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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남다른 인생

이색 등산정보서 ‘게으른 산행’ 펴낸 나무박사 우종영의 20년 나무 사랑

■ 기획·최호열 기자 ■ 글·박윤희 ■ 사진·지재만 기자

입력 2004.08.10 14:46:00

20년 동안 1천 종이 넘는 나무를 치료하고, 나무학교를 열어 전국의 산과 숲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나무와 진정한 친구 되는 법을 일깨워주는 우종영. 그가 나무박사가 되기까지의 곡절 많은 삶과 나무에게 배운 삶의 지혜를 들려주었다.
이색 등산정보서 ‘게으른 산행’ 펴낸 나무박사 우종영의 20년 나무 사랑

김정호의 역마살이 대동여지도를 낳았다면 나무의사 우종영씨(50)의 역마살은 ‘나무지도’를 탄생시켰다고 해야 할까, 최근 그가 이색적인 등산정보서 ‘게으른 산행’을 출간해 눈길을 끌고 있다.
“산에 오르는 등산객들의 걷는 속도를 늦춰보려고 ‘나무지도’를 그리게 되었어요.”
봄의 새싹이 낙엽으로 소멸하는 이치처럼 시간의 길이는 다르지만 산도 1년에 0.3밀리미터 정도로 마모된다고 한다. 그런데 등산객들이 빠른 속도로 산을 오르내리면 그 속도만큼 산도 일찍 망가져버린다는 것. 즉 사람들이 천천히 산에 올라야 그 ‘느림’ 만큼 산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산이 건강해야 사람도 진정으로 건강해질 수 있는 까닭에, 사람과 산이 행복하게 공존할 수 있는 해법은 ‘게으른 산행’.
“게으른 산행이란 해가 중천에 뜰 무렵 일어나서 하는 산행이 아니라 새벽밥 지어먹고 산에 들어서서 맑은 공기 마시며 자연의 친구들과 넉넉한 시간을 보내는 겁니다. 산 정상을 정복하겠다는 목적으로 노동을 하듯 빠르게 산에 오르지 말고 걷는 것 자체를 즐기다 보면 땅과 나무와 관계 맺기가 가능해지거든요. 게으른 산행을 하면 진정한 휴식을 취할 수 있어요.”
휴식(休息). 그는 이 글자의 뜻만 살펴봐도 사람과 나무의 관계성을 잘 알 수 있다고 한다.
“휴식을 바꾸어 말하면 ‘인간과 나무의 숨쉬기’라고 할 수 있어요. 우선 ‘휴(休)’자는 사람이 나무 옆에서 쉬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고, 그 다음 ‘식(息)’자는 ‘숨쉴 식’으로 나무와 사람이 서로 숨을 쉰다, 과학적으로 말하면 가스교환을 한다는 의미죠. 사람은 나무에게 탄소를 주고 나무는 사람에게 산소를 주면서 서로 친구가 된다는 뜻입니다.”
이름은 기호에 불과하지만 누군가와 친구가 되려면 이름을 알아야 한다. 이름을 알 때 비로소 존재 대 존재의 관계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등산할 때 앞사람의 엉덩이나 신발만 보며 정신없이 걷지 말고 발을 멈추고 오래도록 나무를 들여다보라고 권한다.
“제가 그린 나무지도를 보면 자신이 가는 등산로에 어떤 나무들이 살고 있고, 그 나무들의 이름은 무엇인지 자세히 알 수 있어요. 나무의 이름을 기억하기 시작하면 금방 친구가 될 수 있죠. 이름을 기억한 다음에는 그 나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관찰해보세요. 그렇게 하다 보면 나무를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고 점점 아껴주고 싶어질 겁니다.”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날 가족과 함께 북한산에 오른다고 치자. 도선사 주차장에서 백운대로 이어지는 등산로를 택할 경우 각양각색의 수많은 나무가 우리 눈에 들어온다. 만일 매표소에서 주는 평범한 등산지도를 나침반 삼아 산에 오른다면 눈에 보이는 나무들은 그저 무의미한 나무일뿐이다.
그런데 그가 그린 나무지도 한 장이 손바닥 위에 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도선사 주차장에서 인수대피소에 이르는 길에 산뽕나무를 비롯해 쪽동백나무, 광대싸리, 느릅나무, 물푸레나무 등을 보물찾기하듯 꼼꼼하게 찾아볼 수 있다. 나무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는 새로운 눈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싸리나무이면 싸리나무이지 왜 광대싸리라고 하는 지에 대한 사소한 궁금증까지도 해결하며 산에 오를 수 있다. 자연히 사람들이 여유로운 산행을 할 수밖에 없다.
조선시대 김정호가 해냈던 일은 이제 현대인들이 인공위성의 도움을 받아 척척 해내지만 나무지도는 최첨단과학이 대신할 수 없다. 그는 이 작업을 지난 3년간 해왔다.
“전국 60여 곳의 산을 돌아다닌 후 21곳의 산을 엄선했어요. 그런 다음 각 산마다 최소한 6~7번을 오르내렸죠. 계절의 아름다움과 다양한 식물을 골고루 만날 수 있는 등산로를 지정해 일일이 지도를 그리고 사진을 찍다 보니 거의 산에서 살 수밖에 없었어요.”
‘게으른 산행’이 단순한 등산정보서가 아니라 발로 그린 나무도감이요, 식물도감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나무와 그의 순애보는 2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이색 등산정보서 ‘게으른 산행’ 펴낸 나무박사 우종영의 20년 나무 사랑

산에 올라 숲을 내려다 보는 우종영씨와 부인 조숙자씨.


고등학교 때 그의 꿈은 천문학자였다. 밥 세끼 간신히 먹던 시절, 신문배달 하면서 쳐다본 새벽별이 그렇게 예뻐 보일 수 없어 우주의 비밀에 다가가기 위해 직접 망원경까지 만들어 별을 관찰할 정도로 열성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뒤늦게 자신이 색맹이란 사실을 알고 천문학자의 꿈을 포기했다.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그는 천문학자가 될 수 없다면 학교 졸업장도 무의미하다고 생각해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농사를 지었다. 그러다가 군에 입대했지만 제대 말년에 탈영을 했다.
“헌병대에 잡혀갔어요. 영창에 가기 위해 대기중이었는데 상부로부터 중동에 건설노동자로 갈 건지 영창을 갈 건지 선택하라는 제안을 받게 됐어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70년대 중동 취업붐을 타고 탈영병인 그가 배관공이 되기 위해 사막의 모래바람 속으로 휙 날아갔다.
“중동에서 2년 동안 일하면서 1천3백만원을 벌었어요. 당시 2층 양옥집을 살 수 있는 돈이었죠. 모두들 부동산에 투자하라고 했지만 저는 몽땅 농사짓는 데 투자했어요. 3년 만에 폭삭 망할 줄 누가 알았나요. 완전히 빈털털이가 되었죠.”
그는 절망감 때문에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1년 남짓 매일 북한산에 올라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서른 살이 되도록 뭣하나 제대로 한 게 없구나. 차라리 죽어버리자’ 하는 생각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하는 순간, 누군가가 그를 말렸다. 나무였다. 죽음의 문턱에서 나무가 이런 말을 건네 왔다.
“나도 사는데, 너는 왜 아까운 생명을 포기하려고 하는 거니?”
그 길로 마음을 다잡은 그는 부인 조숙자씨(49)와 함께 조그만 화원을 시작했다. 이때부터 그는 나무에 ‘미치기’ 시작,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나무들을 관찰하고 연구하는 데 땀방울을 쏟았다.
20년 동안 1천여 종이 넘는 아픈 나무를 치료하다 보니 이젠 나무만 봐도 나무 이름뿐 아니라 생태와 품성까지도 훤히 꿰뚫는 나무 도사가 됐다. 현재 그는 나무관리회사 ‘푸른공간(www.greenspace.co.kr)’을 운영하고 있고, UN산하기구 지속가능개발네트워크 한국지부(KSDN)에서 나무학교 선생님으로 일한다. 이 밖에도 전국 산이나 숲으로 출강해 나무관리법과 생태에 대해 알려주는 ‘나무 가이드’다.
자살 직전에 그를 살려준 나무에게 보답하기 위해서일까. 그는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 ‘나무야, 나무야 왜 슬프니?’ 등의 에세이를 통해 마음의 문을 닫고 자연과 교신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나무로부터 배운 인생의 지혜와, 나무와 친구 되는 비결을 소상히 전해주고 있다.
“젊은 시절, 북한산에서 자살을 생각했던 경험 때문일까요? 저는 아까시나무 앞에만 서면 숙연해져요. 그리고 아까시나무가 ‘힘이 들어도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산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생은 의미가 있답니다’ 하고 속삭이는 것만 같아요.”
그는 지난 95년부터 실크로드 종단 생태기행을 시작, 북만주에서 몽골에 이르는 대초원과 숲을 오가며 식물자원을 연구, ‘중앙아시아 식물도감’을 만드는 중이다. 그가 천산북로를 15차례나 오가며 카메라에 담은 사진만 해도 무려 6만여 장. 이제 몽골 식물조사는 다 끝났고, 카자흐스탄 지역만 조사하면 된다고 한다. 매년 몽골에서 20일 남짓 체류하는 동안 소요되는 비용만 해도 1천5백만원이나 든다. 그는 왜 이렇게 방대한 작업에 뛰어든 것일까.
“한민족의 대륙적 기질을 복원하고 싶어요. 유라시아를 활동무대로 삼았던 우리 민족이 분단 이후 사고영역과 마음 씀씀이가 좁아졌잖아요. 딱 반세기만에 대륙기질이 냄비기질로 바뀌어 버렸어요. 한민족이 역사적으로 융성했던 시기는 고구려처럼 대륙으로 뻗었을 때잖아요. 앞으로 대륙과 교류하지 않으면 한민족은 쇠퇴하고 말겁니다.”

나무를 향한 애정에 그의 타고난 역마살이 더해졌기 때문일까. 어려운 고비도 많았지만 그는 지금까지 몽골 탐사에 따르는 난관을 잘 헤쳐왔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데서 불거지고 있다.

이색 등산정보서 ‘게으른 산행’ 펴낸 나무박사 우종영의 20년 나무 사랑

우씨는 10년째 실크로드를 다니며 ‘중앙아시아 식물도감’을 만들고 있다.


“한국 사람들은 중앙아시아가 아주 먼 곳에 있는 줄 알아요. 경의선 철도만 놓이면 중앙아시아는 우리 마당이나 마찬가지죠. 현재 중앙아시아에 많은 고려인들이 흩어져 살고 있어서 통일이 되면 한민족의 큰 힘이 될 원동력을 그 사람들이 가지고 있어요. 식물은 먹거리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것인 만큼 중앙아시아가 우리의 생활권이 될 때를 대비해 충분한 식물조사를 끝내놓아야 하는데도 사람들이 무관심해요.”
그는 애써 방대한 작업을 해놓고도 정작 책을 출간할 곳을 찾지 못해 고심하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놓아주기’와 ‘그리움의 간격’이 부부 사랑 비결
문득 그의 어깨에 걸쳐진 가방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꼼꼼한 바느질로 누빈 수제 가방이었다. 산에 가지 않을 때도 등산복에 등산화 차림인 그에게는 왠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고운 소품이었다.
“아내가 만들어줬어요. 원래 이런 것 잘 만들어요. 살림이 쪼들릴 때는 직접 옷까지 만들어주고 그랬어요.”
수줍은 그의 미소에서 나무를 향한 애정만큼이나 부인에 대한 각별한 사랑이 느껴졌다. 남편으로서의 인간 우종영이 궁금했다. ‘그렇게 산으로만 다니시는데 집안이 온전해요?’ 하고 묻자 그의 얼굴에 미소가 그려진다.
“저희 부부 사랑의 비결은 ‘놓아주기’와 ‘그리움의 간격’ 지키기예요.”
잽을 날리려다 스트레이트로 한 방 맞은 권투선수의 기분이었다.
이색 등산정보서 ‘게으른 산행’ 펴낸 나무박사 우종영의 20년 나무 사랑

우종영씨는 20년 동안 1천여 종의 나무를 치료한 나무 의사다.


“산에 가보면 침엽수들이 적당한 간격으로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어요. 나무들은 적당한 간격으로 서 있어야 살기가 편안하거든요. ‘그리움의 간격’인데, 너무 붙어 있으면 싸우게 되고, 너무 떨어져 있으면 관계가 아예 없어지죠. 나무들은 가까이 있으면 뿌리에서는 양분과 수분의 쟁탈전이 일어나고 줄기에서는 서로 햇볕을 많이 받으려고 키 경쟁을 합니다. 또 너무 떨어져 있으면 서로 의지할 것이 없어 비바람에 쓰러지거나 제대로 크지 못해요.”
그는 16세 때 버스 안에서 부인을 처음 만났다. 첫눈에 다소곳한 여학생이 마음에 들어 먼저 말을 걸었고 오랜 연애 끝에 결혼했다. 결혼 초 그는 새벽에 나가 한밤중에 들어오고 아무 말 없이 며칠씩 집을 비우기 일쑤였다. 부인이 적응을 못한 건 당연하다. 이 일로 아옹다옹 싸우기도 많이 했지만, 부부생활을 별 탈 없이 유지할 수 있는 결정적인 비결을 나무가 알려줬다.
“아무리 부부라고 해도 사람에게는 저마다 혼자 가꾸어야 할 자기 세계가 있는 것 같아요.”
그에게는 대학원에 다니는 딸이 하나 있는데 자식 교육도 철저한 방목형이다.
“사람 손을 많이 탄 분재는 주인이 어느 순간 잠시 손을 놓으면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죽어버려요. 남이 돌봐주는 데 이미 익숙해진 탓이죠. 아이를 키우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품안의 자식이라고 무조건 감싸고돈다거나 지나치게 간섭하면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그저 끊임없이 지켜보기로 했죠. 나무에게서 배운 육아의 지혜죠.”
하지만 가족들과 너무 떨어져 있었다고 생각될 때는 여행도 자주 다닌다. 한번 길을 떠나면 일주일도 좋고 열흘도 좋다. 여느 가족들처럼 정해진 관광지를 다니는 것이 아니라 무작정 달린다. 해가 지면 오토캠핑도 마다하지 않는다. ‘야인 가족’이 따로 없다.
그런가 하면 강원도 화천에 아지트도 있다. 그가 홀로 도끼 한 자루 들고 통나무를 깎아 못질 하나 하지 않고 자연친화적인 집을 짓고 자작나무 농장도 꾸몄다.
“화전민처럼 사는 게 꿈이었는데 막상 통나무집에는 일년에 한두 번 밖에 못 가요. 나무가 숲 없이 혼자 자랄 수 없는 것처럼 사람도 혼자 있으면 너무 외로워서 미쳐버릴 것 같아서요.”
아픈 나무들에게 ‘편작’이자 ‘화타’와 같은 나무의사 우종영. 그가 앞으로도 중앙아시아를 계속 드나들며 역마살 인생의 또 다른 결정판이 될 ‘중앙아시아 식물도감’을 순산하기를 기대해본다.

여성동아 2004년 8월 4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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