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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독점 인터뷰

이혼 소송 9개월 만에 협의 이혼한 김미화 첫 심경고백

“가족들에게조차 내보이지 못할 만큼 마음고생 겪었지만 저를 믿고 따라주는 두 딸 덕분에 견뎌냈어요”

■ 글·김지영 기자 ■ 사진·홍중식 기자

입력 2005.01.31 10:54:00

지난해 4월 남편의 가정 폭력 문제를 제기하며 이혼 소송을 청구해 충격을 던졌던 개그우먼 김미화가 9개월 만인 지난 1월 초 협의이혼 했다. “20여 년의 결혼생활 동안 고민해서 결정한 일이라 후회는 없다”는 그가 그간 차마 가족들에게조차 내보이지 못했던 힘겨운 속내와 두 딸, 친정어머니와 함께 사는 요즘 생활, 앞으로의 인생 계획 등을 털어놓았다.
이혼 소송 9개월 만에 협의 이혼한 김미화 첫 심경고백

개그우먼 김미화(41)가 지난 1월7일 남편 김모씨와 협의이혼 했다. 지난 86년 김씨와 결혼해 두 딸을 둔 그는 지난해 4월 남편의 가정 폭력 등을 이유로 이혼 소송을 청구했다. 하지만 남편 김씨 역시 같은 해 9월 “아내가 일방적으로 기자회견을 열어 매 맞고 살았다는 주장을 해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김미화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거는 한편 “이혼만은 안 된다”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해 치열한 법정공방을 예고했다.
그런 두 사람이 합의점을 찾아 협의이혼을 했다는 사실은 조금 의외의 일. 지난 1월11일 이혼 후 처음으로 기자와 인터뷰를 가진 그는 “이제 다 지난 일이고 원만하게 잘 끝났기 때문에 그간의 문제에 대해서는 새삼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다”면서 “소송으로 갔으면 앞으로 1∼2년은 더 걸렸을 텐데 서로 아이들을 위해 조금씩 양보한 덕분에 빨리 정리가 됐다”며 담담하게 말문을 열었다.
“저는 무엇보다 아이들의 친권과 양육권을 다 가져 그것으로 족해요. 남편도 2주에 한 번씩 아이들을 볼 수 있고 방학 때는 언제든 만날 수 있고요. 재산 분할에는 욕심내지 않았어요. 제가 아이들을 키우니까 6대 4로 나누어 조금 더 갖기로 했어요. 아이들이 저와 함께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혼 소송을 청구했는데 좋게 잘 끝나 감사해요. 친정어머니나 두 딸도 원만하게 빨리 마무리돼서 다행스럽게 여기고요.”
결혼생활 할 때 더 외로움 느껴, 남몰래 많이 울기도
현재 그는 두 딸, 친정어머니와 함께 서울 압구정동의 30평 아파트에서 전세로 살고 있다. 이혼 소송을 청구하기 직전 아이들과 서울 도곡동 집을 나와 지난해 초 홀몸이 된 친정어머니와 합치면서 이곳으로 이사했다고 한다. 그는 “전에 살던 타워팰리스는 나에게 과한 집이라 편하지 않았다”며 “지금은 작은 집에 살아도 돈으로 살 수 없는 충만한 행복감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저는 원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가난하게 자랐고 어릴 때부터 길거리에서 별의별 장사를 다 해봤지만 불행하다고 느낀 적은 없어요. 오히려 그런 경험 덕분에 지금 일상 속에서 느끼는 소소한 행복에도 가슴이 벅차요.”
이혼 소송 9개월 만에 협의 이혼한 김미화 첫 심경고백

그는 “여자들끼리 살다보니 옹기종기 거실에 모여 자고, 찜질방에 함께 다니는 재미가 쏠쏠하다”며 “무엇보다 나이 들어 친정어머니의 딸로 다시 돌아가 가끔 응석도 부리고, 마음 편히 효도를 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결혼해서는 딸의 도리를 다하고 싶어도 생각처럼 되지 않을 때가 많았는데 요즘은 옷도 맞춰드리고 함께 여행도 다니며 그 어느 때보다 마음 편하게 지낸다고.
“사실 결혼생활을 할 때가 더 외로웠던 것 같아요. 지독한 외로움을 느꼈죠. 친정 식구들과도 왕래를 잘 안 했어요. 동생부부는 아예 오지를 않았고요. 아마 동생이 중학교 1학년에 올라갈 때 제가 결혼했을 거예요. 이후에는 서로 불편하니까 왕래가 거의 없었는데 지금은 토요일마다 와서 같이 영화도 보고 스케이트도 타러 가고 그래요. 또 어머니나 아이들하고도 더 가까워지고 얘기할 기회도 많아졌고요. 이제야 제 식구들을 다 찾은 느낌이에요.”
하지만 소송을 제기하고 협의이혼을 하기까지 마음고생이 심했던 것 또한 사실. 그는 “무엇보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이런 마음으로 잘 견뎌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힘들 때가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이혼 소송 9개월 만에 협의 이혼한 김미화 첫 심경고백

“그때마다 부양해야 하는 두 아이와 친정어머니를 생각하며 더 강해져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았지만 누적된 정신적 고통으로 한동안 병이 난 적도 있어요. 갑자기 목소리가 쉬고 몸이 많이 아파서 일주일 동안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지 못했죠.”
그는 또 “아이들이 자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내 의지로 선택한 이혼이지만 과연 잘 한 일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 눈물로 지샌 날이 많다”면서 “그래도 가족들이나 남들 앞에서는 우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이혼 소송을 청구한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내내 담담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20여 년을 고민해서 결정한 일인 만큼 울고불고 할 상황도 아니었고, 다른 사람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면서 “이혼을 결심한 후보다 결혼생활 중에 더 많이 울었다”고 회고했다.
“차 안에서 혼자 많이 울었어요. 제가 원래 남한테 우는 모습 보이는 걸 싫어하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은 제가 정말 강한 줄 알아요. 저도 누가 좀 불쌍하게 생각해줬으면 좋겠는데 식구들조차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씩씩해 보이니까 제가 ‘엄마 불쌍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아이들은 ‘엄마는 우리 앞에서 안 울잖아. 엄마는 정말 강해’ 그래요. 그럼 저도 ‘그래 그게 나야. 난 강한 사람이야’ 했지만 저 자신은 힘들었어요.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헤쳐 나가야 했으니까요.”
아이들을 당차고 멋진 커리어 우먼으로 키우고 싶은 게 가장 큰 바람
그는 “가끔 아이들이 자는 모습, 엄마가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아프지만 내가 불쌍하다는 생각은 안 든다”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고, 설 자리가 있고, 또 해야 할 공부도 있다”며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얼마나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데 이혼이 문제겠어요. 힘들 때 가장 큰 힘이 되어준 게 아이들이에요. 아이들은 저를 굉장히 강한 엄마로 믿고 있어요. 저도 어려운 살림이지만 자식들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잘 키워주신 친정어머니처럼 강하고 당당한 엄마로 살고 싶어요.”
올해 그의 큰딸은 중 1, 작은딸은 초등학교 5학년생이 된다. 엄마와 허물없이 대화를 나누고 지금의 상황을 이해해줄 만큼 속 깊은 두 아이는 그가 이혼을 결심할 때도 이혼 결정이 났을 때도 흔들림 없이 그의 곁을 지켜주었다고 한다.
“아이들도 판단력이 설 만큼 컸고 어차피 알아야 할 일이기 때문에 이혼 과정에 대해 숨기지 않았어요. 아이들도 제가 생각을 물으면 자기 의사를 확실히 밝히거든요. 처음 이혼을 선택할 때도 아이들이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허락해줬어요. 또 종종 ‘엄마 힘내세요. 사랑해요’ 하는 메시지가 담긴 가슴 뭉클한 편지로 용기를 북돋워줬고요. 다만 아이들은 이혼 문제를 빨리 매듭짓기를 바랐어요. 결정 나기 전까지는 아빠 눈치도 보고 엄마 눈치도 봐야 하잖아요. 이제는 결정이 나서 아빠든 엄마든 편하게 볼 수 있어서 좋은가봐요. 서로 한집에서 살지 않을 뿐이지 아빠와 아이들 사이는 나쁘지 않아요. 저도 아이들이 아빠와 잘 지내기를 바라고요.”
그는 “앞으로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아이들만큼은 예쁘게 잘 키울 것이고 함께 사는 날까지 최선을 다해 뒷바라지해줄 것”이라고 각오를 다지면서 “아이들에게 고기 낚는 법을 가르쳐 당차고 멋진 커리어 우먼으로 키우고 싶다”는 엄마로서의 바람을 내보이기도 했다. 또한 그는 “처음 이혼 결정을 하고 난 후에는 무척 두렵고 겁이 났지만 결혼생활 내내 최선을 다했고 충동적으로 결정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인터뷰 내내 애써 담담한 모습을 보이던 그는 “뒤를 돌아봤을 때 내가 게을렀거나 방탕하게 살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은 행복해도 되는데, 노력한 만큼 행복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고 아쉬움을 표하며 끝내 눈시울을 적시고 말았다.

이혼 소송 9개월 만에 협의 이혼한 김미화 첫 심경고백

MBC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을 진행하며 새로운 것들을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김미화.


“제가 불쌍해요. 사실은…. 정말 행복하게 살았어도 좋았을 텐데…. 많은 분들한테 심려를 끼쳐 죄송해요. 열심히 살아왔고, 지금도 열심히 살고 있으니 제 입장을 헤아려주시리라 믿어요. 사실 그간의 마음고생을 어떻게 말로 다하겠어요. 제 곁을 지켜준 친정 식구들과 두 딸, 변함없는 믿음과 애정을 보여준 동료들, 지인들 덕분에 견뎌낼 수 있었어요. 물론 저도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열심히 기도했어요. 목사님도 좋은 얘기를 많이 들려주셨고요. 지난 연말에는 지금 하고 있는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으로 상까지 받았는데, 그런 감사한 일들과 아이들을 생각하면 앞으로 더욱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잘못된 인연이긴 했지만 남편도 잘 되기를 바라고요.”
어릴 때 힘들게 살아 불우한 이웃 도우며 행복 느껴
그는 지난해 연말 MBC 연기대상에서 MBC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으로 라디오 부문 우수상을 받았다. 지난 2003년 처음 시사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았을 때는 일각에서 우려를 표하기도 했지만 그는 오히려 청취자와 다름없는 아마추어적인 시각과 솔직하고 털털한 진행으로 편안한 분위기를 이끌어내며 대중들의 궁금증과 답답함을 속 시원하게 풀어주는 앵커로 나날이 인기를 더해가고 있다.
“딱딱하지 않고 편안해서 좋아해주시는 것 같아요. 청취자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모르는데도 아는 척하지 않아서요. 사람들이 가깝게 느끼니 좋고, 많이 부족한데도 잘 한다고 칭찬해주니 좋고, 또 프로그램을 준비하기 위해 인터넷을 서핑하면서 새로운 것들을 알아가는 재미도 있고요. 원래 한 곳에 안주하거나 뭐든 오래하면 질리는 성격인데 시사 프로그램은 할 때마다 새로운 내용을 다뤄 저한테 잘 맞아요.”
이혼 소송 9개월 만에 협의 이혼한 김미화 첫 심경고백

10여년 전부터 여성운동과 사회봉사활동에 앞장서온 김미화는 나중에 번돈을 사회에 기부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는 틈틈이 사회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는데, 10여년 전부터 시민단체의 홍보대사로도 활동해왔다. 이에 대해 그는 “유명인으로서의 마땅한 도리”라며 “어릴 때부터 유명한 사람이 되면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해왔다”고 한다.
“무허가촌 같은 데서 살았기 때문에 주변에 불우한 사람들 천지였어요. 어린 눈으로도 정말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저도 그들과 함께 밀가루, 라면을 타다 먹곤 했는데 따뜻한 관심을 보내오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어요. 그때부터 사회복지에 관심을 갖게 됐고, 뒤늦게 성균관대에 들어가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있죠.”
2월 말 대학을 졸업하는 그는 “지금은 지쳐서 대학원 진학을 미루었지만 계속 공부해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싶다”면서 “돈은 모으는 것보다 잘 쓰는 것이 중요한 만큼 나중에 번 돈을 사회에 기부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밝혔다.
“봉사활동을 하다보면 돈으로 살 수 없는 기쁨을 맛보게 돼요. 시간 뺏기고 돈도 안 받고 일하면 손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즐긴다는 기분으로 봉사활동을 하면 저도 신나고, 또 그분들이 저를 위해 기도해주니 고맙고요. 그런 기쁨을 맛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정말 불쌍한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아이들이 저로 인해 웃고, 이웃들이 저로 인해 웃고, 얼마나 기쁜 일이에요.”
여성운동이나 사회봉사활동에 앞장서온 그는 정계의 러브콜을 끊임없이 받았지만 자신이 서야 할 자리가 어딘지 알기에 매번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고.
“사람에게는 다 자기에게 맞는 자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어디까지나 코미디언이고 제가 좋아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일 뿐이에요.”

이혼 소송 9개월 만에 협의 이혼한 김미화 첫 심경고백

매일 따뜻한 밥을 차려주고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을 헌신적으로 키워주고 계신 어머니와 밝고 착하게 자라주는 두 딸이 있어 든든하고 행복하다는 김미화.


방송이나 봉사활동을 할 때는 개그우먼으로서의 재치와 웃음을 한껏 보여주지만 평소에는 말수가 적다고 한다. 방송에서 워낙 말을 많이 하다보니 끝나면 힘들고 지쳐 조용히 있고 싶어진다고.
그는 한동안 KBS ‘개그콘서트’에 출연하며 코미디 연기에 주력했지만 지금은 코미디 프로그램 출연을 자제하고 있다. 그동안 출연 제의는 끊이지 않았지만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코미디 연기를 겸하면 양쪽 프로그램 모두에 누를 끼칠까 우려해 일부러 사양해온 것.
“코미디를 우습게 생각해서가 아니에요. 저는 코미디언으로서 굉장한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 더없이 좋은 직업이고 저를 여기까지 있게 해준 직업이죠. 좋은 일을 하는 것도 코미디언으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제가 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앞으로도 저는 제가 사회운동이든 방송활동이든 잘 해낼 거라 믿어요. 마인드 컨트롤을 잘 하거든요. ‘잘 할 수 있어. 잘 할 거야’ 하고 저 자신을 응원하다보면 자신감도 생기고 기분도 좋아지죠(웃음).”
좋은 인연 만나면 거부할 생각 없지만 지금은 결혼생활에 지친 상태
그는 “이미 오래 전부터 홀로 서는 연습을 해온 거나 다름없기 때문에 이혼의 후유증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는다”며 “이제는 마흔 중반을 향해 치닫는 나이라 앞가림을 못하거나 새삼 방탕하게 사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제 2의 인생을 시작한 만큼 방송활동이든 사회봉사든 더 열심히 해서 그간 많은 관심과 애정을 보여준 분들에게 보답하고 싶다”는 그에게 남은 문제는 그동안 소홀했던 건강관리에 힘쓰는 일.
평소 영양 섭취에 신경을 쓰고 가끔 집에서 운동을 한다는 그는 요즘은 그나마도 못하고 있다. 방송이 끝나는 대로 큰아이를 데리러 학원에 가기 때문에 운동할 시간이 없다는 것.
“나이도 나이고, 더 씩씩하고 강한 엄마가 되기 위해서라도 운동을 열심히 하려고 해요. 현재로선 저녁에 하기는 힘들고, 아침이나 점심 때 한가한 시간을 이용해야 할 것 같아요. 주말에는 운동하기 힘들어요. 교회도 가야하고, 식구들과 오붓한 시간도 가져야 하고, 여기저기 행사도 다녀야 해서 평일보다 10배는 바쁘거든요.”
그는 얼굴이 작고 피부가 고와서 실물이 방송으로 볼 때보다 훨씬 어려 보인다. 그는 “어머니와 같이 살면서 밥을 잘 먹어 3kg이나 불었다”면서 “원래 얼굴에 주름이 없는 편인데 살까지 붙어 더 팽팽해진 것 같다”며 웃었다.
“요즘 들어 얼굴이 편해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듣는데, 마음을 편하게 먹어서 그런가봐요. 컨디션이 한참 안 좋을 때는 언제라도 울 준비가 되어 있었어요. 누군가 조금만 건드리면 울음이 터질 것 같았으니까요.”
그에게 앞으로도 계속 솔로를 고집할 것이냐고 묻자 “앞일을 장담할 수는 없지만 지금은 결혼생활에 지친 상태”라고 말했다. 그래도 좋은 인연을 만나면 거부할 생각은 없다고 한다.
“주변에서 벌써부터 ‘좋은 사람 소개시켜주겠다’며 관심을 보이는데, 전 싫어요. 아이들, 어머니와 함께 사는 지금 생활에 만족해요.”
그는 앞으로도 지금처럼 편하고 건강하게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바랄 뿐이라고 한다. 매일 따뜻한 밥을 차려주고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을 헌신적으로 키워주고 계신 어머니와 밝고 착하게 자라주는 두 딸이 있어 든든하고 행복하다고.
“제가 자식 복은 있어요. 가정적으로 아픔이 있었는데도 비뚤어지지 않고 말썽 피운 적도 없거든요. 공부도 무척 잘 하고요. 전학 간 학교에서도 친구들과 금방 친해져 적응을 잘 하고 있어요. 아이들은 아기 때부터 친정에서 어머니가 키워주셨어요. 큰딸은 열 달 동안 누워 지내며 낳은 아이라 어릴 때부터 끼고 살고 싶었는데 사정이 여의치 않아 그러지 못했어요. 또 타워팰리스로 이사하면서 데리고 왔을 때는 안 좋은 모습만 보이게 돼 미안할 때가 많았고요. 그래서 지금 아이들과 함께 웃으면서 살 수 있어 감사한데 더 이상 뭘 바라겠어요. 정말 지금처럼만 살고 싶어요.”

여성동아 2005년 2월 49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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