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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관에서 아이들 대상으로 종이접기 가르치는 주부 김수현

“고사리 같은 손으로 종이를 꼭꼭 눌러 접으며 집중하는 아이들 보면 가슴이 뿌듯해요”

■ 기획·최호열 기자 ■ 글·안소희‘자유기고가’ ■ 사진·정경택 기자

입력 2004.09.02 11:16:00

일주일에 한 번씩 종합사회복지관에서 아이들에게 종이접기를 가르치는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는 김수현씨(38).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며 이웃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즐거움을 느낀다는 그가 들려주는 신나는 봉사활동 체험.
복지관에서 아이들 대상으로 종이접기 가르치는  주부 김수현

“엄마, 지금 2시15분이니까 이제 45분 남았다. 그치?” 아들 태호(9)가 벽시계 앞에 서서 5분마다 시간을 생중계하고 있다.
“엄마, 지금 2시20분이니까 이제 40분 남았다. 그치?”
“그래, 내가 졌다. 지금 출발하자.”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가방을 둘러메고 신발을 신으러 달려간다. 복지관에서 영어, 수학 강좌를 듣는 태호의 모습은 축 처진 어깨를 하고 학원으로 향하는 여느 아이들의 모습과는 다르다. 태호에겐 복지관이 놀이터인 모양이다. 복지관엔 친구도 있고 이웃집 아줌마도 있고, 무엇보다 엄마가 있기 때문이리라. 집에서 차분히 강의 내용과 준비 재료를 정리하려고 했건만 태호의 성화에 오늘도 복지관에 일찌감치 도착했다.
매주 금요일은 내가 유락종합사회복지관에서 ‘종이접기 자원봉사’를 하는 날이다. 복지관에는 스포츠댄스, 블록 도미노, 일기 쓰기 등 다양한 특별활동을 지도하는 강좌가 있다. 이런 강좌는 자원봉사자들의 참여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모두 무료다. 영어, 수학, 한자 같은 학습지도 강좌도 수강료가 저렴해 알뜰한 엄마들에게 인기다.
내가 하는 종이접기는 반복적인 손동작이 아이들 두뇌발달에 좋고 다양한 색감이 정서발달에 도움을 주기 때문에 엄마들이 좋아한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세상에 종이 찢고 오리고 접는 것을 싫어하는 아이가 있을까.
내가 종이접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난해 겨울. 평소 워낙 이것저것 꾸미고 배우는 것을 좋아했는데 동사무소에서 열린 강좌를 듣고부터 종이공예에 푹 빠지게 되었다. 우리 주변에 너무나도 흔한 종이들이 꽃, 액자, 모빌 등으로 무궁무진하게 탈바꿈하는 모습이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게다가 아이와 책상 앞에서 머리를 맞대고 종이접기를 하노라면 재미도 있고 자연스러운 대화까지 이끌어낼 수 있어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문득, 이렇게 유익하고 신나는 놀이를 여러 아이들이 함께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던 차에 이곳에서 ‘종이접기 자원봉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복지관에서 아이들 대상으로 종이접기 가르치는  주부 김수현

자원봉사를 하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아이 키우고 집안살림을 하느라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자원봉사는 거창한 것’ ‘나와는 다른 대단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작은 실천조차 가로막았던 것이다.
이 일을 하기 전에는 자원봉사란 남을 돕는 일이라 힘들고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강의 첫날, “선생님, 안녕하세요?” 하고 수줍게 인사하는 아이들을 보며 ‘내가 아줌마라는 호칭을 벗어난 것이 얼마 만일까, 내가 태호 아닌 다른 아이의 눈망울을 진지하게 바라본 것이 얼마 만인가’ 하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러면서 조금 늦었지만 이제라도 이렇게 봉사활동을 시작하길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 얘가 내 풀 써요.”
“선생님~ 저 샘플하고 똑같은 색깔로 바꿔주세요.”
다섯 살배기 꼬맹이들은 항상 요구사항이 많다.
“선생님, 여기 여기요! 응갔어요!”
“응? 뭐라고? 응가했다고?”
“아뇨, 은. 갔. 다. 구. 요!”
“은가? 아, 금이 갔다고! 그래, 이렇게 접어서 금이 가게 해야 돼.”

복지관에서 아이들 대상으로 종이접기 가르치는  주부 김수현

동사무소에서 종이접기를 배운 후 자원봉사자로 나서게 되었다는 김수현씨.


아직 말에 서투른 네 살배기 지인이가 ‘금이 갔다’는 표현을 ‘은갔다’고 해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었다. 정말 아이들의 상상력이란 세상을 정화하는 힘이 있는 듯하다. 늘 밝은 모습의 승진이, 엄마와 떨어지는 게 싫어 엄마를 옆에 앉혀놓고 종이를 접는 수민이, 꼬마신사 준영이, 강의실 문밖을 나서면 선생님에서 아줌마로 호칭을 바꾸는 옆집 정아…. 고사리 같은 손으로 꼭꼭 종이를 눌러 접고 선생님의 도움도 마다하고 혼자 하겠다며 입에 힘을 주고 집중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강의가 있는 금요일 오후에는 꼼짝 못한다고 투덜거렸던 나를 반성하게 된다.

아들도 엄마가 선생님이라고 자랑스러워해
17명의 아이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종이접기 삼매경에 빠져 있는 동안 아들 태호는 영어 강좌를 듣고 있다. 이곳에서 개설한 영어 강좌는 내용도 알차고 수강료도 저렴해 아이를 마음놓고 맡길 수 있다. 나는 가르치고 아이는 배우니 대화거리도 생기고, 아이도 엄마가 선생님이라며 자랑스러워한다. 나는 이젠 복지관이 사랑채처럼 느껴진다. 봉사 또한 마치 품앗이 같다. 엄마들이 돌아가며 서로 아이들을 돌보는 커다란 마당이 있는 동네 사랑채.
이곳에서 아이들은 아파트 벽과 높은 담벼락을 허물어 친구를 만들고 이웃을 얻는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육아에 대한 부담이 큰 맞벌이 부부들의 저출산율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 이는 우리의 삶이 고립화된다는 의미일 터. 건강한 아이를 낳아 건강하게 기르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 아닐까. 사람들이 자신이 가진 재주를 조금씩 나누어 이렇게 아이들이 뛰어놀 너른 마당을 만들어준다면 우리네 삶도 더욱 풍요로워질 텐데….
9월부터 신설되는 초등부 종이접기 강좌엔 태호도 수강신청을 할 계획이다. 종이접기의 인기가 높아 초등부 강좌를 신설해야 하니 절로 신바람이 난다. 이런 내 모습을 보고 남편은 밝고 활기찬 모습이 보기 좋다며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준다. 육아와 가사에 치여 사회봉사는 남의 일처럼 생각하는 주부들이 있다면 나를 통해 나처럼 평범하고 재주 없는 사람도 이 세상 어딘가에 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들로 인해 나의 삶도 더욱 푸릇푸릇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여성동아 2004년 9월 4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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