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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평등 남편 이야기

가사분담, 요리솜씨로 화제 모으는 민주노동당 의원 노회찬

“인격적으로 대등해야 평등부부 집안일 시키려고 아내 얻는 건 아니잖아요”

■ 기획·구미화 기자 ■ 글·이영래 ■ 사진·김성남 기자

입력 2004.09.10 13:23:00

지난 4월 총선에서 재치 있는 언변으로 ‘노회찬 어록’까지 낳았던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이 요즘은 요리 솜씨로 정계에 화제를 뿌리고 있다. 결혼생활 내내 가사를 분담해온 결과 김치는 물론 갖가지 요리 솜씨가 수준급인 것. 노회찬 의원을 만나 ‘평등부부’로 사는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가사분담, 요리솜씨로 화제 모으는 민주노동당 의원 노회찬

17대 총선만큼 이변이 많았던 적도 드물었던 듯싶다. 이번 총선을 통해 처음 국회 입성에 성공한 초선 의원수만 무려 1백87명, 국회 제적 의원수 2백99명 중 62.5%에 달한다.
매번 선거 때마다 각종 토론회를 통해 스타 정치인이 발굴되게 마련인데 이번 17대 총선이 배출한 스타를 이야기할 때 민주노동당의 노회찬 의원(48)을 빼놓을 수 없다. 재야와 노동계에서는 잘 알려져 있었지만 일반 국민에게 낯설기만 했던 그는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후보 자격으로 각종 TV 토론에 출연하며 특유의 재치 있는 말솜씨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노회찬 어록’이 회자됐을 정도.
그의 말이 네티즌들 사이에 인기를 모은 것은 무엇보다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비유를 써서 생각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노회찬 의원 특유의 화술은 그가 지나온 삶을 잘 보여준다. 그는 한국전쟁 때 함경도에서 부산으로 내려온 피란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월남 1세대 중엔 이념적으로 경직되어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는 일찍이 사회문제에 눈을 떠 이른바 ‘급진적’ 사고방식을 가졌다.
“부산중학 때까지 줄곧 반장을 맡을 만큼 책을 좋아하고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었어요. 그런데 고교 입시에서 떨어진 뒤 상경해 재수 중일 때 ‘10월 유신’을 맞았죠. 학원에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방송을 들었는데 이상했어요. 대통령 중심제인 나라에서 내각제에서나 가능한 국회해산을 한다는 게. 학교에선 그렇게 안 배웠으니 이해가 안 됐죠. 그래서 집에 와서 책을 펴봤더니 역시 헌법 위반이더라고요.”
저녁 때 다시 나가본 광화문과 국회의사당 앞에는 탱크와 장갑차들이 진주해 있었고, 어린 나이의 그는 그 광경에서 ‘불의’를 보았다. 그는 재수를 해서 당대의 수재들만이 입학한다는 경기고등학교에 입학했지만 책과 논리로는 도저히 설명될 수 없는 현실세계의 부조리에 관심을 쏟았다. 철학, 사회과학 서적부터 ‘사상계’ ‘창작과 비평’ 등 사회의식이 담긴 책을 두루 섭렵했고, 친구들과 모여 이런 의식을 공유했다. 그러는 사이 대입 준비는 내내 손을 떠나 있었고 결국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야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가려는 대학은 서울대와 고려대 딱 두 군데 뿐이었어요. 당시 데모를 가장 많이 하는 학교였거든요. 79년에 고려대 정외과에 입학했는데 80년 광주항쟁과 ‘서울의 봄’을 거치면서 지식운동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꼈지요. 현장에서 몸으로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그때 하게 됐습니다.”
그는 대학 재학 중 용접기능사 2급 자격증을 땄고, 이 자격증으로 곧 현장에 뛰어들었다.
“인천에서 현장운동을 할 때 집사람을 만났어요. 저보다 나이가 두 살 많았으니 이미 서른다섯이었죠. 아내는 독신주의였어요. 결혼을 하면 하고자 하는 일을 할 수 없다는 의식이 강했죠. 실제 결혼을 한 뒤 노동운동 현장을 떠나는 분들이 많았어요. 집사람도 그래서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졌던 것 같아요.”
노동운동 현장에서 만난 두 살 연상의 아내에게 두 번 프러포즈 끝에 결혼에 골인
부인 김지선씨(50)는 중학교를 마치고 열여섯 살 때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당시 ‘해고자협의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었다.
“그때가 86년경이었을 겁니다. 삶의 태도 등 집사람에게서 배울 게 많았어요. 여러 모로 마음에 들어 프러포즈를 했는데 보기 좋게 거절을 당했지요. 그런데 인연이 되려고 그랬는지 이듬해 대우중공업 출신 노조원이 선거에 나서 도와주러 갔다가 그곳에서 아내를 다시 만났죠. 그때 다시 한 번 도전한 겁니다.”

가사분담, 요리솜씨로 화제 모으는 민주노동당 의원 노회찬

노동현장에서 만나 결혼한 노회찬·김지선 부부는 투옥과 생활고 등 어려움이 많았지만 가사를 분담하고 서로를 존중하며 부족함 없이 살고 있다.


한 번 거절당한 입장에서 또 한 번 프러포즈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 마침 크리스마스 시즌이기도 해서 그는 신영복 교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란 책을 김씨에게 선물했다. 책 표지 안쪽에 ‘당신의 굳은 결심을 이해하지 못하고 프러포즈해서 미안합니다. 하지만 내 마음엔 변함이 없습니다’라고 썼다고 한다. 말로 한 프러포즈는 실패했지만 글로 한 프러포즈가 성공한 덕분에 두 사람은 마침내 결혼에 골인했다. 그의 나이 서른넷, 김씨의 나이 서른여섯의 만혼이었다.
“결혼하자마자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 사건으로 감옥에 갔어요. 그렇게 3년여 동안 집사람이 제 옥바라지를 하면서 살림을 꾸렸죠. ‘여성의 전화’에서 일을 하고 있었지만 생계를 꾸려갈 만한 액수는 못 돼 책 대여점을 했어요. 제가 출감하고 나니까 ‘얼마라도 좋으니 생활비는 꾸준하게 벌어다 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러겠다고 약속은 했는데, 지키지 못했던 적이 더 많아요.”
96년 당시 그가 약속한 돈은 30만원이었다고 한다. 그동안의 생활고가 어땠을지 짐작할 만하다. 그는 당시 생활형편에 대해 “옷은 아파트 단지 내 재활용품 모아놓은 데서 주워다 입었고 TV는 아예 살 생각도 못했다. 지금은 누가 쓰다 버린 걸 가져다 보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결혼은 식모를 얻는 일이 아니다”라며 “요리실력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남자의 혼수”라고 강조하는 노 의원은 고교 시절부터 무려 18년 동안 자취생활을 한 터라 웬만한 요리에는 통달한 수준. 특히 김치를 잘 담그는 그는 결혼생활 17년 동안 가사를 분담해왔는데 부부간의 약속이나 계획에 의해 그렇게 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제가 집에 있을 땐 제가 집안일을 하고, 집사람이 집에 있을 때는 집사람이 하는 거죠. 그렇게 하기로 약속을 했던 것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어요. 평등부부라고 하는 건 사실 가사분담이 핵심이 아니에요. 인격적으로 평등해야죠.”
한편 ‘학력 수준의 편차가 심한 두 사람이 아무런 반목 없이 지내왔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어 물었더니 그는 “그것이 왜 중요하냐”고 되물었다.
“우리 한번 생각해봅시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는데 지식이 중요했던가요? 부자지간에 누가 더 많이 배웠느냐에 따라 관계가 달라집니까? 결혼도 마찬가지예요. 지식은 제가 더 많을 수도 있지만, 세상을 이해하는 법, 사물을 이해하는 법은 집사람이 저보다 훨씬 나아요. 그래서 제가 정말 배운 게 많아요.”
하지만 부인 김씨의 ‘배움에 대한 한’은 나름대로 컸던 것 같다. 김씨는 지난 2002년 쉰 살을 바라보는 나이에 만학의 길에 들어서 검정고시를 치렀다. 앞서 언급했듯이 부인 김씨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열여섯 살의 나이에 생활전선에 나섰다.

조선시대에도 남편 육아휴직 보장돼
“전 그때까지만 해도 집사람의 최종학력이 중졸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학력을 인정받을 수 없는 비정규 학교를 나왔더라고요. 그래서 중등졸업자격을 얻을 수 있는 검정고시를 친 거죠. 처음엔 말렸어요. 늦은 나이에 졸업자격증을 따서 취업을 할 것도 아니고 왜 공부를 하려고 하느냐면서요. 그런데 아내는 공부를 못한 게 한이었던 듯싶어요. 그때 시험장에 따라갔는데 많이 놀랐어요. 젊은 아가씨부터 나이 많은 아주머니까지 검정고시를 치르기 위해 온 사람들이 정말 많은 거예요. 중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이렇게 많구나 싶어 가슴이 아프더군요.”
부인 김씨는 한 번에 중등졸업검정고시에 합격했고, 연이어 대입검정고시에도 합격해 올해 방송통신대학에 진학했다.

가사분담, 요리솜씨로 화제 모으는 민주노동당 의원 노회찬

역사에도 관심이 많았던 노 의원은 최근 ‘노회찬과 함께 읽는 조선왕조실록’을 펴냈다.


노 의원 부부는 아이가 없다.
“일부러 아이를 낳지 않은 건 아니에요. 워낙 늦게 결혼한데다 결혼하자마자 제가 감옥살이를 하게 돼 아이를 가질 여건이 못 됐죠. 뒤늦게 임신에 도움이 된다는 한약도 먹어봤지만 효과가 없었어요. 제가 장남이라 부모님이 섭섭해 하시면 어쩌나 걱정스러웠는데 도리어 부모님께서 제게 그러세요. 절대 집사람 앞에서 아이 없어 섭섭하다는 티를 내면 안 된다고.”
그의 부친은 평범한 회사원이었는데 부자는 아니었지만 생계를 염려할 정도는 아니었던 터라 그는 굴곡 없이 자랐다. 그런 아들이 노동운동에 투신했으니 부모와의 갈등이 컸을 법한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10년 전인가, 어머니께서 10권이나 되는 스크랩북을 내놓으시더라고요. 노동운동을 하는 아들을 위해 신문에 나온 노사문제 관련 기사들을 꼼꼼하게 오려 모으셨던 거죠. 그걸 받아 드니 눈물이 핑 돌더군요.”
말솜씨만큼이나 글솜씨도 뛰어난 그는 7년 전 ‘어, 그래? 조선왕조실록’이라는 책을 펴냈는데 당시 3만 부나 팔려 나갔다. 그는 최근 이 책을 ‘노회찬과 함께 읽는 조선왕조실록’으로 이름을 바꿔 재출간했다. 사실 이 책은 그의 불우한 삶이 낳은 것이기도 하다. 그가 감옥에서 독방생활을 할 때 ‘조선왕조실록’을 읽으면서 구상한 책이었던 것.
“원래 역사에 관심이 많았어요. 특히 미시적인 것들을 좋아하는데 ‘조선왕조실록’에 담긴 자그마한 삶의 이야기들을 모아본 거죠. 책이 잘 팔리자 출판사 사장하고 2부를 쓰겠다고 약속했는데 민주노동당을 만들면서 그 약속을 못 지켰어요. 제가 국회의원이 된 뒤 그 책을 찾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해서 개정판을 내게 된 겁니다.”
‘노회찬과 함께 읽는 조선왕조실록’ 내용 중 눈길을 끄는 건 조선시대에 남편 육아휴직제도가 있었다는 것. 그의 책에 따르면 세종대왕은 즉위 8년이 되던 해에 관비가 아이를 낳으면 1백 일 동안의 휴가를 주라고 직접 지시를 내렸으며 4년 후 산전휴가 30일을 추가하고, 그로부터 다시 4년 후 그 남편에게도 30일의 육아휴가를 줄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노 의원은 이 같은 역사적 사실에 대해 “선진국에서도 최근에 도입된 남편 육아휴직제도가 세계 최초로 실시된 예”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노동법은 지난 30여 년 동안 산전·후 모두 합해 60일의 출산휴가를 갖도록 규정해오다 지난 2001년 말 출산휴가를 90일로 늘리고, 남편도 유급 육아휴직을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대해 노의원은 “노동계와 여성계의 끈질긴 노력에 힘입은 결과”라며 앞으로도 평등한 부부 생활을 위한 사회적 여건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여성동아 2004년 9월 4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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