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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가슴 아픈 사연

위암 투병 어머니 떠나보낸 신애라 ‘눈물의 사모곡’

“견디기 힘든 고통으로 고생하다 떠난 어머니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요”

■ 글·최호열 기자 ■ 사진·박해윤 기자, 동아일보 출판사진팀

2004. 09. 10

탤런트 신애라가 깊은 슬픔에 잠겼다. 5년 전 위암 수술을 받은 후 투병생활을 해오던 어머니가 지난 8월20일 새벽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신애라의 가슴 아픈 심경과 아버지 신영교씨가 들려준 암투병 뒷얘기, 정원에 미리 묘를 만들어놓은 뜻밖의 사연 & 빈소 표정을 취재했다.

위암 투병 어머니 떠나보낸 신애라 ‘눈물의 사모곡’

지난해 말, 4년여 만에 라디오 DJ로 방송에 복귀한 신애라(35)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내년엔 꼭 이루어졌으면 하는 소원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어머니가 건강을 회복해 함께 여행을 가는 것이고, 또 하나는 둘째를 낳는 것”이라는 말을 했었다. 특히 첫번째 소원은 그에게 너무도 절실한 바람이었다. 어머니 우명미씨(62)가 말기암 투병중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머니와 함께 여행을 가고 싶다는 바람은 영원히 이룰 수 없는 꿈이 되고 말았다. 그의 극진한 병간호에도 불구하고 지난 8월20일 새벽 2시30분경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부음소식을 듣고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된 고인의 빈소를 찾았다. 장례식장 3층에 마련된 빈소 앞엔 정연주 KBS 사장, 서울YWCA 김숙희 회장, 이광재 국회의원 등 각계각층에서 보낸 조화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빈소 옆에서는 고인의 고교·대학동창들과 한완상 전 부총리 등 고인이 다녔던 새길교회 교인들이 군데군데 둘러앉아 고인을 회상하고 있었다. 빈소를 지키고 있던 매니저에 따르면 오전 일찍 탤런트 김민희와 연극배우 윤석화, 가수 홍서범이 다녀갔다고 한다. 비교적 한적하던 빈소는 오후 6시30분경 오연수, 유호정, 이혜영, 최지우 등 신애라의 절친한 친구들이 찾아와 그를 위로한 것을 시작으로 동료, 선후배 연기자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북적이기 시작했다.
빈소 안엔 신애라와 아버지 신영교씨, 오빠 신동훈씨(38) 부부가 나란히 서서 조문객들을 맞고 있었다. 차인표는 장모의 임종을 지켜본 후 신애라와 함께 빈소를 지키다 드라마 ‘영웅시대’ 촬영을 위해 아침에 의정부 세트장으로 향했다고 한다. 매니저에 따르면 일단 이날 촬영분은 소화를 한 후 다음날부터의 촬영일정은 조정해 빈소를 지킬 예정이라고.
검은 상복을 입은 신애라는 조문객이 없을 때는 멍 하니 어머니의 영정을 바라보곤 했는데, 화장기 없는 얼굴에 눈물자국이 남아 있어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는 가까운 친척이 오면 끌어안고 “견디기 힘든 고통으로 고생하다 떠난 어머니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인지 비교적 차분한 모습이었다.

미리 전원주택 정원에 아내의 묘 아름답게 꾸며놓은 아버지
조심스럽게 말을 붙여보려 했지만 신애라는 “편안하게 돌아가신 호상이 아닌 만큼 지금은 아무 이야기도 하고 싶지 않다”는 뜻을 전해왔다. 또한 자신의 사진 뿐 아니라 영정사진도 찍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대신 아버지 신영교씨로부터 고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동아방송 어린이합창단 지휘자로 활동하던 신씨는 같은 방송국에서 근무하던 아내 우명미씨를 만나 결혼했다고 한다.
“아내는 동아방송 PD로 공채 1기 출신이에요. 또한 퇴직 후에는 다큐멘터리 방송작가로 활동하며 KBS 다큐멘터리 ‘한국전쟁’으로 한국방송대상을 수상하기도 했어요. 청소년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던 라디오 프로그램 ‘밤을 잊은 그대에게’의 방송작가로 오랫동안 활동하기도 했고요. 능력이 많은 사람이었죠.”
그에 따르면 우씨는 5년 전에 처음 위암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고, 우씨 역시 책을 보며 암을 공부하는 등 스스로 암을 이기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책에 나와 있는 대로 채식만 하는 등 철저한 금욕생활을 했다는 것.

위암 투병 어머니 떠나보낸 신애라 ‘눈물의 사모곡’

신애라 아버지 신영교씨가 집 정원에 미리 만들어 놓은 고인의 묘비.


“한동안 암세포가 발견되지 않았어요. 그래도 꾸준히 검사를 받았어야 했는데, 자기관리를 과신했던 것 같아요. 몸 상태가 좋아지니까 한동안 검사를 받지 않았어요. 그 바람에 초기에 재발사실을 발견하지 못한 거죠. 몸이 안 좋아져 지난해 5월에 병원에 갔는데, 그때는 이미 간 등 다른 장기로까지 전이가 된 후였어요.”
재발 사실을 알았을 때는 이미 수술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병원에서 현대 의술로는 어쩔 수 없다고 한 것. 하지만 우씨는 희망을 잃지 않고 투병생활을 했고, 가족들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일주일에서 보름씩 병원과 집을 오가며 투병생활을 했어요. 그런데 지난 8월12일에 몸 상태가 갑자기 나빠져 병원에 입원을 했죠. 병원에 있을 때도 아내는 고통이 말도 아니었을 텐데도 가족들에겐 평온한 모습을 보였어요. 의식을 잃기 전날까지도 저와 함께 드라마를 보고, 글을 썼으니까요. 그래서 입원할 때도 이게 마지막이란 생각은 안했는데, 결국 8월17일에 의식을 놓고 말았죠.”
우씨가 의식불명에 빠지자 신애라는 8월18일부터 라디오방송을 중단한 채 어머니 곁을 지켰다. 차인표도 ‘영웅시대’ 촬영을 마치면 곧바로 병원으로 달려왔다. 다른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온 가족이 고인의 임종을 지켜볼 수 있었다고 한다.
신씨는 “아내의 병은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처음엔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도 아내도 그걸 인정할 수 있었다고. 그래서 조금은 마음 편하게 이별을 준비할 수 있었다고 했다.
“아내는 오래전부터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었어요. 저랑 둘이 있으면서 죽음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사람은 누구나 죽잖아요. 그게 내일이든, 10년 후든, 50년 후든, 우리 생각엔 그 시간 차이가 큰 것 같지만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점 하나의 차이만큼도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은 거죠. 그래서 죽음이 겁나지도 않고 두렵지 않다고 하더군요.”
위암 투병 어머니 떠나보낸 신애라 ‘눈물의 사모곡’

고인의 남편 신씨는 고인이 의식을 잃기 이틀 전까지도 드라마를 보는 등 마음의 안정 속에 죽음을 맞이했다고 전했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탓에 우씨는 남편과 자녀들에게 마지막 유언을 남길 수 있었다고 한다.
“‘형제라곤 너희 둘밖에 없으니까 누구보다도 더 사랑하고 의지하며 잘 지내라’고 하더군요. 그래도 둘 다 결혼해 기댈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란 말도 했고요. 그러면서 ‘물론 먹고사느라 바쁘겠지만 혼자 남은 아빠는 이제 기댈 사람이 없으니 잘 챙겨드리라’고 했어요. 아내는 그렇게 죽음을 앞둔 순간에도 아이들과 저를 먼저 생각하는 착한 사람이었어요. 아이들도 엄마를 닮아 착해요. 둘 다 저를 자기네 집에서 모시겠다고 해요. 하지만 전 어느 집에도 안 들어갈 거예요. 아내랑 같이 있을 거예요.”
신씨는 뜻밖의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었다. 8월23일 오전에 발인을 해 아내를 화장한 후 그가 살고 있는 남양주의 전원주택 마당에 미리 만들어놓은 납골묘에 아내의 유해를 안장하겠다는 것이었다. 한달 전에 이미 모든 준비를 다 해놓은 상태라고 했다.
“전에 핀란드 등 유럽을 다닌 적이 있는데, 정원에 묘가 있는 집이 많더라고요. 묘가 가까이에 있으니까 고인을 항상 생각할 수 있다는 게 좋아보였어요. 몇 달 전부터 갑자기 그게 생각이 났어요. 그래서 나도 그렇게 하겠다고 아내에게 말했죠. 아내도 좋다고 하더군요.”
그는 아내를 위해 직접 양지바른 곳에 정원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곳에 일년 내내 아름다운 꽃이 피어 나도록 세심하게 꽃을 심었다. 또한 핀란드에서 자재를 들여와 아내의 묘와 비석을 만들고, 정원을 가꾸었다.
“완성된 정원을 보고 아내가 예쁘다며 좋아하더군요. 그때는 아내가 의식이 또렷할 때라 추모비에 넣을 내용도 봐주고, 묘비에 붙일 사진도 직접 골라주었어요.”
아내와 함께 정원의 묘비를 둘러보던 때가 떠오른 것일까, 먼 하늘을 바라보며 엷은 미소를 짓던 그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위암 투병 어머니 떠나보낸 신애라 ‘눈물의 사모곡’

신애라의 동료 연예인들이 빈소를 찾아 그를 위로했다. 왼쪽부터 오연수, 이헤영.


화제를 신애라 이야기로 돌렸다. 어려서부터 우씨와 신애라는 서로 속내를 터놓고 지내는 절친한 모녀였다고 한다. 그래서 어머니의 암이 재발하자 큰 충격을 받은 신애라는 모든 방송활동을 중단하고 어머니 병간호에 매달렸다. 병원에 입원했을 때 24시간 간호한 것은 물론, 틈틈이 어머니를 자신의 집으로 모셔가 간호를 했다. 당시 여섯살로 한창 개구쟁이 짓을 할 때인 아들을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하며 병간호까지 한다는 게 쉽지 않을 법한데도 그는 정성을 다해 주위 사람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고.
신애라는 지난해 말,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방송 복귀 요청이 많이 들어왔지만 어머니를 돌봐야 하기 때문에 고사를 했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다 남편 차인표가 “우울할수록 바깥일을 하라”고 적극 권유해 메이크업을 해야 하는 등 준비시간이 긴 TV와 달리 상대적으로 시간을 덜 뺏기는 라디오 ‘밤을 잊은 그대에게’ DJ를 맡았다는 것. 대신 방송국에 1주일에 절반은 생방송을, 절반은 녹음방송을 하기로 미리 양해를 구했다고 했다.
그는 라디오를 진행하다가도 아픈 가족이 있는 청취자의 사연을 읽으면 어머니 생각이 나서 울음이 터지곤 한다고 아픈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라디오 사연보다 그를 더 마음 아프게 했던 것은 당시 남편 차인표가 김희애와 함께 열연한 드라마 ‘완전한 사랑’. 드라마에서 김희애가 불치병으로 죽어가는 것을 보면 어머니가 생각나 눈시울이 뜨거워지곤 했다고 했다. 차인표도 그런 신애라의 마음을 헤아려 같이 텔레비전을 보다가 슬픈 내용이 나오면 먼저 몸을 돌려 아내를 꼭 안아주곤 했다고.
차인표 역시 장모에 대한 사랑이 극진했다. 그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장모님’이란 제목의 글에서 “하루하루 입원실에 갈 때마다 점점 기력을 잃어가시는 장모님을 보면 가슴이 찢어진다. 내가 이리 아픈데, 나의 집사람이나 장인, 처남의 심정은, 장모님 본인의 심정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 겉으로 티를 안 내려 노력하지만 역시 마음은 아프다”고 고백했다.
모녀의 정이 깊었던 만큼 신애라의 슬픔이 아물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부디 빨리 슬픔을 딛고 밝은 모습으로 팬들 곁으로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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