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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권말부록|명문대 진학한 6인의 공부습관

미국 10개 명문대 합격하고 하버드대 진학한 박원희

“어릴 때 서재로 꾸며진 안방에서 놀면서 책과 절로 친해졌어요”

■ 기획·이한경 ■ 기자 글·장옥경 ■ 사진·정경택 기자

입력 2004.11.16 14:44:00

지난 2월 민족사관학교를 2년 만에 졸업한 박원희양. 그는 올해 4월 미국 10개 명문대로부터 합격통지서를 받고 지난 9월 하버드대로 떠났다. 원희양은 한 달 이상 해외에 머물러본 적이 없으면서도 SATⅡ 작문시험에서 만점을 받아 화제를 모았다. 박양과 어머니 이가희씨가 외국에 나가지 않고도 놀랄 만한 성적을 올린 공부법에 대해 들려주었다.
미국 10개 명문대 합격하고 하버드대 진학한 박원희

“4월1일에 스탠퍼드, 2일에 하버드, 6일에 프린스턴… 이런 식으로 10개 대학으로부터 합격통지서가 날아왔어요.”
지난 2월, 민족사관학교를 2년 만에 수석으로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 프린스턴, 스탠퍼드, 코넬, 듀크 등 10개 명문대학에 합격해 화제를 모으고 있는 박원희양(17). 그는 지난 9월 하버드대로 떠났다.
원희양은 올초 민족사관학교를 졸업하며 5.0 만점을 받았다. 또한 민족사관학교에 다니며 이미 미국 대학 교양수업 11개 과목을 이수했는데 그것 역시 모두 만점을 받았다. 미국 대학 진학 적성검사인 SATⅠ은 1천6백점 만점에 1천5백60점, SATⅡ에서도 거의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얻었다. 특히 미국 학생들도 어려워하는 SATⅡ 작문(Writing) 과목에서 8백점 만점을 받는 기염을 토했다. 원희양의 뛰어난 실력에 UC버클리대학에서는 4년간 장학금을 주겠다는 제의를 했다. 그러나 원희양은 이미 지난해 10월 삼성 이건희 해외유학 장학생으로 선발돼 연간 5만달러씩 4년간의 장학금을 받기로 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영어일기 쓰고 영어 공부
놀라운 건 이같은 탁월한 영어 실력을 가진 원희양이 해외에서 장기 체류한 적이 없다는 사실. 원희양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어학연수를 위해 3주 동안 미국 LA에 머물고, 중학교 2학년 때 시 교육청 행사에 뽑혀 열흘 동안 시애틀을 방문한 것, 고등학교 1학년 때 수학여행으로 2주 동안 미국 동부 지역의 명문대를 탐방한 것 외에는 해외 경험이 없다.
“어떻게 공부했느냐”는 질문에 원희양은 “공부에 왕도는 없다”고 딱부러지게 말했다. 실제 그의 공부법을 들어보면 ‘왕도는 없고 노력만 있다’는 것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어렸을 때부터 책 읽는 것을 좋아했어요. 유치원 때도 또래들이 레고를 가지고 놀 때 전 혼자서 책을 읽고, 글씨 연습을 했어요. 엄마가 10칸짜리 깍두기 공책을 사다주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어요.”
주부이자 지방 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이기도 한 어머니 이가희씨(42)는 어린 시절 원희양과 한 살 터울의 남동생을 재울 때 자장가를 불러주는 대신 책을 읽어주거나 구연동화를 들려줬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원희양도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해 이책 저책 가리지 않고 읽었는데 특히 안과의사인 아버지 박영규씨(43)의 해부학책을 즐겨 봤다고.
“초등학교 1학년 때쯤 학교에서 심장을 그리는데 다른 아이들이 모두 하트 모양을 그릴 때 저는 해부학책에서 본대로 심장 모양을 그리고 심방, 심실, 대동맥, 정맥까지 표시했어요. 그래서 애늙은이란 소리를 듣기도 했죠(웃음).”
원희양은 초등학교 1학년 때 영어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한국인이 운영하는 학원 한 곳을 선택해 매일 1시간씩 4학년 때까지 지속적으로 다녔다. 원희양이 영어 학원에 다니는 동안 어머니 이씨 역시 영어 회화를 공부했다고 한다. 회화 실력은 학원에서 배운 표현을 얼마나 많이 연습하고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점을 잘 아는 이씨는 원희양과 수시로 영어로 대화를 나누었다고.

미국 10개 명문대 합격하고 하버드대 진학한 박원희

어머니 이가희씨는 원희양이 워낙 알아서 공부하는 스타일이라 자신이 해준 게 별로 없다며 쑥스러워했다.


원희양이 미국 학생들도 어려워한다는 SATⅡ 작문시험에서 만점을 받을 정도로 뛰어난 영어작문 실력을 갖출 수 있었던 건 영어 회화 공부와 함께 시작한 영어일기 쓰기 덕분이다.
“처음엔 ‘I’m going to institute(나는 학원에 간다)’처럼 간단한 몇 문장으로 시작했어요. 하루는 영어일기를 쓰고 그 다음날은 한글일기를 썼지요. 6학년이 되어서는 일어로 일기를 썼고요. 그 무렵 ‘체리’나 ‘세일러 문’ 같은 일본만화를 읽고 싶어서 일어 공부를 시작했거든요.”
원희양의 영어 발음은 거의 원어민 발음에 가깝다. 국내에서만 자랐다고 보기에는 놀라울 정도. 이같은 결과는 6학년 때 ‘영어 스피치 대회’에 나가기 위해 학원에서 발음 교정을 철저히 한 덕분이라고 한다. 대전 전민중학교 시절부터 연극반 활동을 하며 영어 연극을 한 것 또한 그의 영어 실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됐다. 원희양은 지난해 자신이 대본을 쓰고 연출한 작품으로 천안외국어대 주최로 열린 전국고교영어역할극대회 등 3개 영어연극대회에서 대상·금상·은상 등을 수상했다.
대전 전민중학교에서 전교 1등을 도맡아했던 그는 중학교 2학년 때 학교 시험과 수학경시대회, 영어연극대회가 비슷한 시기에 치러지는 바람에 딱 한 번 1등을 놓쳤다고 한다.
“아는 선배가 영어연극대회에 나가자고 해서 매일 수업 끝나고 모여 오후 6, 7시까지 연습을 계속했어요. 그러고는 학원에 가서 수학경시대회를 준비했고요. 그랬더니 기말고사 성적이 뚝 떨어져 3등을 하고 말았어요. 친구들이 ‘쟤, 공부 잘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네’ 하는 소리를 하니까 정말 억울하더라고요. 난 다른 것들을 준비하느라 그랬던 건데….”
아직도 아쉬움이 남은 듯한 그는 “하지만 바로 다음번 시험에서 1등을 되찾았다”며 웃었다. 옆에서 딸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어머니 이씨에 따르면 원희양은 당시 수학경시대회에서는 동상, 영어연극대회에서는 1등을 차지했다고 한다. 그는 “제 딸이지만 승부욕이 정말 대단하다”며 한 가지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한꺼번에 세 가지 일이 닥치자 세 가지 모두 잘 하려고 무척 노력하더라고요. 연극 연습이 끝나면 서둘러 밥을 먹고 학원에 가서 수학경시대회 수업을 들었어요. 그런데 저녁 8, 9시면 졸음이 쏟아질 때잖아요. 원희는 졸지 않으려고 샤프 펜으로 손톱밑을 ‘콕콕’ 찌르며 졸음을 참더라고요. ‘그러면 파상풍에 걸릴 수 있다’고 주의를 줬더니 이번엔 주먹으로 허벅지를 때려가며 공부를 했어요.”
그는 또 “본래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스타일은 아닌데 그때만은 학원에서 돌아와 새벽 3, 4시까지 공부를 했다”고 말했다.
원희양은 이때처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개 자정 무렵에 잠들어 등교시간이 다되어 일어날 정도로 잠을 충분히 잤다고 한다. 잠을 실컷 자는 대신 일단 책상에 앉으면 집중해서 공부했다고.
“공부를 할 때는 누가 옆에서 무슨 소리를 하는지 잘 몰라요. 입을 벌리고 공부를 하다가 침이 흘러서 떨어져도 잘 모를 정도죠. 공부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침을 뚝 흘려 얼른 휴지로 닦곤 했어요(웃음).”
민족사관학교에 진학한 건 부모의 권유 때문이었다. 딸이 학교에서 전교 1등을 하면 ‘다음번에는 대전시에서 1등을 해보라’며 늘 보다 큰 꿈을 꾸도록 조언했던 어머니 이씨가 딸에게 ‘세계 무대를 겨냥해 공부해보는 건 어떻겠냐’고 권했던 것.

미국 10개 명문대 합격하고 하버드대 진학한 박원희

원희양의 가족사진. 원희양의 오른쪽은 친할아버지. 원희양은 어렸을 때 안과의사인 아버지의 해부학책을 즐겨 읽었다.


“엄마가 민족사관학교에 가서 미국 명문대에 진학하면 어떻겠냐고 하셨을 때 잘 할 수 있을지 솔직히 자신이 없었어요. 중학교 때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다고 해도 민족사관학교는 전국의 수재들이 모이는 곳이잖아요. 하지만 제가 민족사관학교에 들어가면 엄마도 생활한복을 입고 지내고, 아빠도 1주일에 하루는 생활한복을 입고 진료를 하시겠다고 해서 한번 도전해보기로 했죠.”
예상했던 것처럼 민족사관학교에서의 공부는 쉽지 않았다. 민족사관학교를 목표로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혼자 공부해 무난히 합격은 했지만 막상 입학하고 보니 다른 친구들은 2시간 만에 읽는 영어 원서를 원희양은 꼬박 일주일이 걸려야 뗄 수 있었다.
“전 줄곧 ‘꼴찌 3형제’ 중 한 사람이었어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잠을 줄이고 셰익스피어, 톨스토이, 헤밍웨이 등의 작품을 원서로 읽기 시작했어요. 이해가 될 때까지 매일 반복해 읽었어요. ”
1학년 말부터는 점심시간마다 밥을 먹기 위해 기숙사에 다녀오는 시간이 아까워 도시락을 쌌다. 민족사관학교는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는데 원희양은 보온도시락을 준비해 아침마다 식당에서 점심에 먹을 밥을 챙겨 담았다. 그리고 친구들이 점심을 먹으러 기숙사에 간 사이 교실 밖에 나와 혼자 도시락을 먹고 교실에 들어가 공부를 했다. 처음엔 이 유별난 행동으로 친구들의 눈총을 받았지만 곧 그의 공부법에 동참한 친구들이 늘어나 ‘도시락 클럽’까지 생겼다고 한다. 전국의 수재들이 몰린다는 민족사관학교에서 2년 만에 수석 졸업하는 영예를 안을 수 있었던 건 이같은 끈질긴 노력과 악바리 같은 근성 덕분이다.
원희양은 자신의 경험상 “영어 공부는 단어를 무조건 외우기보다 영어로 된 세계 명작을 많이 읽는 게 더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며 자신의 영어 공부 노하우를 들려주었다.


여성동아 2004년 11월 4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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