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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이 여자의 드라마틱 인생

소아마비로 오인해 40년간 다리 절고, 고단한 인생 살다 새 삶 찾은 박강월

■ 글·박윤희 ■ 사진·김형우 기자

입력 2004.07.12 11:09:00

두 살 때 다락에서 떨어진 후 40년을 소아마비인 줄만 알고 다리를 절룩이고 살아야 했던 박강월씨.
게다가 그는 결혼 후 남편이 술과 외박을 일삼아 평생 고단한 삶을 살았다. 그가 새 삶을 찾기까지의 드라마틱 인생.
소아마비로 오인해 40년간 다리 절고, 고단한 인생 살다 새 삶 찾은 박강월

박강월씨는 최근 자신의 파란만장한 삶을 책으로 엮었다.


만일 당신이 의사의 오진 때문에 평생을 지체장애인으로 살아야 했다면? 드라마에서나 있을 법한 어처구니없는 일을 겪은 주부가 있다. 최근 자전에세이 ‘그래 그래 괜찮아’를 펴낸 박강월씨(51)다.
“두 살 때 다락방에서 굴러떨어져 왼쪽 다리를 다쳤어요. 그런데 병원에서는 소아마비라고 판정을 내렸나 봐요. 저도 어른들이 ‘넌 소아마비라서 다리를 저는 것’이라고 하니까 그런 줄로만 알고 한쪽 다리를 절면서 살았어요.”
자신이 소아마비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마흔이 넘은 94년이었다. 왼쪽 다리에서 통증이 심하게 느껴졌지만 ‘원래 그러려니’ 하고 넘겼던 어느 날, 딸아이의 체육대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다 심한 통증 때문에 길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었어요. 의사 이야기가 어린 시절 사고를 당했을 때 대퇴부 뼈가 탈골되면서 부러졌는데, 부러진 뼈가 골반 뼈에 올라붙는 바람에 그만큼 다리 길이가 짧아진 거였대요. 그래서 자연히 다리도 절게 된 것이고요.”
의사는 ‘인공고관절 삽입수술을 하면 똑바로 걸을 수 있다’고 했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너무 황당했어요. 처음 다리를 다쳤을 때 의사가 부러진 뼈를 바로잡았더라면 제 인생은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었던 거잖아요.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할 말을 잃었어요. 그 회한을 말로 다 표현 못하죠.”
더구나 40년 동안 다친 부분을 방치한 탓에 그의 살과 뼈는 심하게 썩어가고 있었다. 특별한 이유 없이 다리가 아팠던 것이 바로 그 때문이었다. 빨리 수술하지 않으면 한쪽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그는 곧바로 수술대에 올랐고, 인공고관절 삽입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그의 키는 4cm 정도 자랐고 다른 사람들처럼 두 다리로 씩씩하게 걸을 수 있게 됐다. 그로서는 천지개벽과도 같은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이 ‘4cm’의 차이 때문에 살아오면서 숱하게 차별을 당한 것, 무엇보다 결혼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남편 문제로 술에 의존하고 자살 충동 느끼기도
“남편이 저를 10년 동안 따라다녔어요. 꽉 닫혀 있던 제 마음이 10년 만에 열렸는데 이번에는 결혼의 장애물이 제 마음이 아니라 다리였어요.”
사업을 하는 남편 박형우씨(49)는 두 살 연하로 그와는 홍익대 미대 동기동창생이다. 대학시절 남편은 그를 처음 보자마자 청순한 그의 외모에 이끌렸고 적극적인 구애를 펼쳤다. 군대에 다녀와서도, 사회인이 되어서도 멈추지 않는 지고지순한 사랑에 승복해 그는 1982년 1월 서울의 한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시부모님의 자리는 공석이었다.
“시집의 반대가 엄청 심했어요. 제가 남편보다 연상이고 가난한 집 딸인데다, 무엇보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시아버님이 결혼을 결사 반대하셨어요.”
그의 시아버지는 말로는 결혼을 허락했지만 매일 그를 불러 단둘이 겸상을 하면서 그가 난처해할 만한 질문을 골라서 하고, 결혼 날짜를 잡고도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3개월 단위로 결혼식을 미뤘다.
남편은 어쩔 수 없이 사랑을 선택하기 위해 부모와 인연을 끊었다.
“남편은 대기업 광고회사에 취직을 했고 저는 인형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악착같이 돈을 모았어요. 결혼 일년 만에 순전히 우리 힘으로 집도 샀어요. 딸 두리도 태어나서 남부러울 게 없었죠. 그런데 이번에는 남편이 속을 썩이기 시작했어요. 거의 매일 술에 취해서 새벽에 들어오는데 그때 제가 느낀 배신감이 정말 컸어요.”

일주일에 반은 부부싸움을 했다. 게다가 남편은 하루걸러 외박을 하기 시작하더니 일주일이나 보름씩 장기 외박을 하기도 했다.
“지긋지긋한 날의 연속이었어요. 스스로 사는 모습이 너무 부끄러워 대인공포증까지 생겼어요. 실제로 장롱 속에 자주 들어가 있기도 했어요. 자존심이 강해서 누구한테 하소연도 못하고, 거의 알코올 의존증 직전까지 가도록 술을 마셨죠. 어떤 때는 ‘지하철 철로에 뛰어내려버릴까’ 하는 자살 충동까지 일어나더군요.”
사정이 이렇다 보니 딸 두리에게도 이상이 생겼다. 초인종 소리만 나도 깜짝 놀라서 울어대고 스트레스성 변비가 심해져 갔다. 아이 역시 사람을 기피하며 심한 귀울음 증상에 시달렸다. 그야말로 가정이 아니라 지옥이었다.
“소리 없는 총이 있으면 남편을 쏘고 싶을 정도로 미웠어요.”
보름 동안 외박을 했던 남편이 집으로 돌아오던 날, 그는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그러자 남편이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다’며 용서를 구했다.
“늘 남편이 가해자고 저만 피해자라고 생각했는데 문득 저도 남편에게 가해자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늘 제가 잘한 점만 생각하니까 남편이 미웠는데 돌이켜보니까 저도 잘못한 일이 많더군요. 그래서 남편을 용서하되 6개월 안에 술을 끊고 달라지라고 요구를 했죠.”
소아마비로 오인해 40년간 다리 절고, 고단한 인생 살다 새 삶 찾은 박강월

박씨는 시련을 딛고 지금은 호산나문화선교센터를 만들어 문화사업을 벌이고 있다. 사진 가운데 남자가 남편이고 그 왼쪽이 박강월씨.


무엇보다 하나밖에 없는 딸에게 사랑보다 ‘화’를 대물림하며 자라게 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는 평등한 부부로 바로서기 위한 노력을 하면서 ‘무조건 받으려고만 했던 사랑’을 ‘나를 조금쯤 포기하는 사랑’으로 바꾸어 나갔다.
“지금 남편은 술도 끊고 저밖에 모르는 자상한 사람이 되었어요.”
현재 그는 ‘4cm’의 차이 때문에 인생에서 놓쳐온 많은 것들 되찾기 위해 분주한 삶을 살고 있다. 인천에 호산나 문화선교센터를 만들어 정기적으로 뮤지컬 공연을 하는가 하면 지역문화 활성화를 위한 각종 문화행사도 기획한다. 그는 이 모든 행사의 대본과 연출을 맡는 총감독이고 남편은 그의 활동을 아낌없이 지원해주는 정신적, 재정적 후원자다. 앞으로 몇 년 후에는 부부가 힘을 합해 경기도 파주에 뮤지컬 공연 전용관도 지을 계획이다.
“누구에게나 뜻하지 않은 고통과 슬픔이 있게 마련이죠. 하지만 지나고 보면 그런 것들은 다 의미가 있고 새로운 삶의 전기가 되는 것 같아요. 지금 아무리 힘들어도 ‘그래 그래 괜찮아’ 하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동시에 주변의 힘든 사람들에게 ‘그래그래 괜찮아’ 하고 위로의 말을 건넬 마음의 여유만 있다면 세상은 좀더 살 만한 곳으로 변해가지 않을까요?”

여성동아 2004년 7월 4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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