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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지로부터 아시아의 영웅으로 선정된 탤런트 홍석천

“커밍아웃 후 많은 것을 잃었지만 감사할 일도 많아요”

■ 글·김유림 기자 ■ 사진·박해윤 기자

입력 2004.11.11 14:11:00

연예인으로는 최초로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고백한 홍석천이 지난 10월 중순 발매된 ‘타임’지 아시아판에서 ‘아시아의 영웅’으로 선정됐다. 사회적 소수자들의 대변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를 만나 4년 동안 겪었던 좌절, 그리고 다시 찾은 행복에 대해 들어보았다.
타임지로부터 아시아의 영웅으로 선정된 탤런트 홍석천

“축하 받아야 될 일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다만 국내에선 인정해주지 않았던 일을 외국에서 먼저 인정해주었다는 사실에 감사하죠.”
지난 2000년 연예인으로서는 최초로 동성애자임을 밝힌 홍석천(33)이 국내 여자 골프선수 송아리와 함께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올해의 ‘아시아의 영웅 20’에 선정됐다. ‘타임’지가 선발한 20명은 ‘40세 이전의 젊은 나이에 패기와 정신력으로 용감하고 대담하게 행동하며 뛰어난 업적을 이루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데, 홍석천은 ‘성적소수자들의 문제를 세상 바깥으로 끌어낼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었다’는 점에서 선정되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웅’으로 선정되었다는 사실이 기쁘면서도 한편 당황스러웠다고 한다. 아직까지 그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곱지 않고 이번 일로 자신을 포함한 동성애자들이 또 한번 가십거리로 회자되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 때문.
“오늘 아침 인터넷으로 저와 관련된 기사를 읽었는데 기사 밑에 많은 비판의 글이 올라와 있더군요. 물론 격려나 칭찬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 너무 심하다 싶을 정도의 글이 있어 저도 글을 남겼죠. ‘저 홍석천입니다. 그렇게까지 욕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차 한 잔 마시면서 얘기하죠’ 라고요.”
‘완전한 사랑’으로 연기활동 재개했지만 여전히 깨기 힘든 방송의 벽
그는 커밍아웃을 결심했을 때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해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냉혹했다. 커밍아웃 후 당장 맡고 있던 어린이 프로그램 진행자에서 밀려났고, 수백 통의 비난 메일을 받은 것. 한 택시운전기사로부터 “당신 같은 사람이 재수 없게 내 차에 타?”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고. 그러나 일부에서는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그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동성애자 연예인이라는 상품가치 때문에 여러 기획사가 영화, 음반, 사진집, 자서전 등으로 그에게 러브콜을 보낸 것.
“사실 커밍아웃 후 많은 제안이 들어왔어요. 그렇지만 그때마다 단호하게 거절했죠. 일반인들은 커밍아웃이 ‘결국 인기작전이었구나’하고 오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저로 인해 생긴 파장이 큰 만큼 사회가 저를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커밍아웃 후 방송일을 할 수 없게 되자 나이트클럽에서 DJ로 활동하면서 2년 전 이태원에 레스토랑을 오픈했다. 처음 해보는 사업이라 어려움도 있었지만 이제는 단골손님도 많아져 매일 밤 그들과 파티를 하는 기분이라고 한다.
“집안에만 숨어 있기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어요. 여전히 저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언제라도 그들을 초대할 수 있는 공간으로 레스토랑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평소 요리하는 걸 좋아한다는 그는 친구나 단골손님이 찾아오면 자신이 직접 요리를 만들어 대접한다. 특히 지중해식 스파게티나 남미 퓨전요리를 잘한다고.
그는 커밍아웃 후 3년 만인 지난해 방송에 복귀할 수 있었다. SBS 드라마 ‘완전한 사랑’에서 극중 차인표와 이승연의 친구로 출연한 것. 그는 ‘완전한 사랑’ 출연 이후 방송 활동을 계속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얼마 못가 그 기대를 접어야 했다.

타임지로부터 아시아의 영웅으로 선정된 탤런트 홍석천

그는 커밍아웃 후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편견을 가진 사람들의 의식이 조금씩 변해가는 것 같다고 말한다.


“‘완전한 사랑’에 출연한 건 아주 특별한 경우였어요. 제가 사회적으로 용납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극중 캐릭터가 동성애자로 저와 잘 맞았기 때문이죠. 드라마는 인기리에 방영됐지만 저와 관련해서는 인터뷰가 한번도 나간 적이 없어요. 쇼 프로그램 출연 제의도 없었고요.”
그는 어쩌다 방송 출연 제의를 받아도 하루도 지나지 않아 취소되기 일쑤여서 이제는 확정되기 전까지는 기대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담당 PD가 제안을 해도 방송국 심의실에서 거절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 현재 그는 규제가 엄격한 공중파 대신 케이블 방송 ETN ‘연예 스테이션’의 진행을 맡고 있으며, SBS 라디오 ‘손숙, 김범수의 아름다운 세상’에 출연하고 있다.
그는 아직까지 보수적인 방송계와는 달리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의식 변화가 조금씩 일어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던 사람들도 이제는 ‘비판을 하더라도 알고 비판하자’는 쪽으로 인식이 바뀌고 있다는 것.
“커밍아웃 이후 사람들이 저를 새로운 시각에서 봐주시는 것 같아 감사할 때가 많아요. 길에서 저를 보시고는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고 말하면서 손을 잡아주시는 분도 있고, 비슷한 고민을 겪고 있다며 저에게 속내를 털어놓는 분도 계시죠. 저를 알아보고 차의 천장에 사인을 해달라는 택시운전기사도 있었어요. 그런 분들을 뵐 때마다 많은 용기를 얻죠.”

힘들 때 위로가 되어준 애인, 친구, 그리고 부모님
동료 연예인들도 그를 대하는 태도가 조금씩 달라졌다고 한다. 예전에는 남자 연예인의 경우 그에게 다가오는 것을 부담스러워했지만 이제는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친구들이 많아졌다고. 커밍아웃 초기 그의 옆에서 많은 위로가 되어준 탤런트 이의정과는 여전히 친남매처럼 지내고 있으며, 권민중, 성현아, 박은혜와도 절친한 사이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현재 사귀고 있는 애인이 가장 큰 힘이 된다고 한다. 그는 커밍아웃 후 미국유학을 생각하기도 했는데, 남자친구가 생기면서 유학을 포기했다고.
타임지로부터 아시아의 영웅으로 선정된 탤런트 홍석천

“막상 커밍아웃을 하고 나니까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어요. 한 달 내내 꼼짝 않고 집에서 술을 마시고 담배만 피워댔죠. 그러던 중 문득 ‘어차피 커밍아웃까지 한 마당에 내가 무서울 게 뭐가 있겠냐’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자주 다니던 게이 바에 갔고 거기에서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났어요. 제가 첫눈에 반했죠. 여느 연인들처럼 자주 다투기도 하지만 제가 힘들 때 누구보다도 큰 힘이 돼줘요.”
애인에 대한 얘기를 하며 잠시 밝은 표정을 짓던 그가 부모님 얘기가 나오자 자못 진지해졌다. 2남2녀 중 막내인 그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자신을 받아주고 이해해줬으면 하는 바람에서 형제들에게는 이미 오래 전에 커밍아웃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언론을 통해 사실을 알게 된 부모는 “커밍아웃을 번복하지 않을 거면 같이 농약을 먹고 죽자”고 말했을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고.
“그렇지만 두 분이 저를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고 오히려 더 깊어졌다는 걸 알아요. 아직은 제가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너는 왜 여자와 결혼할 마음이 없냐, 손주가 보고 싶다’ 등의 말씀을 하시거든요. 그럴 때면 부모님께 아무 말씀도 드리지 않아요.”

타임지로부터 아시아의 영웅으로 선정된 탤런트 홍석천

홍석천은 내년 1월에 방영 예정인 드라마 ‘슬픈 연가’에 출연할 예정이다.


그는 얼마 전 민주노동당에 입당해 ‘성(性)소수자위원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커밍아웃 이후 자연스럽게 성적소수자들의 대변인 역할을 해오고 있는 그는 “성소수자들을 차별로부터 보호해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준 것에 대해 민노당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성적소수자뿐만 아니라 여성, 장애자, 입양아 등 사회적 소수자가 너무 많아요. 하루아침에 본인이 교통사고로 장애자가 될 수 있고, 자신의 자녀가 동성애자이거나 입양아일 수 있잖아요.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끝까지 자신만은 소수자의 부류에 포함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죠. 한번쯤 소수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과연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고민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인터뷰 내내 얘기를 할까 말까 망설였다는 그는 권상우, 김희선 주연으로 내년 1월 방영 예정인 MBC 드라마 ‘슬픈 연가’에 출연하게 됐다는 소식을 털어놓았다. 분명 그에게 좋은 일이지만 미리 대중에게 알려져서 안 좋은 소리를 들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밝히기를 망설였다고. ‘슬픈 연가’에서 그는 이태원의 나이트클럽에서 일하는 웨이터 역을 맡았다고 한다.

그는 비록 지금은 대중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만 언젠가는 기회가 찾아올 거라는 믿음을 갖고 헬스와 수영으로 몸 관리를 하고 있다고 한다.
혹시라도 “동성애자라서 일 못한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남들보다 10배 노력한다는 그. 자신을 응원해주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매사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애쓴다는 그가 드라마 ‘슬픈 연가’에서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여성동아 2004년 11월 4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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