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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국대 초빙교수로 임용된 구족화가 오순이의 감동 인생

■ 기획·최호열 기자 ■ 글·박윤희 ■ 사진·김형우 기자

입력 2004.11.11 11:48:00

두 팔이 없는 장애를 발로 그림을 그리며 이겨낸 여인이 있다.
최근 중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단국대 교수로 초빙된 오순이씨가 그 주인공. 한번 마음 먹으면 끝까지 밀어붙이는 성격이라 좌절을 모른다는 그가 자신의 인생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단국대 초빙교수로 임용된 구족화가 오순이의 감동 인생

세살 때 열차 사고로 두 팔을 잃은 후 35년간 발로 그림을 그린 사람이 대학 교수가 되었다. 지난 10월12일 단국대학교 예술대학 동양화실기 과목에 초빙교수로 임용된 오순이씨(38)가 그 주인공. 이날 총장실에서 교수임명장을 받아든 그는 한껏 상기된 얼굴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정식 임용되기 전인 9월부터 학생들에게 미술 실기 지도를 해왔는데 첫 강의를 앞두고 며칠 동안은 쿵쿵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어려웠다고 한다.
“무척 설레었어요. 발로 그림 지도를 해야 하니까 부담감도 컸고요. 혹시 학생들이 어색해하지 않을까 많이 걱정했는데 의외로 학생들이 편견을 갖지 않아 매번 즐겁게 수업을 하고 있어요.”
경남 마산에서 태어난 그는 세 살 때 철길에서 놀다가 열차에 치는 대형사고를 당했다. 이때 두 팔이 잘렸는데 병원에서는 희망이 없다는 판정을 내렸다.
“피를 많이 흘려 살 가망이 전혀 없어서 그랬는지 담당 의사가 저를 병실 한구석에 밀쳐놓고 그냥 집에 데리고 가라고 하더래요.”
그의 부모는 하는 수 없이 어린아이를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로부터 오씨는 2년 남짓 병원과 집을 오가며 치료를 받았고 손 대신 발을 쓰는 훈련을 했다.
“손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으니까 오히려 발로 뭘 익히는 게 쉬웠어요. 발로 세수하고 밥 먹고 글씨도 쓰고 그림도 그렸죠.”
그는 자신이 두 팔 없는 장애인이란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하지만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동갑내기 친구들에겐 입학통지서가 오는데 저에게는 안 오는 거예요. 부모님이 동사무소에 가서 이유를 물었더니 ‘장애인이니 특수학교에 가라’고 하더래요. 그때 전 ‘난 발로 뭐든지 할 수 있는데 왜 장애인학교에 가야 하지?’ 하고 의아해했죠.”
결국 초등학교 입학 시기를 놓친 그는 아홉 살 되던 해에 마산 중앙초등학교의 입학을 허가받았다.
“학교에서는 제가 장애인이라 수업 중에 불편한 일이 많을 것이라고 입학을 반대했지만 전 학교 생활을 잘했어요. 워낙 활달하고 사교적이어서 친구들도 많았고요. 친구들도 제가 두 팔이 없다는 사실을 잊고 살았어요. 그래서 갑자기 ‘순이야, 이것 받아라’ 하면서 물건을 던지기도 하고, 횡단보도 건너면서 손을 잡으려다 덜렁 소매만 붙잡기도 했어요(웃음). 물론 짓궂은 친구들은 ‘이건 손으로만 할 수 있는 건데 너 발로 할 수 있어?’ 하며 절 시험에 빠뜨리기도 했죠.”
그가 초등학교 시절 두각을 나타낸 분야는 미술이었다. 방과 후 특별활동으로 미술반에 들어간 그는 열심히 재능을 키워나갔다.
“제가 미술을 하겠다고 했을 때 처음에는 선생님께서 ‘과연 네가 할 수 있겠니?’하면서 걱정하셨어요. 그러다 제가 열심히 하는 모습을 지켜보시더니 많이 도와주셨죠.”
그의 성공 뒤에는 결혼도 안 하고 뒷바라지해온 큰언니의 희생 있어
그가 초등학교 4학년이던 지난 78년, 그에게 일생일대의 후원자가 나타났다.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 발로 그림을 그리는 그의 모습을 본 당시 단국대 장충식 총장이 ‘평생 동안 쓸 스케치북과 화구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한 것. 넉넉하지 못한 집안 사정과 두 팔이 없는 장애인이란 이유로 자칫 재능이 사장될 뻔했던 그는 그후 마음 놓고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됐다.

단국대 초빙교수로 임용된 구족화가 오순이의 감동 인생

구족화가로는 최초로 대학교수로 임용된 오순이씨.


그는 93년, 수묵화의 본고장에서 승부를 내겠다는 생각에 중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미술을 공부하는 한국 국적의 유학생은 그가 처음이었는데 중국 학생들은 교정에서 그를 만나면 ‘남조선 학생 지나간다’면서 신기한 듯 쳐다보곤 했다고 한다.
남다른 집념의 소유자이긴 하지만 11년 가까이 중국 유학생활을 하면서 좌절한 적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런데 그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아니오”였다.

“한 작품 한 작품 완성해나가는 과정이 힘들긴 해요. 그렇지만 제가 워낙 고집이 세고 한번 한다면 하는 성격이기 때문에 좌절 같은 것은 하지 않았어요. 금세 뭔가가 주어지지 않더라도 한 단계 한 단계 쌓아가겠다는 각오로 꾸준히 밀어붙였죠.”
그는 ‘구족화가’에 대한 편견을 버려달라고 주문한다.
“붓으로 빠른 속도감을 발휘해야 할 때 아무래도 손보다는 힘이 달려요. 그렇지만 손으로 그렸느냐, 발로 그렸느냐가 중요한 것은 아니에요. 화가의 내면이 그림 속에 얼마나 잘 표현됐느냐가 더 중요하죠. 전 제 그림에서 테크닉보다는 내면적인 이야기를 더 중시하거든요. 발로 그리면 단지 그 과정이 길고 결과가 천천히 나타날 뿐이지요. 손으로 그리는 사람들보다 좀더 시간을 갖고 한다는 차이밖에 없어요.”
이처럼 그가 강철 같은 의지력으로 자신의 인생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오기까지는 그의 큰언니 오순덕씨(48)의 공이 컸다.
“저는 2남3녀 중 넷째인데 큰언니가 결혼도 안 하고 저를 보살펴주고 계세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존경하는 분이에요. 언니에게 ‘미안하다’, ‘앞으로 잘하겠다’는 말보다는 행동으로 그림으로 그 감사함에 보답하고 싶어요.”
언니 순덕씨는 동생이 사고를 당한 이후 줄곧 그를 보살펴 오고 있다. 동생이 단국대 재학 시절에는 학교 교직원으로 일하면서 동생을 돌보았고 대만, 중국 유학도 따라갔다. 현재도 천안에서 단둘이 살면서 동생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저도 고집이 세지만 언니도 보통이 아니죠. 그림이 잘 안 돼서 힘들어하다가도 더 강한 모습을 보여주는 언니 때문에 다시 붓을 잡을 수 있는 힘을 얻어요.”
동양화의 신비로움을 느끼면서 그 매력에 흠뻑 빠져들게 됐다는 오순이 교수. 그가 235mm의 아담한 발로 그려나갈 스승으로서의 포부는 이렇다.
“일부러 수업시간에 잘 안 웃고 까다롭게 해요. 편하게 하면 학생들이 금방 풀어지거든요. 학생들에게 한두 가지 기능보다는 자신의 내면과 작품을 일치시키는 데 중점을 둬 가르치고 싶어요. 또 기회가 닿는다면 저와 같은 처지의 장애인들을 돕고 싶어요.”

여성동아 2004년 11월 4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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