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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그에겐 특별한 것이 있다

새 앨범 발표하고 제2의 전성기 맞은 ‘록의 황제’ 전인권

“혼란스러웠던 40대에서 벗어나 50대를 맞으니 청년 같은 의욕과 열정이 되살아나요”

■ 글·김지영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 장소협찬·아라 갤러리앤카페

입력 2005.01.03 10:42:00

최근 새 앨범을 발표한 전인권이 공연과 방송활동을 활발하게 펼치며 새로운 도약에 나섰다. 이혼의 아픔을 딛고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그가 33년 음악인생과 두 자녀를 둔 아버지이자 한 남자로서의 삶, 영화배우 이은주와의 특별한 우정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새 앨범 발표하고 제2의 전성기 맞은 ‘록의 황제’ 전인권

시대를초월한 자유분방함과 열정적인 무대 매너로 폭넓은 사랑을 받아온 가수 전인권(51)이 최근 4집 ‘전인권과 안 싸우는 사람들’을 발표했다. 2년여 만에 선보인 이번 앨범에는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타이틀곡 ‘걱정말아요’를 비롯한 9곡의 신곡과 함께 히트곡 ‘사랑한 후에’를 비트가 강한 록 버전으로 편곡한 ‘사랑한 후에 2004’, 전인권 스타일로 바꾼 신중현의 ‘미인’, 송골매의 ‘모두 다 사랑하리’, 존 레논의 ‘이매진’ 등이 수록돼 있다.
첫눈이 내리던 날, 백발이 성성한 독특한 헤어스타일에 긴 트렌치코트 차림으로 나타난 그는 이번 앨범에 ‘사랑하면 행복해진다’는 메시지와 함께 “남자로서 인생의 마지막 승부를 걸어야 하는 50대를 시작하는 만큼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담았다”며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남들은 어떻게든 어려 보이려고 노력하지만 저는 일부러 염색을 안해요. 청년 같은 목소리에 백발이 어우러지면 재미있잖아요. 저는 나이 먹는 게 좋아요. 40대 때도 하루 빨리 50대가 되기를 고대했어요. 40대에는 너무 혼란스럽고 왠지 슬펐어요. 할머니만 봐도 눈물이 날 정도로요. 지금은 의욕이 넘쳐요. 남자 나이 50이면 뭔가 결정을 해야 하는 시기에요. 남자로 태어나서 인생의 승자가 되느냐, 패자가 되느냐는 이제부터 어떻게 사느냐에 달려있기 때문에 방송출연도 마다하지 않고 공연 준비도 하면서 정말 열심히 살고 있어요.”
딱딱한 학교생활이 싫어 고1 때 그만두고 아마추어 밴드 결성
80년대 그룹 ‘들국화’의 리더 겸 보컬로 절정의 인기를 누렸고,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록의 황제’로 군림하고 있는 전인권. 어릴 적 그의 꿈은 만화가나 화가가 되는 것이었다고 한다. 실향민의 3형제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풍부한 감수성을 타고난 데다 예술적인 재능이 많은 가족들의 영향을 받아 자연스럽게 미술에 심취해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하지만 공부는 하기가 싫었어요. 형식적인 틀에 얽매여야 하는 학교생활도 갑갑했고요. 그러다 중학교 때 한 선생님의 말씀이 제 인생을 바꾸어 놓았어요.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살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는다. 너희도 많은 경험을 해보라’고 하셨는데 그 말씀이 가슴 깊이 와 닿았어요. 덕분에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학교를 그만두는 용기를 낼 수 있었죠.”
그는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었다. 교우 관계나 학교생활에 큰 문제가 없던 그가 학업을 중단하자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형들은 그를 어떻게든 학교에 보내려고 몽둥이 세례를 퍼부었다. 하지만 그는 맞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고 한다. 오늘 하루만 고집 피우면 내일 모래쯤부터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는데 하루를 못 참아내는 건 바보 같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후 그는 작은형에게 기타 치는 법을 배운 뒤 아마추어 밴드를 만들어 집 뒤 북악산 기슭 삼청공원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음악다방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본격적인 가수의 길로 들어섰다.
당시 그에게 가난은 돈을 벌어야 한다는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기폭제가 되어주었다. 그는 전국 각지의 클럽과 호텔 나이트클럽을 누비고 다니며 돈을 벌었고 그 와중에 만난 조덕환(기타), 허성욱(키보드), 최성원(베이스)과 의기투합해 83년 그룹 ‘들국화’를 결성했다.

새 앨범 발표하고 제2의 전성기 맞은 ‘록의 황제’ 전인권

85년 방송에 출연해 ‘들국화 1집’을 발표한 이들은 ‘서태지와 아이들’ 못지않은 충격을 던졌다. ‘행진’ ‘그것만이 내 세상’ ‘사랑일 뿐이야’ ‘매일 그대와’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등 주옥같은 노래들로 채워진 이 앨범은 당시 80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하고, 가요평론가들이 뽑은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 중 1위에 오르는 영광을 차지했다. 하지만 들국화는 이듬해인 86년 2집을 발표한 후 해체됐다. 그리고 전인권은 88년 ‘사랑한 후에’, ‘돌고 돌고 돌고’ ‘헛사랑’ 등의 노래가 담긴 본격적인 솔로 앨범 ‘전인권 1집’을 발표했다.
이후 그는 사물놀이 일인자 김덕수와 의기투합해 4년 동안 함께 공연을 하면서 우리나라 타악기를 세계적으로 알리는 시도를 했고 창에 빠져 지내기도 했다. 그렇게 자신의 음악세계를 구축해가다 마약에 손을 대는 실수를 범하기도 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지난 33년간 온전히 음악을 위해 살았고, 그 속에서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을 해왔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노래 중에 ‘사랑한 후에’를 가장 좋아한다는 그는 “지금도 ‘사랑한 후에’ 전주만 들어도 가슴이 설렌다”며 “이번 앨범에 새롭게 편곡해 다시 담은 이유도 시끄러운 음악이라고 잘못 알려져 있는 록에 대한 편견을 깨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록이 대중적인 사랑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가슴을 울리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록은 시끄럽고 어려운 음악이 아니에요. 시끄럽다고 생각될 때는 작게 들으세요. 그럼 드럼소리가 잘 들릴 것이고 여기에 재미가 느껴지면 록음악이 재미있어지죠. 저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록음악이 즐거운 음악이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뮤지션이 되고 싶어요.”
대상포진으로 고생하지만 딸린 식구들 생각하면 쉴 수 없어
현재 그는 대상포진이라는 병을 앓고 있다. 1년전 감기몸살인 줄 알고 계속 약을 먹었는데도 별다른 차도가 없어 병원에 갔다가 대상포진이라는 진단을 받은 것. 대상포진은 수두 바이러스가 잠복해있다 신경세포에 침투하면서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의 말에 따르면 “미쳐버릴 것 같은 통증이 따르는 고통스런 병”이라고 한다. 이를 치료하려면 항바이러스제를 써서 신경세포를 죽이거나 잘 먹고 푹 쉬는 방법밖에 없는데 그는 둘다 못하고 있다.
“신경을 죽이면 노래를 못할 것 같고, 또 딸린 식구들이 많아서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상황이 아니거든요. 의사는 당시 하느님이 무조건 쉬라고 주신 병이니 무조건 쉬라고 했지만 제가 책임져야 하는 두 아이와 매니저, 저와 함께 활동하는 뮤지션들과 그 가족들을 생각하면 도무지 쉴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또 이혼한 아내도 그 안에 속해있고요. 그 여자가 가난하면 내가 즐겁게 살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따로 쉬지는 못하고 정기적으로 한번씩 병원에 가서 응급치료를 받아요.”
지금 그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건강을 잘 관리하는 일. 예전에는 한번씩 집 근처 산에 올랐다는 그는 요즘은 아파서 못하고 대신 집에서 가볍게 체조를 한다. 또 대상포진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진 영지버섯과 양파를 열심히 먹고, 무슨 일이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저는 원래 스트레스를 잘 받지 않아요. 어릴 때 산을 많이 타 디딜 데와 안 디뎌야 할 데를 구분하고 다니면서 자연적으로 그런 지혜가 생기지 않았나 싶어요. 지금 앓고 있는 병을 생각해서라도 스트레스 받는 일은 하면 안 되고요. 제 나이가 되면 잔주름도 생기고 피부도 칙칙해지게 마련인데 지금도 손이 30대 피부처럼 건강하고 매끄러운 것도 그 덕분이에요(웃음).”

새 앨범 발표하고 제2의 전성기 맞은 ‘록의 황제’ 전인권

한번만 봐도 잊혀지지 않을 것 같은 강렬한 인상에 카리스마 넘치는 허스키한 목소리 때문일까. 그는 언뜻 거칠고 투박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어눌하면서도 겸손한 말투에서 순간순간 묻어나는 순수함과 난처한 질문에도 스스럼없이 털어놓는 솔직 담백한 모습은 그동안 그에게 가졌던 고정관념을 깨기에 충분했다.
“저는 사람들이 터놓은 길로 가지 않아요. 그래서 눈이 오는 날에는 조심조심 가야 하는데 제 파트너가 옆에서 가지 말라고 하면 그때 거칠어지죠. 또 강한 이미지를 풍기는 것도 그런 맥락인데, 착해서 강할 수 있는 거예요. 착하지 않으면 강해질 수 없어요. 예전에 아내에게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아이들이 너무 착하다고요. 저도 아이들 같은 마음을 가져서 어떤 난관이든 극복해나갈 자신이 있어요.”
하지만 그가 가는 길이 왠지 외로워 보인다. 언젠가 그도 한 인터뷰에서 “연예인은 지독한 외로움을 느끼며 산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그가 느끼는 지독한 외로움은 어떤 것일까.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이혼하고 나서 한동안 지독히 외로웠어요. 딸아이와 아들, 저 그렇게 세 식구가 살고 있는데 딸아이가 한번은 제가 좋아하는 닭도리탕을 한 솥 가득 끓여놓았더라고요. 아침에 일어나 저 혼자 그 많은 닭도리탕을 먹으려고 하니 왠지 서글프기도 하고, 제 자신이 초라한 느낌이 들어 마음이 참 헛헛했어요. 아이들이 학교 가고 없을 때나 아내의 빈자리가 느껴질 때면 지독한 외로움이 밀려들곤 해요. 하지만 제가 오랜만에 3집을 내고, 이번에 또 음반을 낼 수 있었던 것도 고독함 덕분이에요. 고독하지 않으면 전 너무 낙천적이기 때문에 일에 대한 의욕이 지금만 못했을 거예요.”
영화배우 이은주와 26세 나이 차 뛰어넘는 특별한 우정 나눠
나이에 얽매이지 않고 지금도 청춘 같은 열정을 보여주는 이 남자. 마음이 느끼고 원하는 대로 표현하는 그를 그래서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말하는지 모른다. 그도 자신을 ‘자유주의자’라고 밝힌다. 그는 “생각과 행동이 자유롭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다”며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하는 생각과 행동을 하는 사람, 모험하기를 주저하는 사람은 영원한 조연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는 ‘기인’이라는 말은 좋아하지도 않고,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며 “나는 그저 여자를 좋아하는 날라리 가수일 뿐”이라고 말한다.
“여자가 없으면 음악도 안했을 거예요. 누가 나를 봐준다는 것만큼 매력 있는 일도 없거든요.”
그는 자신에게 어린아이 같은 면이 많다며 “그런 나를 감싸주고 보듬어줄 수 있는 성숙한 여자가 이상형”이라고 밝힌다. 하지만 아직 이상형을 만나지 못해 현재 진행중인 사랑은 없다고 한다.
“그래서 고독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여자보다 일에 더 빠져 있어요. 이번 4집 앨범을 준비하면서 지난 10년간 잊고 지냈던 활기찬 느낌과 음악에 대한 열정을 되찾아 일에만 전념하고 있죠.”
그의 하루는 아침에 일어나 기지개를 펴고, 소리 질러 목청을 다듬는 것으로 시작된다. 서울 삼청동에서 유년기부터 지금까지 살고 있는 그는 요즘 집 근처 군부대에서 들리는 군인들의 행군 소리와 나팔소리, 하늘에서 지저귀는 새 울음소리까지도 놓치지 않고 오감으로 흡수한다. 그 속에서 음악적 영감을 얻고 삶에 대한 강한 의욕을 느낀다는 그를 바라보는 두 아이의 표정도 전보다 한결 밝아졌다고 한다.
“아이들과는 친구처럼 지내는데, 제가 활기차게 사니 아이들도 좋아해요. 제가 아이들을 믿는 것처럼 아이들도 저를 무척 신뢰하는데 가족끼리 서로 믿으며 살 수 있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에요. 아들 진환이는 제가 무슨 얘기를 하면 아빠를 믿고 있다는 눈빛을 보내는데 그때 참 흐뭇하고 뿌듯해요. 제가 아이들 교육 하나는 잘 시킨 것 같아요(웃음).”

새 앨범 발표하고 제2의 전성기 맞은 ‘록의 황제’ 전인권

앞으로 일본에서 콘서트도 열고, 그동안 기부 문화 정착을 위해 꾸준히 해온 공연 수익금 1% 나눔 운동을 계속해나갈 계획이라는 전인권.


그는 아이들이 자율적으로 생활하도록 가르쳐왔다. 아이들에게 공부하라는 말 대신 “공부는 나중에 세상을 재미있게 살기 위해 하는 거니까 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너의 개성이 나오기 전까지는 공부하는 게 낫다”는 얘기를 종종 들려준 것. 그래서인지 그동안 공부도 스스로 알아서 잘 해왔고, 또 어디를 가든 사람들과 금방 친해져 분위기를 주도하는 리더십을 발휘하는 큰딸 인영을 보면 든든하고 듬직하다고 한다.
그는 모처럼 여가가 생기면 달 그림을 그리거나 드럼 소리를 듣는다. 또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한다. 요즘에는 바빠서 사람 만날 시간이 없다는 그는 “가장 최근에 만난 사람은 지석진”이라며 “원래 꿈이 가수라 나를 존경해왔다는데 참 진지하고 예의바른 친구라 좋아하게 됐다”고 했다.
그가 평소 자주 어울리는 사람들 가운데는 영화배우 이은주(25)도 있다. 그는 지난 10월 영화 ‘주홍글씨’의 시사회에 참석해 주연 이은주에게 꽃다발과 함께 축하 메시지를 전해 관심을 끌었다. 이후 일부 사람들이 ‘두 사람이 사귀는 것 아니냐’는 의혹의 눈길을 보내기도 했지만 이에 대해 전인권은 “가끔 만나고 친구처럼 지내니 사귀는 거나 다름없다”며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그 친구가 제 공연에 자주 와주어서 저도 보답하기 위해 간 거예요. 그 친구와 만나면 같이 밥 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문자메시지도 주고받으며 안부를 묻곤 해요. 연예계 후배로서 제가 아끼는 친구죠. 그 친구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정말 무서울 정도로 대단한 배우라는 생각이 들어요. 인기나 돈을 쫓는 요즘 젊은이들과 다르게 소신껏 연기생활을 하고,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하고, 또 영화인 중에서도 굉장히 인간적이라 저도 그 친구의 팬이 됐죠. 저희는 서로 팬클럽 회원이에요.”
두 사람은 5년여 전 팬과 가수로서 처음 만났다고 한다. 당시 드라마 ‘카이스트’에 출연하고 있었던 이은주가 작가 송지나와 함께 평소 좋아하던 가수 전인권의 공연장을 찾으면서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어 26년 나이 차를 뛰어넘은 우정을 쌓아온 것. 그는 “나이 차가 많이 나는데도 친구처럼 지낼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 말과 생각이 통하면 어떤 사람과도 친구가 될 수 있다”면서 “그 친구를 보면 굉장히 외롭게 자란 흔적이 있고 그래서 아주 성숙해보일 때도 있는데, 어떤 때 보면 무지 어리다”며 허허 웃었다.
그는 또 “여자로 보이진 않느냐”고 짓궂게 물었더니 “여자로 보일 때도 있다”면서 “그 말 자체에 무한한 가능성이 내포돼 있기 때문에 그 이상의 질문에는 노코멘트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그 친구 엄마와 제가 동갑이에요. 또 엄마, 동생, 이모, 오빠 할 것 없이 그 친구 가족들이 전부 저의 팬이고요. 그래서 공연할 때면 표를 다 줘야 하는데 그런 팬들이 있어서 좋아요.”
50대를 맞이하면서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제 2의 인생을 시작한 전인권. 그는 인터뷰 말미에 “앞으로 일본에서 콘서트도 열고, 그동안 기부 문화 정착을 위해 꾸준히 해온 공연 수익금 1% 나눔 운동을 계속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히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요즘 경제적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불황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가난을 즐기는 거예요. 가난 자체를 괴로워하지 말고 더 힘들었던 때를 생각하면서 기운을 내고, 또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면서 정을 나눠야 해요. 저는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게 아니라 같은 정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해서 아주 오래 전부터 1% 나눔 운동을 해왔어요. 그런데 그것도 중독이에요. 누구를 돕기 위해 공연을 하고, 또 그 도움에 일조하기 위해 공연을 보러오고 그러면 저도 관객들도 몸과 마음이 신명날 수밖에 없어요.”

여성동아 2005년 1월 4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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