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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구미화 기자의 참참참~ 교육법

국민대 김재준 교수의 ‘창의적인 영재 교육법’

‘독서를 많이 하면 수학도 잘할 수 있다’

■ 글·구미화 기자 ■ 사진·지재만 기자

입력 2004.10.06 10:01:00

국내외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소위 ‘영재’라고 불리는 학생들의 공부법을 취재하다보면 “어려서부터 책을 많이 읽었다”는 이야기가 빠지지 않고 나온다. 이공계열에서 실력을 발휘하고 있는 학생들의 부모조차 자녀를 영재로 키운 일등 공신으로 ‘분야를 가리지 않은 다독’을 꼽는다. 다독가로 유명한 국민대 김재준 교수로부터 독서와 학업 성적의 연관성, 효과적인 독서 지도법에 대해 들어봤다.
국민대 김재준 교수의 ‘창의적인 영재 교육법’

미국에서 유학하며 세계적으로 우수한 학생들을 지켜본 김재준 교수는 우리 아이들이 교과서에만 의존하는 공부 방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 자기 생각을 글로 표현할 줄 알아야 세계 무대에서 밀리지 않고 경쟁할 수 있다고 말한다.


각각 2001년과 2004년 국제화학올림피아드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어 화제를 모았던 박현우·영우 형제의 어머니 이선기씨(46·구암초등학교 교사)는 “두 아들이 어려서부터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책을 읽은 것이 생각의 폭을 넓게 하고 스스로 공부하는 힘을 키워준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서울과학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전기전자공학부에 진학한 현우씨는 삼국지를 여러 번 읽었고, 서울과학고에 재학 중인 영우군은 고3이지만 요즘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고 있다고 했다.
지난 2월, 민족사관고를 2년 만에 조기졸업하고 하버드대, 프린스턴대, 스탠퍼드대 등 미국 명문 10개 대학에 동시 합격해 화제를 모은 박원희양의 어머니 이가희씨(42·시인)는 원희양이 어렸을 때 자장가를 불러주는 대신 책을 읽어주고, 손으로 글자를 가리키며 구연동화를 들려줬다고 한다. 아이들 수준에 개의치 않고 다양한 책을 읽어줬다는 그는 “원희가 네 살쯤 되자 ‘엄마, 내 생각엔…’ 하고 말할 정도로 언어 능력이 뛰어났다”고 말했다. 민족사관고에 진학한 원희양은 영어 단어를 외우기보다 원서로 된 셰익스피어, 톨스토이, 헤밍웨이 등의 작품을 이해가 될 때까지 반복해 읽으며 영어와 작문 실력을 쌓았다고 한다. 원희양은 앞으로 생물학을 전공해서 불치병을 치료하는 신약을 개발해 노벨상을 수상하는 것이 꿈이지만 셰익스피어와 제임스 조이스의 작품을 줄줄 외울 정도다.
국내외에서 그 실력을 인정받은 학생들의 공부법을 취재해보면 “어려서부터 책을 많이 읽었다”는 이야기가 빠지지 않고 나온다. 특히 박현우·영우 형제, 그리고 박원희양의 경우 모두 이공계 분야로 진출할 계획이지만 어려서부터 ‘글공부’에 관심이 많았다. 이들의 부모는 하나같이 ‘분야를 가리지 않은 다독’이 아이들을 영재로 키웠다고 자부한다.
교과서와 참고서를 보기에도 시간이 마냥 부족하게 느껴지고, ‘수학과 과학을 잘하는 데 독서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면 국민대 경제학부 김재준 교수(44)의 말에 귀를 기울여볼 만하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수학한 김재준 교수는 경제학 교수이면서 개인전을 4차례나 연 미술 애호가. 다방면에 호기심이 많아 시사주간지 ‘주간동아’에 1년 가까이 음식칼럼을 쓰기도 하고 다독가로도 유명한 그가 최근 서울대 주경철(서양사학과)·신광현(영어영문학과) 교수, 김종면 한국조세연구원 연구위원과 함께 ‘언어사중주’라는 제목의 책을 펴냈다. ‘언어사중주’는 4명의 저자가 각각 읽기(주경철), 글짓기(신광현), 영어(김종면), 수학(김재준)으로 분야를 나눠 언어감각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 교수는 “언어감각을 키우면 수학, 과학도 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수학에서 요구하는 논리적 사고능력도 결국 생각의 수단은 언어라는 점에서 국어나 영어와 같은 언어의 학문이라는 것. 그는 풍부한 독서를 통해서만 논리적인 사고를 이끄는 언어감각을 키울 수 있다고 말한다.
“독서는 지식을 얻기 위한 행동인 동시에 책에 쓰인 표현과 함께 생각의 흐름을 익히는 행위예요. 지식은 교과서와 참고서로 얻을 수 있지만 언어감각은 광범위한 독서를 하지 않으면 습득하기 어렵죠.”

미국과 유럽 학생들 한 학기에 30~40권의 책 읽어
김 교수는 3년 전 전 세계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를 비교한 자료를 접한 뒤 한국의 교육 풍토에 문제의식을 갖고 ‘언어와 창의성’이라는 주제로 책을 쓰게 됐다고 한다.
“전 세계 15세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를 보면 한국은 27개국 중 과학과 수학 분야에서 각각 1, 2위, 읽기는 6위를 차지했어요. 그런데 진짜 공부를 잘하는 그룹인 상위 5%를 비교해보면 과학은 5등, 수학은 6등, 읽기는 충격적이게도 20위였어요. 우리 학생들이 평균 성적은 높은 편이지만 공부를 아주 잘하는 학생들은 많지 않다는 얘기죠.”

국민대 김재준 교수의 ‘창의적인 영재 교육법’

김 교수는 질문은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지식을 흡수하는 우리의 교육 현실을 상기시키며 “우리 교육은 창의력을 키우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교과서와 참고서에만 의존하다보니 폭넓은 사고를 하지 못해 평균 수준을 뛰어넘는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 매년 수능시험이 끝나면 “난이도와 출제 유형이 달라져 수험생들의 성적이 대폭 하락했다”는 기사가 쏟아지는 이유도 시험 유형에 맞춰 수동적으로 학습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창의적으로 사고하지 못하고 유형만 좇아가다보니 유형에서 벗어난 문제가 나오면 ‘헤맬 수밖에’ 없다는 것.
“대학입학시험은 고등학생이 풀지만 대학 교수들이 출제하잖아요. 대학 교수들은 기본 원리를 매우 중요시합니다. 그리고 얼마만큼 많이 아느냐보다 주어진 정보를 가지고 답을 만들어 나가는 능력이 있는가를 측정하고 싶어하죠.”
그는 “진짜 공부는 생각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며 외국의 경우 폭넓은 독서를 통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기른다고 말했다.
“중·고등학교 때 책을 많이 읽어야 하는데 우리 학생들은 입시 관련 서적에만 매달려요. 미국이나 유럽 학생들의 경우 읽어야 할 도서목록이 꽤 많아요. 대학도 마찬가지죠. 우리는 책 한 권을 정해 3분의 2 정도 배우면 한 학기가 마무리 되는 데 반해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한 학기에 30~40권의 책을 읽게 합니다. 초·중·고·대학 모두 마찬가지예요.”
미국 명문 프린스턴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김 교수는 초등학교 시절 전체 60명 가운데 30등 정도 하는 보통학생이었다고 한다. 그가 다른 학생들과 달랐던 건 다독가였다는 점. 그는 밤늦게까지 위인전, 동화책, 역사책 등을 읽느라 다음날 아침 늦잠을 자고, 지각하는 일도 적지 않았다고.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던 그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두 명의 교수를 만나 독서의 실질적인 학습 효과를 체험했다고 한다. 수학은 꽤 잘하는 반면 영어는 원하는 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았던 그는 집 근처에 사는 은퇴한 영문학 교수의 도움을 받았다. 노교수는 첫날 영문으로 된 펄 벅의 소설 ‘대지’를 꺼내놓으며 다음 시간까지 20페이지 정도 읽어오라고 과제를 내줬다. 집에 와서 모르는 단어를 찾아가며 힘겹게 읽고 다시 찾아간 그에게 노교수가 한 첫마디는 “질문해라”였다고. 뭔가 대단한 지식을 가르쳐줄 것으로 기대했던 김 교수는 난감해 하며 몇 군데 해석이 안 되는 부분을 골라 물었고, 노교수는 그에게 “무조건 모른다고 하지 말고 아는 데까지 얘기를 해보라”고 시켰다. 김 교수가 웅얼웅얼 아는 대로 이야기를 하자 교수는 틀렸다면서 그제야 비로소 설명을 해주었다. 그가 더 질문할 게 없어지자 노교수는 수업이 끝났다며 과제를 내주고 사흘 후에 다시 오라고 했다.

책을 읽고 난 후에는 책의 내용을 요약해 말하게 하는 것이 효과적
이런 방식으로는 도대체 영어 성적을 올리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지만 한 달 가까이 지나자 자신의 질문 내용이 바뀌기 시작했다고 한다. 모르는 문장의 의미를 묻는 정도였던 그가 “주인공이 여기서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단어는 여주인공의 심리적 갈등을 미리 예견하는 것일까요?” “같은 단어를 반복적으로 쓰고 있는 것은 무슨 효과를 노리는 것일까요?” 하는 식의 질문을 하기 시작한 것. 석 달 만에 ‘대지’를 다 읽은 그는 그 후 영어 소설을 3권 더 읽고, 노교수로부터 영어 음운학, 문법론을 조금 배우고 나니 영어 성적이 놀라운 속도로 향상됐다고 한다.

국민대 김재준 교수의 ‘창의적인 영재 교육법’

김 교수의 연구실 한쪽은 미술 작업을 위한 공간이다. 벽에 걸린 전시회 포스터들이 미술에 대한 그의 관심을 보여준다.


노교수와의 수업에서 큰 효과를 본 그는 국어 성적도 비슷한 방법으로 끌어올렸다고 한다. 어머니를 통해 알게 된 국문과 교수의 지도를 받았는데 처음 만난 날 차를 마시며 차의 맛에 대한 질문을 계속해서 던진 교수는 글을 하나 주며 읽고, 원고지 5장으로 요약하라고 시켰다고. 그 다음 수업부터는 집중적으로 글을 쓰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지만 편안한 대화의 시간이 상당히 많았다고 한다. 교수와 질문을 주고받으며 토론 같은 대화, 대화 같은 토론을 나눴던 그는 그로 인해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터득했다고. 그 후 국어 성적이 오른 것은 물론 교수와 대화를 나눌 때 다음 질문이 무엇일지 예측할 수 있었던 것처럼 어떤 과목이든 시험문제를 받으면 출제자의 의도가 파악돼 답을 쉽게 찾아낼 수 있었다고 한다.
“영국의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에선 교수와 학생이 일대일로 만나 개인 지도식 토론 수업을 해요. 최고급 수업으로 통하죠. 교수와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학생은 지적인 깨달음을 얻게 되거든요.”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이 교수로부터 개인 지도를 받을 수는 없는 일. 김 교수는 일반 가정에서도 충분히 이러한 교육 방식을 시도해볼 수 있다고 말한다.
“프랑스 철학자 사르트르는 어렸을 때부터 매일 저녁 그날 읽은 책의 내용을 가족들에게 들려줬다고 해요. 책을 읽고 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읽은 것에 대해 대화가 이뤄져야 살아 있는 지혜가 되죠. 더욱이 누군가에게 얘기를 들려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책을 읽으면 더욱 꼼꼼하게 읽게 돼요. 생각을 정리해가며 읽기 때문에 독서 효과는 배가 되죠.”
책을 읽는 것 자체도 중요하지만 읽고 난 다음이 더욱 중요하다는 게 김 교수의 이야기. 때문에 같은 책을 읽은 사람들과 토론을 하거나, 읽지 않은 사람에게 책의 내용을 요약해 들려주는 것이 효과적인 독서법이라고 한다. 따라서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채근만 할 게 아니라 어떤 책을 읽었는지 스스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아이들이 생각을 정리해 표현하는 것이 서투를 때는 부모가 질문을 던져 구체적인 대답을 이끌어내는 것이 좋아요. ‘재미있다’는 한 단어로 이야기할 때는 ‘어떤 점이 재미있는데?’와 비슷한 질문을 여러 개 던져 문장으로 된 대답을 이끌어내고, 다음엔 여러 개의 문장으로 이루어진 단락으로 말할 수 있도록 차츰 발전시켜야 하죠.”
다양한 책을 읽고, 그 책을 타인과의 대화에서 소재로 삼는 것만큼이나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한다. 김 교수는 아이들이 책을 읽고 나면 반드시 책에 대한 감상을 단 2~3줄이라도 글로 남기는 습관을 들이도록 하라고 권한다. 그리고 말로 할 때처럼 글의 양도 차츰 늘려가는 것이 좋다고.
독서와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김 교수는 우리나라 부모들이 아이들 교육에 높은 관심을 보이는 반면 아이들과의 대화에는 인색하다고 지적한다. 특히 아이들이 자랄수록 부모는 아이들과 대화 나누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데 김 교수에 따르면 부모가 모든 해법을 제시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 부모가 교육을 많이 받고, 지식이 많은 것보다 뭔가 배운다는 자체가 아주 좋은 일이라는 것을 따뜻한 관심과 함께 인식시키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국민대 김재준 교수의 ‘창의적인 영재 교육법’

김 교수의 연구실 책장엔 경제서적 뿐만 아니라 문학, 철학, 역사, 문화인류학, 건축,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꽂혀 있어 그의 방대한 독서량을 엿볼 수 있었다.


“아이에게 ‘요즘 무슨 책을 읽고 있니?’ 하고 물었을 때 그 책이 부모가 읽어본 적이 없는 책이라면 그 내용을 들려달라고 하는 것도 교육의 한 방법이에요. 매번 ‘공부해라’ ‘문제집 몇 쪽까지 풀었냐’ 하고 체크만 할 게 아니라 아이가 뭘 배우고 있는지,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중요하죠. 피아노를 칠 때도 바이엘 몇 번, 체르니 몇 번을 쳤는지 확인하는 것보다 조용히 앉아서 아이의 연주를 들어주는 게 훨씬 좋아요.”
김 교수는 특히 한국 부모들이 아이들과 문화적 대화를 나누는 정도(문화적 대화지수)가 세계적으로 최하위 수준이라며 한국 학생들이 고등학교나 대학에서는 우수한 성적을 내는 반면 대학원에 가고, 과학자 등 전문인이 되고 나면 외국에 비해 창의적인 연구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것은 문화예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이라고 말한다.
문화예술에 대한 이해가 수학, 과학을 비롯한 학문적 성과와 연결되는 건 인간이 사고를 할 때 도구로 삼는 것이 바로 언어와 이미지이기 때문. 예를 들어 수학에서 사용하는 도형과 그래프도 모두 이미지다. 수학을 잘하려면 집합, 방정식, 함수 같은 개념을 자신의 언어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할 뿐더러 수식과 그래프 등 시각적인 수단을 잘 활용해야 하는 것. 경제학에서도 그래프가 자주 쓰이며 과학자들도 연구할 때 이미지를 많이 활용한다. 따라서 음악, 미술 등 다양한 이미지 경험을 통해 이미지에 대한 이해력을 높이고, 스스로 이미지를 생성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김 교수는 고1은 고2 과정을, 고2는 고3 과정을 미리 배우는 선행학습이 유행이지만 아이들이 생각하는 능력을 기르려면 부모가 좀더 여유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풍부한 독서와 글짓기를 통해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배우고, 다양한 이미지를 활용할 줄 아는 것이 세계무대에서 통하는 창의적인 영재가 되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여성동아 2004년 10월 4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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