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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

살아보니 이렇다!

타워팰리스 주민들의 21개월 입주 체험기

‘너무 편해서 오래 살고 싶다’ vs ‘푸른 나무, 비 온 뒤의 시원함이 그립다’

■ 기획·이한경 기자 ■ 글·이나리‘주간동아 기자’ ■ 사진·정경택 기자

2004. 09. 02

대한민국 주부들이 선망하는 ‘꿈의 궁전’, 서울 도곡동 삼성 타워팰리스가 입주 21개월째를 맞았다. 많은 사람들의 시샘과 부러움 속에 2년 가까이 살림을 꾸려온 타워팰리스 주민들은 정작 자신들의 집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타워팰리스 주민들의 21개월 입주 체험기

삼성그룹의 야심작인 타워팰리스는 2002년 분양 당시부터 숱한 화제를 뿌렸다. 지상 262m 높이의 이 건물은 진도 6.0 규모의 지진과 초속 35m의 강풍에 견딜 수 있으며 헬스클럽, 수영장, 골프연습장 등의 스포츠시설은 기본에 클럽하우스, 게스트룸, 실버하우스 등 호텔급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다.
타워팰리스의 독특한 분양 방식 또한 화제였다. 사회적으로 비슷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끼리 살 수 있도록 서구식 상류사회 시스템을 구축해 돈이 있어도 삼성이 정한 ‘기준’에 맞지 않으면 분양권을 살 수 없었다.
값도 당연히 비쌌다. 분양가 자체도 비쌌지만 어마어마한 프리미엄이 붙은 결과였다. 최근의 부동산 하락세에도 불구하고 타워팰리스의 가격에는 큰 변동이 없다. 타워팰리스 1차 68평형의 경우 2002년 10월에는 11억원이던 것이 지금은 무려 18억4천만원이다. 2003년 2월 10억9천5백만원이던 2차의 67평형은 현재 17억5천만원을 호가한다.
그러면 고급 아파트의 대명사로 많은 이들의 시샘과 부러움 속에 2년 가까이 살림을 꾸려온 타워팰리스 주민들은 정작 자신의 집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도둑 걱정 없고 편의시설 많아 편리
“푸른 나무, 비 온 뒤의 시원한 바람이 그립죠.”
“밖에 나갈 일이 없는걸요. 너무 편해서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타워팰리스 1차에 사는 두 주부의 말이다. 이들의 평가는 대다수 타워팰리스 주민의 생각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자연스러움이 아쉽다, 그러나 편리하다.’
타워팰리스 주민들이 가장 높이 사는 것은 철저한 보안과 원-스톱 리빙(One-Stop Living) 시스템이다.
주부 최모씨는 “도둑 들어올 걱정 같은 건 전혀 안 해요. 이제껏 그런 적도 없고요. 집까지 들어오려면 거쳐야 하는 관문이 여러 개인 데다 로비에 늘 직원들이 있고, CCTV만도 수백대 잖아요” 하고 말하고는 “건물 관리가 워낙 철저한데다 집에 못 하나 박는 일까지 대신 해주니 아쉬울 것이 없다”고 덧붙였다.
또한 주부 박모씨는 “타워팰리스의 관리비는 평당 1만원 안팎인데 전기를 아껴 쓰면 평당 7천~8천원 선에서 해결이 가능하다. 그 돈으로 수영장, 사우나, 헬스클럽, 실내 골프연습장, 독서실까지 다 이용할 수 있으니 비싸다고는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삼성그룹 계열사 임원인 이모씨 역시 “모든 면에서 만족스럽다. 가장 좋은 건 주차장에 가구당 두 대씩 지정된 자리가 있는 점이다. 교통도 생각만큼 복잡하지 않다”고 자랑했다.
그러나 타워팰리스의 여러 장점은 또한 그 자체로 단점이기도 하다. 먼저 66층에 달하는 초고층 빌딩이라 뛰어난 전망을 선사하지만 자연과 접하기 힘들다는 단점이 된다.
50층에 거주하는 주부 박모씨는 타워팰리스에 입주한 처음 몇 주 동안 눈이 따끔거리는 증상에 시달렸다.
“의사가 ‘고도가 높아 그러니 3개월 내에 적응이 안 되면 이사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하더군요. 다행히 그 증상은 없어졌는데 다른 증세가 생겼어요. 아프거나 우울하면 꼭 붕 뜬 기분이 들거든요. 왜, 63빌딩 같은 데 올라가면 누가 발바닥을 간질거리는 듯한 느낌이 들잖아요. 어떤 때엔 꼭 캡슐 속에 들어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타워팰리스 주민들의 21개월 입주 체험기

타워팰리스는 골프연습장, 연회장, 헬스클럽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사람에 따라서는 건물의 흔들림을 느끼기도 한다. 철골조로 지어진데다 워낙 높기 때문이다. 주부 신모씨는 “그로 인해 어지럼증과 매스꺼움을 호소하는 노인을 봤다”고 말했다.
이러한 신체 부적응 반응에 대해 인근 공인중개업소나 주민들은 “대부분은 3개월쯤 지나면 다 적응한다”고 입을 모았지만 지상과 초고층을 오가며 생활하는 사람들, 특히 몸이 약하거나 지병이 있는 경우라면 그저 가벼이 넘길 일만은 아니다.
2001년 원미연 전 국토연구원이 발표한 ‘아파트 주거층수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란 논문에 따르면 ▲오한이 든다 ▲복통이 잦다 ▲눈이 따갑다 ▲코가 시큰거린다 ▲손이 저리다 ▲피로가 지속된다 ▲과민반응, 정서불안 ▲속 울렁거림이나 현기증 등을 ‘고층아파트 증후군’이라고 한다.
건국대 심순희 가정학과 교수와 강순주 소비자주거학과 교수가 공동 집필한 논문 ‘초고층 아파트 거주자의 주거환경 스트레스와 건강’에서는 초고층 거주자들은 소음, 승강기 및 사고에 대한 불안 등으로 인해 평균 이상의 주거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어린이 노약자가 더 큰 피해를 본다고 밝히고 있다.
타워팰리스 2차에 거주하는 한 주민은 올 1월 일어난 47층 거주 노인(86)의 자살 사건을 언급하며 “유서에 ‘마음이 불안하고 머리가 무겁고 몸이 아파 못살겠다’는 구절이 있었다고 들었다. 지병인 고혈압을 비관해 자살했다지만 유서 내용이 심상치 않다”고 말하기도 했다.
장림종 연세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초고층에서 느끼는 심리적 불안감은 개량화해 검증된 결과는 없으나 그 영향에 대해선 누구나 동의하는 사실”이라고 했다.
초고층인 만큼 타워팰리스는 철저히 인공적인 주거시설이다. 대표적인 특징이 창문을 거의 열 수 없는 것. 밀면 20cm 정도 벌어지는 작은 창이 고작 4개 있을 뿐이다. 주부 박모씨는 “환기는 잘 되는데 간혹 창문을 확 열어젖히고 맨바람을 맞고 싶은 욕구가 인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부 박모씨 역시 “사방이 열 수 없는 유리라 한여름에는 꼭 온실에 들어앉아 있는 느낌”이라고 하소연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창문을 50cm까지 열 수 있도록 하는 개조 공사가 활발하다.
밀폐돼 있어 소음이 거의 없는 것이 도리어 불안 요소가 되기도 한다. Maramgoni라는 네티즌은 타워팰리스의 장단점을 언급한 글에서 “너무 조용해 집이 아니라 호텔같이 느껴진다”고 했다. 천의영 경기대 건축전문대학원 교수는 “소음 차단이 너무 잘 되면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만으로도 신경이 곤두설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가구가 다 붙박이라 우리 집만의 분위기 내기 쉽지 않아
타워팰리스의 독특한 구조는 생활 패턴마저 바꾸고 있다.
“다용도실이 없어서 큰 손님을 치르거나 김치를 담그기가 쉽지 않아요. 또 평수가 40평 밑인 데는 빨래 널 곳도 넉넉지 않더라고요. 그런 말을 하면 이웃 사람들은 ‘요즘 누가 김치를 담가 먹냐, 빨래는 대충 세탁소에 맡겨라’ 그런 말을 해요. ‘타워팰리스 식’으로 살아야 한다는 거죠. 그래도 전 고집스레 김치 담그고 손님 치르며 살지만, 여기서 편하려면 옛 생활방식은 버려야겠더라고요.”
한 60대 주부의 말이다. 자녀들이 ‘편하게 사시라’고 강권해 타워팰리스로 들어왔다는 그는 “가구도 다 붙박이라 주부만의 개성이나 우리 집만의 분위기를 내기가 쉽지 않다. 편하긴 한데 내 집 같지가 않다”며 아쉬워했다.

타워팰리스 주민들의 21개월 입주 체험기

타워팰리스 고층에서는 서쪽으로 인천, 동쪽으로 하남 미사리까지 보인다(왼쪽). 또한 영화감상실, 독서실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또 다른 60대 주부는 “부모 잘 만나 여기서 청소년기를 보낸 아이들이 독립 후에는 어떻게들 일상생활에 적응할까 걱정되기도 한다. 너무 고생을 모르고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는 것 같아 오히려 안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아무 문제 없다”는 주민들도 많다. 기업체 간부인 윤모씨는 “단지와 양재천이 바로 연결돼 있다. 산책하기도 좋고 운동하기도 좋다. 중앙집중형 습도·청정 시스템 덕에 실내 공기도 깨끗하다. 아이들 키우기도 나무랄 데 없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안전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우편물이며 집집마다 들고 나는 사람이 다 체크되는 상황에 대해서도 “안전을 위해서는 얼마간의 사생활 침해는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웃들 간의 교류는 어떨까. 차모씨는 “와보니 고등학교 동창만 7명이 살고 있더라. 간혹 만나 맥주잔을 기울인다”고 말했다. 타워팰리스 내에는 이렇게 같은 직업을 갖거나 학교를 졸업한 사람들끼리의 커뮤니티가 제법 활발하다. 주민 중에는 다른 무엇보다 ‘수준 맞는’ 사람들끼리 친분을 나눌 수 있다는 점에 가장 높은 점수를 주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옆집’에 사는 사람에 대해서는 무지하고 무관심한 것이 또 타워팰리스 사람들이다. 주상복합이란 기본적으로 사생활 보호와 독립성을 최우선시하는 주거 형태이기 때문이다.
소설가 복거일씨는 “주상복합의 특징은 자족성과 안전성이다. 그러나 이는 필연적으로 배타성을 낳는다. 타워팰리스는 주민도 선별하지 않았나. 자유로움과 유동성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강순주 교수는 “초고층 주상복합은 사생활 보호가 필요한 유명인,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짧은 직장인, 해외와 국내를 오가거나 교외에 따로 ‘집’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더 적합한 주거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전업주부나 은퇴한 부부 등이 하루 종일 꼭 붙어 살기에는 적당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그러므로 재산증식이나 사회적 시선보다는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에 어울리는 공간을 찾는 것이 현명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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