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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양락 부부가 호주에서 공부하는 딸과 함께 들려준 ‘조기유학 생생 체험기’

“철저한 준비 없이 떠나면 실패, 딸아이도 처음엔 우울증으로 고생했어요”

■ 글·최호열 기자 ■ 사진·지재만 기자

입력 2004.11.03 17:24:00

개그맨 최양락이 요즘 싱글벙글이다. 호주에서 유학 중인 딸 하나가 오는 11월 중순, 3년간의 유학 체험을 담은 책을 펴내기 때문이다. 13세 어린 나이에 홀로 떠나 성공적인 유학 생활을 하고 있는 하나와 최양락 부부를 만나 체험담을 들어보았다.
최양락 부부가 호주에서 공부하는 딸과 함께 들려준 ‘조기유학 생생 체험기’

개그맨 최양락(43)의 얼굴에 요즘 웃음꽃이 활짝 폈다. 3년 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홀로 유학을 떠난 딸 하나(16)가 자신의 유학 체험을 쓴 ‘하나는 혼자서 13살에 호주 유학을 떠났어요’가 11월 중순 출간되기 때문이다. 경기도 양수리에 있는 최양락·팽현숙 부부의 가게를 찾았을 때, 마침 하나도 봄방학(호주는 한국과는 계절이 정반대다)을 맞아 잠시 귀국한 터여서 함께 만날 수 있었다.
“유학을 간 지 이제 3년 정도 되었는데, 그동안 많은 한국 학생들이 유학을 왔다가 적응하지 못하고 되돌아가는 것을 봤어요. 그래서 유학을 오려는 학생들에게 제 체험을 들려주면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책에는 하나의 유학 생활 체험뿐 아니라 최양락·팽현숙 부부가 부모로서 느낀 점들도 녹아들어 있다. 그래서 책에는 유학을 가면 아이가 어떻게 공부하고 학교 생활을 해야 하는지부터 한국에 남아 있는 부모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까지 세세한 부분들이 꼼꼼이 들어 있다.
하나의 유학은 조기유학 바람을 타고 어느 날 갑자기 가기 싫다는 아이를 등 떠밀어 보낸 것은 아니었다.
“90년대 말에 방송 활동에 위기가 있었어요. 코미디가 침체되면서 나이 든 코미디언들은 퇴출당하는 분위기였죠. 그래서 99년에 쉴 겸해서 짐을 싸들고 무작정 호주로 가서 1년 동안 살았어요. 호주로 간 건 그곳에 아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죠. 또한 시끄럽지 않아 쉬기에 적당하다고 생각을 했고요. 그때 하나가 초등학교 4학년이었죠.”

ABC도 모른 채 책가방만 들고 호주 학교에 다니기도
최양락 부부가 쉰다고 하나까지 학교를 안 보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호주의 학교에 입학을 시켰는데 당시 하나는 영어의 ABC도 모르는 상태였다고 한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학교에서 영어를 배우긴 했지만 재미가 없었어요. 그래서 정말 ABC도 모르는 상태에서 호주의 초등학교에 들어갔어요. 처음엔 학교에 앉아 있어도 선생님과 반 친구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어 그냥 앉아 있다 집에 돌아오곤 했어요. 책가방 들고 왔다갔다만 한 거죠.”
하루는 수업이 끝난 후 집에 가기 위해 나서는데 반 친구들이 우르르 학교 버스에 오르는 모습이 보였다고 한다. 왠지 자신도 그 버스를 타야 할 것 같아 올라타긴 했지만 영어를 모르니 누구에게 어디로 가는 건지 물어볼 수도 없었다. 버스는 낯선 허허벌판에 아이들을 내려놓았고, 버스에서 내린 아이들은 우르르 뛰기 시작했다. 그는 아이들이 뛰면 따라 뛰고 아이들이 천천히 걸어가면 따라서 걸었다. 그리고 나중에야 자신이 마라톤을 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영어를 못한다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이고, 심지어 영어에 공포감마저 느낄 법도 한데 의외로 하나는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선생님이 참 친절하셨어요. 아이들도 저에게 하나하나씩 알려주려고 노력을 했고요. 제가 못 알아들으면 몸짓으로,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해주었죠. 그래서 조금씩 알게 되었고 그렇게 몇 달이 지나니까 귀가 뜨이기 시작하더라고요.”
최양락 부부는 호주에 온 지 몇 달이 지났을 무렵 하나가 집으로 백인 친구를 데려와 깔깔거리며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최양락 부부가 호주에서 공부하는 딸과 함께 들려준 ‘조기유학 생생 체험기’

방학을 맞아 모처럼 가족간의 정을 나누는 하나양과 최양락 부부.


“어른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일이죠. 그런데 전문가들에 따르면 당시 하나 나이인 열 살 전후가 언어습득 능력이 가장 빠른 때라고 하더군요.”
물론 영어가 저절로 익혀진 것은 아니다. 학교에서 몸으로 부딪치며 영어를 익히고, 수업이 끝난 후에도 학교에 남아 영어를 못하는 아이들을 위한 보충수업을 한 후 집에 돌아와 한국인 가정교사에게 영어를 더 배운 결과였다.
“선생님과 친구들은 저에게 끊임없이 말을 시켰어요. 제가 이해할 때까지 계속 설명을 했고, 제가 영어로 정확히 표현해서 그들이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질문을 했어요. 그러면서 저의 영어 실력이 늘었어요.”
1년 만에 한국에 돌아왔을 때 하나는 영어 대회에 나가면 늘 최고상을 수상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영어에 더욱 흥미를 느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엔 영어 교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유학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미국이나 영국은 너무 낯설었어요. 뉴질랜드는 2달 동안 어학연수를 가본 적이 있는데 너무 한적해서 외롭겠더라고요. 1년 동안 살았던 호주가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부모님에게 제 생각을 이야기했죠.”
하나의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최양락은 무척 놀랐다고 한다. 아직은 어린 딸아이를 유학을 보낸다는 게 두려웠던 것. 하지만 고민한 끝에 유학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처음부터 엄마는 함께 보낼 수 없다고 선언한 아빠 최양락
“전 억지로 아이를 공부시킬 생각은 없어요. 그런데 자기가 좋아서 하겠다는 걸 말리는 것도 부모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아직은 품에 두고 싶은 욕심도 많았지만 무작정 품 안에 두고 있는 게 아이를 위한 일은 아닌 것 같더라고요.”
팽현숙도 마찬가지였다.
“자식을 계속 곁에 두고 살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더 넓은 세상에서 공부하겠다는 아이를 붙잡는 게 옳지 않은 일 같았어요. 처음엔 하나가 호주로 떠나는 날엔 울고 호주에서 돌아오면 웃고 그랬어요. 이젠 적응이 되었는데도 아직도 떠나는 날엔 가슴이 아파요.”
보통 다른 집들은 조기유학을 보내면 엄마가 아이 뒷바라지를 위해 따라간다. 돈을 벌기 위해 아빠만 한국에 남는 경우가 많은 것. 그런데 팽현숙은 딸을 따라가지 않고 홀로 유학 보냈다. 그 이유를 묻자 최양락이 씨익 웃는다.
“아이 인생은 아이 인생이고, 우리 부부 인생은 우리 부부 인생이에요. 부부가 떨어져 살면 부부간의 생활이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제가 처음부터 하나에게 그랬어요. ‘난 네 엄마 없이는 하루도 못산다. 어차피 네가 공부하러 가겠다고 한 거니까 외롭고 힘들어도 네가 참아라’라고요(웃음).”
팽현숙도 “아이 아빠가 총각 때 오랫동안 혼자 지내서 그런지 결혼 후에는 혼자 있는 걸 싫어해요. 방송 스케줄은 물론 속옷도 제가 다 챙겨주어야 하는걸요” 하고 말한다.
그에게 엄마로서 어린 딸을 혼자 먼 이국땅에 보내는 게 불안하지 않았냐고 하자 “불안했으면 보내지도 않았다”고 한다.
“하나를 믿은 거죠. 쉽게 이야기해서 유학을 가서 삐뚤어질 아이였으면 여기서도 삐뚤어졌을 거예요. 여기서도 잘 하니까 유학을 가서도 잘할 거란 믿음이 있었어요. 무엇보다 호주에 아이를 돌봐줄 믿을 만한 사람이 있었고요.”

최양락 부부가 호주에서 공부하는 딸과 함께 들려준 ‘조기유학 생생 체험기’

하나도 처음엔 힘든 유학생활에 우울증에 걸리기도 했다고 한다. 아래 사진은 호주 학교에서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


그는 아이를 유학 보낼 때는 현지에서 아이를 돌봐줄 사람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흔히 친인척에게 아이를 맡겼다가 의가 상하는 경우가 많아요. 보내놓고 한국에서 나 몰라라 해서 그렇죠. 학교에서 부모를 찾을 때가 무척 많아요. 그 역할을 그분들이 대신해주어야 하는데, 무척 귀찮은 일이죠. 평소엔 그렇게 고생하는 걸 몰라주고 모른 척하다가 아이에게 나쁜 일이 생겼다고 항의를 하고 그러면 안되죠.”
스스로 선택해서 간 유학이었지만 처음엔 하나도 무척 힘들었다고 한다. 가족들이 함께 있을 때와는 달랐기 때문이다. 아침에 깨워줄 사람이 없어 스스로 자명종 소리를 듣고 일어나야 하고, 모든 걸 스스로 챙겨야 하고, 학교가 끝난 후 돌아왔을 때 반겨줄 사람이 없다는 게 무척 힘든 일이었다고 한다.
“처음엔 우울증에 걸려 잘 웃지도 않고 짜증만 냈어요. 하늘을 나는 비행기만 보면 매달려 한국으로 가고 싶을 정도였어요. 특히 감기라도 걸려 몸이 아파 누워 있을 땐 서러워 눈물만 나더라고요. 하지만 진짜 돌아가겠다는 생각은 안 들었어요(웃음).”
전에는 아무리 영어를 못해도 호주의 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지만 제도가 바뀌어 시험을 거쳐 수업을 받을 만한 영어 실력이 된다고 인정받아야 입학 허가서가 나왔다. 영어가 안되면 랭귀지스쿨을 다니다 다시 시험을 치러야 했다. 한국에선 영어를 제법 잘한다는 소릴 듣던 그도 처음엔 랭귀지스쿨을 다녀야 했다.
하지만 그는 열심히 영어를 공부했고 현재 호주에서도 명문 사립학교로 불리는 라벤스우드고교에 다니고 있다. 그가 영어를 잘하게 된 비결은 의외로 간단하다.
“단어를 많이 알아야 해요. 상대가 말을 할 때 단어를 한두 개만 알면 대충 뭘 말하는지 눈치로 알 수 있거든요. 그리고 책을 읽을 때 꼭 소리내서 읽어야 해요. 그러면 말을 하는 것도 빨라지고, 저절로 문법이 익혀져 글 쓸 때도 도움이 돼요. 그리고 틀려서 창피를 당하더라도 의도적으로 말을 많이 하려고 노력을 해야 하고요.”
하나는 성공적인 유학을 위해서는 영어공부뿐 아니라 친구들과 잘 사귀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을 많이 해야 한다고. 호주 아이들은 말을 많이 하는 친구들을 좋아하고, 그렇지 않으면 왕따를 당할 수도 있다고 한다.
“또한 아이들과 친해지기 위해서는 운동을 잘해야 해요. 같이 운동을 하면서 친해지거든요. 공부 잘하는 것보다 운동 잘하는 아이가 더 인기가 좋아요. 특히 수영은 미리 배워서 오는 게 좋아요.”
운동에 소질이 없는 그는 농구를 하다가 한 학생이 “왜 이렇게 못하냐”며 뒤에서 미는 바람에 넘어져 무릎이 다 까지고 이빨에 금이 가는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또한 영어를 못한다며 무시하는 아이들 때문에 속상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주눅이 들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오히려 더 함께 어울리며 “그러는 너는 한국말 할 줄 알아” 하고 당당하게 맞서는 배짱을 가져야 한다는 것. 하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한국의 악바리’로 불린다고 한다.
최양락 부부 역시 딸을 유학 보낸 후 경제적인 문제뿐 아니라 아이에 대한 그리움에 힘들었을 것이다. 차를 타고 가다가 교복을 입은 또래 아이들만 보면 차에서 내려 몇 살인지 물어보고, 시계를 보며 하나가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까 생각할 때가 많았다고. 하나가 유학 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하면 당장이라도 데려오고 싶다가도 유학을 잘 보냈구나 하는 뿌듯함을 느낄 때가 많다고 한다.
“하나가 방학 때 한국에 왔을 때 여기서 시간당 3천원씩 주기로 하고 아르바이트를 시켰어요. 그런데 외국인 손님이 왔는데, 주문도 척척 받고 계산까지 다 하더라고요. 그때 정말 ‘역시 사람은 배워야 하는구나, 잘 보냈구나’ 싶었죠.”



최양락 부부가 호주에서 공부하는 딸과 함께 들려준 ‘조기유학 생생 체험기’

하나는 악바리 정신으로 도전해야 유학에 성공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최양락은 하나가 영어를 잘하는 것뿐 아니라 검소한 생활태도를 몸에 익힌 게 더 기쁘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교복은 무조건 새것을 사잖아요. 하나가 공립학교에 다니다 사립학교에 합격해 전학을 갔을 때 새 교복을 사라고 돈을 줬어요. 그런데 헌 교복을 물려 입더라고요. 만약 한국에 있었으면 헌 교복을 물려 입었을까 싶어요. 신발도 메이커만 신었겠죠. 그런데 지금은 참 검소해요. 용돈기입장도 꼬박꼬박 쓰고요. 그곳 문화가 그렇기 때문이겠죠.”

영어도 잘하고 검소한 생활하는 딸 보면 기뻐
최양락 부부는 하나를 유학 보낸 것에 대해 후회가 없다고 한다. 무엇보다 한국에선 모든 과목을 다 잘해야 하지만 외국에선 한 가지만 잘해도 칭찬을 받고 인정을 받아 교육 스트레스가 그만큼 적다는 것. 하지만 유학이 좋다고 무작정 외국으로 보내는 것은 위험하다고 충고한다.
“유학을 간다고 다 영어를 잘하게 되는 건 아니에요. 열심히 공부하는 한국 아이들도 많지만 ‘대충하지’ 라는 생각으로 왔다가 적응하지 못하고 랭귀지스쿨만 다니다 학교에 입학도 못해보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아이들도 많아요. 문제는 그런 아이들은 한국에 돌아와서도 적응하지 못한다는 거예요.”
하나는 유학을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악바리 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리고 랭귀지스쿨을 오래 다니면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미리 영어를 충분히 익히고 오는 게 좋다고 했다. 유학을 오면 단순한 영어가 아니라 더 많은 것을 배워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
하나는 12월 중순에 여름방학을 맞아 다시 한국에 올 예정이다. 1년에 4번씩 오는 게 귀찮지 않냐고 하자 “엄마 아빠 혁이가 보고 싶잖아요” 한다.
한편, 최양락은 딸뿐 아니라 아내 팽현숙 때문에도 싱글벙글이다. 그동안 운영하던 양수리 전원카페 ‘꽃피는 산골’을 최근 뽕잎칼국수집으로 바꿔 신장개업했기 때문이다.
“몇 달 전부터 밀가루 반죽과 열심히 씨름을 하더니 뽕잎칼국수라는 걸 만들었더라고요. 그런 아내를 보니까 가슴이 찡하더군요.”
팽현숙의 알뜰함과 부지런함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 그는 억척스러울 만큼 사업과 재테크에 몰두해왔다. 이젠 한숨 돌릴 만도 하건만 그의 부지런함은 끝이 없는 모양이다. 우연히 한 식당에서 뽕잎칼국수를 먹어보고 그 맛에 반해 직접 연구를 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한 1년 정도 카페 문을 닫았어요. 그래서 다시 카페를 재개장하려던 차에 뽕잎칼국수를 팔면 어떨까 싶었죠. 팽현숙표 뽕잎칼국수 맛을 내기 위해 뽕잎은 물론 동충하초까지 넣어 면을 개발했어요. 시작한 지 두 달 정도 되었는데, 손님들 반응이 괜찮아요. 웰빙시대라서 몸에 좋은 봉평메밀해물전도 메뉴로 개발했어요.”
딸 하나와 아내 팽현숙을 바라보는 최양락의 얼굴엔 뿌듯한 미소가 가득했다.

여성동아 2004년 11월 4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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