대등하게 생각하는 줄 아는데 일본인들은 우리를 신경 안 써요. 우리가 필리핀이나 캄보디아에 신경 안 쓰는 것과 같아요. 우리만 한·중·일하지 걔네들은 중·일이에요. 우리만 일방적으로 ‘징징’거리는 거죠. 실체를 봐야 해요. 우리에게 없는 것은 가져오고 걔네들에게 없는 것은 줘도 돼요. 내가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그쪽이 얼마를 가지고 있는지 알아야 해요. 그래야 대화가 되고 타협이 이루어지죠.”
60년 동안 ‘친미’로 일관해왔으니 2년 정도는 친일파가 되어도 좋은 거 아니냐는 그는 우리에게 있는 옹졸함을 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본을 추월하기 위해선 ‘지일(知日)’ ‘친일’의 단계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고 거듭 말하는 그는 항간에 일고 있는 논쟁에 대해 “그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했던 ‘굴절된 일본관’을 잠재적인 것에서 공개적인 것으로 바꾸는 계기를 마련하는 데서 의미를 찾고 싶다”며 자신이 친일선언을 한 진정한 의미를 헤아려달라고 당부했다.

여성동아 2005년 2월 49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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