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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프라이버시 인터뷰

영화 ‘가족’으로 제 2의 전성기 맞은 주현이 처음 들려준 ‘우리 가족 이야기’

“첫사랑인 아내, 반듯한 두 아이 덕분에 순탄하게 살아왔어요”

■ 글·김지영 기자 ■ 사진·김형우 박해윤 기자

입력 2004.11.03 17:11:00

중견 배우 주현이 영화 ‘가족’의 흥행 돌풍으로 남다른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극중 아버지 역을 맡아 딸을 위해 목숨까지 버리는 뜨거운 부성애를 35년 관록이 묻어나는 절절한 연기로 보여준 것.
첫사랑과 결혼해 반듯하게 장성한 두 자녀를 둔 행복한 가장인 그가 처음으로 공개한 ‘나의 가정 생활 & 연기인생’.
영화 ‘가족’으로 제 2의 전성기 맞은 주현이 처음 들려준 ‘우리 가족 이야기’

자극적인 상업영화가 판을 치는 극장가에 작은 돌풍이 일고 있다. 전과자 딸(수애)과 전직 형사 출신 아버지의 갈등과 화해를 그린 영화 ‘가족’이 개봉 보름 만에 1백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것. 지난 9월 초 개봉한 ‘가족’은 현재 2백만 명 돌파를 앞두고 있고 개봉 7주째임에도 주말 예매율 순위 5위권 안에 드는 등 흥행 순항 중이다.
‘가족’의 이런 인기는 중견 배우 주현(61)의 호연에 힘입은 바 크다. 극중에서 어린 딸의 실수로 한쪽 눈을 잃고 평생 방황하던 그는 조폭의 손아귀에서 딸을 구해내기 위해 급기야 청부살해를 하고 숨을 거둔다. 조폭의 강요로 딸이 비리경찰간부에게 순결을 바치게 되자 이를 막기 위해 거사를 치른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무능력하지만 자식을 향해 묵직한 사랑을 보여주는 그의 모습에 관객들은 하염없는 눈물을 흘린다.
“저는 그저 감독의 의도대로 따랐을 뿐이에요. ‘가족’이 좋은 반응을 얻은 것은 기존 드라마와 달리 아버지의 뜨거운 부성애를 담았고, 그것이 관객들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인 것 같아요. 사실 우리 세대는 무뚝뚝하고 가부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어요. 잘못하면 무섭게 혼내지만 칭찬에는 인색하고, 말 붙이기도 어려웠죠. 그래서 자식들은 자유분방하게 키웠는데 문제는 너무 풀어주다 보니 설 자리도 없어지고 점점 외로워지는 거죠. 평생 자식들 뒤치다꺼리하며 살았는데도 나이 들어 무능력해지면 안팎으로 귀찮은 존재로 취급 당하기 일쑤고요. 아버지들에게는 남모르는 애환이 많아요. 자식들이 아버지의 고충을 헤아려주면 좋겠어요.”
어릴 때부터 끼 많았지만 원래 꿈은 정치가
지난 1969년 KBS 특채로 연예계에 발을 들인 이후 지금까지 연기 외길을 걸어온 그는 이순이 넘은 나이에도 방송가를 누비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그에게도 남모르는 고충이 있다. “영화든 드라마든 젊은이들 취향에 맞게 만들어지다 보니 중견 연기자들이 설 자리가 별로 없다”는 그는 “마음 같아서는 중간 중간 쉬면서 욕심나는 작품만 하고 싶지만 먹고 살기 위해 다작을 할 수밖에 없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35년 동안 정말 쉬지 않고 일했지만 벌어놓은 것은 많지 않아요. 예전에는 지금처럼 연예인에 대한 대우가 좋지 않아 많이 벌 수도 없었죠. 배우로서 품위를 유지하면서 가족들에게 안정된 생활을 보장해주려면 들어오는 대로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어요. 연기 생활이 적성에 잘 맞기는 했지요.”
그는 어릴 때부터 끼가 있었다고 한다. 영화를 좋아해 극장을 자주 찾았는데 영화를 보고 온 날이면 친구들을 불러모아 실감나게 들려주고, ‘이수일과 심순애’ 같은 신파극의 대사를 외워 교내 장기자랑에도 나가곤 했다고. 그는 그때부터 막연하게나마 연예계를 동경했지만 배우가 될 생각은 없었다. 정작 그의 꿈은 정치가였다. 건국대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것도 그 때문이다.

영화 ‘가족’으로 제 2의 전성기 맞은 주현이 처음 들려준 ‘우리 가족 이야기’

“아내도 그 당시에 만났어요. 대학교 3학년 때부터 연애를 시작해 군 제대하자마자 결혼했죠. 남들은 첫사랑과 결혼했다고 부러워하는데 너무 일찍 결혼한 탓에 허망한 생각이 들기도 해요. 몇 년은 총각 같은 기분으로 살았지만 아이들이 생기니 달라지더라고요. 그래도 남자는 철 모를 때 결혼해야 별탈 없이 사는 것 같아요. 여자를 알고 사회를 알고 나면 결혼하기가 힘들어지거든요. 여자를 만나도 자꾸 단점만 보이고, 그러면서 더 좋은 여자 없나 하고 바라게 되고요(웃음).”
어느덧 결혼 생활 38년째로 접어든 그는 요즘 경기도 하남시 집에서 아내와 단둘이 살고 있다. 35세인 큰딸은 시집을 가고, 32세인 둘째아들은 아직 미혼인데 회사 근처에 따로 집을 얻어 나갔다. 평소 그는 “아내를 자상하게 챙겨주는 남편은 아니지만 술 먹고 귀가가 늦어 속을 끓인 일 말고는 다른 문제로 속썩인 적은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자식들에게는 몇 점짜리 아버지냐고 물었더니 그는 “80점 정도는 된다”고 말한다. 비교적 자율적인 분위기에서 아이들을 키웠다는 그는 “다행히 아이들이 착해서 훈계 한번 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며 은근히 자랑을 늘어놓는다.
“우리 아이들은 사치를 몰라요. 옷도 내가 사다줘야 입지 욕심을 안부려요. 학원 한번 안 보냈는데도 지들이 알아서 공부를 했고요. 아들아이가 공부를 좀 등한시해서 몇 번 혼낸 적은 있어요. 그런데 대학 떨어지고 군대 갔다 오더니 공부한다며 유학을 가더라고요. 군대에서 대학 다니는 아이들이 대화에 안 끼어주니까 내심 자존심이 많이 상했던 것 같아요. 부모가 열번 백번 얘기하는 것보다 효과가 크더라고(웃음).”
엄하고 가부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 아이들 자율적으로 키워
그는 “젊었을 때 촬영한다고 돌아다니다 보니 아이들과 함께 한 추억거리가 별로 없다”면서 “그저 열심히 돈만 벌어다주었지, 아이들이 자랄 때도 대화를 많이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딸내미가 무뚝뚝해서 나한테 매달리는 꼴을 한번 못봤어요. 꼭 성격이 남자 같아서 필요한 것만 얘기하지 다른 말은 잘 안 했어요. 그렇다고 아이들과 사이가 나쁜 것도 아니에요. 아이들이 어릴 때는 곧잘 데리고 다녔는데 초등학교 때 차멀미를 심하게 한 뒤로는 어디를 가자고 하면 기겁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놀러갈 때는 집사람하고만 다녔어요(웃음).”
그가 아이들과 함께 하지 못한 시간에 미련을 두는 데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그 역시 자라면서 아버지와 접촉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부친은 일제시대에는 교직에 있었고, 한때는 동아일보 기자로, 또 한의사로 활동했을 만큼 박식하고 재주가 많은 분이었다고 한다. 또 애국단체인 3.1학회를 만들고, 천도교에 심취해 교령 대우까지 받는 등 사회 활동을 많이 하셨다고.
“아버지는 돈을 많이 벌었지만 자식들을 위해 쓰지는 않으셨어요. 돈이 생기면 다 천도교를 위해 쓰셨어요. 그런 아버지를 대신해 한의사였던 어머니가 생계를 꾸리셨죠. 당시만 해도 집을 장만해 장가가기가 쉽지 않았는데 어머니 덕분에 집 한 채를 얻어 장가를 갔죠. 돌이켜보면 큰 고생은 안 해봤지만 전쟁 때는 많이 곯았어요. 아버지가 중국에서 내려오셔서 밀가루 음식을 무척 좋아하셨는데 자식들 생각은 안 하고 하루가 멀다하고 수제비를 드셨어요. 난 어머니가 수제비를 끓이는 거 보면 뒷간 가서 울었어. 너무 밥이 먹고 싶어서. 고등학교 2~3학년까지는 배고팠지. 그때 잘 먹었으면 키가 190cm는 되었을 텐데(웃음)….”

영화 ‘가족’으로 제 2의 전성기 맞은 주현이 처음 들려준 ‘우리 가족 이야기’

그의 집 거실 한 귀퉁이에는 커다란 가족사진이 걸려 있다. 큰딸은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잠시 연기 생활도 했다고 한다. 지금은 전업주부인데 딸이 연기를 그만둔 데는 그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

“재능도 있고 실력도 있었지만 젊어서 연기를 하다 보면 좌절이 많아요. 확 뜰 수 있을 정도의 미인도 아니고요. 그래서 ‘연기를 꼭 하고 싶다면 아이 키운 후에 해도 늦지 않다. 애인 있으면 결혼해서 아이 낳고 나중에 하라’고 했더니 따라주더군요. 실은 아들아이야말로 배우감이에요. 키도 190cm에 생긴 것도 잘생겼고요. 그런데 그놈은 끼도 없고, 이쪽 일에 관심도 없어요. 연예인이 되려면 타고난 재능이 있어야 해요.”
미국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서강대 대학원 국제경영학과를 졸업한 그의 아들은 현재 아시아나항공에서 근무하고 있다. 직장이 항공사인데다 여행을 좋아해 시간이 날 때마다 영국, 호주 등 마음 닿는 곳으로 훌쩍 떠나곤 하는 아들이 그는 내심 못마땅한 듯했다. 혼자 사는 생활에 익숙해진 탓에 결혼할 생각을 도통 안 하기 때문이다.
“아들아이가 좀 엉뚱한 구석이 있어요. 어디 가서든 적응을 잘하고, 미국에서도 내내 장학금을 받고 다닐 정도로 공부는 잘했는데 연애는 잘 못하는 것 같아요. 보는 눈도 어찌나 까다로운지 너무 예쁜 것도 싫다, 부잣집 딸도 싫다, 너무 잘난 것도 싫다고 그래요. 특히 잘난 척하는 여자를 제일 싫어해요. 그건 저하고 똑같아요. 지고지순하고 싹싹한 여자를 좋아해요. 아내도 처음에는 고분고분하더니 지금은 뻣뻣해요. 그래서 제가 연애할 때 그런 모습을 보였으면 당장 퇴짠데 이젠 늦었네 그러죠(웃음).”

젊어서 공부 안 한 게 가장 후회돼
요즘 그는 고혈압에 관절염까지 겹쳐 고생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과체중. 30년 넘게 100kg이 넘는 체중의 하중을 받아 무릎에 무리가 간 데다 젊은 시절 축구에 빠져 운동을 심하게 한 탓에 연골이 닳아 관절염이 된 것. 때문에 앞으로 금주를 해야 하는데 애주가인 그는 “술을 끊을 생각을 하니 하늘이 노랗다”며 한숨 짓는다.
“잘못되면 큰일난다니까 자중하고는 있어요. 무엇보다 살 빼는 게 급선무라 금주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에요. 그런데 살을 빼고 싶어도 관절 때문에 마음대로 운동을 못해요. 산에 오르는 것도 무리가 된다고 해서 틈틈이 산책이나 수영을 하고 있어요. 지금 영화와 미니시리즈가 한편씩 들어와 있는데 이제는 편수를 좀 줄이고 건강 관리에 힘쓸 거예요.”
덕분에 그는 요즘 집에서 아내와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지만 “도울 일이 없고, 둘다 모임을 싫어해 잘 나다니지도 않는다”며 “함께 있어도 재미가 없다”고 넋두리를 늘어놓는다. 가끔 집안일을 거들고 싶어도 손재주가 없어 못 하나도 박지 못하는 그를 대신해 지금껏 아내가 알아서 다 해왔다고. 또 예전에는 여행을 많이 다녔는데 평생 촬영을 다니다 보니 이제는 비행기 타는 것도 싫고 차를 타고 어디를 가기도 귀찮다고 한다.



영화 ‘가족’으로 제 2의 전성기 맞은 주현이 처음 들려준 ‘우리 가족 이야기’

지난 1970년 주현이 처음으로 주연을 맡은 드라마 ‘사랑의 훈장’의 한 장면. 맨 왼쪽은 그의 상대역으로 출연한 고은아.


“난 자연의 섭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에요. 우리 나이가 되면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해요. 잘 죽는다는 것도 멋이고 복이에요. 아프고 나서 후회하느니 건강관리를 할 때가 되긴 했지. 연기 생활은 배역이 주어질 때까지 계속하고 싶은데 병이 날까 봐 걱정이 돼요. 병은 불쑥 찾아오거든. 건강해야 해요. 건강해야 술도 맛있게 마시지(웃음).”
그는 지금 ‘젊음’이 가장 부럽다고 했다. 젊을 때는 좋은 걸 몰랐는데 나이 드니 돈보다 더 좋은 게 젊음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그는 또 “살아 보니 좋은 친구들을 많이 사귀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보람”이라면서 “돈은 혼자 쓰는 게 아니라 함께 쓰고 즐길 때 가치가 있는 것”이라며 인생의 교훈을 전한다.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어야 행복한 거지, 돈만 많고 주변에 사람이 없으면 뭐해. 좋은 사람을 곁에 두면 행복해져요. 더 크게 바랄 게 뭐가 있어. 마음이 부자면 되지. 젊어서 고생을 하는 건 공부야. 고생 안 하고, 실패 안 하고 성공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나도 고생을 했다면 더 잘 되었을지도 모르지. 근데 그런 적이 없는 게 나의 한계야. 낙차가 커야 돼. 난 공부 열심히 안 한 게 미련이 남아요. 엑스트라를 하더라도 할리우드에서 했다면 좋은 것 배우고 와서 후학들을 가르치고 그랬을 텐데 공부를 안 했어요. 덜렁대고 돌아다니기나 했지. 그게 후회가 돼요.”
목청을 드높이지 않고, 얼굴을 붉히지 않아도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배우 주현. 사람 좋은 웃음과 뼈 있는 말들을 남기고 저무는 황혼 속으로 유유히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이 당당하고 멋져 보였다.

여성동아 2004년 11월 4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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