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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공 8년 만에 삼성미술관 LEEUM 문 연 홍라희 관장

“우리 어린이들이 문화적 감수성 키울 수 있는 아늑한 공간으로 만들겠습니다”

■ 글·최호열 기자 ■ 사진·삼성문화재단 제공

입력 2004.11.03 11:47:00

세계적인 건축가 3명이 건축하고 진귀한 미술품들을 골라 전시해 외형과 전시 내용 모두 최고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삼성미술관 LEEUM이 착공 8년 만인 지난 10월13일 개관했다. 삼성가 안주인 홍라희 관장이 리움에 대한 특별한 애정과 어린이 미술교육에 대한 열정, 자녀 미술교육 체험담을 들려주었다.
착공 8년 만에 삼성미술관 LEEUM 문 연 홍라희 관장

“누구나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아늑하고 격조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미술을 사랑할 수 있게 하고,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문화적 감수성을 기를 수 있는 문화의 보금자리로 가꾸어 나가겠습니다. 또한 한국 미술의 정수와 세계 미술의 흐름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겠습니다.”
지난 10월13일 홍라희 삼성미술관 관장의 얼굴엔 함박웃음이 가득했다. 지난 8년 동안 그가 소망하던 세계적인 미술관 건립의 꿈이 마침내 결실을 맺었기 때문이다. 한남동에 만들어진 삼성미술관 LEEUM(이하 리움)이 이날 개관식을 가진 것. 리움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 3인이 함께 건축한데다 고 이병철 회장, 이건희 회장, 홍라희 관장이 그동안 수집해온 미술품 중에서도 가장 가치 있는 작품들을 한 곳에서 감상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일찍부터 관심을 모았다.
리움의 탄생은 95년 1월 삼성이 한남동 공익문화타운 건립구상을 발표하면서 예고됐다. 하지만 97년 1월 공사를 시작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IMF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땅만 파놓은 채 중단하는 시련을 겪었고 2001년에야 공사를 재개, 첫 삽을 뜬 지 8년여 만에 문을 열게 된 것이다.
삼성가는 이미 3개의 미술관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미술에 대한 애정이 깊다. 고 이병철 회장이 65년 사재를 털어 호암문화재단을 설립한 후 82년 호암미술관(경기도 용인 소재), 92년 호암갤러리(중앙일보사 내), 99년 로댕갤러리(삼성생명 본관 1층)를 개관하며 국내 미술문화 보급과 확산을 위해 노력해왔다.
이 회장 부자가 고미술품을 주로 수집했다면 홍 관장은 현대미술에 관심이 많다. 삼성 관계자는 “전에는 수집품이 고미술 쪽에 치우쳐 있었는데 홍 관장이 취임하면서 현대미술품을 많이 구입했다. 홍 관장이 현대미술관의 토대를 닦은 셈”이라고 했다.
“호암미술관은 고미술 중심이라는 한계가 있었어요. 현대 미술관으로 호암갤러리와 로댕갤러리가 있지만 미술관이란 이름을 붙이기에는 규모가 작지요. 더구나 용인과 서울에 분산되어 있고 전통과 현대, 한국과 세계의 미술품이 따로 전시되어 있어 아쉽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고미술과 현대미술, 한국 미술과 세계 미술을 아우를 수 있는 온전한 미술관 건립에 대한 갈증을 느꼈죠.”
홍 관장의 말처럼 이병철 회장의 고미술품, 이건희 회장의 도자기 등 한국의 고미술품에, 홍 관장이 그동안 관심을 갖고 수집해온 현대미술품들이 리움에서 비로소 한자리에 모인 셈이다.

세계적인 건축가 3인 직접 선정하고 일주일에 한번씩 공사현장 찾는 등 열정 쏟아
“리움을 과거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아름다움을 찾아나서는 미래의 보금자리로 키워나갈 겁니다. 그래서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고, 더 나아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도록 할 거예요. 또한 힘이 닿는 대로 젊은 미술작가들을 키워내는 산실의 역할을 해 한국 미술에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리움은 건축물 그 자체가 하나의 세계적인 예술품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세계적인 건축가인 마리오 보타, 장 누벨, 렘 쿨하스가 각자의 특성을 살리면서 조화를 이룬 건축을 했기 때문이다. 이런 실험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일이다. 삼성 관계자에 따르면 세계적인 작가들을 모은 것도 홍관장이었다고 한다.

착공 8년 만에 삼성미술관 LEEUM 문 연 홍라희 관장

건물과 소장품 모두 세계적이라는 찬사를 받은 삼성미술관 리움 전경.


“세계적인 건축가 20명을 추려 명단을 올렸는데, 그중에서 홍 관장이 직접 3명을 선정하셨어요. 이 회장과 홍 관장은 세계 어디를 가든 미술관은 꼭 들르시기 때문에 웬만한 미술관은 다 가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래서 미술관 건물들을 눈여겨보면서 건축가들의 스타일을 파악해놓았다가 3명이 리움의 의미에 맞는 건축을 할 수 있을 거란 판단을 하신 거죠.”
홍 관장도 “우리의 컬렉션에 맞는 작가가 누구일까 고심한 끝에 이 분들을 결정했어요. 이 건물이 다 완성된 다음에 돌이켜보니 그때 한 결정이 참 잘된 결정이었다고 확신하게 되었어요” 하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개관식 날 건축가 마리오 보타가 “우리 세 건축가가 건축물 리움의 아버지라면 홍 관장은 어머니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할 정도로 리움에 대한 홍 관장의 열정은 각별했다. 미술관 기획부터 완공까지 모든 단계의 작업들을 그가 직접 관리했던 것. 특히 IMF로 공사가 중단되었을 때는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고 한다.
“95년 홍라희 여사가 호암미술관 관장으로 취임하면서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 세계적인 미술관을 만들겠다는 것이었어요. 특히 청소년들에게 문화적 감수성을 키울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규모는 작아도 질 높은 전시를 개최하는 미술관을 만들어보겠다는 말씀을 하셨죠. 그런데 IMF라는 외적 상황으로 공사가 중단되자 많이 안타까워 하셨어요. 사석에서 종종 ‘미술관 생각을 하면 마음이 많이 아프다’고 심경을 토로하셨죠.”
공사가 재개된 후 홍 관장은 바쁜 일정 속에서도 일주일에 한번은 공사현장을 찾아 진척상황을 꼼꼼히 점검하고, 건축가들이 방한하면 같이 다니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리움’은 기존의 미술관에 비해 관객들을 배려한 흔적이 많이 눈에 띈다. 우선 3개의 건물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동선을 고려해 설계한 것이 특징인데, 이는 노약자나 어린이들이 미술관 드나드는 데 어려움이 없게 하라는 홍라희 관장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또한 충분한 여유를 갖고 생각하고 느끼며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고미술품의 배치 간격을 3m로 여유를 준 것도, 관객이 감상하려는 작품에 가까이 다가가면 자동적으로 작품에 대해 설명을 해줘 이해를 돕는 디지털 전시가이드 PDA와 전시작품에 대한 자세한 작품설명과 참고자료를 찾아볼 수 있는 정보검색서비스를 설치한 것도 홍 관장의 구상이었다고.
그동안 리움을 둘러싸고 많은 소문이 돌기도 했다. 이에 대해 삼성문화재단 한용외 사장은 “소문 중엔 맞는 것도 있지만 사실과 다른 게 많다”고 했다. 대표적으로 이건희 회장이 현재 살고 있는 저택 바로 옆에 지어진 데다 미술관 이름도 이씨가의 성을 따서 만들어 공익성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소문이 있는데, 한 사장은 이에 대해 “내년 중에 이 회장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다. 오히려 앞으로 이 회장의 집을 미술관 부속 문화공간으로 새롭게 단장해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어린이박물관 운영, 아동교육문화센터 건립 등 아동 미술교육에 대한 애정 남달라
설립자인 이씨가의 성인 Lee와 미술관(Museum)의 어미(um)를 조합하여 만든 명칭인 ‘LEEUM’ 역시 이 회장 쪽에서 나온 게 아니라는 게 삼성 관계자의 설명이다. 작명회사에서 ‘외국의 경우 설립자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성을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이름에 붙이는 경우가 많다’며 제안했고, 이에 이 회장 쪽에서도 집안에서 책임감을 가지고 운영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동의했다는 것.

착공 8년 만에 삼성미술관 LEEUM 문 연 홍라희 관장

리움의 내부전경. 삼성아동교육문화센터 내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미래적인 건축공간 블랙박스(왼쪽 사진)가 눈길을 끈다.


또한 리움이 고가의 회원권을 가진 특권층만을 위한 공간으로 일반인은 입장할 수 없도록 운영할 것이란 소문도 있었다. 재벌가들이 많이 모여 사는 한남동에 지은 것 자체가 이들을 위한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이에 대해서도 한 사장은 사실무근이라고 항변했다.
“회원권 같은 것은 없어요. 하지만 보다 높은 질적 서비스를 위해 회원제로 운영하는 것은 검토 중에 있어요. 진정으로 미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배려죠.”
홍 관장의 아동 미술교육에 대한 관심은 각별하다. 미술이 미래를 짊어질 어린 세대의 교육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과거 “문화를 대하는 자세는 결국 문화적 감수성에서 생기는 것이다. 이런 감수성은 아주 어릴 때부터 길러져야 한다. 어려서부터 부모 손에 이끌려 자연스럽게 문화예술을 체험한 어린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문화를 특별한 것이 아닌 그저 생활의 한 부분으로 생각하게 된다. 따라서 생활 속에서 문화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자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아동 미술교육에 대한 배려와 투자가 남다른 홍 관장의 열정을 엿볼 수 있는 것이 잠실에 지은 삼성어린이박물관. “아이들에겐 보기만 하는 박제식 박물관이 아닌 체험박물관이 필요하다”며 호암미술관 관장 취임 당시 우리나라에 개념조차 없었던 어린이박물관 건립을 제안했다.
삼성어린이박물관의 프로그램은 우리나라 어린이 미술교육을 선도해갔다. 아이들은 핸디코트에 톱밥을 섞어 나무판지에 발라 마티에르(질감)를 만들어내면서 박수근의 독특한 그림을 이해하고, 장욱진의 그림을 따라 균형과 좌우대칭 기법을 배우기도 한다. 이처럼 여기에서는 화가의 그림 기법에 따라 스스로 작품을 만들어보게 하는데, 아이들은 이런 활동을 통해 미감을 키우게 된다. 이곳에서의 미술교육은 외국에서 모델링을 할 정도로 세계적인 수준이라는 게 삼성 관계자의 이야기다.
이 같은 아동교육에 대한 홍 관장의 열정은 리움 안에 세워진 삼성아동교육문화센터에서도 엿볼 수 있다. 삼성 측에 따르면 이곳은 단순히 어린이의 창의력과 문화적 감수성을 길러주는 전시회나 교육을 하는 곳이 아니라고 한다.
“89년부터 설립되기 시작해 현재 전국 40여 곳에서 운영 중인 삼성어린이집이나 95년 건립된 삼성어린이박물관이 소프트웨어라고 한다면 이곳은 어린이들의 창의력과 문화적 감수성을 키워줄 교육시스템의 하드웨어를 연구 개발하는 곳이에요. 이곳에서 연구한 성과물들은 삼성어린이박물관 프로그램이나 삼성어린이집 교육 커리큘럼으로 이어질 거예요. 특히 홈페이지를 만들어서 연구결과를 공개하고 사이버 강의도 실시할 예정인데, 삼성어린이집 교사들뿐 아니라 일반 어린이집 교사들도 들을 수 있게 해서 우리나라 전체 어린이집 교사들의 질을 높여 모든 어린이들이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할 예정이에요.”
아이들이 미술과 친해지기 위해서는 엄마가 함께 전시 작품 보며 대화 나누는 게 중요해
삼성 관계자는 홍 관장의 아동 미술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보여주는 사례로 현재 삼성아동교육문화센터 어린이 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미술작품과 떠나는 시간여행’전을 들었다. 이 전시회는 홍 관장이 직접 기획 연출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게 그의 설명. 평소 외국의 어린이 대상 미술전시회를 눈여겨 관찰해온 홍 관장이 외국의 어린이미술관에 전시자료를 요청해가며 직접 연구해 전시회를 준비했다고 한다.



착공 8년 만에 삼성미술관 LEEUM 문 연 홍라희 관장

지난 10월13일 리움 개관식에 참석한 이건희 회장과 홍라희 관장.


“홍 관장은 공간연출과 색감을 무척 중요시하는 편이에요. 평소에도 ‘미술교육은 억지로 시킨다고 되는 게 아니다. 어린이들이 스스로 관심을 갖도록 흥미를 유발시켜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색감과 공간연출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어요. 또한 어린이들이 미술과 친해지기 위해서는 어머니가 함께 전시 작품을 둘러보며 끊임없이 아이와 대화를 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하셨어요.”
아이 스스로 미술에 대한 흥미를 느끼도록 해야 하고, 함께 전시회를 보며 대화를 함으로써 아이가 미술과 친해지도록 해야 한다는 홍 관장의 말은 자신의 자녀 미술교육 체험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실제 홍 관장의 영향으로 세 딸 중 두 딸이 미술을 전공했다. 홍 관장은 요즘도 종종 딸들, 며느리와 함께 전시회장을 찾는 것으로 알려졌다.
리움이 내실 있는 전시로 미술애호가들의 열린 문화공간으로 사랑받고, 어린이들에게는 문화적 감수성을 키워주는 장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홍 관장의 열정이 계속 이어지길 기대한다.



여성동아 2004년 11월 4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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