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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행복 찾기

억대 연봉 CEO 그만두고 깊은 산골에서 북 & 베이커리 카페 운영하는 김종헌·이형숙 부부

“돈과 명예를 버리고 왔더니 이곳에 그간 잃었던 가족사랑과 마음의 평화가 있어요”

■ 기획·최호열 기자 ■ 글·백경선‘자유기고가’ ■ 사진·박해윤 기자

2004. 10. 11

지난해 억대 연봉의 CEO 자리를 그만두고 강원도 홍천의 깊은 산속에 ‘피스 오브 마인드’라는 북 & 베이커리 카페를 열어 세간의 관심을 모았던 (주)비비안 전 사장 김종헌씨와 아내 이형숙씨. 최근 자신들의 잔잔한 삶을 담은 자전 에세이 ‘Peace of mind-빵굽는 아내와 CEO 남편의 전원카페’를 펴낸 이들 부부를 만나 50대에 찾은 진정한 행복에 대해 들었다.

억대 연봉 CEO 그만두고 깊은 산골에서 북 & 베이커리 카페 운영하는 김종헌·이형숙 부부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부부가 있다. 어엿한 중견기업의 대표이사라는 안정된 자리를 버리고 지난해 10월 강원도 홍천 허브마을에 북 & 베이커리 카페 ‘피스 오브 마인드’를 연 김종헌(57)·이형숙(52) 부부가 그 주인공.
“각박한 도시의 삶에 지친 사람들이 찾아와 편안하게 정신의 양식인 책도 보고, 육체의 양식인 빵과 허브차도 즐기면서 마음의 평화를 얻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피스 오브 마인드’를 찾았을 때 아홉 개의 산등성이가 병풍처럼 겹겹이 둘러싸고 있는 깊은 계곡이 그림처럼 아름다운 카페의 주변 경관에 넋을 잃어 한참 뒤에야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카페 안에는 “정말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을 만큼 수많은 책과 음반이 비치되어 있었다. 1만여 권의 고서와 5천여 장의 희귀 음반 사이로 빵 굽는 냄새가 구수하게 풍겨왔다.
먼 곳에서 찾아온 손님을 반갑게 맞이하는 김씨에게 “카페 이름이 좋다”고 하자 그가 묘한 미소를 지었다.
“마음의 평화는 우리 부부의 좌우명이기도 하지만 사실 카페의 이름에는 아내와 저 둘만의 추억이 담겨 있어요. 결혼 전 처음으로 우리 두 사람이 영주 부석사로 여행을 갔는데, 그때 묵었던 곳이 ‘평화여관’이었거든요. 그러니까 우리 부부가 실제로 첫날밤을 보낸 여관의 이름과 당시 부석사에서 느낀 부처님의 마음을 연관지어 만든 이름이 바로 ‘피스 오브 마인드’인 셈이죠.”
김종헌·이형숙 부부가 홍천의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카페를 열자 많은 이들이 억대 연봉을 받는 ‘그 좋은 자리’를 마다하고 왜 사서 고생을 하냐고 묻곤 했다. 이 물음에 대한 부부의 대답은 간단하다. ‘더 잘 살기 위해서’라는 것.
“사회생활을 하면서 많은 성공한 사람들을 만났어요. 그런데 돈도 모으고 부귀영화도 누리는 사람들이 의외로 개인적으로는 마음의 평화와 가정의 화목을 상실한 채 외롭게 살아가는 모습을 자주 보았죠. 물론 돈은 좋은 거예요. 물질적인 풍족함과 편리함을 가져다주니까요. 하지만 인생에서 돈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말은 어쩌면 정상에 올라가본 사람의 만용이나 허세로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 부부가 겉으로 보기에 화려한 1막 인생을 접고 소박한 2막 인생을 연 것이 단순한 만용이나 허세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일반 사원으로 입사해 젊음을 바쳐 28년을 일한 끝에 사장이 됐어요. 그 보상으로 많은 연봉도 받고 사회적 신분상승도 이뤘지만, 마음 한구석으로는 늘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여생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품어왔죠.”
외롭게 죽음 맞은 형 보면서 새로운 삶 결심
김씨가 ‘정말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찾은 것은 유럽 지사장으로 근무하며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살던 1980년대 초반이다. 사업상 접대를 하거나 받는 일이 많았던 그는 종종 중세시대의 성이나 방앗간 등을 개조해 만든 호텔이나 레스토랑에서 식사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제 눈을 사로잡았던 것은 옛 성주의 서재를 리모델링해 만든 레스토랑이나 카페였어요. 풍광 좋은 산 위, 고서로 둘러싸인 멋진 식탁에서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시며 책을 꺼내 읽을 때면, 분위기 탓인지 책 읽는 재미도 차의 맛과 향기도 깊게 느껴졌죠. 그때부터 북카페를 만들 꿈을 꾸기 시작했어요.”

억대 연봉 CEO 그만두고 깊은 산골에서 북 & 베이커리 카페 운영하는 김종헌·이형숙 부부

산골로 와서 24시간 붙어살면서 서로에 대한 사랑을 다시 느낀다는 김종헌·이형숙 부부.


그가 북카페에 대한 꿈을 갖게 된 것은 원래 고서라면 땅을 팔아서라도 손에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그의 수집벽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중학교 때부터 시작된 이 지독한 수집벽은 회사에 들어가서도 계속되었다. 국내든 해외든 출장만 다녀오면 그의 가방 속엔 고서들이 한 보따리 들어 있었다. 그리고 귀한 고서가 있을 만한 곳이면 어디든지 시간을 쪼개 달려갔다. 1천만원이 넘는 고서를 사느라 회사에서 월급을 가불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렇게 해서 모은 고서가 1만여 권이나 된다.
아내 이씨는 “남편의 이런 책 수집벽으로 인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일도 겪었다”며 10년 전 일을 회상했다.
“1년이면 책이 4백~5백 권씩 늘어나 30평대 집에선 도저히 그 책들을 감당할 길이 없었어요. 그런 어느 날 남편이 집 근처 새로 신축 중인 빌라로 불쑥 저를 데리고 가서는 그 자리에서 바로 계약을 하고 즉석에서 이사 날짜까지 정해버리는 거예요. 그런데 하필 이사 날짜가 제가 인도여행을 떠나기로 한 날이었어요. 결국 저는 예정대로 인도로 떠났고, 남편 혼자 그 많은 살림을 꾸려 이사를 했죠.”
이씨는 인도에서 돌아와 새로 이사한 집에 들어선 다음에야 남편이 왜 자신을 인도에 보내주었는지, 그리고 남편이 왜 혼자 그 어려운 이사를 했는지 알게 되었다.
“60평 가까운 넓은 집이 전에 살던 집보다 더 좁아 보이는 거예요. 전에는 지하실에 그냥 쌓아뒀던 책까지 모조리 꺼내 방방마다 채우고도 모자라 거실과 안방, 화장실까지 책을 꽂아놓은 거 있죠. 심지어는 안방 제 화장대까지도 책장이 되어 있기에 ‘이제 어디서 화장을 하냐’고 화를 냈더니, 남편이 ‘나는 당신이 화장 안 한 모습이 제일 예쁘다’고 말하는데 어이가 없어 그냥 웃고 말았죠.”
이씨는 독일에서 살면서 남편의 권유로 3년 동안 뒤셀도르프의 유명한 빵집 ‘헤라클레스’에서 빵 굽는 기술을 배웠다. 그는 “처음엔 취미로 시작했지만 나중엔 빵 굽는 기술 하나만으로 나도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한다. 그 뒤 한국으로 돌아와 제과고등기술학교를 다녔고, 미국의 제과제빵 연구소에서 연수도 했다.
그뿐이 아니다. 96년엔 아들과 함께 수능시험을 봐서 배화여대 전통조리학과에 들어갔고 2년 뒤엔 서울산업대 식품공학과로 편입해 공부를 계속했다. 그러면서 내심 제과제빵의 전문가가 되어보자는 목표를 세웠다. 지금 그는 그 목표를 위해 대학원 박사과정에 다니면서 자생 허브를 이용한 제과제빵과 떡을 연구하고 있다.
이씨가 빵 굽는 기술을 배우기 시작하자 김씨의 북카페 꿈은 자연히 ‘책이 있는 빵집’으로 커져갔다. 아름다운 전원 속의 책이 있는 빵집. 어쩌면 그냥 생각으로만 끝났을 수도 있는 그 꿈을 현실로 옮기는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몇 년 전 그의 형이 정년퇴임을 불과 며칠 앞두고 급성간염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것. 당시 그의 형은 이혼 후 두 딸마저 미국으로 유학을 보내고 홀로 지내고 있던 터라 김씨 부부가 몇 달 동안 병상을 지켰다.
“가족도 없이 홀로 살다가 돌아가신 형님을 지켜보면서 비로소 가정의 화목이 얼마나 중요한지, 직장생활의 끝이 얼마나 허무한지를 깨달았어요. 저 역시 직장생활을 하면서 일에 묻혀 사느라 집사람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제대로 가장 노릇을 하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더군요. 그래서 결단을 내리게 됐어요.”
2000년 9월, 회사에 사직서를 냈다. 28년간의 회사생활을 정리한 후 쉬면서 카페에 대한 구상을 가다듬은 그는 산 좋고 물 좋은 곳을 찾아 강원도와 경기도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러던 중 홍천의 아로마 허브동산을 지나다 주변 산세와 석양의 모습에 홀딱 반해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그리고 몇 달 동안의 공사 끝에 지난해 10월 ‘피스 오브 마인드’의 문을 열었다. 25년간 키워온 ‘책과 빵이 있는 카페’라는 부부의 꿈을 마침내 이룬 것이다.

억대 연봉 CEO 그만두고 깊은 산골에서 북 & 베이커리 카페 운영하는 김종헌·이형숙 부부

이형숙씨는 직접 기른 허브를 이용해 빵을 굽는다.


“집사람이 주방을 맡아 빵 구우랴 조리하랴 바쁘게 움직이는 동안 저는 여러 가지 소소한 일을 합니다. 청소와 쓰레기 치우기, 마당 가꾸기, 개 산보시키기, 화분에 물 주기 외에 쌀가루 내기와 떡방아 찧기도 제 몫이죠. 장작도 패고, 요즘엔 아침마다 장보기까지 하고 있어요.”
물 한 잔 스스로 챙겨 마시지도 못하고, 은행에서 돈도 제대로 찾을 줄 모르고, 기사 딸린 차만 타고 다녀 운전도 할 줄 몰랐던 지난날의 그를 생각하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홍천에 내려온 후 면허를 따서 이젠 운전도 할 수 있고, 궂은일을 직접 하다보니 볼록했던 배가 홀쭉해졌다며 웃는 김씨의 모습에서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
“하루하루 바쁘게 사는 도시와 직장생활에 묶여 아등바등 살기보다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조금은 여유 있게, 조금은 느린 템포로 살고 싶었어요. 그래서 모든 걸 버리고 떠나왔더니 여기에 행복이 있더라고요. 살아보니까 대만족입니다. 산골에 들어앉으니 폼 잡을 일 없어 좋고요. 요즘 마을 사람들이 저한테 이장하라고 해요. (검정고무신을 보여주며) 제가 벌써 홍천 촌놈 다 됐죠?”
아내 이씨 역시 사모님 소리 듣는 것보다 카페의 주방에서 하얀 조리복을 입고 빵을 굽는 게 더 행복하다고 한다. 그들이 키우는 개 역시 그들만큼 전원생활을 즐기고 있다고. 서울에서 키우는 동안 한 번도 새끼를 낳지 않았는데 지난 봄에 새끼를 세 마리나 낳았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들 부부의 인생 제 1막은 빡빡하고 숨 가빴다. 김씨는 스스로를 일에 묻혀 산 ‘회사형 인간’이었다고 한다. 30대에 회사 중역이 되는 등 외형적으로는 능력을 인정받으며 성공가도를 달렸지만 그럴수록 점점 더 영업 실적에 매달려 하루하루를 정말 숨 가쁘게 살아야만 했다고.
야근과 출장이 빈번하고, 저녁마다 이어지는 접대와 회식으로 과음과 과식을 반복하다보니 몸도 서서히 망가졌다. 회사와 가족에게는 숨겼지만 과로와 스트레스로 졸도한 일도 여러 번이었고, 호흡장애와 심장장애까지 일으킨 적도 있었다.
“국내 영업 총괄전무로 근무하던 90년대 초에 계속 술을 마시다가 속이 쓰리고 아파 위궤양이려니 하고 병원에 가 종합검진을 받았어요. 검사 결과 심한 고혈압이라고 하더군요. 그 지경이 되도록 몸을 돌보지 않았다며 의사에게 야단을 맞고, 그날로 하루 두 갑씩 피우던 담배를 끊고 등산도 다시 시작했죠. 그리고 처방에 따라 혈압약을 장기 복용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10년 이상 고혈압 치료제를 장기 복용하다보니, 부작용으로 발기부전 증세가 나타났다. 이것은 꼭 성생활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의 남자로서의 자존심과 자신감이 모두 꺾였다. 하지만 전원생활을 시작하면서 그는 모든 걸 되찾았다고 한다. 건강도 되찾고 발기부전 증상도 거짓말처럼 사라진 것이다.
김씨는 자신과 부인의 삶을 뒤돌아보면서 자신들을 ‘엇박자 부부’라고 표현했다. 절묘하게 어긋나 떨어져 지낸 시간이 많았기 때문이다. 잦은 출장으로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았던 김씨가 내근을 하게 되자 이번엔 아내 이씨가 제빵 공부를 하겠다며 미국유학을 갔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는 김씨가 다시 뉴욕 지사장을 맡아 집을 떠나야 했다.
그렇게 어긋나기만 하던 부부가 산골에 들어와서는 24시간 붙어 있으면서 ‘한 박자 부부’가 됐다. 김씨는 “나이 들면서 결국 남는 것은 부부뿐”이라며 “카페를 연 것도 실은 두 사람만의 오붓한 삶을 살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억대 연봉 CEO 그만두고 깊은 산골에서 북 & 베이커리 카페 운영하는 김종헌·이형숙 부부

지난 8월27일 김씨 부부의 금혼식을 맞아 자리를 함께 한 가족들. 왼쪽부터 딸 세경씨와 김종헌씨, 김씨의 어머니, 이형숙씨와 외손자, 아들 형태씨.


김씨는 지난 30년간 일에 파묻혀 살면서 가정을 소홀히 한 자신 옆에서 묵묵히 참고 견뎌준 부인에게 고맙고 미안하다고 털어놓았다.
“독일에서 살 때 집사람은 독일어를 잘 못하면서도 아이들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입학시키는 일부터 시작해 모든 일을 혼자서 다 했어요. 그러면서 제빵 기술도 배우러 다니고. 그때 경험으로 소심했던 아내가 다부진 사람이 된 거 같아요. 그러니까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들을 두고 미국으로 공부하러 갈 수 있었던 거 아닐까요? 제가 일에 치여 자상한 남편 노릇을 못한 게 집사람을 굳센 여자로 만들어준 셈이죠(웃음).”
지금 부부는 예전에 함께 하지 못했던 시간을 전부 보상받고 있다. 각자 맡은 일을 하다가 어느 한 사람이 “저 산에 해 지는 모습 좀 보세요” 하면 일손을 멈추고 멀리 공작산을 바라본다. 시시각각 변하는 해와 산의 모습 중에서도 석양 무렵의 해와 산은 무척이나 아름답고 신비스럽기까지 하다고. 그런 순간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있어 부부는 행복하다고 한다.
홍천으로 온 이후 부부관계뿐만 아니라 자녀들과의 관계 또한 좋아졌다. 아이들과 자리를 같이하고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결혼한 큰딸은 사위, 외손자와 함께 한 달에 두세 번씩 내려오고, 김씨가 몸담았던 회사에 다니는 아들은 회사일이 바쁘지 않는 한 주말마다 내려와 손님 시중을 돕는다.
서울에 살 때는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해 자주 못 만났던 친구들도 카페를 찾아와줘 오히려 자주 만나게 되었다. 거기에 덤으로 새로운 친구들도 많이 얻었다.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부부는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단순히 손님이 아니라 친구가 된 듯한, 친구를 초대해놓고 저녁 시간을 보내는 듯한 기분이 들 때가 많다고 한다.
“때론 부부싸움을 하고 홧김에 드라이브를 나왔다가 우연히 우리 카페에 오는 손님도 있어요. 그런데 우리 부부와 수다를 떨며 빵도 먹고 차도 마시고 포도주도 마시다보면 제풀에 화가 풀어져 돌아간다니까요(웃음).”
화나고, 슬프고, 외롭고, 속상한 채로 카페에 왔다가 웃으며 돌아가는 손님들을 보면 부부는 힘이 나고 자신들의 선택이 옳았음을 새삼 느낀다고 한다.
김씨 부부는 최근 지난 30년 부부생활과 ‘책과 빵이 있는 전원카페’를 만들기까지의 과정,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자전 에세이 ‘Peace of mind-빵굽는 아내와 CEO 남편의 전원카페’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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